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 문학 산책

인디언 마을/살인자들 (헤밍웨이 관련 2-2)

원평재 2004. 10. 21. 02:22
인디언 마을(Indian Camp)   이 작품의 구성은 Nick이 의사인 아버지와 George 아저씨와 함께 두명의 인디언으로 부터 안내를 받아 그들의 부락에 도착하는 것으로 도입부를 이룬다. 이윽고 인디언의 집에서 Nick의 아버지가 임산부의 제왕절개수술에 성공하는 장면은 전개부라고 볼 수 있다. 임산부의 위쪽 침대에 다리를 다쳐 누워 있는 남편이 칼로 목을 베고 자살하는 것이 발견되는 장면은 클라이맥스이며,아버지가 젓는 보트의 뒷부분에 앉아 Nick이 수면을 바라보며 돌아가는 것은 종결부이다. 이러한 구성을 신화비평의 관점에서 볼때는 통과의례(rite of passage)라는 명제, 즉 <출발-개안 혹은 성인식(成人式)-귀환>의 단계로 그 진행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 즉 출발은 Nick이 아버지를 따라 인디언 부락으로 향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호수를 건너 임부의 제왕절개수술 및 그 남편의 자살 장면을 보게 되는 것은 개안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에 Nick이 아버지와 함께 보트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은 바로 귀환에 다름 아니다.In Our Time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그들 앞에 놓인 세계가 자신들에게 무관심하고 냉담하다는 것을 작품이 진행됨에 따라 인지하게 된다. 이러한 비극적인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점에서 이 단편집은 엘리엇(T. S. Eliot) "황무지(Waste Land)"에 맞물린다.그도 우리시대에 대한 인식을 헤밍웨이가 “ 우리시대”에서 설파하고 있는 인식론과 함께하기 때문이다.또한 그런 면에서 우리 모두는 동시대인일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헤밍웨이는 ‘현대’라는 시대상황 속에서 전통적인 형식을 지양하고, 새로운 이념과 가치를 탐구해 나간 자신의 체험을 이 단편집에 투영시키고 있다고 하겠다.이 작품에서 다루어진 현대인의 면모는 “황폐함” 그 자체이다. Nick이 도착하여 성인식을 치루게 되면서 목도하는 것은 가장 원시적인 조건 아래 임산부위 제왕절개수술에 성공하면서 표출하는 자기 아버지의 만족감, 고된 출산의 광경, 그리고 바로 그 장소에서 일어나는 인디언 남편의 자살사건 등이다. Nick은 이러한 일련의 진행과정에 비정하게 관여하는 것이 바로 자연이라는 것을 깨닫는다.그런데 자연이 냉혹한 의지와 압도적인 힘으로 인간사를 지배하고 다스리고 있음을 Nick이 인식토록 하는 매개체는 바로 아버지라는 존재이다. 임산부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수술이라는 과학적 기능을 통하여 자기만족을 느끼는 아버지에 대해 Nick은 다른 감정을 가진 타인을 느끼게 되며 그가 자신과 유리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아버지와의 단절의식은 임산부인 아내의 비명에 견디다 못해 자살을 하는 인디언 남편의 행동으로 극대화된다. Nick은 이와같은 상황 속에서 인간의 삶이 운명의 지배를 받고 있고, 특히 죽음이라는 과정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는다.결국 “Indian Camp"는 현대라고 하는 본질적 비극의 시대에 대해 헤밍웨이 자신이 눈을 떴다는 것을 나타내며, 현대인으로서의 자각에 대한 기록이라고 하겠다. 돌아올 때에는 강물이 따뜻하게 느껴졌다는 구절은 소년이 마침내 개안을 하고 기성사회로 복귀하였음을 나타낸다고 하겠다.한편으로 “Indian Camp"를 단순한 개안의 스토리가 아닌 신구문화의 상충이란 측면에서 본다면 이 작품은 인디언 문명과 백인문명의 대결을 통해 헤밍웨이가 직시한 비극성을 제시해준다. 즉 "인디언 세계"라는 하나의 "문명"이 임부가 비명을 지르고 백인의 손을 물어뜯으며 그 남편은 자살을 하듯 소멸되어가는 비극성을 그렸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도 의사인 Nick의 아버지가 보여주는 냉혹성은 인디언 원주민 문화에 대한 백인문화의 침략상과 그 결과에 대한 무관심을 상징하는 요소이다.

