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단편 연재) 활화산 아소(阿蘇) 풍경 (제 5 회 - 끝)

원평재 2008. 9. 30. 06:37

 

   

아소 화산은 멀리서 부터 벌써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오랜 옛날 함께 태어난 다섯 봉우리 중에서도 중간에 있는 중악(中岳)은 아직도 어마어마하게 

유황과 수증기로 된 화산 연기를 뿜어내어서 오랜 기간 사람들의 관심을 압도적으로 끌어온

자신의 역사가 허튼 자태가 아니라는 것을 사자의 포효처럼 웅변하고 있었다.

 

"세계 최대의 칼데라를 가진 복식화산, 저 아소산은 '불의 땅'인 구마모토의 상징으로 광활한

녹지평원, 호수, 산림, 온천으로 구성된 국립공원입니다. 

화구 외곽을 이루는 외륜산의 규모는 남북길이 24km, 동서길이 19km, 둘레 128km로 면적이

무려  여의도의 45배에 이릅니다. 

이 안에는 5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최고봉의 높이는 해발 1,592미터 입니다. 

저기 연기를 내뿜는 산은 해발 1,216m인 나카다케(中岳)로서 지금도 활동중이며 하얗게 뿜어져

나오는 분연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매캐한 유황 냄새가 납니다. 

아소 일대는 약 30만년 전부터 화산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금 볼 수 있는

아소산은 약 10만년 전의 대폭발로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가장 최근의 폭발기록은 1958년인데 12명이 사망하였고, 1979년의 폭발에도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하여 한동안 등반이 금지되기도 했었지요."

  

가이드의 해설이 유익했으나 그가 특별히 관심을 갖는 부분은 그런 자연현상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런 조건 아래에서 아소 산록에 사는 인구 10만명이라는 사람들의 인생관, 세계관

이었다.

언제 터질지 모를ㅡ , 아니 언제라도 꼭 터지고야 말 거대한 불덩어리를 이마에 마주 대하고

사는 이곳, 혹은 일본열도 전체에 사는 사람들의 사생관을 문득 생각해 보며, 그는 순식간에 

일종의 해탈감, 법열같은 것을 느끼고 몸에 전율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일본인들을 밉게 보거나 곱게 보거나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하는 새로운 경지의 터득 같은 것이었다.

그가 전율 가운데에서 무언가 집착을 버리는 마음으로 시원해하고 있는데 앞자리의 남자도

무슨 교감이 오는지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그에게 싱긋이 웃는 것이었다.

그도 뜻 모를, 아니 무언가 깊은 뜻이 통하는 미소를 그 남자에게 보내며 마음이 더욱 평온해짐을

느꼈다.

마침내 그들은 화산이 멀리 보이는 산록에서 리무진을 내린 다음, 주차장 근방의 대형 식당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은 후 케이블 카를 타고 산정에 닿았다.

 

 

"정상까지는 한 일 킬로 가량 걷는다더니 정말 그렇군요."

남자가 여자와 꼭 끌어안은 자세로 그에게 닥아왔다.

"그래요. 어제 저녁 술이 과했는지 나는 힘이 좀 드네요. 화구가 바로 저기 보이면서도 한참 걸리겠어요."

그가 빤히 보이는 정상 쪽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아내는 끌어안은 두사람의 모양에 벌써 실쭉해 있었다.

 

 

 

 

 

"정상이라는 표현 대신에 화구라고 하시니까 감회가 다른데요. 아파트에서 뛰어내리신 

어머니를 최후로 모시고 간데가 남한 산성 인근의 그 화장장 화구였거든요---."

남자가 눈동자를 모으며 그에게 말했다. 

"여보, 빨리 와요. 나 혼자 먼저가요."
그의 아내가 이래저래 못참겠다는 듯이 앞장 서 나아갔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이 책을 좀 보관해 주시겠습니까?"

남자가 잠깐 머뭇거리더니 말과 함께 책을 꺼냈다.

"제가 여행 준비가 부실하여 가방도 없고 한데 그만 아침에 호텔 룸에서 이 불전(佛典)을

집어서 나왔거든요.

훔친다는 마음이 생긴건 물론 아니었지만 새벽에 몇 구절을 읽어보니 너무나 좋아서

그냥 넣고 나왔네요.

그런데 이렇게 주머니에 넣고보니 막 구겨지는군요. 그래도 불전인데---.

마음이 불편해져서 선생님 배낭에 좀 넣어주시면 하구요.

이 사람도 작은 쇼울더 백 밖에는 없고해서---."

그가 사파리 여행복의 두껑없는 주머니에서 구겨진 노란 카버의 책을 꺼내더니 그에게 전했다.

