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하루가 아쉬워서 강화와 석모도로 나갔다.
혼자는 아니고 회장을 맡고 있는 중고교 동기회의 부부 80명을 모시고(!)
나갔다.
강화와 석모도로 나가면 항상 긴 인류사의 호흡을 느낀다.
고인돌 보존 구역에서 하루 여정을 시작하였다.
마침 고인돌 축제가 5월 4일-5일, 이틀간 열린다고 하는데 분위기는 이미
문화 축제가 시작된 느낌이었다.
강화도에는 고인돌 유적지가 150여군데나 된다고 한다.
신석기 시대의 유적인 고인돌의 용처에는 해석이 엇갈리지만,
한가지 분명한 점은 "영원성"에 집착하는 인간들의 꿈과 소망이
녹아있다는 사실이다.
인류사는 염원의 기록이 아니겠는가.
전쟁과 종교, 그러니까 문명과 문화 모두가---.
지석묘 옆에 고구려의 "대 막리지 연개소문"의 비가 최근 갑자기 세워졌다.
당위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는 모양이다.
연 장군의 출생과 무예를 닦은 지역이라는 고증이 최근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은 삼경인제---"
길가에 갑자기 이조년의 생가 같은 곳이 나타났다.
긴장하여 셔터를 누르는데, 술 빚는 집이자 유명한 강화 쌀 찧는 곳으로
판명이 났다.
그래도 실망 보다는 기쁨이었다---.
강화의 문화적 뒷심이 보이는 장면이다.
이 사람은 알라스카에서 온 여행객이었다.
용모에 대해서 물어볼 수는 없었고 아래에 태극기를 넣어서 바다 갈매기를
찍어보았다.
무엇이나 너무 영악하면 환영받지 못한다.
바다 갈매기도 그러하다.
새우깡은 맛이 없다고 받아먹지 않고 기름에 튀긴 것만 좋아한다는 것이다.
날개 밑에는 박테리아와 미생물이 많아서 어린이들은 조심해야 한다고---.
석모도에는 레미콘도 "수입"이다. 다리를 짓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
고인돌의 오랜 염원이 보문사 아래에서도 보인다.
오늘의 화두는 단연코 "염원"이었다.
사진 찍는 모습이 이채로워서 나도 한 컷하였다.
보문사 절집 뒤쪽에 있는 가파른 길을 올라가서 눈섭 바위에 도달하였다.
절집의 뒤켠에 삶의 호흡이 있다.
돌아오는 길에 호국 항쟁의 터를 둘러보다가 시간에 쫓겼다.
해무 때문에 서해의 낙조는 볼 생각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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