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짧고 행복했던 낚시 여행 (9-끝)

원평재 2007. 4. 5. 23:11

 

24032

 

  

 

    

돌아온 방갈로우 호텔에서 한익준은 가이드가 건네준 심장약을 조금

먹었다.

가이드를 하는 영감도 심장이 약하고 혈압이 높았지만 적절하게 매일

약물을 복용함으로써 건강을 잘 지탱해 나가고 있다고 하면서

한익준다소 꾸짖는듯한 투로 말을 하였다.

 

이제 몇년만 지나면 나이가 차서 메디케이드 혜택을 받는데 무슨 의료

보험이고 건강관리냐고 평소 돈만 생각해 온 한익준에게 정말 후회가 

이과수 폭포수처럼 밀려왔다.

어쨌든 약의 효험이 탁월해서인지 기분 때문인지 그는 평소와 달리

불면증에 시달리지도 않고 잠이 일찍 편안하게 찾아왔다.

에어컨과 천정의 실링 팬이 돌아가는 소리도 수면 방해는 커녕 자장가

처럼 들려서 참으로 신기할 지경이었다.

 

이튿날 아침에 그는 열대조들의 지저귐을 듣고서야 잠이 깨었다.

이날은 아마존 강의 본류를 일단 돌아본 다음에 지류로 들어가서 몇군데를

살피다가 물고기가 많이 잡힐듯한 곳에서 하루 종일 낚시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밤이 되면 대망의 악어 사냥을 나갈 것이었다.

 

뉴욕-뉴저지의 교민들을 중심으로 바다낚시 동호인 모임도 있고 또 

뉴욕주의 북쪽, 그러니까 "업 스테이트"에서는 민물고기 낚시 꾼들도

수두룩하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한번도 관심이나 여유를 갖인적이 없었는데

한국을 떠난 이래로 남미에서 오랜만에 낚싯대를 드리우게 된 자신의 

모양이 기이한 감동을 한익준에게 불러일으켰다.

 

아마존은 거대한 물줄기가 세군데로부터 들어와서 다양하고도 경이적인

특징과 색갈을 본류에 이입시켜 그 위에 배를 띄운 사람의 시야에서는

매 순간이 흐르는 바다처럼 보였으나 이 모든 장관을 한익준이 잘 감상할

처지는 아니었다.

특히 이날은 아침 일찍부터 부정맥이 유난히도 요란하게 그의 가슴을 시도

때도 없이 울렁거리게 하여서 그는 모터 보트 위에 반쯤 누운 상태로 주로

하늘만 쳐다보며 자족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아마존 뱃놀이에 유감은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거대한 아마존을 대략 거시적으로 탐방한 연후에 점심은 수상

식당에서 간단히 떼우고 물고기를 낚아올릴 차례에 돌입하였다.

그들은 올란도의 자신만만한 제안으로 두어군데 낚시 포인트를 잡았으나 

물고기들은 현지의 베테란에게도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쇠고기를 큼직

큼직하게 매단 낚시대를 우롱할 뿐이었다.

"할 수 없다. 똥 먹은 고기라도 잡으러가자."

가이드가 외치자 올란도가 모터 보트에 엔진을 다시 걸어서 좁은 수로

쪽으로 방향을 잡아 나아갔다.

아무래도 "똥"이라는 발음을 얼른 알아채고 그는 다음 단계를 준비한 모양

이었다.

올란드의 감각이 그 정도로 날카로웠다.

 

이윽고 그들은 인디오의 허름한 수상 가옥 옆에다가 배를 대었다.

늙은 노파와 조금 젊은 통통한 여인네, 그리고 조무래기 아이들이 얼굴을

밀었다.

집안의 남정네는 시장에 생활필수품을 사러 쪽배를 저어나갔다고 했는데

그들이 오고나서 이내 들어왔으나 이 무단 칩입자들을 오히려 반기는

게면쩍은 웃음을 띄울 따름이었다.

아무튼 아무런 양해도 필요없이 그들은 갖고간 큼지막한 쇠고기 미끼들을

끼어서 낚시를 드리웠다.

 

"잡았다!"

제일 먼져 소리를 지른 것은 송정자였다.

과연 손박닥 두개를 합친듯한 크기에 아가미 근처가 붉은 흉칙한 물고기를

그녀는 낚싯대에 매달아 건져올리고 있었다.

"삐라냐! 테이크 케어!"

올란도가 조심하라고 소리쳤다.

 아닌게 아니라 삐라냐를 잡으면 서뿔리 손을 대지 말고 올란도나 가이드

에게 부탁하여 낚시 바늘에서 물고기의 아가미를 빼라는 당부를 두사람은

미리 받은 바가 있었다.

그리고 배의 바닥에서 삐라냐가 펄쩍펄쩍 튀어오르더라도 극히 조심하라는

경고도 받고 있었다.

자칫하면 그들의 살쩜을 뜯긴다는 것이었다.

 

"역시 송 여사가 최고네. 내 가이드 생활에 이렇게 큰 삐라냐는 처음이네요."

가이드가 솔직하게 놀라는 소리를 질러대었다.

월척은 물론이고 대어 상 깜이라는 것이었다.

