팩션 FACTION

남해 가는 길 (두번째)

원평재 2006. 11. 12. 17:40

"저 양반 보퉁이가 젓갈 항아리라구요---? 에이, 아닐테지요. 여기까지

내려오며 언제 우리가 젓갈 시장에  들렸어야 말이지요.

남해군이나 삼천포 항이 나오면 그제서야 필경 들릴텐데---."

김범수의 건너편 쪽으로 앉은 곱게 늙은 할머니가 얼굴에 맞게 고운 미소를

지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녀는 이런 관광에는 이력이 난듯이 보였다.

"아, 그럼요, 할머니 말씀이 맞습니다. 젓갈이라니오---, 그저 아무것도

아닙니다."

김범수는 황급히 부인하면서 보퉁이를 다시 꼭 껴안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새벽에 잠실을 떠난 관광버스는 협찬사를 두어군데 들리면서도 벌써

하동 평사리, 박경리가 쓴 대하소설 "토지"의 본향을 바로 좌우로 거느리며

화개 장터를 향하여 달리고 있었다.

 



45인승 리무진 관광 버스에는 한 서른명 가량의 중년과 노인들이 짝을

맞추어, 혹은 홀로 평일의 가을 관광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남해는 왜 가시나요?"

머리칼은 반백이었지만 얼굴은 아직 동안인 잘 생긴 남자가 얼굴이

고운 그 할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제가 미국에서 살다가 왔거든요. 번 돈도 없고 자식들도 미국 생활에

쫓기며 살아가고 해서 부부가 65세 되던 해에 연방 정부에서 운영하는

양로원엘 들어갔지요.

건강 보험은 메디케이드 혜택을 받으니 별로 걱정할게 없었구요.

한인들이 많이 사는 뉴욕시 플러싱의 양로원에 영감과 함께 들어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영감이 다른 여자와 눈이 맞어서 백년해로가 깨어졌어요."

 

"상대는 한국계 여자였나요?"

젊어보이는 혼자 온 어떤 중년의 사내가 물었다.

"왠걸요, 한인들은 주로 그 양로원 건물의 1, 2층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3층의 필리핀 여자와 눈이 맞았어요.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주제에, 호호호."

할머니가 곱게 웃었다.

"하여간 그렇게 되고 보니 희망도 없고 주위에 민망하기도 하여서 귀국을

하고보니 미국 시민권자는 1년에 한번은 미국으로 나갔다 와야한다네요.

돈도 문제이지만 열 몇 시간을 비행기 타고 들락거리는게 나이가 들고보니

여행이 아니고 고문이예요."

 

"우리나라로 역 이민을 하시면 되잖아요?"

역시 아까 그 혼자 온 사내였다.

"그렇게 되면 연방 정부로부터 노후 연금도 안나오고 메디케이드 혜택도

사라지니까 감히 엄두가 나지않죠.

그런데 최근에 빙고가 터졌어요!

두가지 행운이 지금 내게 찾아온 것 같아요. 하나는 여기 남해군과

제주도에 미국 마을이 생긴다나봐요. 그리고 미국 마을에서 살게되면

이곳 남해에 이미 생긴 독일 마을처럼 1년에 한번씩 밖으로 나갔다 오지

않아도 되나봐요.

무슨 거소증인가 하는걸 수속하면 된다는군요.

그리고 이제 곧 우리가 들어갈 남해섬을 보세요.

보물섬 남해군이라는 별명이 어울리게 정말 경관이 좋고 먹거리도 많고

겨울에는 춥지도 않답니다.

또 독일 마을이 가까이 있어서 나같이 외국에서 살다온 늙은이에게는

정서적으로도 교류를 할 사람들이 많아요.

특히 서독 광부로 갔던 할아버지들이 좋아요, 호호호."

그녀가 또 곱게 웃었다.

 

"아니 그러고 보니 할머니께서는 여러차례 오셨군요. 그런데 왜 또 관광 버스

타고 오셨어요?"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 물어보았다.

"혼자 승용차를 몰고 올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관광 버스가 싸잖아요.

협찬사들이 있어서 우선 여행비가 싸게 나오고, 나는 그런 협찬사 물건을

하나도 사지 않으니 결국 비용이 싸게 먹히지요.

물론 여행사들로부터는 찍혔어요. 영업 방해가 된데요, 호호호."

 

"그럼 두번째 빙고로는 뭐가 터졌지요?"

고운 할머니는 이제 차안의 인기인이 되어서 여기저기에서 질문이

터져 나왔다. 

 

"네, 두번째 빙고는 서해안 당진에 있는 내 친정의 땅값이 아주 많이

올라서 시집간 내게도 유산이 생겼다는게 아니겠어요.

민법이 바뀌어서 시집간 딸들도 상속권이 인정되더라구요.

그래서 친정에서 생긴 돈으로 서울 서초동에 무슨 하이빌이라는 작은

주상복합 아파트를 일단 근거지로 하나 마련했고, 결국에는 남해군

앵강만에 생긴다는 미국 마을로 아주 내려올까해요.

앵강만에는 또 청정 유기농산물 재배지도 있고해서 노인들에게는 

여간 살기가 좋지 않아요---."

"에이, 할머니는 서독 광부 할아버지 한분과 눈이 맞았잖아요."

어느틈에 서울에서 따라 온 여자 관광 가이드가 할머니 바로 옆에와서

반쯤 놀리는 소리를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