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하 선생님과는 몇년을 함께 사셨나요?" 서 교수가 미망인의 번득이는 눈길을 피하며 더듬거리는 말씨로 물어 보았다. 그녀의 안광이 번득이기 시작한건 눈물 탓도 있었겠지만 동공에 아예 인광이 내재하여 타는 듯, 푸른 빛이 유현하였다.
"몇년을 함께 살았냐구요? 모르셔서 그렇게 묻는 줄 알지만 참 여유있는 질문이십니다. 한해를 채우지도 못하고 겨우 마지막 6개월을 그분과 살아보았어요." 그녀의 눈빛을 번쩍이게한 눈물이 마침내 주루룩 흘러내렸지만 그녀는 웃음을 잃지않았고 한 해는 커녕 육개월이나 겨우 채웠다고 답하며 펄쩍 뛰는 시늉에는 파리지엔느의 제스추어가 담겨 있었다.
정초의 따뜻했던 날씨가 억울했던지 폭설이 쏟아진 새해의 첫 주말은 해가 빠지면서 기온조차 뚝 떨어져 입구에는 차가운 기운이 서렸다. 네 사람이 술을 마시는 전통주가에 늦은 손님 몇이서 어깨의 눈을 털며 들어왔다. "이런! 눈발이 아직 있나보군요. 저는 과천에 살아서---." 편집국장이 눈발을 핑게삼아 일어설 궁리를 하였다. 서교수는 강남, 청담동에 살아서 귀가의 시름은 좀 놓는 편이었고 이교수와 미망인은 모두 일산 신도시에 살았다. "조금만 더 있다가 함께 일어나요." 미망인이 역시 지혜롭게 일행의 향방을 가름하였는데 카리스마가 있었다.
"이 선배께서는 조금 늦게 들어가도 되잖아요. 오늘도 수상식장에 부인이 오시지 않은걸 보면 해외나 지방 연주 가셨겠는걸---." "누가 당신처럼 마누라 무서워 일찍 들어가나. 마누라가 맨날 늦게 집으로 들어오니 나만이라도 아이들 때문에 일찍 들어가야겠지만 오늘은 소하 선생님 미망인께서 제안 하신데로 조금 더 있다가 함께 일어납시다. 아니, 마누라가 무서우면 두분은 일찍 일어나시던지---." 이지함 교수가 조금 투덜거렸다.
"이 선배! 사람을 바보 공처가로 만들지 마세요. 제가 소하 선생님을 자주 찾지 못했던게 이 선배는 제가 마누라 엄명 때문이라고 자꾸 저런답니다. 저와 이 선배가 처음 귀국해서 대학에 자리를 구하는데 지금 제가 있는 대학에서 한 자리가 났어요. 저야 이력서와 논문만 덜렁 부쳤는데 채용 통지가 왔어요. 기쁜 마음으로 제일 원로이신 소하 선생님을 집사람과 댁으로 찾았지요. 돌아가신 사모님께서 저를 보시더니 '이 분이 훨씬 더 미남이시네요' 이렇게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알고보니 이 선배 보다 제가 더 미남이라는 말씀이었어요. 이 선배도 같이 지원을 했는데 아마 미리 찾아뵙고 그랬던 모양이지요. 뭐 그게 나빴다는건 아닙니다. 하여간 제 이력이나 논문이 빼어나서가 아니라 뽑는 분야에 제 전공이 조금 더 근접했던 모양으로 제가 뽑혔지요. 그날 인사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마누라가 다시는 이 댁을 찾거나 사모님을 뵙지 말라고 하더라구요. 사모님이 나를 미남이라며 쳐다보는데 꿈꾸는 눈매를 하시더랍니다. 마누라의 그런 말 때문이 아니라 제가 좀 게으르기도 하고 또 도대체 그럴 기회도 없어서 다시는 그 분을 뵙지 못했다고 어느 해던가 이 선배에게 술 자리에서 농담처럼 말했더니 그걸 지금까지도 씹는 답니다. 미안해요, 이 선배. 이제 그 레파트와는 그만 합시다." "알았어, 남이 들으면 우리 사이를 오해하기 딱 알맞겠네." 이 교수가 선선히 휴전, 아니 종전을 선언하였다.
막 생겨나고 심지어 교육대학에도 프랑스어 전공 교수가 필요했는데 사람이 없었잖아요. 오죽하면 우리같은 출판쟁이들 한테도 지방대학에서 사람을 찾아달라고 했으니까요---. 우리 출판사가 불어 교재로 시작했잖아요. 교재만해도 한동안은 찍는데로 팔려나갔다니까요. 그때 참 미망인께서는 파리에 계시면서 이지함 교수님께 교재 될만한 좋은 자료들을 많이 부쳐주셨지요, 그걸 이 교수님이 주석을 붙여 우리 출판사에서 내놓으면 나오는데로 베스트 셀러, 교재가 되었잖아요. 지금은 우리 출판사가 문화사업한다고 월간지도 내고하다 보니까 파산할 것 같구요." 출판사의 국장이 과음을 했는지 어떤 부분에서 무언가 오바하고 있었고 이 교수는 술김에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서교수는 다시 소외감을 느꼈으나 더 이상 끼어들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아이, 국장님, 지나간 이야기는 그만 하시고 이제 함께 일어나요. 이 교수님은 어차피 저하고 같이 일산으로 가시니까 잠시 서로 위안이 되겠고 나머지 두분은 어쨌거나 엄처시하로 들어가시니까 외로울 여지가 없네요. 오늘 저녁은 모두 고독 탈출입니다."
