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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의 앞 물결을 뒤 물결이 밀며

원평재 2008. 2. 24.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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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동안 막역지교를 나눈 친구의 정년 퇴임식에 갔다.

계산(溪山)이라는 아호를 쓰는 친구인데, 향리에 있는 금계산에서 따왔다고 한다.

어떤 친구는 그의 얼굴이야말로 금계산에 맞먹는 큰 바위 얼굴이라고도 하였다.

물론 크게 보아서 그의 고향도 대구 메트로폴리탄 에리어에 속한다.

 

금계산 같이 묵직한 그는 항상 고향 지킴이의 표상 같았는데 역시나 고향

대구에 있는 큰 사립대학교에서 정년 퇴임의 영광을 안았다.

오늘날은 사실 대학에서의 사제 관계도 예전과 같은 간곡함이 많이 퇴색하였는데

친구, 계산 선생은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내어서 학계와 현장에서 오늘날 그 역할을

다하는 인재들로부터 영광의 큰 상 차림을 받았으니 부럽기 짝이 없다.

뉘라서 그런 자리를 바라지 않으랴만 바삐 사는 산업화 시대가 되고 보니 아무나

누릴 수 없는 희소한 기회가 된지도 오래 되었다.

 

 

대구 G 호텔의 2층 행사장은 가로막을 트고도 250여명의 하객들로 넘쳤고

1-2부로 나눈 식순에는 제자들이 들인 정성의 흔적이 역력하였다.

 

1부 순서인 논문 봉정식에서 제자가 올린 봉정사는 진지하면서도 사은의 뜻에

가득하였고, 하객들의 기념 축사도 오래 전에 미리 받아서 아름답게 책자로 매어 놓았다.

그가 오래 봉직한 대학의 이사장, 총장의 정성 가득한 글도 올라있었다.

그에게 박사학위 논문을 지도해 주신 은사의 하사(賀辭)도 감동적인 글이었다.

그의 퇴임을 기리는 주변 지인들의 본격 수상 문집은 인쇄소 사정에 의하여 조금

늦게 발간되어 집으로 전달이 된다고 한다.

 

특별히 인상적인 것은 계산 선생의 가족들이 엮은 가족 문집, "금계산의 봄"이었다.

표지도 부드럽고 따뜻하게 보이는 금계산 자락의 모습이었으며 내용으로는 당사자

계산의 소회에 이어서 자제, 자부, 서랑,손주들의 사랑과 공경의 글들이 책을

묵직하게 하였다. 

합부인이 쓰신 남편과의 만남을 반추하는 글은 맨 뒤쪽에 두어서 평소에도 은근한

겸양의 정성으로만 내조하신 손길을 다시한번 느끼게 하였다.

 

축사의 시간에 가까이로는 죽마고우인 전 대구시장 조해녕 동기와 불초가 단상에

나서는 영광을 안았다.

조 전시장은 축사의 큰 부분을 계산 강수균 교수가 경중고 제42회 동기 회장을

맡으면서 폈던 옛 스승을 찾아 모시는 운동을 언급하면서 계산의 인품이 모두

묻어있는 구체적 일화가 아닌가 싶다는 회고사로 축사의 말문을 열었다.

그 정성, 열정, 생활 철학의 정신은 곧장 자신의 제자들에게도 맥맥히 전달 되어서

오늘의 이런 훌륭한 자리가 마련 되지 않았겠느냐고 그의 인간됨을 치하하였다.

조 시장은 축사의 말미에 이제는 계산 선생도 자신처럼 일수거사(一水居士), 즉 

한물간 사람이 되었으니 이제 조금 한유로운 삶을 생각하시고 지금도 필드에서

장타를 날리는 힘은 좋은 일의 계발에 계속 쓰되 적절히 배분할 것도 주문 하였다.

 

축사의 순서가 나에게로 오자, 이제까지는 퇴임식에서 후학으로서의 축사를

올릴 기회가 오면 "장강의 뒤 물결이 앞 물결을 밀며"라는 두보의 시를 인용하여

뒤 물결의 입장에서 은사나 선배의 떠나는 길을 배웅했지만 이제는 계산 선생과

함께 불초도 앞물결이 되어버렸다고 축사의 운을 뗐다.

그러나 불초의 경우는 앞물결이 되어 떠밀려 나가는 입장이지만 오늘의 주인공,

계산 선생은 밀리는 물결이 아니라 장강 그 자체, 거대한 흐름 그 자체가 아닌가

싶다라는 진정한 감상을 피력하였다.

평소 계산의 저 유장한 생활 방식, 학문하는 자세, 동기와 후학 사랑하기, 스승 찾아

모시기의 정신 모두가 다 그러한 장강의 모습이라는 내 평소의 심회가 바로

내 축사에 담겨 있었다.

