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얼마 전 첫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나는 입원하신 네 외할머니 때문에 부산행 KTX를 타러갔는데
아 놀랍게도 그 분이 서울 역 앞 전철역 입구 쪽에 서 계시는게 아니냐.
나는 아까 말데로 눈이 내려서 그리로 간건 아니었구---.
내가 먼저 알아보고 반가워 인사를 들이는데, 선생님은 외면을
하듯이 고개를 돌리며 안산에 있는 댁으로 들어가신다고 하더라.
항상 진짜 나이를 모르게 동안이셨고 중앙에 선 합창단원을 가릴만큼
키가 크고 거구이셨던 분이 너무나 마르고 초췌한 모습이어서 나도
처음에는 반신반의 했었다.
더구나 머리칼은 성긴 편이셨는데 이름난 분이라 그랬는지 누구와 인사를
나누느라 모자를 벗으시는데 내 기억과는 달리 빽빽히 까만 머리칼이 그
모자속에 곱게 빗겨져 있었다."
"아, 가발 쓰셨구나."
딸이 얼른 말을 받았다.
"아니겠지---. 가발이면 모자 쓰시기 힘들고 밀란인가 하이모던가 요즘
광고 많이 나오는 걸로 머리를 심으셨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
언젠가 만날지 모를 나를 의식하셔서 좀 젊은 모습을 유지하려는 노력으로
해석하면 너무 이기적인가---."
"아니예요, 엄마! 엄마같은 분을 사랑한다면 최소한 그 정도 노력은
해야지요!"
이정미 여사의 딸이 소리쳤다.
"하여간 그 분은 몹씨 당황하시더니, 안산행 지하철을 타러 가다가 아는
분을 방금 만났다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말씀하시고는
지하철 입구로 얼른 내려가시더구나.
그 아래 쪽에 할머니 한분이 고개를 뒤로젖히고 그 분을 기다리는듯
했으나 내용을 알 수는 없었다.
하여간 밖에는 눈이 점점 더 세차게 내리는 가운데, 두 노인이 지하 공간으로
빨려내려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울고 싶었단다."
"앗차, 엄마가 배신 때리셨네요. 음~~, 죄송해요. 아이들 말이라 이래요---.
하여간 눈오는 날, 서울역 앞, 그걸 그 분이 지켜오신건 아닐까요---?"
"글쎄, 오래 공인의 위치에 계셨던 그 분이 눈오는 날마다 서울 역에
나오셨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나는 지금까지도 항상 그분과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살아왔다.
특히 유명한 성악가의 음악회가 있을 때, 아 그리고 첼로 콘서트가 있을
때면 나는 대체로 빠지지 않고 객석을 지켰잖니.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서, 또 세종문화회관 대 공연장에 들어서면 나는
그분의 숨소리를 어느 순간 듣는듯 하였고 호흡을 함께 나누는 느낌을
갖였다.
성악은 물론이지만 첼로 콘서트까지 빠뜨리지 않은 것은 그분이 나를
첼로라고 부르셨기 때문이었다.
첼로는 가장 인간의 음정에 가깝다는 말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메조의 음정이고 바로 이정미 네 목소리야---,라고 그 분은 말씀하시곤
했지."
"그렇게 유명한 지휘자 선생님을 엄마가 제겐 인사할 기회도 주지 않아서
항상 이상하고 때로 서운했었는데 그런 일들이 걸림돌이었군요.
아, 엄마, 재작년이던가 홍혜경 갈라 콘서트 때에 홍 선생님이 메조인
벨레자 보칼레와 듀엣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지요.
엄마와 저는 음악회를 따로 다녔는데 그 때는 저를 데리고 함께 가셨잖아요.
그 때도 그 지휘자 선생님이 들어오시는 것 같았는데 엄마는 의자 밑으로
몸을 묻고 피하셨지요?
왜 그랬어요?"
