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힐리야, 옛땅! 연변과 만주 벌판

연길에서 "인터넷 연결하기"

원평재 2005. 3. 18. 00:52
오늘 드디어 집으로 인터넷이 연결되었다.

학교에서도 인터넷 망은 잘 깔려있으나 아무래도 사용자들이 많아서

속도가 좀 느릴 뿐만 아니라 내 연구실에 있는 컴퓨터의 성능이

또 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퇴근 후의 컴퓨터 작업도 생각해야겠기에 전화와 ADSL를

연길에  주소가 있는 학생의 이름으로 신청하여서 모든 것이 잘

진행되었는데(물론 전화가 나오는데에 좀 시간이 걸렸지만), 

이 전화 선으로 인터넷을 개통시키는 데에는 기술자들이

거의 열손가락을 꼽을 만큼 아파트로 찾아온 후에야 오늘 오후

겨우 개통이 되엇다.

 

(앞이 신 검찰원 청사이고 그 옆 쪽이 아파트 단지입니다.)

 

나야 수요자에 다름아니어서 피해자의 입장이긴 하였지만

그동안 말도 통하지 않는 중국인 청년 기술자의 노고가 많았고

전자공학과의 교수와 학생 몇명도 이 난제와 씨름을 하느라고

고생이 많았다.

 

(태권도 동아리들이 아침 마다 열심히 훈련 중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실제로 소비가 된 차비를 내가 주어도 결코 받지

않았다.

학생들은 예의가 그게 아니라고, 또 담당자는 공무원의

신분이기에---.

이 나라 구성원들의 저력이 그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극복해야할 비 효율성도 도처에 보였지만.

 

전화가 개통되기를 기다리던 날은 예전에 내가 신촌 살 때에

청색 전화를 신청해 놓고 하도 목이 빠질 것 같아서  백색 전화를

비싼 돈을 주고 산 다음 그 개통의 순간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던

그 며칠간의 기대와 초조와 긴장의 순간이 불현듯 떠올랐다.

내가 정말 시간 여행, 타임 머신을 제대로 타긴 탄 모양이다.

학교의 숙소로 그냥 들어갔으면 어림도 없을 경험들이었다.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니 내가 있는 현 주소의 좋은 면만을

사진으로 올리고 자랑도 좀 늘어놓아야겠다.

 

내가 지내는 거처는 "신 검찰원" 건물이 들어선 바로 옆에

지은지 얼마되지않는 약 40평짜리 아파트이다.

이 사람들 식으로 하면 120평방 미터인가 하는 규모인데

방이 모두 세개, 넓은 응접실, 샤워 시설이 포함된 화장실,

주방 기구가 딸린 부억, 이렇게 되어있다.

 

월세는 1000원(130000원)인데, 학교에서 900원을 보조해 주고

나는 매달 100원(13000원)만 낸다.

가스와 전기, 물값등은 물론 내가 낸다.

 

전화와 인터넷 신청비와 거기 따르는 6개월 사용료를 합쳐서

720원을 미리 냈고 전화기 값은 10원이었다.

 

우리나라 TV를 보기 위하여 접시 안테나를 500원, 600원,

700원짜리가 있어서 거하게 700원짜리로 설치했고

시청료는 없이 21개의 우리 국내 방송을 보고 듣는데

서울에서 아파트 공청으로 보던 케이블 TV 방송보다 종류가

많고 무슨 섹스 방송까지 들어있어서,

채널을 돌리다보면 성직자의 거룩하신 설교가 있으신 처소의

바로 옆에서 느닷없이 신음 소리가 튀어나오는데

그것도 한두번 듣고 보았더니 맨날 그게 그거라는 것을

터득하였다.

 

(시내에 있는 유명한 "서시"라고 하는 재래시장입니다)

 

여기 아파트는 껍데기만 지어놓고 내장은 입주자가 취미데로

돈을 들여서 하는데 껍데기 값은 우리 돈으로 한 2000-3000만원

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여기 연변 인근에다가 특별히 투자를 겸해서 거처를

마련해 놓은 사람도 있는듯 하지만,

사실 눈치 빠르고 약삭바른 사람들은 북경, 상해는 물론

대련이나 청도 등에 이미 집을 장만하여서 그간 집값이 올라

재미도 많이 보았고 아이들 교육 차원에서도 일단은 앞서가는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왜 멀리 미국이나 카나다에 마누라와 아이들을 보내서

가족들을 시험에 빠지게 하느냐,

 

대련(따렌)이나 청도(칭따오)에 진을 치면 학비와 숙식비도 싸고

주말이면 어른들이 유람선 타고 가서 감시와 유람으로 일석이조,

아이들은 우리말과 중국어와 영어를 함께 익히고---.

이 곳에서 나오는 흑룡강 신문 등에는 매일 이런 광고가 나온다.

나 이런 참---.

 

그러니 우리 경제 특구에 외국학교 절대 들어오지 못하게하는

사람들이 하나만 알고 이걸 모르고 있는건가---.

 

물론 내가 있는 이 곳 대학에도 부설 외국인 학교가 있어서 유치원

부터 중고등학교가 있고,

수업은 우리말, 영어, 중국어로 국제화되어 있어서 교직원 외에도

우리 기업체에 파견나온 분들이 자녀들을 여기에 입학시키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가만히 보니 서울에 있는 아메리칸 스큘 보다 시설이나 교육 내용이

더 좋은것 같다.

교장 선생님은 옥스포드를 나오신 아주 리버럴한 영국 교육자이다.

 

오늘은 시내에 있는 "신화 서점"에 가서 책을 많이 샀다.

서점을 중국어로 무어라고 하던데 지금 잊었다.

두꺼운 책들은 25원씩이나(?) 하였다.

서울 교보에 가보면 왠만한 양서는 모두 30달러가 넘는다.

공간 여행으로 열배가 넘는 가치체계를 오락가락하고 있다.

 

(역시 서시의 일부, 신화 서점도 가까이 있습니다. 인민 방공 시장이라는 거대한 지하

재래 시장도 있습니다. 이불이 150원, 배게는 25원입니다.)

 

올때에는 택시 기사에게 "신 검찰원 옆 아파트"라는 발음을

한번도 제대로 못해서 버스를 타고 왔다.

우리 마을 버스에 비한다면 크기는 70퍼센트, 내부 구조는

아직 비교 이전이다.

그러나 곧 우리를 추월하겠지---.

값은 1원이다.

우리 돈으로는 130원, 아무리 멀어도---.

 

저녁에는 인근 초시(超市-수퍼마켓)에서 사과를 한 상자

전화로 배달시켰다.

맛이 참 좋았다.

20개 들이가 배달료 포함 10원이었다.

서울로 치면 사과 반쪽 값이다.

 

점심에는 소위 서울식 짜장면 곱배기를 12원 주고 시켜서

둘이서 나누어 먹었다.

물론 단체 여행한 분들이면 모두 아시다시피 나도 북경의

황제 메뉴나 상해나 홍콩의 수상 만찬도 맛보았고

이곳에서도 며칠 전에는 강소성에서 온 교환교수와 학교의

초대로 12가지 요리를 대접 받은 적도 있지만

하여간 짜장면 값으로 또한번 놀라운 시공을 타고 넘나들었다.

 

다음 기회에는 여기 "유경 호텔"에서 평양 랭면 먹고

아름다운 복무원들의 노래와 춤을 관람한 이야기도 써야겠다.

(유경은 버드나무 많은 수도, 평양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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