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포토 에세이, 포엠 플러스

시애틀에서 배를 내리다

원평재 2011. 10. 4. 04:02

 

 

시애틀이라고 하면 우선 스타벅스의 창업도시이고 그 1호점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니 긴 줄을 서서라도 그 거룩한 장소에서 커피 한잔을 사서 마셔야 되지 않겠는가.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풀리면 아무래도 좀 속물스러운 기록, 그러나 솔직한 술회가 아닐까 싶은데

이 글이 바로 그런 범주에 속합니다.

스타벅스 1호점을 확인하고 긴 줄에 압도되어 우선 또 하나의 유명한 곳, 농수산 시장으로

걸음을 옮겨서 또 하나의 중요 장면을 카메라에 넣은 후 다시 돌아와 마침내 커피 한잔을

맛보게 됩니다.

 

 

 

 

 

농수산 시장 안에서도 코너를 차지하고 있는 수산물 가게입니다.

"나르는 생선"으로 이름 값을 하는 곳,

그러나 신비의 날개가 달린 물고기가 아니라

냉동 생선을 가게 내에서 옮길 때마다 아예 힘 좋게 공중으로 날려서

동선을 축소하고 순환 속도를 빨리한다는---,

그래서 구경꾼들에는 볼거리를 제공하는 그런 명소입니다.

 

큰 대구류의 생선이 허공을 나릅니다.

 

안착입니다.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한번~~~.

 

 

 

모양이 닮았습니다

가게 옆에서 시애틀 항을 내려다 보며 커피 한잔

 

미국이 불황이라 하여도 시애틀 시는 활황입니다.

스페이스 니들 타워 인근으로 고층 건물들이 들어섭니다.

 

 

농수산 시장의 이모저모입니다.

 

 

 

쉬흘라 따블르---.

식탁 위에서 라는 프랑스 말인데 식탁 위에 놓이는 먹거리가 아니라

그걸 담고 조리하는 식기 등을 파는 곳.

 

 

 

다시 1호점으로 왔습니다.

거리의 악사가 연주를 하는데 라이선스가 있어야 하며

시내에 자격증이 있는 악사가 240명 가량이랍니다.

 

 

아침 커피 타임이 지나고 보니 줄이 짧아졌습니다.

 

 

 

 

캐쉬어에게 돈을 내면 이름을 컵에 적어서 건너편 커피 내리는 아가씨에게로 던집니다.

Everything flies here.

아가씨도 웃었습니다.

 

에리카 종이라는 미국 여류작가는 오래전에 "나르는 것이 두렵다"라는

소설을 썼는데 좀 외설적 함의가 있는 말입니다.

신세대의 세태는 "나르지 못하면 외롭다"인지 어떤지---.

 

 

 

왼쪽 열한시 방향으로 하얀 물체가 보입니다.

나르는 페이퍼 컵~~~.

 

 

 

전 세계 스타벅스 커피점.

스타벅은 모비 딕에 나오는 선원입니다.

 

 

밖에서 찍는 사람들을 찍어보았습니다.

발상의 전환입니다.

 

 

 

벼룩 시장, 난전을 펴는 시간입니다.

 

 

 

 

 

중국 사람들이 중국 공산당 공안당국의 집단 학살을 규탄하는 시위를 합니다.

 

 

 

 

 

시애틀의 유명한 갑문 독을 가보았습니다.

여기에서도 연어 수로와 사닥다리 수로를 보았습니다.

 

 

 

 

 

갑문에 물을 채웁니다.

 

 

물높이가 금방 눈에 띕니다.

 

 

 

 

 

 

 

한눈을 파는데 보성 녹차 밭 같은 광경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세계 화장실 협회를 한국이 창립하고 그 첫번째

개최국이 된 전말을 오래전 올린적이 있습니다만---.

모양이 독특합니다.

위도 탓으로 벌써 단풍이 듭니다.

