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 컨텐츠"라고, 책이 좀 팔리는 출판사의 책임자인 저는 얼마전 부터 회사의 PR겸 사회 봉사라는 명분도 건지면서"월간 컬처 컨텐츠"라는 잡지를 발간하고 있는데시, 수필, 단편 소설, 드라마 등에 더하여서특별히 장르 분류가 불분명한 작품들도 중히 여기고 있습니다.이번 호에는 아래에 소개하는 작품이 그런 점에서 문제작이었습니다.이곳 저곳 대학의 심리학 시간 강사인 이 작가는 처음에 그의 작품을 "추리소설"이라고 우겼습니다.편집부의 젊은 사원은 "수필"이나 겨우 될까라고폄하 하더군요.결국 "모호한 경계"라는 장르를 새로 만들어 이 작품을 실어넣었는데 여러분의 고견은 어떠하신지요?◀ Celtic Twilight ▶
퀸카까지는 몰라도 똑똑하고 인상 깊었던 여학생 중의 하나가 졸업을 한 여러해 만에 나를 찾아왔었다.좀 오래전 이야기이다. 나는 연구실로 들어오는 그녀의 윤곽을 금방 내 기억의 앨범에서 이중인화 해낼 수 있었다.아마도 또렷한 그녀의 콧날 때문이었는지, 혹은 내 기억력이 절정을 넘기기 전에 그녀가 나의 강의를 듣고 졸업을 한 탓이었는지---,그래 그 두가지가 모두 합친 결과였던 것 같다.졸업한지 오래된 여학생이 은사를 찾았을 때에는분명 긴절(緊折)한 목적이 있을 터인데도 그녀는 재학 시절의 추억담과 나를 가장 존경했었다는 덕담 수준의 변죽만 울리고 있었다.주례 부탁이기엔 졸업 햇수가 너무 흘렀고(만혼 풍조를 감안하여도---),그럼 결혼 생활이 원만치 못하여 문학 전공의 스승과 생활 상담을---?강의 시간이 촉박하여 내가 참지 못하고 본론으로 가는 길을 텄다."결혼 생활은 재미가 있고?"그말을 기다렸다는듯이 그녀는 와락 울음을 터뜨리더니연구실 밖으로 달려나가 사라졌다.사별이었다.너무나 일찍 찾아온 남편의 불치의 병,자녀를 둘 여유도 없었다.오랜 기간 두문 불출하다가 막연히 대학원 진학을 상의하러 왔었노라고 다음날 감정을 추스리고 다시 찾아와 그녀는 슬픈 사연을 모두 털어놓았다.친구들도 그녀가 혼자된 사연을 모르노라고 했다.대학원에서도 제자는 문학 전공을 원하였으나,그래서는 혼자 살아가기 힘들 터라고 설득하여서 경영관련 전공과 잘 아는 지도교수를 내가 추천해 주었고,그녀는 군말없이 그쪽을 택하여 열심히 다닌 끝에마침내 경영학 석사를 해냈으며대단치는 않은 곳이나마 취업도 했다.당연히 축하와 감사의 저녁 식사도 분위기 좋은 곳에서 그 지도 교수와 함께 대접 받았던 기억이 난다.그런데 그 후 반년쯤 지나서 그녀가 다시 나를 찾아왔다.수심이 전보다 더 심했고 화장끼도 거의 없는 얼굴에서 오뚝한 콧날이 더욱 유별났다.그 콧날 위에 가로로 조금 깊은 상흔과 또하나의 얕은 상흔이 병렬로 있는 것을 그제야 나는 발견했다.반년만에 생긴걸까?아니겠지,그간 화장이 그걸 가렸거나 내가 열심히 그녀의 얼굴을 보지 않은 탓이었으리라.어릴적 상처였다고 그녀는 가벼움을 가장한 내 물음에 역시 가볍게 답하였다.원래는 오뚝하고 곧은 팔자를 그 상흔들이 훼방 놓았나,우리는 이럴 때 숙명론자나 섯부른 관상쟁이가 된다.그녀가 온 것은 유학 상담 때문이었다.더우기 전공을 또 문학 쪽으로 다시 돌리고 있었다."시간과 돈이 많이 들고 스칼라쉽도 인문학 전공으로는 어려울텐데---." "시댁이 경제적으로 크게 넉넉지는 않고 시집간 올캐들의 불만도 만만치 않지만 시아버님의 마음은 바다같으세요. 이래뵈도 제게 아파트도 장만해 주셨고 공부는 언제까지라도 시켜주신다고 했어요---. 그런데 경영학 같은건 도저히 제 취향이, 아니 적성이나 능력이 아닌가 봐요."죄진 사람 목소리로 그녀가 내게 말하며 "취향"이라는 말이 사치스러운지 "능력"으로 얼른 어휘를 바꾸었다."능력"이 안된다고 전제를 하면 이미 배수진을 친 셈이었다. 어쨌거나 "눈치 장학금" 면학 수준이긴해도 이젠 관계도 애매한 시댁에서, 그러나 죽은 아들이 한때 사랑했던 며느리를 위하여 크나큰 호의를 베풀고 있는 셈이었다.