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설악을 떠나며

원평재 2005. 1. 22. 08:18
가평 설악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청평 댐이 생기기 전에는 양평, 모곡으로 해서 드나들어야하는 벽촌이었다.
다만 이 곳의 땅이 기름지고 산세가 좋아서 농업 생산이 많았고 인물들도
많이 났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과거 급제가 많아서 영의정도 여럿났고 현대사에서는 총리를 지낸
분의 반성인 정씨, 박씨의 문중도 기갈찼고 군사정부 때는 장군도 많이 나왔다.

자연히 고시 3과에 합격한 인재들이나 학자들도 인구 밀도에 비해서는
대단하였으나 예전에는 외지와 격리되어서 좁은 지역에서의 문중간 콧대 싸움이
대단했고 서로 배타적인 분위기가 이 동네를 감싸고 있었다고 한다.

하긴 이런 경쟁의식이 향리의 인재들을 불담금질하여 일찌기 남녀불문하고
젊은이들을 서울로 내몰았는지 모르겠다.
사랑스런 애린이도 그래서 어려운 중에도 서울로 온 모양이었다.

예전에 이 동네 사람들의 혼례 사정은 어땠을까.
청평 댐이 생기기 전에는 어쩔 수 없이 겹사돈이 많았다고 한다.
어쩌랴.
앞에는 유명산이 버티고 서서 양평길도 수월찮게하였고 옆으로는 북한강이
휘돌아 감돌아 가마를 타야할 각시가 조각배를 타야하니 모두들 원행 혼사는
꿈도 못꾸고 동네 안에서의 일족 혼사나 겨우 면하면 다행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문중간의 긴장관계는 상존하였다고---.

이제는 청평댐이 생겨서 신흥 부자들의 별장이 즐비하고 어떤 종교 단체가
운영하는 겨대 규모의 대학과 병원이 들어차서 묘한 커뮤니티로 탈바꿈이
시작되었다.
내 사랑 애린의 고향이 이런 곳이었다.
정애린---.
아니 최애린---.

내가 애린을 알게 된 것은 내 본업인 우체 업무 때문이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전산화 되어서 일선 우체국과 "우체 집중국"의 사람이
업무상으로 대면할 기회나 이유가 없었지만 일선 우체국이 민영화 되기
시작한 초창기에는 월말, 분기말, 년말 정산 때 마다 회계관련 사람들이
집중국으로 파견을 나와서 직접 장부를 맞추어 보는 것이 편할 때가 많았다.

애린은 청평 종합 고등학교를 나와서 서울의 이런 저런 회사에 다니며
마침내 야간대학 경영학과를 나오고 민영 우체국 직원이 된 예쁜 아가씨였다.

미모가 빼어나서 이전부터 인상깊게 여겼는데 어느 월말 정산 때에 작은 일이
일어났다.
"우체 적금" 계정의 이자 계산 관계로 집중국의 담당과 예쁜 그녀가 말다툼을
벌이고 언성이 높아진 것이다.
내가 말리자 그녀는 담박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밖으로 데리고 나와서 커피를 마주하면서 나는 이 여직원이 거의 피해망상증에
가까운 심리 상태에 빠져있으며 고독증세 같은 것을 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말 정산하러 와서 만날 때마다 사람을 무시해요."
그녀의 항변은 옳지 않았다.
집중국의 담당 직원은 매우 유능하고 사리에 밝은 사람이었다.

다만 그 담당에게서 인정을 느끼지는 못했으리라. 그가 매우 이성적인만큼
그만큼 냉정한 면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누구를 무시할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나는 정중히 사과하였다.
눈과 키가 크고 몸매도 반듯한 이 처녀에게 필요한건 우선 심리적 안정인듯
싶었기 때문이었다.

"과장님을 먼 발치에서나마 보고 항상 존경해 왔어요."
그녀는 또 울었다.
"오빠처럼 대하겠어요."
그러고 보니 아마도 조울증 증세도 있는듯 했다.
그녀는 갑자기 신명이 나서 다변해졌다.
마침 퇴근 무렵에 나왔기 때문에 우리는 가까운 데에서 저녁을 먹고
이름이 좀 있는 "와인 바"로 가서 머독도 한 잔씩 걸쳤다.

