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짧고 행복했던 낚시 여행 (8)

원평재 2007. 4. 4. 00:07

23965

 

 

 

매연이 심한 페리호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멈칫거리다가

마침내 마지막 손님인양 그들 네사람과 빨간 승용차를 삼키더니 느릿느릿

떠났다.

"페리에 똥차들이 많지요?"

가이드의 말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마나우스와 아마존 주에 대하여 설명을 했으나 한익준의

귀에는 별로 들어오지 않았다.

"두분 사진을 찍어드릴께요. 저 아마존과 똥차들을 배경으로하면 귀한

사진이 될텐데요---."

"아이구, 나이 들어 사진 자꾸 찍으면 자식들에게 부담만 주어요.

사양합니다."

한익준은 손바닥만한 디지털 카메라를 자신의 손바닥에 감추며 외면을

하였다.

 

배는 아마존의 한가운데에서는 속력을 놀랍게 내더니 마침내 건너편 대안에

닿았다.

거기는 떠나던 곳보다 더 거칠고 조잡하고 낙후된 선창 마을이었으나

관광객의 눈으로 보면 비경같기도 하였다.

여행사의 글래머같은 기사 아가씨는 다시 핸들을 잡고 페리에서 차를

꺼내더니 그들을 태우고 이번에는 쪽배가 대기하고 있는 어떤 작은

나루까지 다시 달려갔다.

 

"이제 마침내 밀림 속의 호텔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호텔에서 나온 쪽배를

타고 그 곳으로 들어가는데 비가 많이 오면 호텔 현관까지 가고 요즘처럼

비가 덜한 때에는 한참 아래쪽에 배가 닿기 때문에 미안하지만 많이 걸어

올라가야 한답니다."

가이드는 신이나서 설명을 했고 송정자는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한익준은 뼛속까지 들어찬 냉기를 더운 날씨가 녹여내는 것만도

다행인듯 싶었다.

사실 그는 어제 아내의 전화로 일어난 충격으로 밤 잠을 설친데다가

이 곳으로 오는 무리한 여정 때문에 심한 부정맥 현상을 느끼며 호흡이

가빠지고 있었다.

 

호텔로부터 쪽배를 저어서 나온 사람은 젊은 브라질 청년이었다.

미남에 딱 바라진 어깨를 하였으나 상냥한 미소를 입에 달고 순한 눈빛으로

선한 용모를 소유한 젊은이였다.

"헬로우, 웰컴 투 아우어 방갈로우 호텔, 미스터 앤드 미세스 한!

마이 네임 이즈 올란도."

그가 아주 정확한 영어 발음으로 두사람을 환영하고 자기를 소개하였다.

따라온 가이드에게도 친근하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가이드는 올란도 청년을 무시하는 태도였다.

"이 녀석과 또 나중에 인디오 마을에 갔을 때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팁을

따로 먼저 주시지 말고 제 말에 따라서 여기 돈, 레알로 주십시오."

"달러를 그냥 쓰려고 레알로 바꾸지 않았는데요?"

"제가 조금 바꿔 드리지요. 하여간 저와는 달러로 계산하고 얘들하고는

레알로 하세요."

가이드의 입장에서는 친절한 안내를 하는 셈이었지만 그가 금전적으로

너무 각박하게 일을 처리하는 바람에 한익준과 특히 송정자는 답답하고 

때로 괴로움이 컸다.

그러나 후한 팁을 주거나 달러로 계산하는 방식은 다음번에 오는 한인

관광객들의 비용 지출과 편의를 생각해서 삼가해 달라는 그의 요구를

무시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쪽배를 저어서 온 청년은 알고보니 두 관광객을 모실 책임이 있는 "담당"

이었다.

방갈로우 형태의 밀림 호텔에는 독일에서 온 관광객 부부 두 쌍이 있을

한산한 편이었다.

이런 식의 호텔이 강변과 밀림 속에 띄엄띄엄 있어서 붐비지 않는 느낌도

좋았고 실제로 아직은 그렇게 관광객이 이 곳으로 밀려들지도 않았다.

남들보다 한발 일찍 들어온 셈이었고 말하자면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아직

괜찮은 세월이었다.

 

늦은 점심으로는 희안한 현지식이 제공되었다.

쌀밥을 과일과 열매와 섞어서 튀긴 주식에 여러 종류의 아마존 물고기를

굽거나 졸인 음식이 겯들여졌다.