역경과 각고의 과정이 되겠지만 영국에 있는 어떤 대학원에서 아일랜드 문학을 전공하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결정을 다 하고 왔구만.""네, 인사차---.""하필이면 아일랜드 문학인가? 아, 요즈음 탈구조주의가 유행이니까 영국 정통 문학의 정전(正典)을 버리고 주변부로 돌겠다는건가?""아뇨, 제가 뭐 졸업후 책을 보지않았으니 포스트 모더니즘이나 해체 같은걸 잘 알기나 하겠어요. 단지 제 가슴이 서러움 같은걸로 가득하여서 아일랜드 민족의 한이나 원(寃)같은게 절절히 와닿아서요.페이소스에 가득한 제 심금이 그쪽 정서하고 맞물릴까 해서요.논리가 약하죠? 허튼 로맨티시즘인가요?""내가 영문학사 강의를 제대로 했나보네. 아니 잘못한 것 같기도 하고---."하여간 한 맺힌 가슴을 안고 그녀는 런던으로 떠났고 가끔 잊어버릴만한 즈음이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편지가 그녀에게서 왔다.그녀는 결코 전자 메일을 보내지 않고 편지지나 그림엽서에 꼭 잉크 펜을 사용하였는데,아마도 마지막 아날로그 시대인에 대한 예의 같았다.편지의 내용은 지금 모두 기억나지 않지만 잊혀지지 않는 구절들은,긴 겨울이 무척 춥고 히드 숲을 스쳐부는 바람 소리가 처절하게 무섭고 습한 냉기 속에서도 히팅은 결코 들어오지 않아서 밤이면 옷을 덕지덕지 껴입고 잔다는 서러운 구절들이었는데,그걸 읽고나니 결국 "브론테 자매들"의 몸시린 자전적 소설들이 내 머리에 무겁게 떠오르곤 했었다.그녀가 영국으로 떠난지 몇해만이던가,춥고 시린 내용으로 가득한 엽서가 날라온 직후의 어떤 스승의 날에갑자기 그녀가 좋은 영국 홍차와 "Celtic Twilight"라는 레이블이 인상적인 CD를 갖고 나를 찾아왔다."그래 영국엔 봄이 없겠구나. 차가운 엽서 받은지가 엊그제인데 여긴 벌써 여름 채비야---.""네, 영국도 겨울에서 봄을 훌쩍 뛰어 넘어 여름 준비를 하고 있죠.""영국으로 잘 갔네. 한 맺힌 가슴 안고---. 아일랜드 문학으로 논문을 쓰겠다고 했었지---. 한이 서린 아일랜드 문학으로 말이야." 그녀의 눈에 순간 눈물이 맺혔다.처음에 나는 일종의 벅찬 감회가 눈물을 만들어낸줄 알았다.하지만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인간"이란, 스스로 자랑해 마지않는 "호모 사피엔스"란 과연 이러한 존재일 뿐인가---,비감한 심정이 들었다.영국에서의 셀틱 문학이란 마치 일본인이 우리 문화를 대하듯, 그러니까 식민지 종주국이 식민지의 문화나 문학을 대하듯,혹은 우리나라 국내적으로 본다면 편협한 지역주의의 피해 현상 같은 것이 그대로 재현해 있어서 앞으로 연구 계획을 입안하여제출하고 수행하는데에 이만저만한 갈등과 고통을 겪지 않을 수 없다는---.상상도 못할 그 "영국 신사들"의 분위기를 전하는 것이 아닌가---."차라리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의 대학으로 갈걸 그랬어요---."그녀가 눈물을 거두고 말을 이었다.당시의 북아일랜드 내전과 IRA 테러 사태를 감안해도 이건 너무 심한 현상이었다.최고 지성의 현장, 대학에서---.인류사의 찬연한 금자탑이라고 의심없이 믿으며또한 그래서 나도 재미있게 책을 쓰고 강의한다고 자부한 영문학사의 일각이 사실은 이토록 아무 것도 아닌 휴지쪽이자 착각과 공론에 불과했단 말인가.물론 어렵게 공부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느끼는 막연한 피해의식도 감안해야겠지만---.오늘날 두개의 섬으로 된 영국이라는 나라에는, 사실은 먼저 도래한 아일랜드 민족이 살았는데,이들은 이후에 쳐들어온 앵글로 색슨 족에게 밀려서 웨일즈 지방, 스코틀랜드 지방, 그리고 바다 건너 아일랜드 섬 등의 지세가 험한 변방으로 좇겨갔다.영국이 국제적 스포츠 팀을 내보낼 때 이들 지역의 팀들이 이름 그대로 각각 별도의 국가 자격으로 나가는 현상에서도 이런 역사성과 현존하는 원한의 일단을 알 수 있는 것이다.