우리는 직업과 상관없이 요즈음 유행하는 퓨전 음악 이야기를 한참하다가
나와서 지하철로 걸어가는 마지막 100미터 쯤은 팔장도 꼈다.

"두 번 놀랬어. 정애린이라는 이름을 듣고 처음에는 눈물많고 애련한
사람이리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에 나오는 여장부
처럼 저돌적이네"
내가 팔에 힘을 주며 놀렸다.
"브로코빅이 맞지 않을까요. 음악가 바하도 미국에서는 백이라고 읽는다면서요?"
"쓸데 없는걸 많이 아네. 이전의 애인이 영화 전공이었나 보네. 그건 그렇고
미국에서도 유식한 사람들은 '존 시베스천 백'이라고 하지않고 요한 세바스찬
바하라고 한다오---."
"과장님은 역시 문화인이시군요. 사무실에 소문이 자자해요. 근데 모르시는게
있군요. 전 정애린이 아니라 최애린이예요."

그 말을 남기고나서 그녀는 포니테일을 결사적으로 흔들며 지하철 역으로
사라졌다.
그녀의 성이 정씨라는 것을 평소 나는 확실히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녀의 원래의 성씨는 최씨였다.
애린이는 미혼모에게서 태어나서 어머니의 성씨를 따랐다. 여러해 전에 성씨
찾아주기 운동이 있을 때에는 최씨라는 본성을 찾아볼까도 했으나 절차가
복잡했고 바꾼 후의 후유증이 더 심할 것 같아서 포기하고 말았다.
그때의 참담함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라고 했다.

그녀의 어머니를 미혼모로 만든 최씨 청년은 마음에 없는 처녀의 배가
불러오자 도망을 갔다.
손이 귀한 최씨 가문에서는 처녀의 불러오는 배를 쳐다보며 처음에는 미안한
표시와 함께 호의를 보이더니 처녀가 여아를 낳자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아니 동네 뒷산의 1000평 정도 되는 쓸모 없는 땅을 애린의 이름으로 해주고
손을 털었다.

내가 애린이의 몸을 본 것은 한 세번쯤 만나고 나서였다.
애린이가 적극적으로 유혹한 셈이었다.
세번만에 남녀가 잠자리를 같이 했다고해서, 더우기 여자가 더 적극적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내 사랑의 기록이 너무 가볍게 느껴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숙명처럼 상대방을 탐하였고 거의 학대하였다.

"시집가기전에 남자 셋은 잡아 먹어야 겠어요."
이유가 애매한 그녀의 결의는 단호하였다.
내가 그 세번째 사나이였다.

애린은 몸매가 좋았다. 단 어깨가 다소 구부정한 것만 빼고는---.
이건 아마도 그녀의 성격과 관련이 있는듯했다.
똑바로 남을 정시하지 못하는 시선하고---.

우리는 자주 그녀의 외가가 있는 설악을 찾았다. 외가래야 그녀의 살붙이
한 분쯤 살아계신듯 했다. 이것도 나의 추측일 따름이었다.

그녀의 가족사에는 가급적 접근하지 않는 것이 그녀를 돕는 길이라고 나는
생각 했다.
중년의 나이에 젊은 여자와 몸을 섞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목숨이라도
던지고 싶은 심정인데 호기심을 누르는 일쯤이야---.

우리의 만남은 그녀가 나에게 연락을 해야만 이루어졌다. 내가 직장으로
연락하는 것은 금기였다. 모두 그녀의 주장이었다.
소문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녀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우리의 정사는 어디까지나 그녀가 주도권을 쥐어야 되었다.

그녀가 내게 전화를 하는 순간은 그녀의 정서가 고도로 들떠 있어서
조울증 중의 "조"의 상태이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매우 침잠된 "울"의
상태였다.