여기를 끝으로 이제 갈길을 서둘어서 델타항공을 타러

"시택 공항"으로 달려갑니다.

시택은 시애틀과 타코마 두 도시가 합친 이름입니다.

 

 작별의 감상을 올리지 못했던 사진으로 재생해 봅니다.

 

 

 

 

 

 

 

 

 

 

아래는 시애틀 소개입니다.

여러 자료를 편집한 것입니다.

 

 

태평양 연안 북서부에서 가장 큰 대도시이다.

엘리엇 만(퓨젓사운드)과 담수호인 워싱턴 호(길이 39㎞) 사이에 있는 좁은 땅에 자리잡고 있다.

동양과 알래스카로 통하는 통관항이자 관문이며 매우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시를 둘러싸고 있다.

서쪽으로는 올림픽 산맥이 있어 겨울철 폭우로부터 보호해주며, 동쪽으로는 캐스케이드 산맥

높이 솟아 있어 중부 대륙의 추위와 더위를 막아준다.

 

1851년 알키포인트에 최초의 정착촌이 세워졌다.

1853년 마을이 건설되어 초기 정착민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가졌던 인디언 추장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제재업 중심지로 성장했다.

1856년 미국 해군의 슬룹선 '디케이터'의 도움으로 인디언의 공격을 막아냈고, 1880년대의 반중국인 폭동과

1889년 대화재를 겪었다.

오랫동안 정체상태로 있다가 1893년에 그레이트노던 철도가 개통되어 주요 철도종착지가 되면서 급속히

발전했다.

 

오늘날 시애틀의 경제활동을 구성하는 다양한 산업은 항공우주산업, 기계류·임산물에 중점을 둔 제조업,

식품가공업, 은행업, 보험업, 운송업 등이다. 생물의학·해양학·전자공학 등에 바탕을 둔 산업들도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에는 보잉사(社)의 본부가 있고 로턴 요새(1897 설립)와 샌드포인트 해군항공기지도 있다.

또한 대규모 어선단과 퓨젓사운드 연락선, 올림픽퍼닌슐러 연락선의 모항이기도 하다.

1962년 세계박람회의 개최지였던 시애틀 센터(30㏊)에는 185m 높이의 스페이스 니들과 오페라 하우스

그리고 공공건물들이 있다.

 

시의 동쪽 경계를 이루는 워싱턴 호는 모터보트(골드 컵)·조정·요트 경기 코스로 이용된다. 매리너스 야구 팀,

시호크스 미식축구 팀, 슈퍼소닉스 농구 팀이 이 시를 본거지로 하고 있다.

1909년 알래스카-유콘-태평양 전시회가 개최된 옛 건물에 있는 워싱턴대학교(1861)·시애틀대학교(1892)·

시애틀퍼시픽대학교(1891) 및 4개의 지역사회대학이 있다. 1865년 읍이 되었고 1869년 시가 되었다.

인구 : 시 563,374(2000), 시애틀-벨뷰-에버렛 대도시권 2,197,451(1995),

시애틀-타코마-브레메톤 대도시권 3,265,139(1995).

 

시애틀추장의 연설문은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학 교수인 테드 페리(Ted Perry)가

1971년 ABC TV의 드라마 대본으로 쓴 창작이라 합니다.

엄밀하게 말해서 시애틀추장 연설문의 진본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시애틀추장은 영어를 몰랐고 이를 옮긴 아담스박사도 두와미쉬족이나 수쿠아미쉬족 언어를

몰랐기 때문 입니다.

더구나 아담스박사는 1854년 회담에 참석한 후 무려 33년이나 지난 다음에야

이 연설문을 발표했지요. 

잘 알려진 가짜 연설문의 요지가 “백인이나 인디언이나 똑같이 자연의 섭리에 놓여 있다.”

