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선배, 궁금한 김에 물어볼께요. 소하 문학상은 그러니까 어디에서
주관을 하고 있습니까? 예컨데 기금이라던지---?"
"서 교수는 벌써 돈 계산부터 하시네, 하하하.
수상자 선정이라든지 그 진행은 월간 문화예술이라고---, 아실는지도
모르겠지만 생긴지 얼마되지 않은 문예 종합지인데, 그걸 내는 작은
규모의 출판사에서 행사 일체의 주관을 하고, 경비와 기금은 모두
미망인이 내시지요."
"아하, 그러고보니 소하 선생께서 어느 문중의 장손이라서 신도시가
생길 때 보상금을 많이 받으셨다던 소문이 이제 생각이 나는군요.
또 후손이 없다는 소문도 들리던데, 그럼 유산 같은게 모두 사모님
에게로 갔나 보군요?"
"돌아가신 소하 선생께서는 종친회 쪽에도 돈을 많이 내놓으신 모양이고,
미망인에게도 당연히 유산이 꽤 돌아갔겠지요.
내가 그런건 잘 알지 못해도---."
이지함 교수가 문학상과 관련된 깊은 이야기는 사실상 모르는지 하여간
더이상은 언급을 않겠다는 반응이어서 서윤식 교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하긴 같은 학교에 있던 분에 대해서 다른 곳에 있는 사람에게 묻는다는
것도 민망하였고 또 사사로운 일들을 캐묻는 인상도 가까운 사이라지만
체면 문제였다.
아울러 돌아가신 원로 교수의 부인을 미망인이라고 부르는 이지함 교수의
표현에 대해서도 그는 다소 저항이 느껴져서 전화상으로 더 이상의 말은
아꼈다.
그가 이지함 교수의 말을 받으며 미망인이라는 말 대신 아주 분명하게
사모님이라는 표현을 쓴 것에는 그런 속내가 있었다.
미망인이라는 표현이 객관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서교수의 입장
에서는 어쩐지 아쉽고 부족한 데가 있었다.
아무튼 그 사모님을 서 교수는 전에 두어번 본 기억이 있었다.
그가 프랑스에서 돌아와 곧장 지금의 대학에 초빙이 되고나서 부부가
함께 그 댁으로 인사를 갔을 때에 처음 본 사모님의 인상은 좀 복합적
이었다.
언뜻 보아서 그녀의 얼굴은 나이든 분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 강렬한 데가
있어서 그는 속으로 죄송한 마음과 함께 불타는 여인을 보는듯 시선을
조금 비킨게 사실이었다.
하기야 이윽고는 그녀도 곱게 늙으신 할머니의 면모를 서서히 드러내면서
강치혁 교수 보다 더 나이가 든 누님같은 분위기로 부군을 감싸안는
것이었다.
"여보, 부인이 조금 더 나이가 들어보여요."
돌아오는 길에 서 교수의 부인이 여인 특유의 감각으로 이상 징후를
집어내었다.
"글쎄, 난 모르겠던데---."
그는 부부간에 사적으로 공유하는 부분과 공적으로 달리하는 부분을
엄격히 선을 그어 나누는 성격이어서 더 이상의 대화를 피하려고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은 아내와 같은 느낌이었다.
나중에 그 분이 주례 서기를 일절 피한다는 사실과 자신의 과거사에
대해서도 침묵으로 일관한다는 사실을 서교수는 알게되었지만 그런
일들에 관해서도 아내에게 보고성 발언은 하지 않았다.
사모님을 두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서교수가 본 것은 그 분의 정년 퇴임식
때였다.
초로의 아름답게 나이가 든 할머니가 정년을 맞는 부군의 옆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식이 끝나자 그들은 빨리 식장을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그만이었다.
그런데 이제 소하 문학상 시상식에서나마 인연이 있어 그중의 한분을 다시
보게될 참이었다.
강치혁 교수는 정년을 하기 얼마전 학과 교수들과 식사를 하면서 자신의
아호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는 분으로서는
그나마 획기적인 일이었다.
"내 이름 강치혁이 너무 강하지 않아요? 그래서 내가 아호를 하나 지었는데
소하라고 하였어---. 바탕을 뜻하는 본디 소(素)에 물 하(河), 좀 느릿하고
유장한 강의 흐름을 염두에 두었지.
처음에는 더디 흐르는 강이라고, 더딜 지(遲)자를 넣어서 지하(遲河)라고도
생각해 보았는데 불러보니 공연스레 손 아래인 김지하 시인도 생각이나고
또 지하실 같은 이미지도 있고해서---, 하하하,
그래서 조용한 강 물결이라는 뜻으로 소하라는 걸 하나 장만했어요.
그 전에 남들이 지어준 화려한 것들도 좀 있지만---."
"김지하 시인과 년배는 다르셔도 예전에 민주화 운동을 같이 하셨다면서요?"
한일준 교수라고, 물색 모르는 젊은 교수가 불쑥 물었다.
"이 사람아, 남의 지난 일은 자기가 말하지 않으면 듣기만 하고 묻지는
않는거야."
한 교수는 소하 선생의 제자 교수로서 만만한 사이이긴 하였지만 이제
헤어지는 자리에서도 노인의 말씀과 표정은 어름짱 같이 차갑게 변하였다.
이 분이 원래 언론계에 있었는데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던 시절 무언가
민주화 투쟁의 선봉에 섰다가 감옥에도 잠시 들락거린 후,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정도의 소문은 학과 교수들이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이른바 진실은 어디에서도 새나오지 않았다.
"고문을 받으시며 무언가 발설한게 있어서일까? 배덕자 같은 자괴감이
있을 수도 있잖아---. "
"아니야, 그 무슨 조사분실에서는 석방의 조건으로 그 속에서 일어난
일은 죽을 때까지 발설치 않겠다고 서약을 한다면서---?
석방 후에 말을 꺼냈다가는 다른 치사한 일들을 그 쪽에서 다 까발려
사람을 망신준다는데---."
그런 이야기들만 술 좌석에서 가끔 나올 따름이었다.
하여간 그 분의 자기 관리가 이 정도이다보니 결혼 생활이나 주례를
하지 않는 이유를 누가 촌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게 자기만의 방 속에서 꼿꼿이 지내다가 정년을 맞은 분이 여러해
후에 돌아가셨는데, 세상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나지만은 않은듯,
이제 문학상의 수상식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곁에 다시 한번 닥아 온
셈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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