"살인자들(The Killers)"“The Killers"는 Hemingway의 단편집 In Our Time에 수록되어 있는 단편소설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 작품의 스토리는 매우 단순하다. 어느 날 Henry가 경영하는 식당 안에서 George와 Nick Adams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식당문이 열리더니 Al과 Max라는 두 남자가 들어와 음식을 주문하면서 이상하고도 난폭한 언행을 일삼는다. 곧 그들이 자기들의 한 친구와의 의리 때문에 자신들과는 무관한 Ole Anderson이라는 스웨덴 사람을 찾아 죽이려는 살인 청부업자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George의 제안으로 Nick이 Anderson을 찾아가 경찰에 신고하든지 아니면 도망을 가라고 권유하지만 Anderson은 Nick의 제안을 모두 거부한다. 그러자 그곳에 충격을 받은 Nick이 그곳을 떠나려 한다는 내용이다.이 단편은 그 구조를 보면 전체가 네 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번째 장면은 상당히 길게 되어 있고 나머지 세 개의 장면들은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단서들을 포함하고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을 무심코 읽어나가다 보면 이 작품이 누구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약간의 혼돈이 오기 쉬울 것 같다. 한편으로는 Al과 Max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Anderson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작품을 Al과 Max의 이야기로 보는 사람은 이 작품의 의미를 단지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보는 것이다.그리고 이 작품을 Anderson의 이야기로 보는 사람은 이 작품 속에서 험난한 세상에서의 삶에 쫓기다가 마침내는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벽에 부딪혀버린 한 인간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Anderson은 자신을 죽이려 하는 Al과 Max를 피해 달아나려고 하지 않는데 “도망다니는 일에도 이젠 지쳤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그런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고 볼 수도 있다.그러나 이 작품을 꼼꼼히 읽어보면 작가 Hemingway의 관심이 Al과 Max나 Anderson에게 있지 않고 바로 이 식당 안에 있는 또 다른 두 인물인 George와 Nick에게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의 마지막 몇 행이 그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난 이 마을에서 떠나버릴거야"닉이 말했다."그래, 그러는 것도 좋겠군." 조지가 말했다. "난 그가 맞아 죽을 줄 알면서도 방에서 살인자들을 그냥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견디기 힘들어. 너무 끔찍하잖아." "그래, 하지만 그런건 생각하지 않는게 좋아." 조지가 말했다. 이 인용대목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가장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인물은 Nick이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살인 청부업자들이 자신들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을 죽이려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부조리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인물마다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식당 안에는 George와 Nick 외에도 Sam이라고 하는 흑인 요리사가 한 명 더 있다. 이들 세 사람이 식당 안에서 벌어지려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저마다 모두 다르다. 먼저 George는 이 가공할 상황에 쉽게 굴복해 버리고, 요리사 Sam은 자신의 안전이 위협받지만 않는다면 신경을 쓰지 않겠다는 자세를 보이는데, 유독 Nick만은 끝까지 그 모순된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자세를 취한다. 그러기에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는 이 마을을 떠나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은 Nick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주제는 Nick의 죄악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이 작품 속에 나타나는 Nick의 죄악의 발견의 과정을 이 작품의 구조를 따라 순차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Nick이 Sam과 함께 주방에서 Al에게 결박당하고 입에 재갈을 물리어 있고 식당에 남아있는 George와 Max가 나누는 대화에서 Max가 George에게 "넌 영화 구경을 좀더 많이 봐야겠다. 