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짧고 행복했던 낚시 여행 (7)

원평재 2007. 4. 1.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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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이과수 폭포에 다달았을 즈음해서는 부부의 냉기는 거의 녹아

내리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 거대하면서도 여러 갈래로 층을 이루어, 한 곳이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폭포의 비경을 배경으로 하여

바야흐로 해빙 무드가 생성되고 이어 무르익는듯 하였다.

특히 한익준은 그 엄청난 자연의 힘을 보고 들으며 그 에너지가 자신에게

흡입되어 온 몸의 기력이 회복되는듯한 느낌을 얻었다.

오래동안 두 사람은 사진도 찍고 또 머리 속에도 그 장관을 입력하려는듯

오래 눈빛을 밝히다가 마침내 굉음과 물보라를 빠져나와서 휴게소에서

커피를 하며 호텔로 돌아가는 셔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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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하필이면 송정자가 로밍해온 전화로 맨해튼의 페드로를 불렀다.

아마도 남편과의 해빙 무드를 이 감격의 순간에 완전하게 완성하여 기정

사실로 굳히기 위한 작전인듯 하였다.

말하자면 페드로를 불러 남편이 듣는 데에서 무슨 단호한 말을 하려는

수준 낮은 꾀가 그녀에게 떠오른 모양이었다.

그녀다운 발상법이자 아주 모자라는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어쩌면 악마의 속삭임이 그 순간, 속이 얕고 귀가 넓은 그녀에게 들렸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쪽 시간은 점심 시간이 끝나고 하오의 짧은 한가로움이 일상으로 넘실대는

그런 때였다.

 

일은 당연하게 또 묘하게 꼬이며 돌아갔다.

맨해튼의 델리 가게에 있는 페드로에게 전화를 갑자기 거는 그녀의 태도에

우선 한익준의 기분이 몹씨 상했다.

그런데 페드로의 휴대폰에서 전화를 받은 사람은 당사자가 아니라 새로

들여놓은 히스패닉 처녀였다.

로밍한 전화의 발신자 번호가 복잡하여서 그랬는지 무심결에 그랬는지

하여간 페드로의 전화를 도리아라는 그녀가 받았다.

"네가 왜 이 전화를 받어?"

대충 그런 뜻을 송정자가 스페인어로 소리쳤다.

상대방이 우물쭈물 하는듯했다.

"페드로 바꿔!"

그녀가 또 소리를 질렀다.

한참 부시럭 거리는 품새가 지나고 페드로가 전화를 받았다.

그녀가 히스테리컬하게 악다구니를 썼고 한익준은 폭포를 바라 보면서

그자리에서 멀리 떨어져나갔다.

해빙은 커녕 그의 가슴에 빙산이 들어와 박히는듯 하였다.

마침 그 전날과 이날은 가이드를 부르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아니 차라리 가이드가 있었더라면 상황이 이렇게 진전되지는 않았을 수도

있었다.

 

"여보, 미안해요."

어느새 송정자가 어깨 뒤로 닥아와서 그의 귀에 속삭였다.

"미안하니 뭐니 하는 그런 소리 자체가 기분나빠. 내 귀에 대고 말하지

말고 떨어져서 말해.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취소하고 바로 아마존 밀림으로나 가자."

한익준이 자신의 휴대폰으로 이쪽 여행사의 에이전트를 부르며 말했다.

"아이, 거기 아르젠틴에 들렀다가 가요. 내 진심을 몰라주고---.

당신한테 잘할려고 그랬는데."

송정자가 칭얼대었으나 이미 한익준의 가슴은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머리 속에 입력되었던 이과수 폭포의 장관은 길바닥에 내동댕이치고

그들은 호텔로 돌아와서 짐을 쌌다.

다음날 새벽 마나우스 행 비행기 표는 어렵지 않게 연결이 되었다.

바로 아마존 밀림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국제 공항이 있는 도시였다.

"난 아마존 안들어가요. 바로 뉴욕으로 갈래요."

"그렇게 하지 뭐. 비행기 표 바꿔줄까?"

송정자가 앙탈을 부렸으나 결국은 동행을 하는 수 밖에 없었다.

 

마나우스는 자정에 도착되었다.

나이가 든 한국인 가이드가 그 오밤중에 공항에 나와있었다.

"뉴욕에서 오셨지요?"

흰 수염을 휘날리며 그가 물었다.

"아니요. 이과수에서 왔는데요---."

송정자가 물색없이 대답하였다.

"하하하, 그럼 이과수 폭포에서 사신다는 말씀인가요?" 

"아뇨. 거기 구경하고 왔다는 말이예요."

"아, 잘난 자식을 두셔서 서울에서 아들 만나러 뉴욕에 왔다가 며느리

한테 여행비 받고 이리로 유배 오신 분들 아니세요? 하하하."

가이드가 보통이 아니었다.

"아, 영감님. 무슨 말씀이신지 알만한데요,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고

미국 시민권자들입니다. 내 돈으로 여행왔어요. 아직 아들 덕 볼 나이도

아니고---."