 

계산은 학문의 "블루 오션", 신계지를 개척하여 오늘날 학계에서도 원숙한 일가를

이룬 정황도 자리에 나선 김에 소개하였고 효자, 효녀인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도

또한 나누었으나 여기에서는 생략해 두는 것이 예의일듯 싶다.

그의 전공은 사회 복지학, 큰 테두리 속에서도 "언어 치료학" 학문에 추종 불허의

전문성을 개척하였다.

 

축사의 말미에 그의 연구실 전화번호가 지역 번호를 빼고 "8275"인 점을 두고 아마도

빨리치료의 음역인듯, 참으로 놓기 아까운 번호이지만 이 역시 후학에게 넘기고

앞으로는 만유하는 생활로 들어가라고 권하였으나 말을 들을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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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이 자리에 모신 학위 지도교수님의 건배사와 건배제의에 이어 식순은 2부로

넘어가서 손주들의 악기 다루는 솜씨, 제자들의 축가들이 연이어졌으나,

우리 친구들은 나름의 뒷풀이를 따로 가졌다.

 

은근히 소매를 놓아주지 않는 가까운 친구 대여섯 명은 "모임방"이라는,

그 이름도 정겨운 맥주집에서 오랜만에 쌓아 둔 정담을 나누었다.

고담준론, 형이상학적 논쟁과 현실에의 개탄, 기대와 희망, "인생 이모작"에 대한

가벼운 모색, 그리고 허리하학적 고금소총도  적시에 튀어나와서 분위기를 띄웠다.

 

모두 기록으로 남기고 싶으나 이제 기억이 뒤따르지 못하고 상경 이후에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어서 이제야 장문을 초하다 보니 마음도 급하여 그냥 넘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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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방에서의 흐르지 않을듯 하던 시간도 바야흐로 자정을 넘겨서 차수 변경이

되자 심야 버스로 올라오려던 생각도 사라지고 또 평소 후의에 가득한 친구가

이미 호텔을 예약해 두었다고 하였다.

이번 퇴임의 당사자, 계산 선생도 늦게나마 못 참겠다는 듯이 합류하여 몇잔을 더

기우리고 서울에서 내려간 두사람은 호텔로 안내 받고 다들 아쉽게 흩어졌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어제 헤어진 세사람의 친구가 다시 찾아왔으나 각자의 일정상

아침 커피만 나눈 다음, 일수거사를 자칭한 조 전시장만 운전대를 직접 잡고 우리

두사람을 동화사 쪽으로 "모시고" 갔다.

전직 시장을 알아보시는 시민들의 미소 띤 인사 속에서 아침부터 점심까지 이곳

동화사의 명물 송이 찌게, 구이, 찜, 송이주로 몸을 보신하니 동화사 통일 대불까지

올라가는 발걸음도 가벼웠다.

 

 

 

동화사 길에 더하여 "방짜 유기 박물관"도 가보았는데, 조 전시장이 재임시 기공만

하고 준공은 못 본 곳이어서

찾아가서 관장의 안내로 두루 구경하고 또 입구에 있는 남근 석물 전시장에서는

기기묘묘한 자연의 형상에 기가 팍 죽었다.

부인들과 함께 올 데는 아닌가 싶다^^.

주인이 시장을 참 좋아해서 지금도 초대를 하여 담소와 진미를 나누는데 이날은

자물쇠를 채워놓고 출타 중이었다. 야외 전시물도 대단하지만 내부는 또 다른 보는 맛이

있다는데 나중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다.

 

 

 

 

 

 

 

 

 

 

 

 

 

말이 일수거사이지 자원봉사 단체도 만들어서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고 반드시

돈 안받는 강연, 비 정치적인 강연 스케줄도 적지않고(이런 표현은 모두 나의 눈치 짐작

이지 본인은 극히 내색을 삼가한다), 그리고 "쉬며 독서하는 것도 애써 찾은 할 일"에

가득한  전 시장의 시간과 후의를 모두 향유하고 동대구 역까지 배웅을 받으니

미안하고 고맙기 그지없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의 변모한 풍정도 즐거움을 안겨주었지만, 일수거사의 살아가는

지혜를 훔쳤으니 이보다 더한 기쁨이 있을 수 없다.

 

아, 동화사 길목에서 전원 생활을 즐기는 김종욱 동기의 집에 잠시 들렀다.

기회가 닿으면 이 전원거사의 제실같은 집도 소개하고 싶다.

교수하시는 부인은 출근하셨고 본인도 막 나서려는 채비였다.

지금 집도 아름다웠으나 더 아름답고 작은 집을 짓겠다고 하였다.

 

여러 친구들에 대한 감사의 글을 함께 하여서 소인배의 행색이 들어났는데 원래 근본이

소인배인걸 어떻게하랴~~~.

 

방짜 유기와 남근석 야외 전시장도 다음에 소개할 기회를 갖고 싶다.

기대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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