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책들의 고향 (2)

원평재 2007. 4. 11. 09:15

 

  

 

 

일천권의 보물을 진정한 보물로 여기고 살아온 그녀는 자신의 분신같은

책들이 이렇게 흩어지고 그나마 대부분은 멸실될 바에야 자신이 명예

퇴직하던 바로 그 초등학교에 모두 함께 기증해버릴 결심을 하였다.

마침 초등학교 취학 아동들이 점점 줄어들어서 그 빈 교실들을 생활 박물관

으로 꾸미겠다는 후임 교장의 뜻은 고귀하였고 또 천재일우의 기회같기도

하였다.

기증자의 이름 석자를 살려주는 것은 당연한 기본 방침이었다.

 

그러나 가치의 기준 차이가 신구 교장 사이에는 엄연히 존재하였다.

신임 교장은 시골의 멧돌과 옹기와 다 삭아빠진 농기구와 베적삼은 만고의

보물로 여겼지만 전임 교장의 손때가 묻은 낡은 책 나부랑이를 모조리

받아서 그리 넓지도 않은 공간에 영원히 보존해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언성까지 높이며 싸움을 하다가 그녀는 일천권의 책을 싣고 그때 마침

사들인 시골집으로 갔다.

퇴직금 거의 전부와 저축을 져며서 그때 유행처럼 번진 농가주택을 장만한

것이 있었다.

"그 많은 책들을 작은 농가주택 어디에 쌓아놓을 셈이요?

뒷간 창고에 넣어두었다가는 금방 거미줄 신세에 습기로 썩어버릴 것이고

곤충과 쥐새끼 떼들이 집단으로 서식할텐데---.

일부 희귀 도서만 국립 도서관에 기증하고 나머지는 버립시다."

남편인 양 박사의 지혜로운 제안도 격앙된 그녀의 감정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걱정 마세요. 전부 다 불태워버릴 거예요. 보물을 몰라주는 이놈의 세상에

이런걸 남기거나 넘겨줄 생각은 조금도 없어요."

 

그녀는 농가주택을 개조하면서 서둘러 멋있는 벽난로를 만들었다.

아니 멋있다는 것은 이옥분 선생만의 자평이었고 사실은 매우 투박한

모양새였다.

이미 만들어진 벽난로를 사다가 설치한게 아니고 그녀가 사람을 불러서

가까스로 벽난로 처럼 만든 것이었다.

시골에 사람이 없어서 예전에 흙일 하던 늙은이를 불러다가 겨우 어떻게

만든 얼개 위에 양 박사가 주말이면  강돌을 주워다 벽난로의 겉을 치장

하여서 그럭저럭 모양이 나온 꼴이었다.

 

그해 겨울이 때 맞추어 추웠다.

맨 처음 책을 찢어서 불을 지핀 저녁의 분위기는 정말 극적이었다. 

말하자면 점화 의식이 불붙은 겨울 저녁인 셈이었다.

밖에는 마침 눈이 내리고 있었다.

두사람은 대전 시내의 아파트에서 오래 쓰던 고물 전축을 농가주택으로

끌고와서 이제는 디지털 시대라 버려질 운명의 LP 판을 걸고 푸치니 작,

라보엠 중에서 "그대의 찬손"을 최고 음량으로 틀었다.

추운 겨울 날, 돈이 없어서 악보를 태우며 추위를 견디는 바로 그 장면

이었다.

유럽 오페라 사, 불후의 아리아 중에서 이날 선정된 입주 축하곡은

눈내리는 시골 전원의 산천초목 사이로 울려퍼졌는데 분위기는 매우

청승스러웠다.

 

생각해 보면 부부라고 한들 항상 좋은 날만 있었겠는가.

아니 닳아지는 살들을 맞대고 지내는 생애의 대부분은 오히려 피곤과

권태의 나날이 더 많을 수도 있어서 오죽하면 전생의 원수라는 말이

횡행하랴.

하지만 이 날 저녁만은 원수대적들도 화해의 자세로 눈을 지긋이 감고

그 애절한 아리아에 귀를 기우리기도 하였고 몸이 선득하게 추워오는

기미가 느껴지면 얼른 눈을 떠, 지천으로 쌓인 시집을 태우고 또 태웠다.

 

그러는 도중,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골 동네 사람들이었다.

두 사람만의 오붓한 축하 잔치에 불청의 하객들이 떡이라도 해왔단

말인가.