"이건 메기다!"

송정자가 또 소리를 질렀다.

허연 수염을 여러개 달고 아가미를 뻐끔거리는 정말 메기처럼 생긴

물고기를 그녀가 다시 낚아올리고 있었다.

 

"거기가 화장실 옆이네요. 냄새나지 않아요?"

가이드가 자기는 한마리도 잡아내지 못하여서 볼멘 소리를 했지만 그녀의

위치가 화장실 옆인 것만은 사실이었다.

이후로도 송정자와 올란도는 이름도 모를 물고기와 특히 삐라냐를 연신

건져올리고 있었다.

가이드는 미리 고추가루와 고추장을 잔뜩 담아왔는데 매운탕 꺼리는 금방

마련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가이드도 삐라냐 몇마리는 이내 건져올렸다.

한익준만 물고기를 한마리도 건져올리지 못하였다.

아니 물고기는 커녕 수상 가옥이 물살에 기우뚱 거릴 때마다 구역질이 자꾸

속에서 올라왔다.

"나도 한마리는 건져올려야겠지---."

인디고 블루 색갈의 헐렁한 트렁크 팬츠를 입은 그가 혼자 중얼거리며

아내가 있는 쪽으로 긴 낚싯대를 들고 뒤뚱거리며 발을 옮겼다.

 

"오, 마이 갓!"

그런 소리가 동시에 여러 곳에서 튀어나왔다.

그가 수상가옥의 옆에 달린 베란다 역할의 나무 둥치 위를 이리저리 딛으며

뒤뚱거려 나아가자 나무가 빙글 돌았고 그는 순식간에 강 물 속으로 굴러

떨어졌다.

"으아악!"

대략 만화 같은데에 나오는 소리와 모양이 그러했을 것이었다.

그는 형형색색으로 뒤엉킨 아마존 강물 속에 깊이 빠져들어갔고 물을

먹어서 지르는 비명 이상의 절규를 지상의 관람자들에게 순식간에 내보냈다.

용맹함 같아서는 올란도가 얼른 뛰어들어갔을 테지만, 문제는 역시 식육어

삐라냐였다.

수상 가옥 옆에 매달아놓은, 갖고 온 모터 보트로 달려간 그가 엔진을 걸고

물 속에서 허우적 거리는 한익준에게로 달려간 시간은 빨라야 5분이었다.

그 사이에 한익준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비명은 다 질러댔다.

 

올란도가 그를 수상 가옥으로 다시 끄집어 올려 놓았을 때에는 인디고 블루

색갈의 헐렁한 트렁크 팬츠 사이로 인디언 레드랄까, 크림슨 휴의 진홍빛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삐라냐들이 페니스를 물어뜯었어요!"

올란도가 소리쳤다.

"아이구 맙소사, 여보 정신 차리세요! 죽지 말어요!"

송정자가 그의 가슴을 쾅쾅치며 소리를 질렀다.

"이 여자 좀 말려! 그만 쳐! 내가 이 여자 때문에 죽겠네. 안그래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

한익준이 소리를 질렀다.

"이 양반이 엄살이구나. 소리지르는 것으로 봐서는 죽지는 않겠네."

송정자가 문득 희망이 살아난듯이 몸을 일으키고는 그를 빤히 보았다. 

 

"엄살이라니! 내 물건이 다 뜯겨서 피가 이렇게 흐르는데도 엄살이야?

내가 이 여자 때문에 명대로 못 살겠다. 아이구  이 여자 좀 말려!"

그가 다시 소리를 지르며 여유있는 농담을 끼워넣고자 하였으나

정작 아픈 곳은 페니스 쪽의 피가 흐르는 곳이 아니라 심장 쪽이어서

그의 가슴은 집채만큼 무거운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여간 피가 나오는 부분은 지혈을 하고 테라마이신 연고를 바릅시다.

그 곳에는 부인이 직접 발라야지 도리가 없소이다.

전에 한번은 삐라냐들이 물건을 다 뜯어먹은적도 있어요.

지금은 그보다는 양호하네요. "

가이드는 갖고 온 구급약 상자를 열며 송정자에게 말을 이어갔다.

"송 여사! 잘 바르고 압박 붕대로 지혈을 잘 하세요. 안그러면 살아도

못살아요."

"영감님, 이 판에 농담이 나오세요?"

송정자가 발끈했다.

 

"아니, 이 바닥에서는 자주 나오는 말이랍니다. 여기에서 삐라냐가

뜯어먹어봐요, 살아도 못살지!"

"이 능구렁이 영감님 때문에 내가 못살아!"

"아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섭하게 하세요. 나는 아직 멀쩡합니다.

여자들이 아직은 나하고 살만하지요.

그리고 이 양반, 한 사장님도 지금 보니 많이 찢겨나갔지만 쓸만합니다.

사실 꿀벌들에게 봉침 맞으면 약효가 있듯이 전립선 비대증 같은 증상이

있는 분은 이 곳에서 삐라냐에게 뜯기고 나면 효과가 있다네요.

어서 돌아가서 안정을 취하도록 합시다.

이 양반이 심장이 약해요. 그게 겁나지 않아요?"

