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를 떠나며 축항에 매인 어선을 잡아보았다.
남해에서 삼천포 항으로 가는 길가에는 침엽수와 아열대성 나무가 혼재하였다.
창선 대교 위에서 앵글이 흔들렸다.
삼천포 항으로 들어가며---,
삼천포는 사천과 통합되면서 "사천시"가 되어 도시의 이름을 잃었다.
다만 어항의 이름만은 "삼천포 항"으로 남겨서 옛 이름을 일부나마 지킬 수
있었다고한다.
"잘나가다가 삼천포로---."의 유래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예전에
경전선 철도가 순천 쪽으로 가는데, 객차 2량은 삼천포로 떼어놓고가서
어리버리 잘못하면 목적지로 못간다는 내력이 가장 유력한 해설이라던가---.
한 때 이 말을 잘못쓰면 이 동네 사람들에게 혼이 나기도 했으나 이제
이름을 읽고나니 그것도 오히려 듣고싶은 아련한 추억이 되고 말았단다---.
아래에 보이는 삼천포 어시장은 활기가 넘친다.
그래도 상인들은 불경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호소하였다.
가을 전어가 잡히지 않아서 이 곳 산지에서도 값이 천정부지였는데 늦게나마
이제야 좀 잡히기 시작하여서 값이 내렸단다.
여기 보이는 플라스틱 한 대야의 전어값이 만원, 모두 살아있는 생물이다.
서울에서 달포전에 네마리에 만원하던 생각이 났다.
진주 출신, 일행 중의 한분이 전어회를 푸짐하게 떠서 스타이로폼인지
스치로폴인지 하여간 어름통에 잘 넣어서 서울 오는 버스 속에서 맛있게들
먹었다.
어느새에 버스는 남강을 지나 진주 시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강낭콩 보다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 보다 더 븕은 그 마음 흘러라---.
수주의 시가 생각났다.
남강은 아직도 그렇게 푸르렀다.
진주는 의기 논개의 혼이 살아있고 제1차 진주 대첩을 잊지않는 기갈 찬
고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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