라고한다면, 진짜 시애틀추장의 연설문은 “당신들 백인과 우리 인디언들은 전혀 다르다.” 라는

것입니다.아래는 1887년 10월 20일자 ‘Seattle Sunday Star’지에 실린 버전입니다.


----- 연설문 전문(영한대역) ------

제목: 시애틀추장의 1854년 연설문 원문 (영한대역)

There is a great deal of controversy surrounding Chief Seattle's speech of 1854. There are many sources of information, various versions of the speech, and debates over its very existence. Please see the links at the end of the speech.
시애틀추장의 1854년 연설에 대해서 수많은 상충되는 의견이 있다. 그리고 또한 수많은 정보와 다양한 버전의 연설문, 그리고 그 연설이 진짜 있었는지에 대한 수많은 논쟁이 있었다. 그것을 알고 싶으면 연설문 말미의 링크 사이트를 방문하시라.

Version 1 (below) appeared in the Seattle Sunday Star on Oct. 29, 1887, in a column by Dr. Henry A. Smith.

 "CHIEF SEATTLE'S 1854 ORATION" - ver . 1




AUTHENTIC TEXT OF CHIEF SEATTLE'S TREATY ORATION 1854
시애틀추장의 1854년 연설문 원문 – by 시애틀추장 (1786 - 1866 )


Yonder sky that has wept tears of compassion upon my people for centuries untold, and which to us appears changeless and eternal, may change. Today is fair. Tomorrow it may be overcast with clouds. My words are like the stars that never change. Whatever Seattle says, the great chief at Washington can rely upon with as much certainty as he can upon the return of the sun or the seasons.
헤아릴 수 없는 시간 동안 우리들에게 연민의 눈물을 뿌려주었고, 우리들에게는 변함 없이 영원한 것처럼 보이는 저 하늘도 이제는 바뀔지도 모른다. 오늘은 개였지만 내일은 구름으로 뒤덮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나의 말은 변치 않는 별들과도 같다. 나 시애틀이 하는 말은, 워싱턴의 대추장의 말을 해가 다시 뜨고 계절이 다시 돌아 오는 것처럼 만큼이나 확실하게 신뢰해도 좋을 것이다.
The white chief says that Big Chief at Washington sends us greetings of friendship and goodwill. This is kind of him for we know he has little need of our friendship in return. His people are many. They are like the grass that covers vast prairies. My people are few. They resemble the scattering trees of a storm-swept plain.
백인추장이 말하기를 그의 대추장이 우리에게 우정과 선의의 인사를 보낸다고 한다. 이는 친절한 일이다. 우리는 그가 답례로 우리의 우정 같은 것은 별 필요로 하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그의 부족들은 대단히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치 저 광대한 초원의 풀과 같이 무수하다. 반면에 나의 부족은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는 마치 폭풍이 쓸고 간 벌판 여기저기에 흩어진 나무와도 같다.
The great, and I presume -- good, White Chief sends us word that he wishes to buy our land but is willing to allow us enough to live comfortably. This indeed appears just, even generous, for the Red Man no longer has rights that he need respect, and the offer may be wise, also, as we are no longer in need of an extensive country.
위대하고도 선한 백인 추장은 우리 땅을 사고 싶으며, 또한 우리가 편하게 살 수 있는 충분한 땅을 마련해줄 용의가 있다는 전갈을 보내왔다. 이것은 참으로 공정하고도 관대한 처사로 보인다. 왜냐하면 우리 붉은 사람들은 더 이상 존경을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더 이상 넓은 땅을 필요로 하지 않음을 생각할 때, 그것은 현명한 제안일지도 모른다.

