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회에 관한거라면 레윈스키와 클링튼의 지퍼 게이트 사건말고는
그동안 누가 대통령이 되는지도 모르면서 살아온 부부였다.
그저 흑인들의 난동이나 히스패닉들의 시위가 장사에 미치는 영향이나
걱정하고, 비즈니스에 매달려 잘 돌보지 못하는 자식들의 청소년 생활이
그들의 노심초사일 뿐이었다.
부부관계도 표면상으로는 원만하였다.
돈을 벌어 저축하여 가게도 늘리고, 보다 나은 동네로 이사를 가야겠다는
욕망이 다른 모든 욕구, 특별히 부부간의 잠자리 욕구까지도 억제케하는
생활 덕택인지 아무튼 부부 싸움 같은 것도 오래동안 없었다.
한익준의 외가 사람들도 다 그렇게들 살고 있어서 그 영향이 컸고 또한
손주들을 키워주는 할머니의 존재도 이런 가풍에 큰 영향을 주었다.
툭하면 할머니가 끄집어내는 고국에서의 고달팠던 "보리고개" 이야기는
만리타향 이국에서 하루하루의 수입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생활을
꾸려나가는 이 가정에 적당한 긴장감을 항상 유지케하였다.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기 직전, 이 할머니는 세상을 떴다.
클링턴 대통령 때부터는 돈 버는 재미가 솔솔 늘어나기 시작하였고
어지간한 영어도 알아들으며 아이들의 학교 생활도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상태가 되었지만 어쨌든 미국 생활은 객지에서의 외로움과 고달픔이
서리서리 끼어있는 나날이었다.
오래된 세월에 붉은 색 적녹, 푸른 색 청녹, 누런 황녹이 그들의 가슴에
켜켜로 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고국에서 들려온 최루탄 연막에 가득한 데모 소식과
신군부의 비민주적인 행태, 그리고 이어서 들어선 민간 정부의 미덥지
못한 대북 정책과 격렬한 야당의 시도 때도 없는 비판, 매스컴을 통하여서
끊임없이 조성되어 흘러나오는 미국 조야의 동맹국 한국에 대한 안보
우려와 불안감 등은 그들 부부의 고달픔을 달래주는 간주곡이랄까,
때로 럴러비, 그러니까 자장가 같기도 하였다.
특별히 IMF 사태 때에는 다니는 교회에서 일으킨 "고국 돕기 헌금" 대열
에서 그들도 자신들의 능력에 조금 과분할 정도의 돈을 기부하였다.
고국에 있는 어떤 특정 인물이라기 보다 고국 전체의 삶과 자신들의 삶을
은근히 경쟁하던 그들이었지만 고국이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IMF 당시에는 이미 국적도 바뀐 그들이 애국심 발휘의 차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비교의 대상, 적수가 퇴장한 경기장이 무슨 소용에 닿으랴.
그런 심사도 큰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물론 본능적인 애국심도 크게 작용하였으리라.
중국에서 이룩된 공맹지도(孔孟之道)라는게 유구히 전해 내려오는 나라가
코리아 밖에는 없다고 하지 않던가.
헌금 대열에 서 있던 그날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중에서 그들은 이제
조금 무리가 되더라도 집을 사서 옮기기로 작정을 하였다.
아이들이 중등학교 졸업을 바라보는 마당에 좀 늦었지만 이제라도 좋은
학교, 좋은 동창 관계를 만들어 주어야겠다는 각성과 함께 자신들의 삶도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즈음 발생한 흑인 동급생과 딸의 섹스 사건도 동네를 옮기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여보, 나라가 망하게 생겼네요. 우리도 지금 비즈니스가 좋을 때에 집도
좀 큰걸로 사고 사람답게 삽시다."
그녀는 딸의 탈선은 언급하지 않고 떠나 온 나라를 예로 들었다.
"그래, 내가 허리띠를 너무 졸라매고 살았나---?"
"아이구, 말하면 뭣해요. 허리띠만 조른게 아니라 당신 지퍼도 너무
잠그고 살아왔어요, 호호호."
사실 송정자는 그 부분도 맨날 불만이었다.
남편이 건강에 문제가 있는것도 아닌데 잠자리를 줄이고 피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남편에 대해서 파악하는 수준은 그 정도일 따름이었다.
"이 나라는 대통령도 풀어재끼는 지퍼를 당신은 왜 맨날 닫고 지내요?"
말이 나온 김에 그녀는 다그쳤다.
"늦게까지 가게 문 열었다 들어와서 또 새벽 식사 손님 받으려고 일찍
나가다보니 체력을 아껴야 하잖아,
이 사람아. 지퍼 내리는건 돈 좀 벌고 한가해지면 하기 싫어도 하게
되는거야."
"아이구 맙소사. 대학 다닐 때는 청량리, 이문동의 열혈 남아라던 사람이
미국와서는 그 기개가 다 죽으셨구려. 세월이 사람 기다려 줍니까---."
"걱정마시게. 돈만 많이 벌면 값 비싼 역발산기개세주를 마시던가
하다못해 비아그라를 먹고라도 당신 호강은 시켜줄께."
"하이고, 이 양반이 뭘 모르시는구려. 이제 나이들면 백약이 무효랍디다.
비아그라니 시알리스니 하는 것도 체력의 기본이 되지 않는 사람에게는
독약인가 봐요."
"이 사람이 그리 보지 않았는데 매우 음하네. 하하하."
그가 그녀의 잔소리를 잠재우려고 크게 웃었다.
"아이구, 웃음으로 떼우려고 말아요. 이래뵈도 내가 젊을 때에는 치어리더
몸짱 아니었수?!
내 몸매 보고 넋빠진 청년들 수두룩 했다오. 내가 오늘 참고 참다가하는
소리요.
사람이나 국가나 능력이 있을 때에 자신을 찾아먹어야지 세월 지나고
저렇게 고국처럼 망가지고 나면 소용 없어요."
"나라가 왜 망해. 조금 사정이 좋지않게 된것이지. 누가 알어. 이것도
미국의 음모인지---."
"아이 참, 난 교회에 나오는 그 무슨 유식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모르겠고
이제 저금 통장도 그만 여미고 풀어재껴서 집도 늘려가고 당신 지퍼도 좀
자주 풀어보시오. 이 참에 나 원래 좀 야한 여자라는거 잊지 마세요."
"이 사람이 오늘 영 망가지네. 한국의 IMF가 미국 교포의 가정을 이렇게도
망가뜨리나. 재수없게시리---. 나라가 도대체 해준게 뭐야."
나라를 떠난건 그들이었건만 만만한게 홍어 뭐라고 지퍼 자주 열지
않아서 일어난 부부 싸움의 결말에도 IMF 사태로 결딴이 난 조국은 크게
기여를 하여서 그가 소리를 지르며 떠나온 나라 욕을 하자 차안의 논쟁은
일단 끝이 났다.
하지만 결국 그도 집을 늘리자는 아내의 방침에는 순순히 따랐다.
다만 지퍼를 자주 열라는 아내의 성화에는 지폐를 더 모아야 한다는
핑계로 자신의 고집을 끌고나갔다.
아무래도 그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 모양이었다.
돈이 아까워 병원 출입도 하지 않고 건강 보험에도 들지 않은 억척스런
남정네는 그때 이미 당뇨에 협심증을 앓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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