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아일랜드 민족은 격렬한 독립운동을 목숨 걸어 벌였고,"W. B. 예이츠" 같은 민족적 대문호는 항상 이러한 민족주의의 배경이자 후광이 되었다.물론 우리에게 친일 문제가 있듯이 이들에게도 친영주의자 문제라는 민족 분열적 현상이 있었고 우리처럼 이런 문제들을 감성과 집단주의로 처리하는 무분별이 있어왔다.예이츠는 수많은 시를 읊었지만 특히 아일랜드 민족혼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이 많았고,그런 내용의 민화담의 제목이 "Celtic Twilight"이었는데켈트족의 좌절된 꿈을 체념과 환상과 어슴프레한 황혼의 느낌으로 받아낸 것이 그 절절한 구절들이었다.그러나 이런 감성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Celtic Revival을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이자 땔감이었다.이후 아일랜드 민족은 자기 민족의 전설이나 설화 속의 "신들의 정원"을 그들의 채색으로 정립하였는데, 이것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앵글로 색슨적인 공격적 인생관에 대비되는 켈트 특유의 불활성, 정지된 시간의식 등으로 영국과는 다른 자기정체성(아이덴티티) 구현의 한 방법이기도 했다.이러한 정신은 비단 문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아일랜드 예술 일반에 걸쳐 파급되고 전파되어 나아갔는데, 음악도 예외가 아니었다.제자가 갖고 온 CD에는 이러한 셀틱음악의 애환과 회고와 나아가 희망이 담겨 있어서, 아일랜드, 스코트랜드 등 켈트 정서의 영향을 받은 포크뮤직의 스타일을 담아낸 것으로,앨범이 출반될 당시에는 빌보드 뉴에이지 챠트에 1년 넘게 상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애절한 느낌의 느린 곡과 밝은 춤곡들이 공존하는 이 앨범은 fiddle(바이올린류의 현악기), bagpipe, tin whistle들이 우아한 전자 사운드와 하모니를 이루며 신비스런 세계를 펼치고 있었다. "Celtic Twilight를 뭐라고 번역할까?"내가 말머리를 조금 돌렸다."제 정서로는 켈트의 황혼이나 몽환이라고 하고 싶은데 선생님은 켈트의 여명이라고 가르치셨잖아요.""그래, 여명이란 말이 옳아. 황혼을 느끼는오늘의 감성에 너무 얽메이지 말고 예전에 대학 다닐때의 희망찬 교과서적 해석으로 돌아가는게 좋겠어. 아일랜드인들도 쓰라린 켈트적 정서의 황혼을 딛고, 새로운 아이리쉬 리바이벌을 꿈꾸었으며 마침내 이루어냈잖아.""북 아일랜드는 떼주고 절반만 이루었죠.""한술 밥에 배부르겠어?"제자가 일어서다 말고 내 눈 앞에 그녀의 오뚝한 콧날을 들이대었다."선생님, 이 상흔에 관하여 전에 물어보셨죠?""어? 그래, 근데 코가 너무 가깝다. 네 코가 너무 높아서, 하하하.""얕은 상흔 쪽은 어릴적 상처가 맞아요. 근데 깊은 건 지난번 회사 다니다가 밤길에 당한거예요. 성 추행을 하려고한 범인은 못 잡았지만 막연한 추측과 불안감이 제 주위에 감돌았어요."알듯 모를듯한 말을 남기고 제자는 다시 런던으로 돌아갔고 시린 엽서도 요즈음은 오지 않는다.내가 게으른 답장이나마 소홀히 한게 큰 이유였겠는데,넉넉지 못한 마음을 갖인 나같은 사람에게는그게 편하게 된 셈이기도하지만 찬바람 부는 이 맘 때가 되면P.B. 쉘리의 "서풍(우리의 북풍)에 부치는 노래"가 떠오르며내 마음도 어느듯 공연히 시리다.하긴 쉘리도 차가운 서풍을 파괴자이자 모든 낡은 것을 쓸어내는 창조자라 했고겨울이 오면 봄 멀지 않으리라며 희망으로 옷 섶을 여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