  

 

 

 

  

"아, 뭐 아무렇게나 넣어서 갖고 다니다가 적당히 어디 놓아두어도 좋은데 뭘 그러시오.

어쩌다 미국에 출장을 갔을 때 보니까 객실마다 성경이 놓여있었고 그걸 손님이 갖고 가도 오히려

좋아할 듯 싶더이다."

그가 엉거주춤 책을 받으며 만류하듯 말하였다.

"네, 그래도 경전을 마구하기에는 마음이 찝찝해서요. 고맙습니다."

그가 책을 받자 남자는 여자의 손을 잡고 조금 바삐 화구 쪽으로 올라갔다.

"저 사람들 뭐가 저래요. 참 예의도 없이---."

그의 아내가 또 날카롭게 불평을 하였다.

그는 어제밤에 들은 이야기를 아내에게 일절 하지 않고 있었다.

공무원 연수원에서 연수를 받을 때 부부 동반으로 백두산 천지를 갔다온 그로서는 아소 활화산의 

모습이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백두와 아소, 두 명산이 모두 칼데라 지형으로 화구에 신묘한 호수를 이루고 있었는데 백두산이

'쿨'하다면 이곳은 '불'하여서 차이를 보이는 영산이란 말이던가---.

30만년 전부터 화산 활동이 있었다던지, 10만년 전에 용암이 분출했다던지, 불과 몇십년 전에 화산

폭발로 몇십명이 죽었다던지---, 그런 시공의 개념이 미물에 불과한 중생의 한 사람에게로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는듯, 그러면서도 무언가 큰 의미가 전달 되는듯, 그는 정상의 화구를 내려다 보며

잠시 명상 속에서 혼미하였다. 

 

"여보, 이제 다 보았으니 빨리 내려가요. 유황가스 냄새를 맡으니 머리가 지끈거리네요."

역시 그의 아내였다.

아까 가이드가 감각이 예민하거나 천식이 있는 사람은 빨리 내려가라고 한 말이 아내에게 전염이

되었는지 내려가자는 성화가 불같았다.

 

 

그는 아까까지 보았던 같이 온 남녀를 찾아보았으나 거의 군중을 이룬 관람객들 사이에서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과 함께 내려가기를 단념하고 그는 하산 길에 들어섰다.

내려가는 길은 운동장의 트랙처럼 붉은 아스콘으로 포장을 해 놓아서 관절에 무리가 없도록

해놓고 있었다.

탄력이 좋은 그 길로 들어서고 보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개미처럼 줄줄이 내려가고 있었다.

화구에서 그렇게 셔터를 누르고 사방을 살피던 사람들이 내려가는 길에서는 쫓기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말 개미 행렬처럼 말없이 걷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그는 용암이 흘러내리다가 식고 굳은 다음에 다시 침식이 되어서 층리를 이룬 계곡을 몇 컷

찍다가 아내의 독촉에 잰 걸음을 하였다.

 

 

이제는 속절없이 무엇에 쫓기듯 창황히 아내의 뒤를 좇아 내려오는데 그의 귀에 갑자기 무슨

함성같은 소리가 들렸다.

한 순간이기는 했지만 어쩌면 우레와 같이 큰 소리같기도 했는데 앞에서 잰 걸음으로 내려가던

아내나 그녀 보다 더 앞선 사람들은 전혀 반응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 그에게만 기이하게 들리는

소리 같았다.

그런게 아니라면 높은 곳에 위치한 활화산의 복합적 요소들이 이명처럼 그에게만 소리로 변환되어 

전달되었는데 여기에 그가 민감하게 반응하였거나, 그런 것도 아니라면 어제부터 그가 갖고 있던

어떤 예감이 작용하여 환청을 자성예언처럼 만들어 내었는지도 몰랐다.

그는 휙 뒤를 돌아보았다.

넓은 화구 둘레에 관광객들이 안전하게 관람하도록 설치된 긴 목책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등을

보이며 멀리 서있었는데 어쩌면 손을 앞으로 휘젓는 모습도 있는듯 싶었다.

 

 

 

거리가 조금만 가까웠어도 단순한 환청과 환영인지 아닌지를 판별하기가 쉬웠으련만 그는 이미

그런 정도를 넘어서 있었다.

아내도 그가 뒤를 돌아보며 질린 표정을하자 무심결에 함께 놀란 동작을 취했으나 금방 평소의 얼굴로

돌아갔다.

그는 자신이 보고 들은 것 같은 사정을 그녀에게 묻거나 확인치 않고 계속 하산의 걸음만 재촉하였다.

이윽고 작은 능선을 넘자 주차장이 나왔고 그 사이에 얼굴이 익은 동행들이 이미 많이 내려와 있었다.