There was a time when our people covered the land as the waves of a wind-ruffled sea cover its shell-paved floor, but that time long since passed away with the greatness of tribes that are now but a mournful memory. I will not dwell on, nor mourn over, our untimely decay, nor reproach my paleface brothers with hastening it, as we too may have been somewhat to blame.
한 때는 우리종족이 온 땅을 가득 메운 시절이 있었다, 조개 껍질이 깔린 바다 밑을 바람에 부대껴 물결 치는 파도가 뒤덮듯. 하지만 그 시절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져버렸고, 종족들의 위대함도 이제는 거의 잊혀져 버렸다. 나는 우리 종족의 때 아닌 쇠락을 슬퍼하지도, 또한 이를 재촉했다 하여 백인 형제들을 비난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마우리에게도 어느 정도는 책임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Youth is impulsive. When our young men grow angry at some real or imaginary wrong, and disfigure their faces with black paint, it denotes that their hearts are black, and that they are often cruel and relentless, and our old men and old women are unable to restrain them. Thus it has ever been. Thus it was when the white man began to push our forefathers ever westward. But let us hope that the hostilities between us may never return. We would have everything to lose and nothing to gain. Revenge by young men is considered gain, even at the cost of their own lives, but old men who stay at home in times of war, and mothers who have sons to lose, know better.
젊은이들은 충동적이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사실이거나 또는 상상에서 비롯된 불의에 분노하여 그들의 얼굴을 검게 문신을 새기면 그들의 마음 역시 일그러져 검게 변해 버린다. 그리고 그들의 잔혹성은 무자비할뿐더러 그 끝도 없다. 우리 늙은이들은 이들을 만류할 수도 없다. 하지만 우리 종족들과 백인 형제들 간의 적대감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은 우리에게 해만 될 뿐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다. 우리의 젊은 용사들이 목숨을 바칠 만큼이나 복수를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전쟁 때에 집에 남아 있을 늙은이들과 싸우러 나갈 아들을 둔 어머니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Our good father in Washington--for I presume he is now our father as well as yours, since King George has moved his boundaries further north—our great and good father, I say, sends us word that if we do as he desire she will protect us. His brave warriors will be to us a bristling wall of strength, and his wonderful ships of war will fill our harbors, so that our ancient enemies far to the northward -- the Haidas and Tsimshians -- will cease to frighten our women, children, and old men. Then in reality he will be our father and we his children. But can that ever be?
워싱턴에 있는 우리들의 위대하고 선한 아버지 – 이제 그의 영토를 북쪽까지 넓혔으므로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가 된 것으로 믿는다 – 우리들의 위대하고 선한 아버지는, 우리가 그가 바라는 대로 따르면 우리를 보호하겠다는 전갈을 보내왔다. 그의 용맹한 군대들은 우리에게 든든한 보호벽이 될 것이며, 또한 그의 거대한 전함들이 우리의 항구를 채우게 되면 북방에 있는 우리의 오랜 적(敵)인 하이다스족(Haidas) 심시안즈족(Tsimsians)도 더 이상 우리 부족의 여자들과 노인들을 두렵게 하지 못할 것이다. 진정 그렇게 될 수 있다면 그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 우리들은 그의 자녀들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

Your God is not our God! Your God loves your people and hates mine! He folds his strong protecting arms lovingly about the paleface and leads him by the hand as a father leads an infant son. But, He has forsaken His Red children, if they really are His. Our God, the Great Spirit, seems also to have forsaken us. Your God makes your people wax stronger every day. Soon they will fill all the land. Our people are ebbing away like a rapidly receding tide that will never return. The white man's God cannot love our people or He would protect them.
그대들의 신이 우리의 신은 아니다. 그대들의 신은 그대들은 사랑하지만 나의 종족은 미워한다! 그는 애정 어린 손길로 백인들을 감싸 안고 마치 아버지가 갓난 아기를 이끌듯이 그들을 끌어주지만, 그는 피부가 붉은 자식들은 내버리고 말았다. 그는 날이 갈수록 그대들 종족을 강성하게 만들고 있기에, 조만간 온 땅은 백인들로 가득 찰 것이다. 반면에 우리 종족들은 마치 재빨리 빠져나가서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썰물처럼 스러져 갈 것이다. 백인들의 하느님은 피부가 붉은 자식들은 사랑할 수도 없고 또 보호하지도 않을 것이다