"조"에서 만나면 그녀는 일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울"의 상태가 되었고
"울"에서 만나면 헤어질 때쯤은 실실 웃음을 풀었다.
조울증 환자를 내가 단지 젊은 여체 때문에 가까이한 것은 절대 아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세상의 잣대가 일시 멈춘달까, 따로 명상의 시간이
필요없는 상태가 된다.
"울"의 상태에서 그녀는 세상의 모든 괴로움을 대신 아파하는 듯 했고
"조"의 상태에서는 세상의 모든 것을 모두 행복의 육화로 만들기 때문이었다.

이런 기분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무릇 이 것이 사랑이라고 나는 부르고 싶다.
아내와는 이런 감정을 겪지 못하였다.

첫번째 몸을 섞은날, 우리는 서로 선약이라도 해 두었듯이 설악으로 가서
그녀의 산으로 올라갔다.
그녀의 산은 돌더미였다.
전문가가 아니어서 식견은 없었으나 어쩌면 오래 풍화된 고인돌 더미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테스"라는 작품을 영화로 보았을 때, 가련한 테스가 첫사랑의 남자와
마지막을 보내던 고대인들의 돌무덤과도 같았다.

돌무더기는 아늑하면서도 유현하고 섬뜩한데가 있었다.



우리는 그 위에 올라가서 주로 노래를 불렀다. 아니 주로 그녀가 불렸다.
레파토리?
글쎄 만남과 사랑과 이별에 관한 우리 가요가 주류였다.

새해의 첫 주말 오후에 우리는 다시 돌무더기 산을 찾아가서 힘차게
사랑과 이별의 노래를 불렀다.
정초부터 핑계를 대고 나가는 나에게 가족들의 잔소리가 있었으나 애린에게도
새해가 온 것이 아니던가.

노래의 카니발이 끝나고 돌 산에서 손을 잡고 내려 오다가 우리는 후덕하게
생긴 중년의 남자를 만났다.
"어떻게?"
그는 우리 둘을 조금 걱정스레 쳐다보며 애린에게 추궁하듯 하였다.
"외삼촌, 이 분은 제 직장 상사인데 제 땅을 사실까해요."

우리는 경계를 풀고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아시는 분이라면 다 이야기 했겠지?"
착한 외삼촌이 애린에게 말했다.
"그럼요. 이건 맹지라고 해서 길이 없는 땅이라는 말씀 말이죠. 그리고 이
앞의 주인이 고집 불통이어서 길을 내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다 드렸어요.
그 고집통은 그냥 자기에게 헐값에 팔아넘기라는 겁니다."
난데없는 상황전개에 나는 당황하면서 엉거주춤 땅을 보러 왔다고 동의하였다.

"새로 닦는 경춘 고속도로의 청평 인터체인지가 여기 설악입니다. 사두시면
손해는 없을겁니다. 맹지이지만 때가 되면 이 쪽도 계획적인 택지 개발이 될
것이니까요."
"고속도로가 완성될 때쯤이면 저도 전원주택이나 하나 지을까 합니다. 나이도
있고---"
나도 거짓말에 꽤 순발력이 있네---,
하지만 나는 내 거짓말을 속으로 자책하고 있었다.

그러나 애린이는 점점 흥분하고 있었다.
"과장님, 저기 설악 면사무소 쪽으로 가요. 거기 복덕방이 있거든요.
주말에도 문을 열어두라고 부탁해 두었어요. 오늘 계약서를 써요."
"값은 흥정이 되었니?"
외삼촌이 염려스런 눈초리를 보냈다.
"네, 직장의 잘 아는 분이니까 일시불은 아니지만 값은 아주 잘 쳐주셨어요.
과장님 어서가요."

내가 멀리 보이는 노인정 앞에 세워둔 승용차 쪽으로 몸을 돌리는데
외삼촌이 다시 입을 열었다.
"시집갈려니까 땅이 처분되는구나. 더우기 미국으로 가니까---.
겹사돈이라서 이루어진 혼사인데 어릴 땐 서로 보았지요."
나는 발을 잘못 딛고 쓸어질번 하였다.
차를 타고 내가 애린에게 힐난하듯 물었다.
"그게 모두 정말이야?"
"그래요. 남자 셋은 잡아먹고 시집간다고 하였지요. 마침 미국있는
이모가 중매를 섰어요."

