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해금강이 보이는 GP에 서다.

원평재 2008. 5. 26. 07:53

 

 

 

 

도산 안창호 선생을 기리는 모임에 '도산 아카데미'가 있습니다.

5월 회보에 글이 올라서, 5월이 가기 전 이곳에 소개해 봅니다.

본부는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의 '흥사단' 건물에 있고,

인터넷 주소는 'http://www.dosan21.kr'입니다.

첨부된 사진은 추가된 것입니다.

  

며칠 전 해금강이 바라보이는 동해안 최전방 우리 측 GP에 들어갔다 나왔다.

 

몸을 담고 있는 대학의 ROTC 출신 교수-직원 모임에서 봄철 행사로 마련한

 

하루 일정이었다.

 

금강산이 개방되어 배를 타고 들어갔던 초창기의 삼엄했던 기억이 새로워서,

 

우리 쪽 진지로 들어가는데도 당일 아침에는 다소 긴장이 되었다.

 

더욱이 최근 북쪽에서는 새로 들어선 우리 정부에 대하여 경직된 남북관계를

 

조성하고 있다는 징후도 보이지 않는가.

 

 

 

  

 

 

   

"한국 전쟁"이라는 새로운 표현 보다는 "육이오 사변"이라는 어휘에 더 

 

익숙하고 “동란”이나 “사변”이라는 말을 쓰는 언중(言衆) 속에 있을

 

때에 무언가 서로 친숙한 느낌을 갖는 세대, 예비역 장교단의 일원으로 

 

국토의 간성임을 자부하는 세대,

 

그런 세대의 한 사람으로 볼 때 최근 북한의 움직임은 가볍게 볼 수만은

 

없는 상황전개라는 느낌도 온다.

 

봄 행사의 행선지로 동해안 GP가 떠오른 데에는 이런 배경들이 작용

 

하여서 만장일치 가결이었다.

 

 

또 바로 건너편으로는 해금강이 바라보인다고 하니 관광도 겸하여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대략 그런 이심전심이 통하였던 것이다.

 

 

다시 들어간 휴전선 비무장 지대는 감개무량이었다.

 

적 탱크를 저지하는 방벽도 현대식으로 개선된 것 같았고 사계청소로

 

베어낸 나무들은 다시 자라서 관목과 교목의 숲을 이루었으며

 

지휘관과 병사들은 자신만만하고 씩씩하였다.

 

 

 

 

 

전에 들리던 쌍방 간의 대형 스피커를 통한 선전과 욕설은 전혀

 

들리지 않아서 적막강산인데 휴전선의 끝 쪽, 동해안에 바짝 붙어서는

 

그동안에 뚫린 금강산 육로 관광 길을 따라서 남쪽의 관광단들이 탄

 

버스가 줄줄이 올라가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우리가 들어 온 지역만큼 북한군과 가까이 있는 민간인도

 

드물었겠지만 이제는 관광단들이 그 열전과 냉전의 띠를 풀고 올라가고

 

있었다.

 

 

젊고 멋있게 보이는 우리 상황장교는 육안과 모니터로 전개되는 비무장

 

지대, 특히 북한쪽 지형과 군사 구조물들을 주의 깊게 설명해 주었다.

 

토치카와 방벽, 총안이 모니터를 채웠고 전면에 보이는 “벽돌산”은 그

 

속이 완전히 터널로 되어서 중장비들이 가득하다는 설명에 일행은 과거

 

근무 경험을 돌이켜 보면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긴장이 되어서 그런 가, 북방 한계선을 지나서 전개되는 해금강,

 

특별히 총석정을 휘돌아 감돌아 몰아치는 아름다운 파도는 육안은

 

물론이고 모니터나 카메라의 줌 렌즈를 통해서도 선명히 들어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일 년이면 200일 이상을 해무가 끼어서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날씨가 좋으면 전면의 중무장된 산악 너머로는 전에 갔다 온

 

금강산도 보인다고 하지만 이날은 그 쪽도 흐릿하게 시계 제로의

 

상태였다.

 

아무래도 이 모든 것이 기대와 좌절을 함께 안고 있는 우리의 대치

 

국면을 상징하는 듯 하여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모든 상황이 엄혹한 거대 담론으로만 끝나지는 않았다.

 

갑자기 모니터에 북한의 토치카가 나오는 가 했더니 총안을 가로막고

 

북한 병사 하나가 대자로 너부러져서 낮잠을 즐기고 있지 않은가.

 

또 눈앞에 보이는 북측의 큰 호수, 이름이 “감호(鑑湖)”라는 호수는

 

이름 그대로 면경같이 북쪽 산을 품어 비추고 있었는데 전과 달리

 

이제는 여름이면 북한 병사들이 내려와서 태연히 목욕을 하고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 쪽에서 호수 면을 보면 남쪽의 산을 또 품어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감호에는 아름다운 전설이 있으니 금강산 아래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의 고향이 바로 여기라고 한다.

 

 

 

 

또한 “감호”라면 내가 봉직하는 대학의 6만 평방 미터(약 2만평)에

 

달하는 호수, 일감호(一鑑湖)와 이름이 사촌 혈육 쯤 되는 것 같다.

 

소련이 브레즈네프 독트린의 철권 정치를 벗고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트”, 개혁과 개방의 정책으로 나아갈 때,

 

“언제 또 과거로 회귀하는 반동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한번 풀린

 

자유의 물결과 흐름은 역류할 수가 없으리라”고 예상한 뉴욕 타임스의

 

사설 기사가 생각난다.

 

그 현상이 북한 땅에서도 느리지만 확실하게 일어나리라고 기대해본다.

 

 

(一鑑湖)의 "一鑑"은 주자(朱子)가 책을 보다가 문득 느끼는 바가 있어 지은

관서유감(觀書有感)이라는 글에서 따온 것으로서,

"새물이 흘러 들어와서 맑은 호수가 되듯이 올바른 학문을 닦는 길에도 항상

새로운 흐름을 받아야 한다."는 학문하는 이의 심적 태도를 교훈 삼는 뜻이

담겨 있다.

그 전문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觀書有感'

半苗方塘一鑑開,
한 50평이나 될까 한 좁은 뜰에 거울 같은 연못이 하나 열려 있으니,
天光雲影共徘徊
그 맑은 물엔 하늘 빛깔과 구름 그림자가 함께 오락가락 한다.
問渠那得淸如許,
내 저에게 묻기를 어찌하여 맑기가 이와 같을 수 있는가 하였더니
爲有源頭活水來
대답하는 말이 근원에 생생한 물이 있어서 계속 흘러 들어오기 때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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