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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광수의 단편 심사평

원평재 2011. 2. 18. 04:41

 

안광수의 단편 응모작, "가석방"은 메타 픽션 계열의 작품이다.

소설 쓰는 방법론, 나아가서 소설 장르 그 자체에 일단 회의의 시선을 보내며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내러티브 자체에 다시 매달리는 그런 계열의 소설이다.

 

소설이 장르로서의 자리매김을 확보한 것은 주요 문학 형식 중에서는 가장

나중의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방법론에서는 가장 심각한 회의와 개혁과 진화라는 이름의 해체를

겪어왔다.

예컨대 외형적 리얼리즘을 확보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내면 심리의 사실적

묘사를 의식의 흐름이라는 이름으로 걸러내면서 이제는 전통적인 플롯 개념도

 내 팽개친 지 오래이다.

그러나 해체에서도 의미가 상실되어서는 되지 않는다.

여기에 작가와 독자의 게임과 유희가 아슬아슬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이 줄다리기에서 실족하면 작품은 허망한 거품이자 포말이 되어 사라지고 만다.

 

안광수의 "가석방"은 이 게임의 룰을 잘 지켜서 이겨낸 작품이다.

등장인물은 나레이터인 나와 A와 B, 세 사람이다.

나의 존재에 대한 고백 성사는 최종으로 미룬 채, A는 수배자, B는 신불자라는

별명으로 희미하게나마 인물 묘사(characterization)를 한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며 2인분의 음식을 장만하는 데에서도 보듯이 이들 3인은

각각 별개의 인물이라기보다는 모두가 한통속의 가석방자라는 존재, 어쩌면

우리 시대, 후기산업사회의 대표적 성격으로 분류될 인물들 같기만 하다.

여행을 마치면 각자 사무실로 감옥으로 무덤으로 가야할 존재라는 표현은 우리

모두에게 부분적으로는 고루 해당하는 이정표라는 공감대를 형성해준다.

 

본문의 한 구절을 인용해본다.

"요람이라고 여기는 곳에서 출발한 이후 우릴 찾는 전화가 없다.

B는 아예 핸드폰이 없고 A는 받을 수만 있는 핸드폰이다.

나는 정상 핸드폰을 가지고 있지만 무통은 곧 불통과 다름 아니다.

다시 말해 우린 ‘한시적으로 잊혀 졌다’.

이 가파른 내리막길에서 숨을 고르며 우린 같은 꿈을 꾼다.

이런 ‘일시적 유리’가 아닌 ‘철저한 단절’의 꿈을. 우리는 숨고 싶은 것이다.

사라지고 싶은 것이다.

우리를 숨 막히게 압박하는 세상의 가치와 법칙과, 우리를 비열하게 만드는

세상의 욕망과 그 터무니없는 요구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우리를 슬프게 하는 회한과 끝내 다하지 못 할 책임으로

부터도 진정으로 자유롭고 싶은 것이다."

 

안광수 신인은 중견 내과의사라고 듣고 있다.

인간 의식에 관한 꼼꼼한 분석과 음미가 임상 일지처럼 잘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임상 일지처럼 의사만 쉽게 읽을 수 있는 기록이어서는 문단의 호응을

얻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내러티브라고 하는 것은 어차피 공감을 전제하는 것이기에 이러한 메타픽션을

앞으로도 많이 써서 독자들에게도 익숙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 내야할 의무가

있음을 심사평의 끝으로 강력하게 요구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