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제가 메조에서는 모든 분야를 다 소화할 수 있대요. 리트도 되고 드라마틱도 되고 또 아름다운 리릭도 되고 콜로라투라도 할 수 있고---. 난 한국의 메조 디바가 될거야. 걱정말어요." "흥, 난 걱정이 되고도 남는걸---. 아까 말한 벨라자 보칼레는 코리아에서 온 홍혜경과 듀엣을 하면서 그 아래 음정을 받쳐주었을 따름이고 또 한국 제일의 싱어가 될 재목이라고 어릴 때부터 극찬 받던 나는 춘향전에서 숙명적으로 향단이 역할밖에 하지 못했어. 생각해봐라, 향단이가 미녀라서 춘향이가 곤란하다고 내 얼굴에 코믹하게 검은 점을 몇점 찍고 무대에 올라간 사실을---. 이런 치욕으로 기가 꺾이는건 나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더라. 그때 그 춘향이는 재벌 집으로 시집을 갔고 나는 가난한 검사 남편을 만나서 맨날 지방 검찰청으로 돌아다니기만 했으니---. 자식들도 그래. 인물도 못난 그 소프라노는 아들을 터억 낳더니 지금은 미국 동부에서 공부시키고 있고 난 딸만 낳아서 또 노래시킨다고 이 고생이고---. 아이구, 내 팔자야. 난 메조 인생이구나. 조수미의 소프라노 음색을 봐라, 누가 설명이 필요한가---. 네가 2음도만 더 높이 나왔더라면---. "
"아이구, 엄마, 그만하소서. 이 불효 여식은 광끼 일보 직전입니다. 저는 메조가 좋아요. 제 음역이 그러해서도 운명적으로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세상 만사 에서도 그저 일단 뽑힌 축에만 들어가면 두번째가 아니라 두번째 그룹에 속하여도 저는 대만족 올시다." "네가 몰라서 그래. 첫쩨가 아니면 모든걸 다 잃을 수 있는거야. 내가 오래 전 우리나라에서 카발렐리아 루스티카나가 초연되려고 할 때 오디션을 받았지. 그 오페라에 나오는 네명의 프리마 돈나 급에 메조 역이 하나 있어서 다들 내가 그 역을 당연히 맡으리라 예상했고, 나도 틀림없이 그 역이 나에게 온다고 믿었어. 그런데 그게 글쎄 내 음대 은사에게 가고 말았고, 나는 뒷켠의 합창석에 섰다니까. 그렇다고 빠질수도 없었던게 그러면 은사 때문에 삐졌다고 할거고---, 정말 그 긴 연습기간과 공연 내내 치욕이었단다. 세상사가 그렇단 말이다. 내가 소프라노였으면 골목길의 행인 역할 이라도 했을지언정 합창석에 서 있지는 않았을 거란 말이다."
"엄마, 자존심 덩어리인 울 엄마가 이제는 그런걸 다 털어놓으시네. 이 나라에서 자식의 입시는 정말 절대적이군요. 울 엄마 자존심은 생명보다 더 귀한건데---. 하여간 그래도 엄마는 30대가 끝날 때 까지 한성 솔리스츠 합창단에서 활약하셨고, 대한민국 레이디즈 싱어즈 합창 무대에서도 굳세게 메조를 지키며 섰잖아." "아, 그거야 솔리스트란 말 그대로 합창단원 모두가 하나하나 솔로라는 평판을 그대로 인정받는 것이었잖니. 또 레이디스 싱어즈가 무슨 뜻이라고 생각하니? 모두 독창자 싱어들을 모아놓은거라는 말이잖아. 세종 솔로이스츠가 모두 독주자로 구성된 합주단이라는 말이듯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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