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람이 주인인듯한 펜션 간판이 어둠 속에서 너무 크다.
이 엄숙한 공간에 그 큰 간판은 차라리 낙서처럼 보여서 공연히 얼굴이 찌프려지는데,
그 아래로 시신의 유구가 떠내려가고 있다.
화장터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경우도 있고---,
그냥 흘려버린 경우도 있고---,
안내인도 말을 잇지 못한다.
전날 바라나시 시내에서는 잘 꾸민 짚차의 위에 화려하게 꽃장식이 된 시신이
얹혀서 도심의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했더니 안내인 말이 돈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이곳으로 운구하여
화장을 한다고 했다.
꽃 장식 속의 그 모습은 고해(苦海) 속을 일찍 떠나는 젊은 여자의 형상이었다.
보기에 슬펐다.
갠지스 성수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이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이다.
멀리 헤엄을 치고 나온 그의 염원은 이 고해(苦海)를 떠나 윤회의 업을 끊는
것이리라---.
동업자---.
이제 멀리서부터 눈치껏 망원으로 적멸의 화장터를 찍기 시작했다.
가까이 당겨보니 향목이 산더미처럼 쌓였고 지금 모닥불은 사그러들고
있었다.
어느새 검게 그으른 화장터 현장을 지나치자 배가 나루에 닿았다.
이집트 나일 강변에서 파라오 시절, 테베의 강가에 닿던 파피루스로 얽은 배는
아니었으나,
망각의 강 '레테'이거나 별리의 강, '하데스'의 강나루를 어이하다 살아서 건넌듯
감회가 묘하였다.
강 나루에서 훌쩍 뛰어내리자 계단이 가파르게 윗쪽을 향하여서 정신없이 걸어
올라가는데 어떤 노인이 작은 멧돌을 돌리고 있었다.
향을 갈아서 파는 것이라고 한다.
그 옆에는 적선을 구하는 병자가 또 있었다.
인도에 많은 한센씨 병 환자(레퍼) 같았다.
이 계단을 따라 현기증나게 올라가 맨 꼭대기에 작게 마련된 테라스에서 바로
아래를 내려다보면 화장터의 불길이 아스라히 내려다 보이고 연기와 재는
바람따라 올라와서 옷과 몸에 가볍게 묻었다.
냄새는 전혀나지 않았다.
이 장면을 일행중의 한사람이 사진으로 찍다가 큰 봉변을 당하였다.
나는 렌즈를 갖다대지 않았다.
호텔에 들어와서는 다들 시간도 없고 피곤하여서 별로 씻지도 않고 밥을 먹었다.
'힌두 인디아'를 조금 더 알것만 같았다---.
향목 아래에서의 방뇨런가---.
화장장 바로 위에서도 앉아있는 사람과 누운 소가 다정하게 군거하고 있다.
불살아올릴 향목들이 지천으로 쌓여있었다---.
화장장 바로 위의 이 미로에 이 무슨 한글 간판인지 모르겠다.
'락 카페'일 수는 없고 코카콜라를 중국에서 可口加樂 혹은 苦加苦樂이라고 하듯
이곳에서는 '라가' 비슷하게 불렀는데 그런 음료 카페가 아닌가 짐작해 본다.
문은 잠겨있었다.
마네킹스러운 현자, 혹은 성자의 모습이 새벽 미로에 꼼짝도 않고 있었다.
쓰레기를 뒤지는 성우(聖牛), 마른 몸집에 비닐을 뒤지고 있었다.
미로를 빠져나오니 역시 생활 현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해의 현장에 다름 아니었다.
사람이나 노새나 모두 고해 속의 행진이다---.
흰소, 검은 소, 누렁 소, 소 소 소, 소들의 천국같지만 이들도 먹이를 찾아
쓰레기를 뒤지고 사람들은 이들을 매섭게 쫓아내고 있었다.
아침 거리의 이 시추에시션은 도저히 무슨 뜻인지 해석을 하지 못하겠다.
거리에 아침이 오고 어른들은 신문을 보고 아이는 등교 준비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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