 

They seem to be orphans who can look nowhere for help. How then can we be brothers? How can your God become our God and renew our prosperity and awaken in us dreams of returning greatness? If we have a common Heavenly Father He must be partial, for He came to His paleface children. We never saw Him. He gave you laws but had no word for His red children whose teeming multitudes once filled this vast continent as stars fill the firmament. No; we are two distinct races with separate origins and separate destinies. There is little in common between us.
우리들은 아무데서도 기댈 곳을 찾을 수 없는 고아들과 같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우리가 한 형제가 될 수 있겠는가? 어떻게 당신들의 아버지가 우리들의 아버지가 될 것이며, 우리에게 번영을 가져다 주고 다시 우리로 하여금 과거의 위대함을 찾으리라는 꿈을 돌려줄 수 있단 말인가? 그대들의 하나님은 우리에게는 불공평한 것 같다. 그는 백인들에게만 찾아 갔으므로, 우리는 그를 보지도 그의 음성을 듣지도 못했다. 그는 백인들에게는 율법을 주었지만, 한 때 별들이 저 창공을 채우듯 이 광대한 땅을 가득 메웠던 수백만 명의 피부가 붉은 자식들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 우리는 서로 다른 종족이다. 우리의 기원이 다르듯이 앞으로의 운명도 다르게 될 것이다. 우리들 사이에는 거의 공통점이 별로 없다.

To us the ashes of our ancestors are sacred and their resting place is hallowed ground. You wander far from the graves of your ancestors and seemingly without regret. Your religion was written upon tablets of stone by the iron finger of your God so that you could not forget. The Red Man could never comprehend or remember it. Our religion is the traditions of our ancestors -- the dreams of our old men, given them in solemn hours of the night by the Great Spirit; and the visions of our sachems, and is written in the hearts of our people.
우리 조상들의 유골과 재는 신성한 것이며, 그들이 마지막 안식을 취하고 있는 곳은 거룩한 장소이다. 이에 비해 그대들은 아무런 후회도 없이 그대들 조상들의 무덤에서 멀리 떠나 떠돌아다닌다. 그대들의 신앙은 그대들이 망각하지 않도록 성난 하나님의 강철같은 손가락에 의하여 석판 위에 쓰여졌다. 우리 종족들은 이런 것을 결코 기억하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한다. 우리들의 신앙은 우리 조상들이 물려준 전통이다. 그것은 위대한 정령(Great Spirit)이 우리의 늙은 현자들에게 전해준 꿈이며, 우리들의 추장들이 본 환영(vision)으로서 우리종족들의 가슴 속에 아로새겨져 있다.

Your dead cease to love you and the land of their nativity as soon as they pass the portals of the tomb and wander away beyond the stars. They are soon forgotten and never return. Our dead never forget this beautiful world that gave them being. They still love its verdant valleys, its murmuring rivers, its magnificent mountains, sequestered vales and verdant lined lakes and bays, and ever yearn in tender fond affection over the lonely hearted living, and often return from the happy hunting ground to visit, guide, console, and comfort them.
그대들의 조상들은 무덤의 입구만 지나서 들어가고 나면 더 이상 그대들과 고향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들은 저 멀리 하늘의 별들 너머로 세계로 멀어져 간다. 그리고는 곧 잊혀져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의 조상들은 결코 그들을 존재케 했던 이 아름다운 세상을 잊지 않는다. 그들은 구비구비 흐르는 강물, 웅장한 산들, 그리고 외진계곡들을 변함없이 사랑한다. 그들은 언제나 지극한 애정으로 우리들의 외로움을 애처로이 여기기 때문에, 종종 다시 이곳을 찾아와남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위로해준다.