"몰라요, 나는 이미 살아도 못살고 있어요!"

 

사고라고 한다면 큰 사고가 났으나 그래도 불행 중 다행으로 인명 사고가

나지는 않았지만, 문명의 오지인 아마존 강상에서는 재난이 또 어떻게

추가로 들이닥칠지 아무도 몰랐다.

그들은 서둘러 호텔로 돌아왔다.

한익준은 보트 바닥에 누워서 오다가 호텔 아래 선창에서부터는 임시로

마련한 들것에 실려서 올라왔다.

아마존 강과 밀림으로 어둠이 곧장 찾아왔다.

한익준은 가이드가 주는 심장약을 먹고 저녁으로는 과일을 조금 맛본 후,

이내 자리에 누웠는데 거의 탈진 상태였다.

삐라냐들이 갉아먹은 페니스 주변은 화농의 위험이 있어서 일단 항생제를

계속 바르고 있었으나 내일 날이 밝으면 즉시 마나우스로 후송할 준비와

연락을 취해놓고 있었다.

지혈이 되어 더이상 출혈이 없는 것만도 다행이었다.

  

 

 

 

 

"약속대로 야간 악어잡이를 나가야지요?"

위급한 상황이 다소 해결되고 저녁 식사가 끝나자 송정자가 잊었던 사실을

상기하듯 돌연 요청을 하였다.

과연 송정자였다.

이 난리통에 반응이 시원치않자 그녀는 악어잡이 스케줄을 지키라고 계속

성화였다.

"나는 술이 취해서 못나가겠고 한 사장님은 인사불성에다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으니 올란도하고 두분이서 나가세요."

저녁을 먹으며 이 곳에서 담근 과일주를 몇잔 마신 가이드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자기 방으로 슬금슬금 가버렸다.

"좋아요, 올란도! 우리끼리 악어잡이 나가요!"

송정자가 차라리 잘되었다는 식으로 올란도를 졸랐다.

 

"사실은 지금이 사순절에 고난주인데요---. 세뇨라도 세뇨르 한을 돌보며

조용히 피정을 하시지요---."

올란도가 Lent니 retreat 같은 표현을 쓰며 송정자를 달랬다.

그러나 그녀는 막무가내였다.

아마존을 다시 올 처지도 아니고 또 이 밤을 그냥 보내봐야 남편의 상처나

병환에 차도가 있을리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장 위급한 병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올란도가 울듯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더니 따라나갔고 이윽고 모터 보트에

엔진 거는 소리가 멀리에서 들렸다.

수로를 따라서 모터 보트 소리가 사라지고 얼마되지 않아서 인디오 여인

하나가 한익준이 정신없이 누워있는 방으로 찾아왔다.

 

 

  

 

  

 

 

 

 

 

 

 

 

 

 

 

 

 

 

 

   

"세뇨르 한---."

"누구요?"

잠시나마 선잠을 잔 끝이라 그런가 한익준의 의식이 조금 돌아오고 몸도

아까보다는 좀 나아졌다.

"올란도 아내인데요---."

"어? 부부 사이요?"

"네, 우리의 꿈은 돈을 벌어서 리오나 미국으로 가는 것이랍니다."

"그래서 영어도 잘하고 손님들에게도 무척 친절하구만---."

"이해해 주세요."

 

그녀가 침대에 슬그머니 앉는데 짧은 치마 속으로 속옷이 보이지 않았다.

"부인, 이 곳에서 그냥 사는게 좋을듯 싶소. 그냥 살아요. 미국 올 생각은

더더욱 말고---."

"우리는 파라과이에서 국경을 넘어온 신분이라서 이 곳에서도 곧 떠나야

하거든요.

사실 그래서 스페인어를 여기 포르투갈어 보다 더 잘하지요.

하여간 우리가 여기를 떠나도록 도와주세요."

"무슨 말인가?"

"돈이 문제지요. 세뇨라께서는 지금 우리 남편과 신나고도 위험한 악어

잡이를 나갔어요.

그리고 나는 여기 이렇게 있어요."

"일이 참 잘못 되었네. 저기 내 주머니에는 쓰다남은 여행 비용이 좀 있어요.

많지는 않고---. 나는 현찰 많은 한국 사람이 아니라 미국 사람이라니까.

어쨌든 그걸 나는 여기를 떠날때 인디오 마을에 다 주고 갈 생각이오.

가이드에게는 의논해봐야 헛수고 같아서 아까 올란도에게 그 이야기를 좀

물어봤더니 무언가 착각을 한 모양이네.

처음 올란도의 선한 눈빛과 염원을 보고 듣는 순간에는 돈을 나누어서

다소간 보태어 줄 생각도 했지.

그런데 지금 돌아가는 모양을 보니 생각이 영 달라졌네---."

그가 몸에 힘은 다 빠졌어도 어떤 분노의 감정을 표현하는 그 순간에 갑자기

인디오 여인은 풍만한 젖가슴으로 그의 코와 입을 내리누르기 시작하였다.

숨이 막혀오는 가운데 그의 심장은 덜그럭 거리는 소리를 내며 요동쳤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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