점심이 끝난 다음에는 인디오 마을을 다녀오는 스케줄이 있었다.

그들은 일단 꽤 먼 거리를 올란도의 쪽배를 타고가서 다시 긴 밀림 속을

걸어서 나아갔다.

한익준은 기분도 그렇고 힘도 딸려서 맨 뒤로 혼자 쳐졌다.

업친데 덥친 격인지 공연히 무릎 관절까지 아파서 그는 절름발이같은

신세가 되었다.

 

반면에 송정자는 올란도와 맨 앞에 서서 무언가 신나게 떠들고 웃으며

빨리 걸어갔다.

청년의 유창한 영어가 밀림 사이로 울려퍼지며 맨 뒤로도 들려왔다.

가이드 영감은 엉거주춤 그 중간에서 앞 뒤를 재며 걸어갔다.

밀림 속을 한 참 걸어들어가니 어마어마한 고목이 나오고 기골이 장대

하고 험악한 얼굴에 검정과 빨강으로 이리저리 색칠을 한 인디오가

무어라고 올란도에게 인사 겸 요청 하는 시늉을 지었다.

올란도가 그 시늉에 무어라 답을 하니까 인디오가 씩 웃으며 사슴 뿔 같은

걸로 밀림 속에다 길게 울려퍼지는 소리를 보낸 후, 거대한 몽둥이를

어디에서인가 찾아 들고는 그 곳에 있는 역시 거대한 고목을 두어번 쾅쾅

쳤다.

 

 

 

이윽고 인디오는 씨익 웃으며 한익준에게 몽둥이를 건네주고 나무를

쳐보라는 시늉을 보냈다.

"저 친구는 동네 입구를 지키는 인디오 전사입니다. 시키는대로 하세요."

가이드가 설명하였다.

한익준이 내키지 않은 자세로 몽둥이를 들어보니 나무 몽둥이가 아니라

돌 몽둥이처럼 무거웠다.

그걸로 나무를 치니 나무는 꿈쩍도 않고 치는 사람의 몸만 사시나무 떨듯

흔들렸는데, 그래도 얼마간은 나무에서 무슨 소리가 울리며 어떤 전달음이

생기는듯 하였다.

어쨌거나 그 울림과 함께 한익준의 심장에 심한 동계가 오고 부정맥이

마구 출렁이며 가슴에서 울렁거리는 줄은 당사자 밖에 몰랐다.

그는 어지럼증과 가슴의 압박감으로 토하거나 쓸어질 것 같았으나 내색

않고 참으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이번에는 올란도가 몽둥이를 받아들고 나무를 내리쳤다.

소리가 훨씬 크게 울려퍼지고 고목이 흔들리는듯 하였다.

두 사람의 차이에 모두들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는데 송정자의 소리가

가장 높고 크게 울려퍼졌다.

한참을 웃더니 그녀도 내려놓은 몽둥이를 들려고 낑낑대었는데 얼른

올란도가 옆에서 도와주었다.

두사람은 힘을 합쳐서 몽둥이를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장대한 모양의 그 인디오 전사가 무슨 주술을 읊으며 두 남녀를

함께 세우더니 칡넝쿨 같은 것으로 몸을 얽어매었다.

"저게 뭐요?"

한익준이 마구 울렁거리는 가슴을 손으로 누르며 가이드에게 물었다.

"하하하, 이 밀림 법칙으로는 한 쌍의 부부가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의식같지만 다 장난이지요."

그러나 두 남녀는 장난이기에는 도가 지나치게 서로 껴안고 볼을 부비며

이마를 맞대는 시늉도 하였다.

 

이제 그들이 다시 한참을 더 걸어 들어가서 당도한 인디오 마을은

방문객들을 맞을 준비를 미리 다 해놓고 있었다.

먼저 원숭이 해골이 주렁주렁 벽에 걸린 약방겸 진료소에서 어떤 여자

샤먼, 그러니까 여자 무당이 무언가 더러운 것을 닦아내는 의식을 치루었다.

"영감님, 여기가 무슨 약방 같은 곳이라구요? 지금 제 가슴이 찢어지듯

아프고  내리누르는듯한데, 약이 없을까요?"

한익준이 정말 심장에 압박이 오고 가슴이 울렁거리고 골치가 아파서

헐떡거리며 가이드에게 물어보았다.

"아이구, 여기에서 뭘 먹었다 큰일 나게요. 호텔에 가서 심장약 상비약을

드릴께요. 조금만 참아보세요."

