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아침에 좋은 소식을 전해 드리게 되어서 기쁩니다."
대전의 어느 교회 앞뜰에서 국립 "한밭 대학교" 도서관장이 같은 대학의
지리학 전공 교수 양한철 박사에게 웃음을 가득 담고 닥아갔다.
"엊저녁 늦게 위원회에서 통과 되어 전화도 못드리고 이리로 왔습니다."
"아, 제 도서들이 영구 소장 문고로 선정 되었군요?"
"네, 당연한 결과입니다만 일단 공식적인 과정도 다 마친 셈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라니요 선생님, 저희가 영광이지요."
두 사람은 한밭 대학교의 동료 교수이자 같은 교회를 다니는 사이였다.
금년도 1학기 말에 정년 퇴임을 하는 양한철 교수의 약 5000권에 달하는
책이 마침내 그가 오래 봉직했던 대학교 중앙 도서관에 "영구 보존 도서"로
선정이 된 것이었다.
책을 기증하면 도서관이 황송해 하던 시절은 오래 전에 지났다.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기증 도서를 공간 문제와 보존 가치의 급속한 변화
라는 시대적 추이에 따라서 대략 사절하는 형편이 되었다.
더구나 대학 도서관의 속성이 전자 도서관으로 개편되면서 활자 도서에
대한 가치는 급락하였다.
다만 공간 사정이 아직은 좋은 몇 몇 지방 국립대학만이 희귀 도서를 확보
하는 차원에서 까다로운 조건을 달아 기증자의 이름이 걸린 영구 보존
문고라는 코너를 열어두고 있었다.
그러므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거나 학계에서 상당한 업적이 있는 모교
출신 교수의 경우, 귀중본 도서를 포함하여 2500권 이상을 기증하면 심의를
거친 연후에 말하자면 "명예의 전당"을 허락하는 세태가 된 것이다.
이제 기증도 경쟁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여보, 내 책들은 마침내 다시 살아났네. 내 마음의 고향이 생겼어."
부활절 대예배를 마치고 화장실에 들렀다 나오는 아내에게 양 교수는 조금
들뜬 목소리로 방금 도서관장에게서 들은 기쁜 소식을 전했다.
"내 책들은---이라고 하시니 조금 듣기 거북하네요. 몇년전에 제 책들은 다
잿더미가 된 사정이 다시 생각나요."
초등학교에서 교장직 까지 거치고 몇년 전 명예 퇴직을 한 이옥분 선생은
남편의 들뜬 표정이 고깝다는 듯이 토씨를 문제 삼아 조금 볼멘 반응을
보냈다.
등단 시인이기도 한 그녀는 초등학교 교장까지 오르면서 모은 교육학
관련의 서적은 물론이거니와 아동 문학 서적, 수 많은 시집, 그리고 특별히
여명기의 문학 잡지 및 해방후에 우후죽순으로 나온 문예지의 창간호등을
평생 정성을 다하여 모아온 바 있었다.
교장직이 단임으로 끝나자 그녀는 곧 명예퇴직을 신청하면서 이 책들의
처리에 고심하게 되었다.
집이 좁아서 학교를 옮길 때마다 상당한 분량은 학교 캐비넷을 쓰느라
밖으로 끌고 다닌 탓도 있었지만 이제 명퇴를 하고 칩거하게 된 마당에
다시 그 책들을 집으로 끌고 들어오기 보다는 어떻게든지 집안에 있는
그녀의 다른 책들과 함께 명예롭게 처리하고 싶은 소망이 굴뚝처럼 생긴
것이었다.
자식이라고는 하나 밖에 없는 딸이 남편 따라 카나다로 이민을 가버리기도
했지만 사사로이 그 보물을 처리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평소 자신의 장서들이 보물의 가치가 있다는 신념에 가득한 그녀는 이 보물
들이 어떻게 이 나라, 이 민족에게 진정한 보물로서 영원히 쓰여질 것인가를
노심초사하며 밤잠을 설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녀의 첫번째 희망은 이 책들을 국립 중앙 도서관 같은 기관에 영구 소장본
으로 기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야박하여서 그녀가 주장하는 보물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희귀본의 자격으로 국립 도서관 행이 가능하고 평생을 그녀와 함께한 그
나머지 책들은 그녀의 희망과는 달리 쓰레기 장으로 가는 수 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는 통보에 그녀는 비탄에 잠기었다.
예산이 좀 있다는 사설 박물관 겸 도서관도 사정은 더 야박하였고 일부
호사가들이 매입을 제안하는 경우에도 그녀가 소유한 나머지 책 전부의
운명은 역시 마찬가지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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