"제가 왜 엄처시하입니까. 또 그렇다할지라도 그 엄처가 아이들 데리고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퍼로 엊그제 떠났습니다. 출판쟁이처럼 돈이 없으면 요새는 동남아로 아이들을 조기 유학 보냅니다. 저는 비들기, 아니 앵무새, 아니 기러기입니다." 국장의 목소리가 자꾸 높아졌다. "제 마누라는 춥다고 겨울 방학 맞은 아이들과 친정이 있는 제주도로 가버렸습니다." 서 교수도 일석점호에 차례를 지켰다.
"그러고보면 이 교수님의 부인, 바수니스트도 언제 귀가하실지 모르고 이거 모두 외톨이들만 다 모였네요. 먹물 선생님들 말씀에 노마크 찬스 라고 하데요, 호호호." 미망인이 조금 전 출판극장의 이실직고 때문에 발생한 어색함을 눅이는 공통분모를 찾아내었다. "저는 바순 연주자인 마누라를 바수니라고 부르지요. 바보 순이라고---. 제가 무거운 바순을 운반해 주지 않는다고 맨날 외롭다는 타령만 하니 바수니지요. 그렇다고 제가 결혼 전 백수 때처럼 바순 케이스를 들고 따라 다닐 수도 없잖아요. 요즈음은 남자 단원 하나가 충실하게 그걸 들어다 준다는군요. 그러다 보니까 연주회 마치고 헤어지기 전에 꼭 고맙다고 한잔 대접을 한대요. 그러니 귀가가 맨날 늦지요. 하긴 연주자가 외로워요, 연주가 끝나는 순간도 그렇지만 연습 시간 때 부터---." "이 선배, 그 남자 주자는 무슨 파트인데?"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되는 플룻, 플루티스트, 피리부는 총각이라네." 이 교수의 대답이 재미있어서 네사람은 웃었다.
"죄렌 키에르케고올이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절망이라고 했던가요. 저는 절망에 이르는 병은 고독에서 출발한다고 봐요. 소하 선생님과 저는 세상에서 가장 친했다고 자부해요. 마지막 돌아가실 때에도 새로 보완한 오디오 기기를 손 보시다가 순식간에 쓸어지셨지만, 우린 그렇게 함께 음악 들으며 대화를 나누고 아니 그런 것이 없어도 서로의 눈만 들여다보는 명상의 시간만으로도 몇날을 보낼 수 있었어요. 예전에 몰래 데이트를 할 때에도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친하다고 자부하였고 오래 만나지도 못하고 소식 조차 전하지 않고 지낼 때에도 우리는 항상 옆에 상대의 존재를 의식하면서 살아왔어요.
제가 외우며 사는 시를 하나 읊어볼께요. 제목은 아마도 '묶임'이던가 그랬어요.
나는 너의 단 하나뿐인 사랑으로 영원히 간직되어지고 싶다. 너의 영혼까지를 주인처럼 소유하고픈 나는 피보다 붉고 뜨거운 영원한 묶임의 맹세로 내 안에 온전히 나를 주고 언약의 손가락 걸듯 내 사랑을 너에게 구속시켜 어디든 너 있는 곳에 존재하는 영혼의 그림자가 되어 너의 단 하나뿐인 사랑으로 영원히 간직되어지고 싶다.
우리는 부부이기도 했고 연인, 정부, 부녀와 모자이기도 했으며 아, 그래요, 가장 진지하고도 신나는 관계는 친구 사이라는 설정 이었어요. 우리는 세상 누구보다도, 또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관계보다도 더 가까웠어요. 그런데 지금와서 돌이켜보니 그런 나보다도 선생님에게 더 가까운 존재, 선생님과 더 완벽한 묶임이 된 존재가 있었나봐요. 그건, 그건 고독이라는 존재였어요---. 하지만 이번에 문집을 내고 문학상을 제정하여 드리고 하면서 저는 그 고독이라는 묶임의 매듭과 한번 전쟁을 치루고 싶었습니다.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라 마음이 훈훈해지는 역사가 이루어졌으면 하였지요. 오늘 이 밤이 좋군요. 동지 섯달 긴긴 밤을 먹물 삼아 풀어놓은 수묵화가 한지 전지 하나에서 형체도 경계도 없이 다 번져나는 느낌이군요---."
(이번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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