그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말렸다.

 

그들은 곧 동네 한복판에 있는 짚으로 이은 공회당 같은데로 들어갔다.

인디오 어린 처녀들이 속이 다 들여다 보이는 전통 옷을 입고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춤을 추었다.

북과 징같은 것을 치는 사람은 어른들이었다.

그 옆에서 아까 그 무당이 긴 담뱃대로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고 있었다.

 

 

  

 

 

 

 

 

 

 

 

 

 

  

 

 

 

 

"헤밍웨이 단편에 나오는 인디언 캠프라는게 생각나네. 거기에도 저렇게

담배 피우는 의식이 나오지---."

한익준이 누구라 대상도 없이 중얼거렸다.

"아이구, 헤밍웨이와 인디언 캠프를 아시는군요. 저도 예전에 책께나

읽었지요."

가이드 영감이 반색을 하며 한익준의 혼잣 말을 받았다.

"아, 영감님도 대단하시군요. 사실 아까 아마존을 건널 때에는 헤밍웨이의

강을 건너 숲으로---라는 장편도 생각이 났지요.

그건 결국 실패작으로 끝난 인기 없는 작품이었지만요---.

거기에 나오는 나이든 2차 대전의 지휘관은 추억의 유럽 전선을 종전 후에

다시 찾아가는데, 결국 심장 발작으로 젊은 여인의 품속에서 쓸어지고

말지요."

한익준이 숨을 헐떡이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어느 대목에서 한 옥타브만 높여도 당장 그의 심장이 멎을듯 싶은 상태였다.

 

"저는 그것까지는 못 읽어보았지만 하여간 헤밍웨이는 좋아해요."

헤밍웨이에 대한 가이드의 지식이 한계에 도달하는구나 싶었지만 한익준은

그 정도의 화답에도 위안이 컸다.

"오늘 일정은 여기에서 빨리 끝내야겠네요."

가이드가 그의 헐떡이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

인디오 무당에게 가이드는 레알 화 지폐로 몇푼을 집어주고는 정산은

돌아가서 하자고 했다.

한익준이 몇 달러를 더 주려고 했으나 그는 단호하게 제지하였는데

송정자가 슬그머니 올란도에게 달러를 집어주는 것은 어쩔수 없는지

모른체 했다.

모두 네사람이 마을에서 나오자 아까 안내하였던 인디오 전사가 몽둥이와

고목나무가 있는 데에 까지 배웅을 나왔다.

 

   

  

 

  

 

  

 

  

  

 

한익준이 숨을 헐떡이며 맨 끝으로 따라온 것은 물론이었다.

그들이 쪽배 있는 곳으로 조금 내려왔을 때 올란도가 "쉿!"하고 일행을

멈추게 하더니 갑자기 높은 나무위로 다람쥐처럼 올라갔다.

그리고 조금 후에 무언가를 잡아서 땅바닥으로 떨어뜨리고 자신도 펄쩍

뛰어내려왔다.

"슬로우드, 슬로우드!"

그가 소리쳤다.

"뭐라구해요?"

송정자가 물었으나 가이드가 우리말로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늘보라는거야, 늘보!"

마지못해 한익준이 알려주었다.

"하하하, 늘보라구요? 그럼 당신이네. 늘보! 올란도가 늘보를 잡았네요.

하하하."

그녀는 무슨 히스테리가 발작한듯이 깔깔 웃었다.

늘보는 워낙 느려서 도망을 가지도 못했지만 배가 불룩한 것이 임신중

이기도 하였다.

 

"아니 임신 중인걸 패대기를 쳐?"

한익준이 화난 표정으로 올란도를 쳐다보았다.

"너무 탓하지 말어요. 우리가 머리에 털나고 처음으로 신기한 걸

보았잖아요. 올란도 최고!"

송정자가 올란도의 옆에 바짝 붙어서 변호해 주었다.

"잇스 오케이. 노우 프라블럼."

올란도는 늘보를 나무에 다시 붙여놓았다.

그 녀석은 정말 천천히 아무일도 없었다는듯이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계속)

'팩션 FACTI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들의 고향 (1)  (0) 2007.04.09
짧고 행복했던 낚시 여행 (9-끝)  (0) 2007.04.05
짧고 행복했던 낚시 여행 (7)  (0) 2007.04.01
짧고 행복했던 낚시 여행 (6)  (0) 2007.03.29
짧고 행복했던 낚시 여행 (5)  (0) 2007.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