부부가 밖으로 나와서 불청객들의 시선과 합일하여 지붕을 쳐다보다가

그만 기절 초풍을 할뻔했다.

시뻘건 불꽃이 엉성한 이엉 위의 조잡한 굴뚝으로 힘차게 솟아 오르는 것이

아닌가.

더우기 다 타지 못한 불티들은 온 동네를 날라다니며 대화재의 위험을

시시각각 불러일으켰고 그 불꽃 아래에서 시커먼 그으름은 흰눈이 쌓인

동네 지붕과 마당을 수묵담채로 물들이고 있었다.

 

그날 저녁 사건 이후로 벽난로는 투박한 장식물로서만 그 역할을 다

하였으나 화가 더욱 치민 이옥분 선생은 아름다운 시집과 동화책은 물론

이고 곰팡내 나는 문예지 창간호 보물들도 모두 구둘목을 데우는 군불로

지피면서 그해 겨울을 더운 열기 속에서 지냈다.

농가주택이라서 마침 바닥에는 온돌이 깔려 있었고 아궁이도 쓸만하게

구멍이 뚫어져 있어서 가치가 대중도 없는 다양한 책들을 하여간 날름 날름

받아먹었기 때문이었다.

 

부활절 예배 후에는 친교의 시간이 지하 홀에서 있었으나 두 사람은

시골 집으로 내려갈 겸해서 그냥 주차장 쪽으로 한참을 걸어갔는데

이옥분 선생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여보, 아까는 미안했어요. 당신이 내 책은 다시 살아났다고 해서 여러가지

지나간 생각이 났거든요. 하여간 참 잘 되었어요. 축하드려요."

"아니야, 내가 당신 감정을 살피지 못하고 너무 들떴지.

어쨌거나 부활절 선물로는 최고인가 하네."

 

정년을 목전에 두고 사실 양 교수는 최근 매우 힘든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가까운 친구들은 모두 IMF 이래로 명퇴다 뭐다해서 벌써 백수가

된지 10년에 가까운 경우들도 많았지만 정년이라는 것이 이렇게 심리적

타격을 준다는 것을 예전에는 미쳐 몰랐던 것이다.

"여보, 재미있는 이야기나 해요. 며칠 전에 당신이 서가에 있는 책들 중에서

두껍고 커버 케이스가 있는 것들은 은근슬쩍 빼들고서 흔들어 보던데

비자금 감추어 둔 데를 잊어버린것이지요? 호호호."

그러고 보니 이옥분 선생이 아까 과민 반응을 보인 원인이 복합적이었나,

양교수의 생각이었다.

 

"아니 무슨 소리야! 억울하게! 지금 이 전자 시대에 누가 그런 식으로

낭만적 비자금 창고를 운영할까. 하하하!"

양 교수의 반응이 조금 컸고 또 방법론을 거론하는걸로 보아서는 그런 

혐의로 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만은 없는 모양 같았다.

"나도 한마디 합시다. 당신이 시집을 태울 때는 당신을 짝사랑하던 이

선생의 러브 레터가 불쑥 튀어 나왔잖아."

 공격이 최상의 방어라던가.

양 교수가 지나간 에피소드를 무기로 삼아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그거야 당신이 그때 콜롬보 계획으로 뉴질랜드에 가서 일년을 계시면서

어술라라던가 독일계 연구원과 연애를 한다는 소문이 있고부터 나도 절망

속에서 위안을 찾았지요, 뭐.

시인인 이민형 선생이 참으로 신사였어요.

지금 당신이 없었던 그 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네요.

다 당신 책임이예요!"

양 교수 부부와 이 선생은 모두 공주 사범학교 출신이었다.

그때는 고등학교 과정인 사범학교만 나오면 국민학교, 지금의 초등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어려운 시절이어서 머리 좋은 중학생들이 선망하던 과정이었다.

세 사람은 모두 초등학교 교사를 하면서 대전에서 야간 대학을 나왔고

양 교수는 아내인 이옥분 선생의 헌신적 노력으로 일본 유학을 가서 지리학

으로 박사 학위를 하고 돌아왔다.

이민형 선생은 두 사람이 사랑하고 결혼하는 모습을 보다가 파라과이로

이민을 갔는데 그 후 소식은 끊어졌다.

동기회 명부에서도 항상 주소 불명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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