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보고다닌 투어

친구의 아들과 우즈베키스탄 신부에게 주는 주례사

원평재 2006. 11. 7. 08:49

결실의 계절에 평소 가깝게 지내며 세교를 다지던 외우의 자제 혼사에 주례를 맡게

되어서 참으로 기쁜 마음을 금치 못하면서 아울러 주말이 시작되는 이 귀중한 때에

시간을 내셔서 이 자리에 만당해 주신 하객 여러분에게는 주례로서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혼례라는 말은 원래  저녁에 일가친척을 모시고, 아름다운 황촉을 태워 불길을 이루면서

이제 두 젊은이가 새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는 아름다운 약속을 천지신명에게 올리는

것이 전통이었으나 근세사에 와서는 멋없고 밋밋한 백주 행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이제 시대는 변하여 낮의 행사는 그것대로 있으되, 옛 모습, 아름다운 전통을

찾는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하여서 오늘 이 혼례가약도 저녁에 여러분을 뜻 깊게

모시게 되어서 주례는 다시 한 번 아름답고 복된 자리임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방금 주례는 시대가 변하였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참으로 이 시대는 변화의 시대입니다.

가까운 예로 주례사만 해도 제가 일찍이 처음 주례를 맡았을 때에는 보통 30분을

오르내려야 명주례사이고 예의를 차리는 것이었습니다만 이제는 그저 7분도 길다는 세태가

아닌가 합니다.


하기야 잔뜩 긴장한 신랑 신부에게 길게 인생살이의 잠언과 경구와 충고의 말을 나누어

보아야 큰 유익이 되지 않을 바에는 짧게 가슴에 와 닿는 말로 격려사를 새겨주는 것이

마땅하다는 데에는 주례도 동의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신랑과 신부에게 주고자 하는 주례사는 강단에서의 버릇대로

“노마드 주례사” 즉 “유목민 주례사”라고 제목을 정해봅니다.

 

인류사는 인간이 유목 시대와 농경시대를 거쳐서 산업사회로 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 시대는 급변하여 이 시대는 다시 노마드 시대, 신 유목민의 시대라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수송 수단의 급속한 발전과 이에 상응한 IT, 곧 정보 통신 수단의 혁명 때문일

것입니다.

이동수단의 급속한 발전과 이보다 더 빠른 정보통신 매체의 발전은 인간을 마침내

신 유목민의 시대로 진입시켰고 여기에 발맞추지 못하면 세상의 낙오자가 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오늘 아름다운 가약을 맺는 두 집안은 이런 점에서 시대 조류의 최첨단에 선 분들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신랑은 대학에서 현대적인 경영학 수업을 받고 현재  S사 에 근무하면서 국제화 비즈니스에

맨 앞장에 서 있으며 신랑 댁에서도 일찍 해외 쪽에 관련을 맺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신부 댁 쪽을 말씀드리자면 신 유목민 시대의 가장 빼어난 전형이자 모델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신부는 멀리 우즈베키스탄 출신으로 우리나라에 유학생으로 와서 현재 연세대학교

국제 대학원에서 국제 경영학을 배우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부의 부모님을 소개하자면 아버님께서는 몽골에서 오래 대학교수로

재직을 하고 지금은 은퇴를 한 분이며 어머니께서는 유명한 의사로서 현재 수도 

알마아타 에서 의술을 펴고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

또한 슬하의 삼남매도 맨 위는  의사인 남편과 미국 생활, 다음 둘째는 서울 대학교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셋째가 오늘 이 가약의 자리에 선 아름다운 신부인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는 북방 아시아 계통의 민족으로서 중앙아시아의

민족들과는 한때 시베리아 벌판을 말달리며 세계를 제패한 민족적 동질성을 공유하고

있는 이웃 사촌입니다.

두 사람은 이러한 동질성이 서로를 끌었는지 캠퍼스에서 자연히 영어로 말하며 사귀기

시작하여 오늘 이런 아름다운 자리에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 11위의 경제 대국으로 군림하게 된 것은 이 신 유목민의 시대에

적극적이고도 발 빠르게 대응한 지혜 때문이며 이 지혜를 배우러 여기 신부는 또 발 빠르게

이곳으로 왔다가 또 발 빠르게 가약의 인연도 맺게 된 것입니다.

 

중앙아시아 민족이 서양을 제패한 것은 서양 사람들이 당시만 해도 변화에 민첩하지 못하고

무거운 철기병을 유지했을 때, 이들과 대적한 중앙아시아 기마병들은 가벼운 군장의

경기병들로써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철기병들을 전후좌우에서 요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승리는 개인이 홀로 거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도 몽골 초원에서 벌이는 경기병들의 마상마술을 보고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만

마술의 달인들은 동시에 잘 조련된 말과 혼연일체가 되어있었습니다.


이 시대는 개인이 기본이 되는 경기병의 시대라고 합니다.

과거에 “지구는 둥글다”라는 컨셉은 이제 “평평한 지구”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모두 IT 테크놀로지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모두 작은 밀실에서 모니터를 보며 세계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도 동일 평면에

있는 사람처럼 생각합니다.

누구와도 연결이 되는듯하지만 그러나 그 어떤 사람과도 인간적 체온을 나누지 못하는

개인의 시대입니다.

이러한 때일수록 가정이라는 단위, 부부라는 단위가 아까 말한 경기병과 조련된 말의

혼연일체처럼 필수적인 시대인 것입니다.


이 기본 단위를 지키는 묘약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모든 경전, 모든 잠언이 일찍이 가르쳐왔듯이 바로 사랑입니다.

아무리 시대가 급변하여도 이 사랑이라는 두 글자가 갖는 위대하고 오묘한 힘은 변함이

없습니다.

우선 부부간에 서로 사랑하고 또 세계 각지로 역동적인 유목민이 되어 신천지를 개척한

부모형제들과도 사랑으로 연결하고 연대하십시오.

사랑은 받으려고만 하면 어렵습니다.

사랑을 주기 시작하면 만사가 쉽고 행복은 저절로 굴러옵니다.

 

그리고 사랑은 상대를 아름답다고 생각할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외양이 아름답고 마음이 아름답고 또한 상대방의 사고가 아름답다고 느낄 때 사랑은

꽃이 핍니다.

아름다움의 어원은 "알다"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바로 상대를 깊이 알고 이해할 때에 아름다움은 느껴지는 것입니다.

  

영어로 "알다"라는 말은 understand입니다.

바로 자신을 아래에 두는 자세입니다.

under-standing의 자세가 바로 이해의 자세입니다.

두 사람은 이 말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청마 유치환 시인의 행복이라는 시에서  한 구절을 읽어 드리면서 주례사에 가름합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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