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 문학 산책

머나먼 사르가소 바다

원평재 2005. 1. 16. 12:01


브론테 자매가 처음 글을 쓸 때만 해도 놀랍게도 그녀들은 남성의 
이름을 차용한다.

그때만 해도 여성이 문학 작품을, 특히 소설을 쓴다는 것은 패덕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곧 용기있게 그들의 이름을 되찾아 확보한다.
오늘날 페미니즘의 효시가 될 수 있는 용기와 저항과 미래를 내다 보는
예지를 여기에서 발견한다.

샬럿 브론테가 쓴 불후의 명작 "제인 에어(Jane Eyre)"는 어려운 환경의
제인이 대 부호, 로체스터(Rochester)의 성채로 들어가서 온갓 어려움을
겪은 후에 마침내 최후의 사랑을 획득하는 거대 서사 자체로도
페미니스틱하다.

특히 다락방의 광녀 버타의 존재, 그녀는 감금 생활 끝에 끝내 광기 속에서
불을 질러 자신도 죽고 로체스터의 대저택이 소실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로체스터 마져도 그녀를 구하려다가 불구가 되지만,
마침내 제인 에어의 헌신적 노력으로 몸과 마음이 복구 되는 과정은
여성성의 최후의 승리하고 할 만도 하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불타죽는 버타의 고통과 짧은 생애를 생각해
보았는가?

바로 이 부분에서 진 리(Jean Rhys)의 "넓은 사르가소 바다"의 이야기는
시작하는 것이다.

진 리스는 도미니카의 로소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웨일스 출신의 의사였고,어머니는 서인도 제도에 거주해 온
백인의 후손이었다.
의지가 약하고 수동적인 그녀는 일생을 통해 세번의 결혼을 경험하고
재정적 어려움에 시달리며 술에 의지해 고통을 달래기도 한다.
27세 때 작품활동을 시작한 리스는 57년 `넓은 사르가소 바다'를 쓰기
시작하여 67년에 발표하게 된다.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속에서 주인공 제인 에어와 로체스터의
결혼을 앞두고 있는 시점,
그들의 결혼을 파탄나게 만드는 광녀를 기억하는가.
“얼굴은 무시무시하고 야만적이었으며 붉게 충혈된 눈을 굴리고
있는데다가 얼굴의 윤곽은 검게 부풀어 있었다”고 제인은 잠결에 본
여인의 모습을 상기한다.

그녀는 바로 로체스터가 자메이카에서 결혼했으나 광기때문에
손필드장의 다락방에 감금해 둔 로체스터 부인이었던 것이다.
이 여인은 `제인 에어'에서 여주인공 제인과 로체스터의 사랑을
가로막는 악의 이미지로 취급된다.
그러나 서인도제도 출신의 백인여성이었던 리스는 처음 `제인 에어'를
읽을 때부터 자신과 같은 배경을 가진 이 여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후 그녀는 19세기 초 영국인과 결혼한 크레올 (서인도제도 등지에서
태어난 백인.혹은 혼혈인. 인종적으로는 백인에 가까우나 문화적
으로는 태어난 지역의 영향을 받아 비유럽적이다) 여인들의 수가 적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유럽인들은 크레올들이 같이 생활하는 유색인들에게 동화되어 그들의
천성이 게으르고 관능적이며 퇴폐적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리스는 로체스터의 부인 버사 메이슨도 이러한 유럽 남성들의
유럽중심주의적 혹은 남성중심주의적 가치관의 희생물일지도
모른다는 점에 착안해 버사 메이슨를 주인공으로 로체스터와의 결혼,
그리고 다락방에서의 감금생활을 다시 쓰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넓은 사르가소 바다'이다.

1967년, 그녀가 발표한 <광활한 사르가소 바다 Wide Sargasso
Sea>는 이처럼 기존의 문학 작품인 제인 에어속의 캐릭터를 재해석
했다는 측면에서 포스트모더니즘적인 "다시 쓰기"의 대표적인 작품이자
유럽 남성중심적 시각의 탈피라는 면에서 페미니즘의 컬트 텍스트가
되었다.

소설의 종말은 「제인 에어」에서 버사의 종말과 맞아 떨어진다.
이 소설은 이렇게 제인 에어」의 세계관을 타자 화 되었던 버사의
입장에서 뒤집어 다시 쓴 것이다.

"광활한 바다 사르가소"는 서인도제도의 혼혈, 크레올인 앙트와네트가
버사 메이슨 로체스터로 성장하며 동시에 미쳐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이다.
진 리스는 유렵사회에도 또한 토착 사회 어느 한 쪽으로도 정확히
속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크레올로서의 정체성의 혼란 그리고 지극히
유럽 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로체스터의 사고등이 버사 메이슨을
불안한 정신으로 이끈 주된 원인으로 보고 주목한 것이다.

이 작품 속의 로체스터의 시선은 기존의 작품인 제인 에어에서도 이미
분명히 들어났었다.
로체스터는 자신의 비극적 결혼에 대해 무려 네 페이지 이상의 지면을
빌어 변명을 하며 "버사를 사랑한 적도 존중한 적도 없고 그녀를
알지조차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는 제인의 차가운 이성을 버사의 '붉은 눈깔'과 비교하며 버사와의
관계는 성적 유혹에 의한 것인냥 폄하한다.
로체스터의 이러한 묘사는 마치 유럽 여성인 제인에 비하여 서인도제도
출신의 버사는 이성보다 본능이 앞서는 퇴페적인 여자로 그려진 것이다.

그러나 제인 에어 속에는 버사의 목소리는 없기에 우리는 작품을
읽으면서 로체스터의 왜곡된 시선을 찾기 어렵다.

"광활한 바다 사르가소"에서는 다르다.
진 리스는 작품 전반을 걸처 그녀의 성장 과정을 묘사하였고 편협한
우월 의식과 남성적 이데올로기로 앙뜨와네트(제인 에어에서의 버타)를
소외시키는 로체스터의 모습을 그렸기 때문에,
우리는 "광활한 바다 사르가소 속의 버사에대한 연민과 동정을
갖게 된다.
이는 버사가 제인 에어를 통해서 그저 악의 이미지로 비춰졌던 것과는
정 반대인 셈이다.

이처럼 "광활한 바다 사르가소"는 기존의 문학 작품인 제인 에어에 대한
뒤집기이다.
제인 에어속에서 소외된 캐릭터 버사 메이슨을 완전히 뒤집어 재조명한
것이다.
또한 유럽 중심의 이분법적 틀에 대한 전복이기도 한다.

이와 같이 제 3 세계의 여성의 입장에서 유럽 중심적이고
남성 중심주의적인 지배문화와 가치관을 전복하려는 리스의 다시 쓰기
시도는 요즈음 포스트 모던의 문학풍토 속에서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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