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소하 문학상 후기 (1회)

원평재 2007. 1. 1. 07:41

20913

 

 

정해년, 새해가 밝았다.

양력 과세로 인사차 찾아오는 제자들을 연구실에서 맞는 서윤식 교수는

새해 첫날 아침에도 일찍 출근하여 수북히 쌓인 연하장을 정리하다가

'소하 문학상 시상식'이라는 행사의 초청장을 발견하였다.

새해 첫주의 주말 점심 시간에 광화문 호텔, 소연회실로 모신다고 다소

불편한 날짜와 시간을 적어내놓은 내용으로 보아서는 성의가 있는 사람들만

와달라는 간곡한 뜻이 서린듯도 하였는데,

어쨌건 거동하기에는 불편한 초대였다.

 

 

"소하 문학상이라니? 그리고 소하는 또 어떤분의 아호인지? 남자야,

여자야?"

초대장을 읽으며 그는 중얼거리다가 선정된 수상자가 이지함 교수로 되어

있어서 아하, 그렇다면 만사 덮고 꼭 가야겠다고 작정을 하였다.

수상자인 이 교수는 그보다 한두해 선배이자 막역한 친구 사이였다.

 

두 사람은 현재 나가고 있는 대학이 다르지만 대학을 다닐 때에는

같은 학교에서 학생운동도 함께하였고  기본 정서도 비슷하여서 항상

누구보다도 더 가깝게 지내오고 있었다.

사실 구태어 따지자면 이지함 교수가 선배였으나 군대를 그가 먼저 다녀

온 관계로 두사람은 거의 함께 강의를 듣다시피 하였고,

더우기 프랑스에서 20여년 전쯤, 어려운 국가 박사 제도가 처음 시행되던

시기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시간의 낭비없이 학위를 한 경력과 자부심도

두사람의 우정을 더욱 돈독하게 한 요인이 되었다.

 

그들은 한동안 한국의 프랑스 학회와 나아가서 인문학 전 분야까지를

주름잡으며 만고강산을 향유한 때도 있었다.

하지만 세월은 변하여 이제 이 나라의 대학에서 자유전공제라는 것이

시행되자 그들이 배웠고 가르치는 프랑스 어문학 관련 학문, 아니 그들

자신의 존재 자체가 백척간두랄까 풍전등화에 비견되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세상에 어느 나라에서 갑자기 대학 캠퍼스를 시장 원리에 맡기느냐는

비분강개와 근심이 인문학 분야에서 터져나왔으나 입학할 때에 광범위한

범주로 학생들을 뽑아서 2학년 진학 때에는 전공을 선택하는 자유를 매우

너그럽게 보장하는 제도 아래에서 고객들의 발걸음은 예전과 달랐다.

학교에 따라 신입생을 뽑는 영역 분류는 조금씩 달랐으나 하여간 그들이

2학년이 되는 관문에서는 크게 보아 인문사회 계통이라고 한다면 모두

경영, 경제학이나 법학, 행정학 쪽으로 몰렸고,

인문학 분야에서는 영어학, 중국어학 쪽으로만 영악한 수요자들이 밀려

들었다.

이런 위기 속에서 두 사람은 학생운동 할 때 만큼이나 더욱 동지적이

되었다.

 

"하여간, 이 소하 문학상이 무어야?"

서교수가 초대장을 파일에 꽂으며 고개를 갸웃둥 거리는데 전화 벨이

울렸다.

이지함 교수였다.

 "서 교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나 이지함이오. 초대장은 받았겠지요?

별로 한 일도, 더우기 글을 잘 쓴 일은 한번도 없는데 소하 문학상을

준다니 민망하지만 받아야겠지요?

이번 주 토요일, 바쁘더라도 꼭 참석해 주기 바라겠오."

"이 선배, 축하합니다. 그런데 나한테도 미리 알리지 않는 일이 있네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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