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짧고 행복했던 낚시 여행 (1)

원평재 2007. 3. 17. 06:02

 

23281

 (이번 졸작의 제목은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단편 "프랜시스 맥커머의 짧고

행복했던 생애--A Short Happy Life of Francis Macomber에서 차용

했습니다.)

 

"내 배낭에는 헤밍웨이 단편선 영문판을 넣었고 당신 여행 가방에는 그

번역본을 넣어두었으니 기내에서 심심하면 보시게."

뉴저지 집에서 JFK 공항으로 출발하며 한익준은 무심한듯 아내 송정자에게 

말을 건네었다.

"여행 떠나며 무슨 소설책이야요?"

"상 파울로까지 아홉시간 이상 걸리니까---."

"나라들이 크긴 크군요. 한국은 너무 작아."

"-----."

한익준은 입을 다물고 대꾸하지 않았다.

이 부부는 최근 한동안 영어나 스페인어로는 물론이려니와 한국 말로도

대화를 나누지 않고 살아왔다.

 

아니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송정자는 남편에게 말을 걸고 싶어했으나

한익준이 항상 외면을 하였다.

원래 남편은 과묵한 편이기도 했지만 아내가 그들이 경영하는 델리점의

주방장, 페드로에게 추파를 던진다고 생각한 이래로 그는 더욱 말이

없어졌다.

부부가 쓰는 말은 기본이 한국말이었으나 미국 생활 반 평생에, 때에

따라서는 영어도 먼져 튀어나올 때가 있었고 또 가게의 고객 대부분이

히스패닉 계통으로 바뀌면서는 부부 모두 스페인어도 줏어 섬길 정도는

되었다.

더우기 델리 가게의 주방장으로 히스페닉 출신이 들어오면서 송정자의

스페인어 실력은 장족의 발전을 하였다.

 

 

 (육식 물고기 삐라냐---. 다른 어종을 잡아먹고 살지만 운이 나쁜 사람의

살도 맹렬하게 뜯어먹는다.)

 

결국 그녀의 스페인어 실력이 늘어나는 만큼 한익준의 수심은 깊어지고

점점 더 말이 없어지는 아이러니가 생긴 것이였다.

현실에서의 말이 없어지는 대신 한익준은 옛날 생각에 빠지곤 하였다.

그가 맨해튼에서 잡화점과 소규모 델리 점을 겸하는 장사로 정신없이

살아온 인생을 돌이켜보면 결과적으로 먹고 살기 위한 생존의 차원이었다.

 

사실 그가 30여년전 미국으로 올 때만 하여도 그는 일종의 자기 성취감,

자랑과 자부심 같은 심정이 가득하였다.

그때만 해도 이민을 떠나는 사람들은 김포 공항에서 성대한 환송연을 받고

헹가레가 쳐지던 시절이었다.

이민은 곧 살기 험한 조국, 북으로부터의 위협, 군사독재 등을 피하여 

떠나는 행운에 다름아니었으므로 그 자체가 이미 성공한 삶으로 대접을

받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이제 숱한 고생 끝에 돈을 좀 모아서 플러싱의 싸구려 셋집을

청산하고 뉴저지 쪽 한인 동네에 괜찮은 단독 주택을 마련하고 슬하에 둔

남매도 마침내 괜찮은 대학의 기숙사로 떠나보낸 인생 후반에 그는 우울

증상을 앓게 되었다.

특히 나이 오십 중반에 남들 보다는 조금 빨리 부부간의 성적 관계가 부진

하게 되면서 그의 우울증은 매우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사이카이어트리스트, 그러니까 정신분석 의사에게 매달 900달러씩을

내고 일주일에 한두번씩 상담 치료를 받으며 또 처방 약을 사다가 먹는

과정이 벌써 3년이나 계속되던 어느날 그는 아내에게 남미 여행을 제의

하였다.

딱 일주일 전에 그는 아내가 주방에서 페드로와 깊은 키스를 나누는

것을 목격했던 것이다.

 

미국 생활에서의 부부간의 관계 설정이  30년전 한국을 떠날 때와는 판연히

다른 줄을 그는 알고 있었다.

딸이 고등학교 다닐 때에 흑인 친구와 섹스를 했다는 사실에 그가 처음에는

기절초풍을 한 쓰라린 경험도 그에게는 있었다.

학교에서 공부는 잘하지만 말썽이 잦았던 첫 딸이 그에게 준 과제이자

새로운 생활에 대한 면역이었다.

아내와의 이혼은 정서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모두 공황상태를 의미

하였으므로 그는 인내로 대처할 작정을 하며 남미 여행을 제안한 것이었다.

 

사실 "외국어 대학교" 스페인어과를 다닐 때만 해도 그의 패기는 하늘을

찔렀다.

아니, 대학 생활의 첫발부터가 그랬다는 것은 아니고 먼저 좌절이 있었다.

그가 처음부터 스페인어과를 간 것은 아니었다.

욕심을 내었던 1차 대학에 낙방을 하고 후기인 외국어 대학교의 영어과를

지망했으나 다시 낙방, 제2지망인 스페인어과로 밀려간 것이었다.

하지만 전화위복이라고나 할까.

갑자기 파라과이와 브라질, 아르헨티나에서 한국인 이민을 받아주면서

스페인어과가 상종가를 쳤다.

당시 희망이 없어보이는 고국을 떠나 너도나도 남미 이민을 꿈으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스페인어의 시세가 갑자기 그렇게 된

것이었다.

브라질에서 쓴다는 포르투갈어과는 아직 없었으나 스페인어만 잘하면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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