"그래, 오늘 이야기를 다 해주마. 나는 언제나 내가 가는 음악회라면 그 분이
꼭 오실줄로 알고 객석 어느 공간에 그 분이 앉아있으리라는 기대에 항상
몸이 뜨거웠고 환희를 느끼곤 했다.
그래서 내가 혼자 다닌거야.
그러다가 막상 그 분을 맞닥뜨리게 되니 나도 모르게 저절로 몸을 숨기게
되더구나.
순간적으로 혼자 다니는 내 마음을 들킨 것 같기도 했고 그 분 모습이 예전
같지 않아서 슬펐고 결국은 뒷감당이 무섭기도 했고---."
"에이, 그 때가 혼자라니요. 제가 있었는데---."
"아니야, 내가 맨날 혼자 다니며 그런 상상을 해서 그랬는지 그 순간에는
나 혼자 왔다는 생각이 들었지.
글쎄, 네게 들킨 셈이 되었었는데 그때는 너도 어려서 그냥 넘어갔고
나중에 이런 말을 할줄은 꿈에도 몰랐구나.
하여간 그 때 널 데리고 간건 벨레자 보칼레를 직접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네가 이미 메조로 굳힌 후라서 메조 디바인 벨레자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싶었고 또 벨레자 처럼 너도 처음에는 메조로 시작했지만 차츰 음역을
높여서 소프라노 음역을 확보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넓은 음역대를 가진
성악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하여서였지.
네가 너무 일찍 메조에만 매몰되어서 안주하려는 것 같은 염려가 생겨서
그랬던 것이었다.
그 때도 내가 이야기해 주었고 지금도 자주 이야기 하듯이---."
"그럼요. 제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진 않잖아요. 제가 엄마 딸인데---.
엄마는 메조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성가대 지휘의 일인자이잖아요.
소프라노에서 알토까지 다 직접 불러주며 지휘하는 분이 어디 있어요?
저도 그렇게 할테니 염려 놓으세요."
"그래, 그래. 내가 일러주었듯이 그렇게 음정을 일도씩 올릴 때에 비브라토,
그러니까 성대 떨림 부분을 조심스레 가꾸어라---.
음정을 올리다 보면 성대가 떨리게 되고 이걸 붙잡으려고 하면 정지형
떨림이 되어서 무대 밖으로는 나가지 못하고 주저앉는 떨림이 된단다.
조수미가 부르는 소프라노의 떨림은 이와 달리 진행형 떨림이 아니냐.
저 객석의 맨 끝 벽면까지 도달하지. 그러니까 모든 공간의 객석에서
침도 못 삼키고 전율하지---."
"엄마, 그 말씀은 한번만 더하면 백번 채우겠어요. 하여간 그 지휘자
선생님은 그렇게 사라지셨군요, 저 지하로---."
"지하가 아니라 지하철이다, 서브웨이!
나는 네 문제도 좀 상의할 겸 이제는 전과 달리 붙들고 늘어지고 싶었는데
그렇게 사라지셨어."
"연락하세요. 딸 핑게도 대시고---.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지하철을
메트로라고 불러요, 프랑스 식이라던가---.
엄마는 항상 미국 계실 때만 생각하시네요---."
"말이 났으니 하는 말이지, 네 진로 문제는 이미 K 교수님께 맡기고
있잖니.
그러니 그럴 명분도 없고 또 그 분의 세계는 이제 네 말처럼 메트로인지
밑으로인지로 사라졌다.
이래저래 내 가슴만 아프게 해 놓으시고---.
그래도 내가 감사하는 것은 그분과의 그 애틋한 감정을 가슴 한구석에
간직하고 살았기에 내 삶이 풍요로웠고 외롭지 않았고 계속 음악, 특히
성약에 대한 열정을 유지해 온 셈이란다.
사랑이 있었기에 내 음역이 그만큼 성장하고 발전해왔다는걸 말해 주고
싶구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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