영화는 너처럼 영리한 아이에게는 아주 좋거든---."이라고 말하면서 영화 구경을 가보라고 하는데, 살인하기 편리하게 준비를 갖추어 놓은 직후에 이렇게 영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제 곧 영화에서나 볼 수 있고 영화 속에서나 가능할 만큼 끔찍한 살인 사건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Nick이 그들에게 도대체 무슨 잘못을 해서 Anderson을 죽이려 하느냐고 이유를 묻자, Max는 “그자가 우리한테 못할 짓을 할 기회가 주어질 턱이 없지. 그 사람은 우리에게 아무런 잘못도 한 게 없어. 우리를 한 번도 본적도 없는걸.”하고 대답한다. 그들은 Anderson이 자신들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기들의 친구를 위해서 죽이려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친구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자기들에게 아무런 해도 끼친 적이 없는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고백은 보통의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깡패들의 사회에서만 존재하는 일종의 관례이자 의리라는 것이다. 깡패들은 개인적인 감정이나 원한을 풀기 위해서 살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깡패들의 세계에서만 통하는 보통 사람들의 인간생활에서는 전적으로 거부되어 있는 일종의 왜곡되어 있는 관례에 의해 행동한다는 사실을 순진한 소년이 처음으로 발견하는 것이다.또 두 깡패들이 주고받는 농담과 재담은 마치 연극의 대사와도 같이 기계화된 익살로써 일종의 판에 박은 재담이다. 그런데 이런 재담을 자기들이 죽일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면서 지껄이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직업적인 범법자들에게는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아직 때가 묻지 않은 순진한 소년에게는 몸서리 쳐지는 중대한 일이 아닐 수가 없는 일이다.그런데 그 무엇보다도 Nick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준 것은 언제 암살을 당할지 모르는 위험에 처해 있는 Anderson 마저도 깡패들만이 가질 수 있는 관례니 의리 같은 것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이었다. 평범한 Nick으로서는 아주 정상적이고 당연히 그래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되어서 제의한 도피방법을 Anderson은 하나하나 거부하는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 Anderson의 행동 역시 Nick에게는 처음 보게 되는 일이었다.그리고 Nick이 Anderson을 찾아가서 경찰에게 보호를 청하고자 하는 제안을 하지만 Anderson은 거부한다.그는 자기가 전적으로 잘못을 했기 때문에 아무 소용도 없으며 좀 있다가 자기는 밖으로 나갈 거라고 말한다. Nick은 여기서도 Anderson이라는 한 인간의 최후의 저항정신과 지혜가 무기력해지고 무의미해지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된다.마지막으로 Nick이 식당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식당의 분위기는 원래대로 돌아가 있는 듯 했지만 그러나 식당 안의 두 사람 George와 Sam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 조금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에 대해서도 Nick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난 듣고 싶지도 않아.”라고 너희들의 이야기는 듣지 않겠다고 말하는 흑인 요리사 Sam에게는 오직 자기에게 위험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를 배신했겠지. 그네들이 사람을 죽일 때는 그런 사연이 있지." 라고 배신자는 꼭 죽여 버린다고 말하는 George도 깡패들의 관례나 의리를 정상인 것처럼 승인해버리는 냉담한 태도를 보인다. 그러므로 일을 똑같이 당하고도 요리사인 Sam이나 George에게는 악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지 못하지만,그러나 Nick은 너무나 천진난만했기 때문에 일생에서 처음으로 무서운 죄악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이렇게 볼 때 우리는 Hemingway의 작품에 나오는 그의 인물들을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어떤 사회가 요구하는 독특한 규율의 전수 과정을 거쳐 그 사회의 일원이 된 인물의 유형이 그 하나이고, 나머지 하나는 지금 막 전수를 물려받는 과정에 있는 인물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The Killers”의 Nick은 두 번째 유형의 인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The Killers"는 지금 막 사회에 눈을 떠가는 과정에 있는 Nick이라는 한 소년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첼로소나타 3번 3악장 - 베토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