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메조세요? (7회 - 끝)

원평재 2006. 12. 21.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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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사랑 이야기는 감동인데요, 다만 오늘 이렇게 말씀해 주시는게

꼭 감상주의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요.

엄마처럼 자기 세계에 철저한 분도 없으신데."

 

"그래 잘 보았어. 지금 사랑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입시 실기 평가를 앞둔

네 성악 세계에 불을 지펴주고 싶어서란다.

레슨 교수님이 다 잘 지도하실거라서 내 말이 잔소리가 되지 않게 일절

말을 안했지, 지금껒.

이제 최종 단계라서 내 의견, 내 방식을 네게 말해주는거란다.

보면대 위의 악보를 보고 노래를 정확하게만 부르는 사람은 노래를 하는게

아니라 단지 악보를 읽는다고 하지 않니.

코르 위붕겐---, 아니 '콘코네' 악보를 보고 노래 연습을 하는 것은

인간의 모든 감정을 영역별로 다 분류하여서, 그 감정에 맞게 노래 연습을

하라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

가사는 없지만, 아니 가사가 없어서 더욱 음정에 어떤 감정이 배어 있는지를

스스로 파악하고 자기 감정을 이입해 넣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해.

내가 소년 소녀 합창단에 있을 때에는 그런걸 잘 몰랐어.

그저 악보 잘 보고 발성부를 정확히 성대의 어디에 맞추느냐,

두성을 낼 때에는 머리의 어느 부위에 발성부를 공명 시키느냐,

그런 정도였지만 노래에 진정으로 감정이 들어간 것은 나이가 들고부터

였단다.

사랑, 갈등, 슬픔, 증오, 절망, 최후의 기쁨, 이런 감정을 모두 집어넣어

연습토록 콘코네의 50편 악보는 편성되어 있다고 나는 생각해.

콘이라는 말이 우리말의 공통, 혹은 서로 상통한다는 뜻과 비슷한

의미가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 감정 이입을 가르치신 것도 그 선생님이었다.

너도 이제 입시 실기에서 그런 감정이입을 충분히 넣어서 실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지.

감정이입이 물론 쉬운 일은 아니야. 그래서 점수 차이가 나는 것이고---.

그러니 엄마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간접 체험으로나마 사랑과 슬픔과

또 기다림의 감정을 네 노래 속에 다 집어넣어 보라는 것이다."

 

 

 

 

"아직 사랑을 해보지도 못한 제가 그런 감정이입이 될까요?"

"그럼. 나도 처음에는 간접체험으로 시작했지, 당연히.

감정 이입을 가르치신 선생님께서도 처음에는 영화와 연극과 소설과

시에서 사무치게 감동 받았던 장면을 떠올리라고 하셨다.

나는 정말 그렇게 상상의 세계를 넓혀나갔고 그 중에서도 먼저 사랑과

연모의 감정을 터득하면서 다른 감정, 이를테면 실연의 슬픔, 증오와 같은

감정의 이해 폭도 금새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태초의 빅 뱅이라는 말처럼---." 

"아, 그분, 이제 생각이 나요. 그렇게 끔찍히, 극진히 엄마를 대해주셨다던

그 분 생각이---,

예전에, 메조가 못되면 메주처럼 된다고 하셨다던---?"

 

"그래. 처음부터 그분이 내게 보내는 눈빛은 강렬했어.

그걸 느낄 때마다 난 좀 어벙한 표정과 말로 방패를 세웠지.

선생님, 제가 유명한 합창단에 있는걸 아니까 교실에서 아이들이 제게

노래를 시켜요.

안하면 왕따가 되죠.

성가시기도 하고 그래서 저는 제가 맡은 메조나 알토 음정으로 북치는

소년을 불렀죠.

그러니 그게 그냥 팜- 팜- 팜- 팜- 뒷 북 치는 소리만 냈거든요.

아이들이 아우성을 쳤지요.

그래서 저는 얼떨결에 고향의 봄을 또 알토로 불렀어요.

멜로디를 기대했던 아이들이 배꼽을 잡고, 대책이 없다고 다시는 안시켜요.

이런 식으로 나는 그분도 웃겼단다.

그렇게 어벙한 소리를 하여서 그 분과의 무드를 희석시키곤 했었지.

언젠가 만나뵈면 선생님, 저 메주 밖에 못되었지만 메조 소프라노 딸

하나 잘 키우며 된장 맛있게 끓이고 있어요, 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선생님은 그렇게 도망치듯 사라지시더구나."

