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미적 산책의 발걸음은 자유이지만 사실은 그렇게 자유롭지만은 않다.
우선 지리에 어두우니 약속된 장소에 오후 4시 반까지 와야한다는게 강박관념으로
작용한다.
아무래도 General Hospital을 염두에 둔 '링 반데룽', 환상 방황이 될 개연성이 높다.
문득 김동리의 같은 제목 단편이 생각난다.
우리가 제 아무리 주어진 시간내에 가을 메뚜기 튀듯이 해봤자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게 아니겠는가.
날이 추워서 레토릭이 좀 잘못나갔다.
메뚜기가 원점으로 돌아오는게 아니라 다람쥐 쳇바퀴 돌듯---,
아닌게 아니라 이 동네에는 다람쥐, 즉 설치류가 많다고 한다.
쥐도 많다는 이야기이다.
새로 올라간 건물의 굴뚝이 무언가 눈에 익은 형상이다.
북아프리카에서 본 역사적 구조물 같기도 하다.
'알다'라는 말은 '아름답다'는 말의 어원이 된다고 한다.
아는 만큼 보이기도 하지만 낯설게 하는 것이 문학의 한 기교이자 역할이기도 하다.
저 오벨리스크같은 원주, 혹은 굴뚝은 어디에서 본 데자뷰인가---.
이집트에서 본 태양 숭배의 상징탑이 가장 근접한듯 싶다.
이 아름다운 건물도 본래의 목적은 이제 다한듯 싶다.
뒤쪽으로 자주 보이는 UPMC는 University of Pittsburgh, Medical Center인데
그 역할은 병원 운영 뿐만 아니라 재단 운영에 따른 방대한 업무를 관장하는 것 같다.
이 구역에는 여러 형태의 교회 건물들이 자태를 뽐내며, 청태낀 역사를 자랑하듯 서있다.
나중에 알게된 일이지만 이 동네 아주 넓은 구역은 '도이취 마을'이라는 사적(史跡)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루테란 처치'가 많은 이유도 알만했다.
16세기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의 '루터 파 교회'가 여기 독일 마을에 많이 있는 것은
당연지사이리라.
엊그제 월요일은 흑인 종교 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날이어서 학교도 휴교하고 공무원들도
모두 쉬었다.
병원은 문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역사는 흘러가서 지금도 이곳에 독일 사람들이 많이 산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가난한 백인들(Poor Whites)의 동네에 다름아닌가 싶다.
거기에 흑인들도 들어와 공존하고 있다.
독일 사람들은 1차 대전 때 까지도 많이 모여살고 독일어 사용도 광범위하였다.
그러나 양차 대전의 영향으로 연방 정부 주도아래 독일어는 급속히 힘을 잃었고
독일 사람들도 뿔뿔이 흩어진다.
미국에서 영어가 독보적 위치를 차지한 것은 그렇게 보면 오래 된 것도 아니다.
지금은 또 히스패닉들이 쓰는 스페인어가 제2 공용어가 되다시피 하고 있다.
이곳은 그렇지 않지만 초등학교 통지표에 스페인어가 병기되는 곳도 많다.
돌아다니며 가만히 보니 여기 독일 마을은 아주 넓게 역사적 보존물로 구획이 되어
있어서 중산층 백인들이 사는 동네도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진짜 부유한 백인들은 다들 잘 알다시피 교외에 산다.
이 건물은 '다마스커스 교회'라는 이름으로 또한 매우 오래되었다.
성경, 사도행전에도 나오는 '다마색',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서 패러다임이 달라진 곳,
그 다마스쿠스는 오늘날 시리아의 수도가 아니던가.
동네가 험하다보니 교회도 보안장치가 엄하다.
지난주에 갔던 한인 교회도 평일에는 문단속을 매우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항상 문을 열어둘 수도, 그렇다고 교회가 문단속을 너무 철저히 할 수도 없는게 현실이다.
