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보고다닌 투어

아그라, 타즈마할을 향하여 (잔시 부근)

원평재 2007. 10. 20. 08:54

카즈라호를 떠나서 아그라로 향하는 마음은 기이했다.

저 카마수트라 사원에서 성의 향연을 벌이는 압살라 중의 하나가 자꾸 손짓하여

나를 부르는듯 하였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Keats)가 쓴 "그리스 옛 항아리에 바치는 노래"에

보면 미희를 좇는 청년을 그리는 장면이 나온다.

얼핏보아 그 항아리의 청년은 이제 곧 미희를 따라잡아서 두사람은 열락의 경지로

들어갈듯 싶다.

하지만 천년을 사뭇 좇아 보아야 그는 그녀를 잡을 수 없다고 시인은 노래한다.

상상력과 기대 가치를, 시인 키츠는 한치도 꼼짝 못하는 현실적 장면으로 치환하여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여기 여든 네가지 실천적 행위로 가득한 카마수트라의 압살라들은 열락의 숨결이

거친듯하지만 지금 600년간이나 꼼짝도 못하고 정지된 상태에서 과연 무슨

감상이 있을 것인가.

보는 이들 중에서 여기 열락이 꽃피우고 있으리라 짐작하며 잠시라도 감응하여 몸이 떨리고

혹은 열린다면 그건 모두 살아있는 사람들의 상상적 사유에 다름아니리라.

 

저기 부조된 그림 속에는 이제 겨우 유혹의 미소를 띄는 장면도 있지만 벌써 깊숙히

진도가 나간 경우도 있다.

책을 읽으며 일을 벌이는 여인, 비파를 타면서 사랑의 행위를 하는 여인들의 모습

에서는 당시 이미 페미니즘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짐작케도 한다.

하지만 시간은 그 행위의 한 시점에서 영원히 머물고 말았다.

'지금, 여기'(here, now), 열락은 있을 것인가---.

 

키츠는 그리스 항아리에 새겨진 미희의 비파 타는 모양을 보며 이야기를 맺는다.

"들리는 멜러디도 아름답지만 들리지 않는 멜러디는 더욱 아름답다."

 

저 적막한 카마수트라의 사원에서도 압살라들과 시바를 비롯한 제신들은 신음

소리를 드높였을 것이다.

하긴 그들의 얼굴 모습은 정신없는 열락의 경지라기 보다는 득도의 경지에 가깝지만.

(이 부분에서 카마수트라 사원은 단순한 포르노의 소굴에서 득도의 신전으로 승화

한다.)

 

그건 어쨌건 나도 키츠를 따라서 한마디 절창을 토해야겠다.

"들리는 멜러디는 아름답지만 들리지 않는 멜러디는 애매할 뿐이다---."라고.

 

카즈라호를 떠나는 내 발길은 진정 애매하였다.

여기에서 한 팩션이 나와야하는데---.

이 신전 근처에서 얼마전에 일본 여대생 세사람이 이 곳 유명 가문의 자제들에게

밤중에 능욕을 당했다고 한다.

죽임을 당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단다.

하지만 그 자제들은 유야무야로 다 석방되었다고 한다.

 

이 곳에는 또 한국의 대학생들도 남녀 불문코 많이 와서 오래 머물다 간다는

것이다.

그중의 어떤이는 현지의 남자와 결혼을 하여 인근에 한국 음식점을 차렸다고도

한다.

두사람은 이내 헤어졌지만 음식점은 남아있었다.

정보가 늦어서 사진으로 담지는 못하였다.

 

 

버스도 아쉬움 많은 내 마음을 아는듯, 라디에이터 계통에 이상이 생겨 길바닥에서

헉헉대었다.

지난번 펑크가 나서 오밤중에 바퀴를 갈아끼웠던 그 버스였다.

우리의 목적지는 '아그라'이지만 우선 '잔시'라는 곳으로 가서 거기서 특급 기차를

갈아타고 목적지로 가는 여정이었다.

저기 옥색 상의를 입은 친구가 우리 안내인이며 고향이 바로 잔시라고 한다.

잔시도 인구 백만의 큰 도시이긴 하지만 그는 결국 델리로 올라와서 인도 공대를

나오고 마침내 한국어 까지 익혀서 대망의 가이드가 된 것이다.

 

 (길가에 자전거포가 많다. 우리나라의 예전 모습이다.)

 

마음이 착잡하다고 그가 말하였다.

"여기서 얼마나 걸릴까?"

"네, 한국과 달리 도로에 카메라가 없으니까 금방 갈 것입니다. 하하하."

그게 다섯시간도 더 걸렸다.

버스가 사력을 다해 달려서 잔시가 가까워 오는데 그가 또 말했다.

"가슴이 뜁니다."

"떠나온 고향이 다가와서?"

"아닙니다. 기차 시간에 못댈까봐 가슴이 뜁니다."

우리는 가까스로 기차를 탈수 있었다. 

 

 

 

핵무기를 개발하였고 미국 IT산업을 좌지 우지 한다는나라에서 주와 주, 도시와 도시의

경계를 넘나들 때에는 이런 장치의 톨 게이트 시설에다 돈을 내고 통과한다.

한두군데 이런 곳을 두고 내가 과장된 노출을 시키는게 아니다.

 

 

 

  

 

'잔시' 역이다. 표기상으로는 '쟌시'가 더 정확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로마자 한글 표기법으로는 '잔시'가 맞다.

'죤'이 아니라 '존'으로 써야하는 원칙과 같다. 

 

 

 

 

 특급 열차라지만---.

 

 

 마침내 '아그라'에 도착하여서 묵은 호텔,

겉은 멀쩍하지만 내부는 모두 푸석거리고 오래된 냄새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