 

 

그와 아내는 지정석 처럼된 두번째 좌석에 두고 내린 작은 짐을 치우고 털석 주저앉았다.

가이드의 칭찬처럼 말을 잘 듣는 일행이 타곤 온 리무진을 곧장 채운듯싶자 가이드가 기사에게

출발 신호를 보냈다.

"아니, 앞쪽의 이 분들은 어떻게 하고?"

그가 다급하게 제지하였다.

"아, 그분들은 언제라도 차에 타지 않을 때가 자기들이 떠난 때라고 기다리지 말라고 하였어요.

돈은 다 내시고---."

그러다가 가이드가 황급히 말문을 닫았다.

"아, 그런 뜨내기들을 앞에 태우고 우리를 밀어내는 법이 어디있어욧!"

마침내 그의 아내가 분노를 폭발시켰다

 "아닙니다. 서울 본사에서 미리 그렇게 예약한 손님입니다. 손님들도 지금 뒤쳐지셔서

다음에 오는 우리 회사 관광객들과 합류할 수 있거든요."

가이드가 믿거나 말거나 강변하였다.

차는 떠나고 하늘에는 굉음이 울렸다.

그가 창밖으로 올려다보자 시커먼 구름이 낀 천공에 헬리콥터가 보였는데 상식적으로는

관광 헬리콥터가 시간에 맞추어 뜬 것 같았지만, 그는 비상 연락을 받고 출동한 무슨 구난

헬리콥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앉아서 작은 배낭을 벗자 한쪽으로 불전이 비죽 튀어나왔다.

책의 제목은 "화영 불전(和英 佛典)이라고 되어있었으며 중간쯤에 접은 페이지가 있었다.

그는 일본어에는 까막눈이었고 영어도 아주 서툴렀으나 일단은 그 곳을 펴보았다.

그리고 더듬더듬 마치 아내가 들으라는 듯이 천천히 해석하여 읽었다.

"세상만사가 고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잘못이다. 마치 세상만사가 모두 행복이라고

주장하는 만큼이나."

그 다음 구절을 그는 더듬거리며 먼저 영어로 읽었다.

"If people insist that all things are empty and transitory, it is jus as great a mistake

as to insist that all things are real and do not change.

If a person becomes attached to his ego-personality, it is a mistake because

it cannot save him from dissatisfaction or suffering.

이게 무슨 뜻이라고 봐야하나---. 사람들이 아니 중생이 세상 만사는 모두 헛되고

덧없다라고 주장한다면 이것도 큰 잘못이다. 이는 마치 세상 만사가 모두 실재함이고

그래서 결코 변하지 않으리라는 주장이 크나큰 잘못인 것처럼.

그리고 아집에도 너무 사로잡히지 말라고 하시는구만---."

 

그가 눈길을 계속 내려가 보자 그 페이지의 결구라고 할까,  "부처는 우리에게 중도

(中道, Middle Way)를 가르친다---"로 시작하는 부분에는 누가 언제 그어놓았는지는

몰라도 객실에서 흔히 보는 연필로 밑줄까지 그어져 있었다.

"Buddha teaches the Middle Way transcending these prejudiced concepts, where

duality merges into oneness."

그는 또 더듬 더듬 읽었다.

"아이 창피해요. 엉터리 영어 그만 읽으세요. 그리고 절집에 갈 일 있어요? 찝찝한데

그건 여기 그냥 던져 두고 가요."

"여기 보시게, 내가 영어는 잘 몰라도 부처님도 중용을 취하라고 하시네. 갈라서지 말고

합류하라고 하시는 말씀같아."

"글쎄요. 그런다고 내 마음이 쉽게 바뀔것 같지는 않네요. 하여간 그 책이나 여기 좌석

뒷주머니에 쑤셔넣어버려요."

"아니, 나중에 가이드에게 맡길께."

그는 얼른 카메라의 모니터를 킨 다음에 조금 전 무수히 찍었던 아소 화산의 풍경을

되돌리면서 앵글이 마음에 맞지 않으면 쌀의 뉘를 고르듯 지우기 시작하였다.

두 남녀의 모습은 거기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끝) 

 

 

  

 

  

  

 

 

  

 

 

  

 

 

Johannes Brahms(1833 - 1897)

Symphony No.4 in e minor op.98

  1악장. Allegro non troppo

  2악장. Andante moderato

  3악장. Allegro giocoso -Poco meno presto-Tempo I

  4악장. Allegro energico e passionato-Piu allegro    

 

 

 

  Wiener Philharmoniker

  Carlos Kleiber, cond.

  Recording: Mär-1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