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짧고 행복했던 낚시 여행 (4)

원평재 2007. 3. 25. 08:49

"여보, 여보!"

갑자기 송정자가 비행기 옆 좌석의 한익준을 흔들어 깨웠다.

한시간 반 이상을 JFK 공항에서 연발한 브라질 여객기 "땀(TAM)을 타고

부부가 예닐곱 시간을 날라갔을까---.

한익준이 조금 깊은 잠에 빠져있는데 송정자가 그를 흔들어 깨웠다.

"무슨 일이요? 비행기가 추락이라도 하나?"

한익준이 신경질적으로 아내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니, 헤밍웨이 단편을 심심하면 읽으라고 해서 아까부터 읽다보니 여기

'프랜시스 맥커머의 짧고 행복했던 생애'라는 이야기가 인상적이네요."

"아니 그런 이야기하려고 자는 사람을 깨웠어?"

"네, 읽다보니 기분이 나빠요."

"뭐 찔리는게 있나보네?"

"당신이 이 단편을 일부러 읽으라고 넣어둔것 같아서 기분이 나빠요.

내가 여기 나오는 여자 같다는 말이잖아요?"

 

'프랜시스 매커머의 짧고 행복했던 생애'라는 조금 긴 단편의 이야기에는

구태어 말하자면 송정자 같은 여주인공이 등장하였다.

 

이 작품에 나오는 중년남자 맥커머(Macomber)와 그의 부인 마가렛

(Margaret)은 결혼한지 11년째이다.

젊어서의 맥커머는 힘차고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몸이 나면서 매사에 우유부단해지고 게으르고 용기를

잃게되었다.

 

한편 아름다운 부인 마가렛도 한때는 최상의 광고 모델 제안까지 들어오는

처지였으나,이제는 세월과 더불어 초로에 접어들고 남편으로부터 버림

받을까봐 두려워하면서 동시에 남편의 무기력함을 혐오하는 입장이기도

하였다.

그들은 이런 모든 생활의 앙금을 씻어내기 위하여 아프리카로 사파리 여행을 하는 중이다.

그러나 일은 처음부터 잘 풀리지 않아서 첫 번째인 사자 사냥에서 맥커머는

오금이 저려 안전장치도 풀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는가 하면 토끼처럼 도망을 쳤고 정작 사자를 잡은 사람은 사파리 안내인인 윌슨(Wilson)이었다.

 

윌슨과 현지 흑인들은 돈을 받고 고용된 처지이기에 이 사실을 비밀로 하여

까십꺼리를 만들지 않고 맥커머에게 사냥의 공을 돌리지만 그들의 시선은

따가웠으며 특히 마가렛은 남편을 완전히 무시하는 태도이다.

그날 밤 마가렛은 공공연히 윌슨의 텐트로 찾아가서 정사를 나누며 남편의

힐난도 무시한다.

 

다음날 맥커머는 차츰 사냥의 감각과 용기를 되찾아가면서 숫양을 단 한방

으로 보기 좋게 맞춘다.

안내인 윌슨은 이제 물소 사냥을 하도록 사파리 계획을 짠다.

눈치 빠른 그는 자신도 남자이지만 마가렛은 무서운 여자라고 첫눈에 판단

한다.

물소 사냥을 시작하던 날, 맥커머는 과거의 용기와 패기를 거의 모두 회복

하게되었고 이에 걸맞게 조준과 사격도 예전처럼 아주 정확하게 회복 되었다.

 

이러한 모습에 윌슨도 전문가적인 직업의식을 발휘하여 열심히 돕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들은 맥커머의 주도로 우선 급속히 달려드는 물소 한 마리를 쏘아 쓸어

뜨린다.

이어서 다른 두 마리도 매우 근접한 상태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쏘아 잡고

맥커머는 마지막 숨통을 끊는 사격도 동요 없이 해낸다.

이 위험한 사냥의 과정에서 마가렛은 얼굴이 창백해지고 잔뜩 겁을 먹는다.

이때 보조원이 와서 첫 번째 물소가 총을 맞은 채로 숲으로 들어갔음을 알린다.

 

사실 이런 상태에 빠진 물소는 가장 위험한 존재이다.

그러나 맥커머는 위험한 사냥감이 생겨서 오히려 유쾌하다는 반응이다.

이러한 용기 있는 모습에 윌슨도 깊은 호감을 느낀다.

마침내 다친 물소를 발견하고 최후의 근접사격을 할 때 맥커머의 아내

마가렛은 뒤에서 남편의 두개골을 쏘아버린다.

용기를 되찾은 남편으로부터 버림을 받을 것이 두려워서일까, 윌슨이

무조건 좋아서일까, 아무튼 남편 위에 군림했던 마가렛으로서는 다시

자기를 지배하려는 남편을 결코 수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맥커머의 입장에서 보면 용기를 되찾은 사파리 여행으로 자신의

생애를 마감했다고 보아서 진정 짧지만 행복했던 생애를 회복하였다고도

생각할 수 있는 다의적 메시지가 담긴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잠시 눈을 부치고 있는 남편을 이렇게 흔들어 깨우는걸 보면 당신이

작품 속의 마가렛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구만."

한익준이 혀를 찼다.

"아니, 내용이 이렇게 전개되는데 어떻게 참고만 있겠어요. 너무 잔인해요.

그리고 이제 한두시간 있으면 착륙시간이고 내리기 전에 간식이 또 

나온다니까 이제 잠에서 깨는게 좋겠어요."

"아이구, 고양이 쥐 생각해주는군---."

두사람은 또 티격태격했으나 송정자는 싸움이든 뭐든 두사람이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일만이라도 다행이다 싶었다.

 

비행기는 마침내 남미에서도 첫 기착지인 '사웅 파울로'에 도착하였다.

남미 여행은 일단 여행사와 연계를 시켜놓아서 중간 기착지에 도달할

때마다 현지 가이드가 나와있게 되어 있었다.

만약 가이드가 필요없으면 하루 전에 전화나 이메일로 취소를 하면 안내인

없이 두 사람만의 여행을 할 수도 있었다.

비행기 예약은 미국에서 미리 다 되어있어서 시간을 바꾸지 않는한 별로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사웅 파울로에는 젊은 청년이 가이드로 나와서 두 사람을 맞아주었다.

시간은 바로 아침해가 뜨는 순간이었다.

더운 남국의 열기가 침체된 한익준의 기분을 고조시켜 주었다.

스페인어와 이 곳 공용어인 포르투갈 어는 조금 차이가 있었지만 오랜만에

라틴 문화의 바다에 풍덩 빠진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특별한 역사적 유적이 부족한 이 상업 도시는 남미의 관문이자 한국 교민

들이 집거하는 곳으로서의 특징을 갖고 있엇다.

몇군데 시내 구경을 하고 그들은 코리아 타운을 기대에 차서 찾아보았다.

하지만 한인 거리는 생각보다 너무나 초라하고 규모가 작았다.

한익준은 자신도 자칫했으면 이 동네로 올뻔했다는 생각에 갑자기 오한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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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