한익준이 나섰다.

 

"아니 여보, 이 분이 지금 무슨 말씀이세요?"

송정자가 그때 까지도 말귀를 못알아듣고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요즈음 서울에서 미국에 잘난 자식 보러왔다가 남미로 유배받고 와서

한 참 쉬시다가 가시는 분들 참 많으십니다.

효도관광이라면서요, 하하하."

나이 든 가이드가 그녀에게 웃으며 설명을 해주었다.

"우린 아니예요. 미국 사람이예요, 미국 사람! 아메리칸 시티즌~."

송정자가 그제서야 기겁을 하고 미국 시민을 강조하며 설명하였다.

그녀의 진면목이 들어나는 부분이었다.

 

가이드가 몰고온 밴을 타고 그들은 마나우스 최고의 호텔로 달려갔다.

20층에 자리잡은 객실은 럭셔리한 가구와 삼성 전자에서 나온 TV가

두사람의 감탄사를 자아내기에 충분하였으나 한익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보, 여보! 밤중인데도 저기 아마존 강 좀 보세요, 바다같아요."

아내가 호들갑을 떨며 더블 베드로 들어가도 남편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TV만 이리저리 돌려대며 한마디를 툭 던졌다.

 

"내일 아침, 아니 벌써 오늘이 되었네. 그 영감이 일찍 온다고 했지.

그러니 일찍 자."

"그러는 당신은 뭘해요?"

"날씨도 보고 지리도 익혀두어야지."

"그렇게 조사하고 준비하려면 가이드 영감은 왜 붙이고 왜 일찍 오라고

하였어요?"

"당신 행동이 어처구니 없어서 사람을 불렀어. 다른 사람이라도 없으면

내 행동 나도 몰라. 하여간 그러니까 어서 자고 일찍 일어나라구."

짜증과 원한 같은 심정이 가득하여 아내를 빨리 자라고 채근하였지만 

그도 할 수없이 자리에 들었다.

아내가 부시럭대며 그에게 접근하였으나 그는 매몰차게 등을 돌리고 잠을

청하는 시늉을 해 보았다.

하지만 비행기에서의 낮잠과 커피로, 아니 이과수 폭포에서의 아내의

도저히 이해 못할 행동으로 말미암은 증오와 혐오감 때문에 그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부부 모두가 잠을 자는둥 마는둥, 바다같은 아마존 강 너머로

태양이 뜨고 이른 아침이 찾아오자 두 사람은 서둘러 로비로 내려갔다.

가이드 영감은 벌써 와서 대기하고 있다가 두 사람을 안내하여 호텔

부페 식당으로 함께 들어갔다.

바로 옆으로 아마존 강이 정말 바다처럼 넓게 펼쳐져있는 전망 좋은

식당이었다.

"우선 저 강을 건너서 아마존의 내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가이드 영감이 강을 가리키며 설명하였다.

 

 

 

 

  

 

 

 

 

 

 

 

 

 

 

 

  

 

 

 

 

 

 

 

 

 

 

그들을 태우고 갈 작은 승용차는 브라질 아가씨가 운전대를 잡고

호텔 현관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현지 관광 회사의 직원겸 운전기사라고 했다.

"한국에 가보는게 꿈입니다."

한국 말이 아주 유창하였다.

물을 들였는지 아주 노랑머리의 글래머같은 아가씨는 까만 눈동자에

정말 꿈을 가득 담고서 그들을 환영하였다.

아무 근심 걱정 없이 꿈만 가득한듯한 눈동자의 그녀가 문득 부럽다는

생각을 한익준은 하였다.

 

새로 지은 최고의 호텔 주변에는 일류 주택들과 아파트가 서 있었지만

배를 타러가는 선창가까지의 길가에는 가난이 주렁주렁 달린 집들이

엉거주춤 서 있는 꼴이었다.

"애들 할머니 살아계셔서 함께 오셨으면 또 보리고개 시절 이야기 한참

하시겠네---."

송정자가 남편을 보고 말했으나 그는 굳은 얼굴로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 보리고개를 아시는 세대이지요?"

안내 영감님이 갑자기 신명이 나서 자신의 예전 경험과 이 곳에 와서

제2의 인생을 원없이 산다는 일장 연설을 하였다.

"알고보니 두분은 참 행복하시군요. 도대체 아마존에 오신 한국분들치고

여기에 하루를 묵는 경우가 드물어요.

증명 사진 찍다시피 아마존 밀림이나 강을 배경으로 사진을 박고는

그냥 달아나다시피 하거든요.

그런데 삼박사일을 묵으며 낚시까지 하실 일정이라니 대단하십니다."

"아, 그럼요. 우린 아이들 돈받고 유배 받아온 부모가 아니라니까요."

송정자가 다시 자신들의 신분을 목에 힘을 주어 상기시켰다.

"아, 그럼요. 아메리칸 시티즌---, 하하하."

가이드가 호방하게 웃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