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는 하루 일당을 받아서 갔고 두 사람은 호텔 인근에서 현지식으로
저녁을 하였다.
브라질 산의 테이블 와인도 송정자가 시켜서 한잔씩 하였다.
와인 한잔에 그녀의 눈이 정감을 품으며 풀리더니 고즈넉히 그를 쳐다
보았다.
"내일 새벽 비행기로 리오데자네이루로 가서 코르코바도 언덕의 예수님 상을
보고 무슨 슈가르프 산이라던가 빵 모양의 산에도 올라가보고 그럴 일정이
잡혀있으니 오늘 나를 피곤 하게할 생각은 말게."
한익준이 그녀의 풀어진 눈꺼풀에 질겁을 하며 자리까지 띄우는 시늉을
하였다.
"잠자리가 바뀌면 그것도 바뀐다는 침대 선전 CF도 있습디다.
도대체 여행은 왜 오자고 했어요?"
"일단은 뉴욕의 추위를 피하려는 목적이었어.
추위에 더 시달리면 내가 죽을 것 같았지. 이제와서 이야기이지만 얼마전
우리 교회 장로이신 심장병 전문의, 정 박사 클리닉에 다른 일로 들렀다가
심장 체크를 하였더니 우선 부정맥이 심하다는거야."
"부정맥이 뭔데요?"
"주로 심근경색에서 오는건데---, 아니 설명해봐야 잘 모를 것이고 하여간
심장마비로 급사할 수도 있다는 증세라네.
추위가 금물이고---. 겨울에 노인들 부고장이 많이 날라오잖아.
그리고 요즈음 내 마음이 정말 편치않아.
왜그런지는 당신이 더 잘 알텐데---.
페드로 이야기를 내가 입에 담아야겠어?
하여간 그래서 이래저래 일단 뉴욕을 좀 떠나보자, 그런 생각이었으니까
내 몸과 마음이 정상을 찾을 때까지 다른 수작은 말게.
나를 시도 때도 없이 흥분시켰다가는 당신 과부되는거야."
"내가 당신같은 목석을 언제 흥분시켰다는거예요?"
"착각이나 오해는 말게. 나를 남자로 흥분시켰다는게 아니라 페드로 같은
젊은 아이를 내 앞에서 껴안고 돈 행동 말이야.
내가 당신에게 잘 해주지 못하는건 미안해. 또 당신의 그런 행동이 단지
나를 성적으로 충동질 시키려는 가벼운 제스추어인줄도 알고 있어.
하지만 눈으로 그런 걸 보면서 나는 쓸어질번했어."
한익준은 자신의 몸이 적지않게 고장이 났고 마음도 황폐해진 이야기를
이제야 겨우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부부 사이에 벌써 나누었어야했을 이야기들을 그동안 나누지 못하고 살아
온 것이 대체로 그의 성격 탓이었겠지만 일상의 과로가 그런 대화를 나눌
시간적, 심적 여유를 빼앗아 간 탓도 컸다.
그리고 한익준의 입장에서 보면 침묵이야말로 송정자의 다변과 지나친
욕구를 누르는 손쉬운 대처 방법이기도 하였다.
그녀의 다변에 맞서서 그도 처음에는 말로써 그녀를 제압해 보려했으나
결국 손을 들고, 가장 소극적이지만 가장 효과적인 묵언의 정책을
채택하게 된 것이었다.
사실 이런 방식이 사태를 해결하기는 커녕 바루기 힘든 비극의 원인이
되기도 하겠지만 그런걸 체계적으로 인식하기에는 이국에서의 생활이
너무나 각박하여서 서로 경황과 요령들이 없었다.
송정자는 무언가 남편의 말에 대꾸를 하려다가 페드로 이야기에 찔끔했고
또 생각 보다는 여행지가 늘어나 있어서 입을 다물고 트윈 베드의 한쪽을
차지하여 몸을 눕히고 말았다.
이튿날 일정은 아침 비행기를 타는 것이 좀 힘들었을 뿐, 정말로 아름다운
미항, 리오데자네이루를 원없이 돌아보았고 저 사진으로만 보던 거대한
예수님의 입상이 있는 곳으로 기차를 타고 올라가서는 외경스러움에
사로잡히는 시간도 맛보았다.
송정자는 무슨 감동을 받았는지 그 입상의 발 아래에서 한없이 기도를
올리기도 하였다.
한익준도 적당히 더운 남국의 날씨 가운데에서 신비체처럼 보이는 구조물을
몇차례 돌며 마음이 갑자기 탁 트이는 경지를 체험하였다.
뉴욕의 저 코피 터지는 이민 생활의 고통이 한 순간에 탁 소리를 내며
자기 몸에서 빠져나가는 그런 기이한 느낌이었다.
늦은 점심을 햄버거로 떼우며 그들은 슈가로프 산, 일명 빵 모양의 산으로
케이블 카를 타고 올라갔다.
"전에 007 문 레이커던가하는 영화에서 케이블 카를 타고가며 우리의 007,
로저 무어가 악한과 싸우던 장면을 바로 여기에서 찍었다는 것 아니겠어---."
한익준도 모처럼 신이나서 아내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뉴욕의 밥 장사가 아는 것도 많소. 어디서 그런 이야기는 챙겼어요?"
"이 사람아, 내가 이래뵈도 왕년에는 문학 청년이었잖아. 영화도 참 많이
봤는데 요즈음은 DVD 빌려다가 보는 것도 못하니---."
그는 한숨 쉬는 흉내를 냈으나 마음 속으로는 벌써 뉴욕의 얼음짱 같은
냉기를 몸에서 많이 녹여내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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