이정미 여사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아이! 엄마, 우리 비싸고 좋은 음식 말고 된장 나오는 한정식 먹으러 가자."

"그래, 메주가 결국 맛있는 된장이 되듯이 메조 소프라노는 성장하면서

끊임없이 노력하면 가장 폭넓은 음역의 성악가가 될 수 있단다.

소프라노와 알토, 모든걸 다 소화할 수 있지.

아까 벨레자 보칼레 이야기를 했지만 체칠리아 바르톨리가 또한 그렇지

않으냐.

내가 성가대를 지휘하지만 나는 만능이라고 자부하고 자신감에 차 있단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자랑은 안하지만 정말 자부심을 갖고 있어.

소프라노, 메조, 그리고 알토를 지휘하고 연습할 때 나는 모든 단원들에게

모두 멜러디를 먼저 부르게하잖니.

유명한 성악가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지역사회, 아니 내 가정에서도

쉽고 흔한 노래를 멜러디로 불러줄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지.

물론 메조 파트에 세운 분들을 손이 안으로 굽는다고 더 많은 애정으로

대하는건 어쩔 수 없지만 사실 메조는 맨 위 소프라노 음정과 맨 아래

알토 음정의 대위를 화성으로 아우르는 역할이니 가장 중요한 위치인 것도

사실이란다.

이런 이야기 이제야 하는건 너를 소프라노 시키고 싶은 엄마 마음으로

마지막까지 닥달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음~."

이정미 여사는 잠시 말을 끊었다.

 

Montserrat Caballe & Montserrat Marti - White Christmas
playstop

 

 

 

 

   

 

 

 

"엄마, 또 고백이 남아있어요?"

"고백이라기 보다---, 그래 하나만 더 이야기할께.

너도 알다시피 나는 지휘봉 없이 맨 손으로 지휘를 하지않니.

내가 뭐 거장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을 흉내 내는건 아니고 나는 내 손과

손가락에 기를 모은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휘해야할 곡의 악상이 모두 내 손가락, 손, 팔과 어깨에 배어들어

가서 마침내 단원들의 마음과 혼연일체를 이루어 그 노래를 완성한다는

생각이지.

단원들은 내 손가락을 따라서 노래를 부르는 걸로 처음에는 생각하지만

나는 그들의 시선이 어떻게 내 손가락 끝을 따라다닐 수 있겠냐고 묻는다.

나는 그들에게 내 눈에 초점을 맞추라고 한다.

내 눈에 그들의 시선을 붙잡아놓고나면 마침내 그들은 내 지휘동작 전체에

호흡을 맞추게 되고 우리는 혼연일체가 되는 것이지.

내 이 호수와 같이 큰 눈에 눈을 맞추세요, 이렇게 내가 외치면 처음에는

감히 나와 눈맞춤하기를 피하다가 마침내 모두 내 눈에 초점을 맞추게되고

그 순간부터 나는 안심하고 지휘를 한단다.

맨 손으로하는 지휘 동작의 반경은 처음 소폭이다가 점점 원을 그리며 크게

확장되어 나가면 단원들은 나와 일체가 되어서 음역을 넓히고 따라온다.

카라얀의 교향악단 지휘의 모습에 진배없다고 자부하며 또한 내 지휘자

선생님의 동작을 번개처럼 머리에 떠올린다.

그 분의 시선이 순간 내 머리에 꽂히고 나는 알지못할 희열에 가득하여

눈물이 핑 돌게되더구나---.

역시 맨손으로 하신 선생님의 그 섬세한 지휘동작은 카라얀의 큰 동작보다

더 멋있었단다.

선생님의 초췌해진 모습과 지하철을 허둥지둥 타러 가시는 모습은 당분간 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겠지만 나는 곧 내 눈망울 속에서 선생님이 눈물

흘리시며 나와 일체감을 구현하던 그 기억으로만 다시 채울려고 한다."

 

모녀가 신촌 로다리의 형제 갈비 근방에서 전통 한식이나 가정식 백반 집을

뒤지고 있는데 조금 전까지 보였던 석양의 잔영을 덮고 어느틈에 회색

구름들이 하늘에 잔뜩 끼었다.

그러고 보니 싸락눈이 약간씩 바람에 날리며 두 사람의 볼을 때리기 시작

하였다.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다.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조짐같았다.

 

(이번 이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