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민족의 브라질 이민 역사는 반세기가 지났지만 미국 이민사에 비교하면
모든 면에서 미미한 편이다.
파라구아이에 농업 이민으로 갔던 사람들이 거의 브라질로 건너오다시피
하였어도 교민 숫자는 3만-4만 정도이며, 이 교민들이 현재 거의 모두
상 파울로에 거주하는 모양이다.
다만 한국 사람의 생활력은 이 곳에서도 빛이나서 브라질 의류, 직물 산업의
80 퍼센트 가량을 움직인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한 곳에 밀집하여 거주하지 않고 다운타운의 의류, 직물 시장에서
조용히 상권을 지배하고 한글 간판도 별로 내지않고 산다.
당연히 미국에서처럼 드러내놓고 한인 거리가 발전하지는 않았다.
물론 절대 인원이 적은 탓도 있다.
한편 일본 사람들의 브라질 이민사는 100년이 넘어서 벌써 4세 5세도
있다고 한다.
다운타운에서 일본인 거리가 여기처럼 화려하게 발전한 곳도 드물다.
하지만 이 곳 일본 교민들은 일본어도 잘 못하고 브라질로의 동화 현상이
심화 되었는데 그래도 일본 관광객들은 무리지어 돌아다녔다.
재미 있는 현상은 중국인들도 차이나 타운을 형성하지 못하고 이 일본인
거리에 스며 들어와서 함께 지낸다고한다.
일본인 이민의 숫자는 100만이 넘는다.
그러나 지난번 중국의 수뇌부가 이곳에 와서 300만명 이상의 이민 쿼터를
확보하고 가서 미래는 예측 불허이다.
브라질의 인구는 1억 8천 이상이다.
역경 속에서도 한국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많은 남미 국가와 비자 면제
협정을 맺은 것은 혜안에 다름 아니었다.
운전 면허증만 있어도 통하던 미국 시민권자들이 그렇다면 똑같이 하자는
브라질 룰라 대통령의 콧대 높은 자부심 때문에 비자를 받아야되고
일본 사람들은 자국의 필요에 따라서 역시 비자 면제를 하고 있지 않은
현실에서 한국 국적이 자랑스레 돋보였다.
아래 SAO PAULO라는 글자가 상 파울로이다. 박물관 앞---.
(브라질의 역사는 인디오의 역사와 함께한다.)
(종교는 로만 캐톨릭이 80퍼센트 이상이나 개신교도 10퍼센트 가량이고
아프리카 흑인들의 전통 종교, "부두" 같은 의식도 더불어 병행되고 있다.
"부두"는 일종의 퍼포먼스 의식이어서 따로 모이는 건물이 없다.
이 표지석은 성 바오로 2세 교황께서 이 곳을 방문한 사실을 기념한 것이다. )
무궤도의 트롤리 버스가 많았다.
(한인촌으로 들어가 본다---. 기대도 실망도 필요없다.)
(도심에 있는 일본인 거리로 들어가 본다. 놀라거나 부러워할 것도 없다.
4세에 속하는 일본 젋은이들은 모두 브라질 사람들이 되었다.
일본에서는 이들을 자국의 인구 감소를 막을 비상 수단으로 역이민을
추진하고도 있다한다.)
(리베르타 광장, 자유 광장에 일본의 신사 모양이 보인다.)
지금부터는 상 파울로의 저녁 모습으로 들어가 본다.
이튿날 아침, 상 파울로를 떠났다.
검은 머리 아가씨들은 브라질리언이고 노랑머리는 이탈리아에서 놀러왔단다.
2년전 18세 때에 이탈리아로 연수를 간 두 브라질리안과 친구가 된 이탈리아 처녀가 이번에 브라질을 찾았단다.
2년전이면 나도 하이틴이었다고 장군, 멍군을 하였다.
사웅 파울루여 안녕, 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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