교회 군락을 지나쳐오니 언덕으로 오르는 계단이 보인다.
서울 월드컵 경기장 근처의 하늘 공원을 오르던 기분으로 계단을 올라섰다.
시멘트 계단이 삐걱거리고 바람은 세찬데, '인영(人影)은 불견(不見)'이다.
다만 전봇대의 진홍빛 리본이 무슨 의미성, 혹은 사람 냄새를 전하고 있다..
나다니엘 호돈이 쓴 단편, "영 굿맨 브라운" 생각이 난다.
거기에서 여주인공 '페이스'는 붉은 리본으로 세상과 통교한 흔적을 남긴다.
미국은 달동네가 고급 동네라고 하지만 딱히 그런 것만도 아니다.
하긴 다운타운의 재개발 '하이 라이징' 콘도도 달동네 같은건가---^^.
요즘 부자들이 그렇게들 몰려가고도 있다.
맨해튼도 그렇고 시카고의 미시간 호수변도 그러하였다---.
고도(古都) 전주에 가면 '다가 공원'이 있다.
거기 올라가서 시가지를 내려다 보던 생각이 난다.
새들도 높이 집을 짓는다.
달동네의 좁은 길에도 가로 이름은 뚜렷하다.
화합의 길이라고 한다.
캄프로마이스는 약속을 공유한다는 뜻이다.
미래 시제에 있는 약속이 현재 시제에서 함께 하는데 타협이 되지 않을 까닭이 없다.
그런 생각에 공연히 득도라도 한듯, 바람찬 언덕 위에서 '유레카'를 외친다.
번호판이 없는 폐차가 언덕위에 방치된건 아니다.
펜실베니아 주에서는 차 앞쪽에 번호판을 달지 않는다.
사실 그게 과학적인가 싶기도 하다.
물론 앞쪽에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지만 벌금을 물지는 않는다.
혹시 타주에서 와서 오래 차적을 옮기지 않은 차량으로 오해를 살 수는 있다.
그런 경우에 적발이 되면 벌금을 문다.
저 속 빈 강정, 아니 철제 원통은 한때 무슨 요량으로 저기 서서 낮은 곳을 향하여
자태를 뽐내었을까.
아무리 궁리해 보아도 그 진정한 과거는 모르겠고, 그저
'과거는 흐을러갔다', '과거를 묻지 마세요'
그런 가요 가사만 영탄쪼로 흘러나온다.
이제 내려갈 시간이다.
올라오고 내려갈 때가 다 있다.
저기 왼쪽으로 달려가는 길이 279번 하이웨이이다.
많이 이용하는 길이다.
소나무 길은 로마시대 때부터 성행했으니 이 곳에서 한 두 그루 보았다고
떠들 일은 아니다.
내 친구, 송연 정시식 시인이나 소나무 작가 배병우 등은 소나무의 자태를
사진으로 재현하는 프로 작가들이다.
나는 그저 여기 이런 모습으로 포착하여 일종의 패러디를 펼쳐본다.
결국 다시 General Hospital 근방으로 돌아왔다.
병원 근방이라 아래 와인 병들이 그저 보이지 않는다.
수련의들이 며칠 밤새 마신 것은 아닐까---.
인턴 제도는 없으니 힘든 레지던트들과 하룻밤을 동반해준 흔적들은 아닌지 모르겠다.
트리폴리 길이라는 가로 표지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북아프리카, 리비아의 수도이던가
역사의 가로에서 너무나 큰일들을 치루었던 이름
너무 거창한 이름을 달고 있어서 부끄러워 이러는지 모르겠다.
이제 279 하이웨이를 건너고자 크고 넓은 육교 위에 올랐다.
길을 건너면 더 오래된 동네가 나타날 조짐이 보인다.
기대와 긴장이 전율처럼 다가온다.
아래 보다는 위쪽을 쳐다보고 셔터를 눌렀다.
패러슈터들의 지혜를 좇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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