엉거주춤 외삼촌의 승용차 뒤를 쫓아서 우리는 설악 면사무소 옆의
부동산 중개업소로 가서 계약서를 썼다.
노래를 부르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면 중간에 있는 모텔을 우리는 꼭
들렀다. 그러나 이 날은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 이후 애린이 미국으로
갈 때까지 우리가 한번도 몸을 섞는 일은 없었다.

등기를 넘기는 날 애린의 외삼촌이 무얼 상기시키듯 말을 꺼냈다.
"산에 있는 돌무더기는 제가 좀 써야하겠습니다. 애린이 하고도 전부터
약속이 되었던 일이지요. 그 돌들로 근방에 제가 새로지은 집의 담을 쌓을까
하거든요."
"그건 고인돌 같은 고대의 유적지가 아닐까요? 괜찮을까요? 관청에서나
혹은 심리적으로나---."
"관이라면 제가 책임지고 심리적이라는 말씀은 무언지 잘 못알아 듣겠군요."

사실 그 위에서 노래나 부르고 크게 관심이 없었을 때에는 무심했던 돌들이
나의 것이 되고부터는 새로운 의미가 생성되는듯도 했고 솔직히 마음 한
구석에는 고대인의 부름과 같은 환청 비슷한 느김도 있어서 나는 마지못해
승락을 하면서도 마음의 갈등은 심했다.

그러나 나는 이내 마음을 정리하였다. 어쨌거나 그는 내가 한 때 사랑했다가
이제는 멀리 떠나 보내는 연인의 외삼촌이 아닌가---.

나는 그녀가 보름 후에 떠나는 일정만 확인하고 이제 어쩌면 영원히
해후하지 못할 연인과의 이별 연습으로 일체의 연락을 끊었다.
결혼식장과 날짜는 알았지만 영화도 아닌데 "I went to your wedding"
할 수도, 할 필요도 없었다.
다만 땅값만은 그녀의 계좌로 부쳐주었다. 남자 쪽이 필라델피아에서
수퍼마켓과 주유소로 꽤 견딘다는 소리는 귓전으로 들었으나 여인이
시집을 가는데 어찌 돈이 들지 않으랴.
나는 신용 대출을 받아서 적지않은 돈 문제를 해결하였다.

한때 짧게나마 열애하였던 연인은 떠나가지만 그녀와의 사랑의 흔적이
남아있는 그 땅과 바위 옆으로는 내 노후의 전원을 마련하리라.
아니 바위 덩어리는 그녀의 외삼촌이 갖고 가기로 했지.
그래도 하여간 청평 호반은 내려다 보일 것이다.

그녀가 떠나던날, 나는 인천 공항으로 나갔다. 토지 매매가가 조금
부족하여서 떼놓고 지불하지 못했던 액수를 달러로 바꾸어서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등기등본을 넘겨주며 그건 그만 두라고 당부했던 금액이었다.
하지만 그만 둘게 따로 있지 않겠는가---.

공항에서 나는 먼 친척 오빠를 자처하며 그녀에게 돈을 건넸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아이 세도우와 마스카라가 범벅이 되면서 만들어 부친 눈섭이 떨어져
내릴듯 하였다.

"외삼촌은 보이시지 않네?"
내가 분위기를 바꾸려고 물어보았다.
"엊그제 돌아가셨어요. 갑자기---."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다만 마음 속에는 이제 설악을 떠나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나도 미쳤지, 내 중년의 사랑이 꽃피었던 터전에서 누구와 무엇을 더
나눌 것인가.
그래, 태양 거석기 문명의 흔적을 내 인생 중의 가장 뜨거웠던 시절의
영원한 기념물로 남기면서 나는 설악을 떠나리라---.
눈물이, 중년의 눈물이 하염없이 솟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