Day and night cannot dwell together. The Red Man has ever fled the approach of the White Man, as the morning mist flees before the morning sun. However, your proposition seems fair and I think that my people will accept it and will retire to the reservation you offer them. Then we will dwell apart in peace, for the words of the Great White Chief seem to be the words of nature speaking to my people out of dense darkness.
밤과 낮이 공존할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 붉은 사람들은 아침 햇살에 안개가 스러지듯, 백인들이 다가오면 언제나 뒤로 물러서왔다. 하지만, 그대들의 제안은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내 생각에 우리 부족들도 이를 받아들여서 그대들이 제공하는 보호구역으로 이주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들은 멀리 떨어져서 평화롭게 살 것이다. 위대한 백인 대추장의 말은 마치 짙은 어둠 속에서 우리 종족을 인도하는 대자연의 목소리처럼 들리기 때문에 이를 따를 것이다.

It matters little where we pass the remnant of our days. They will not be many. The Indian's night promises to be dark. Not a single star of hope hovers above his horizon. Sad-voiced winds moan in the distance. Grim fate seems to be on the Red Man's trail, and wherever he will hear the approaching footsteps of his fell destroyer and prepare stolidly to meet his doom, as does the wounded doe that hears the approaching footsteps of the hunter.
우리가 여생을 어디서 보낼 것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리 많이 남지도 않은 나날들이다. 인디언들의 밤은 칠흑같이 어두울 것이다. 지평선 위에는 별빛 같은 희망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슬픈 바람 소리는 저 멀리서 흐느끼고 있다. 우리 뒤로는 우리 부족의 무서운 적들이 쫓고 있도다. 우리가 어디로 가든, 마치 상처 입은 암사슴이 사냥꾼이 다가오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무자비한 파괴자가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으며 최후를 예비하게 되리라.

A few more moons, a few more winters, and not one of the descendants of the mighty hosts that once moved over this broad land or lived in happy homes, protected by the Great Spirit, will remain to mourn over the graves of a people once more powerful and hopeful than yours. But why should I mourn at the untimely fate of my people? Tribe follows tribe, and nation follows nation, like the waves of the sea. It is the order of nature, and regret is useless. Your time of decay may be distant, but it will surely come, for even the White Man whose God walked and talked with him as friend to friend, cannot be exempt from the common destiny. We may be brothers after all. We will see.
달이 몇 번 더 기울고 또 겨울이 몇 번 더 지나고 나면, 옛날 이 광대한 땅을 가득 채웠던 강대한 이 땅의 주인이며, 또는 지금 뿔뿔이 흩어져 광야 속을 떠돌고 있는 종족들 중 그 누구도 살아남아서, 한때는 그대들 만큼이나 강하고 희망에 넘쳤던 종족의 무덤 앞에서 슬퍼해 줄 수도 없으리라. 하지만 내가 왜 이를 불평해야 하는가? 내가 왜 우리 부족의 운명에 대해 불평해야 하는가? 부족이란 그저 각각의 인간들로 이루어졌을 뿐인 것을. 부족들은 바다의 파도처럼 왔다가 가버리기 마련이다. 이것이 자연의 순리이다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백인들이 멸망하는 시대는 아직 멀리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때가 되면 반드시 올 것이다. 그대들 하느님과 함께 친구처럼 걷고 이야기하는 백인들조차도 이 공통된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결국 우리는 한 형제일지도 모른다. 두고 보면 알게 되리라.

We will ponder your proposition and when we decide we will let you know. But should we accept it, I here and now make this condition that we will not be denied the privilege without molestation of visiting at anytime the tombs of our ancestors, friends, and children. Every part of this soil is sacred in the estimation of my people.

그대들의 제안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겠다. 그리고 결정이 나면 그대들에게 기별하도록 하겠다. 하지만 설혹 우리가 그 제안을 받아들이더라도 한 가지 조건을 달고 싶다. 즉 우리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우리 조상들과 친구들의 무덤을 마음대로 방문할 수 있는 특권을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이 땅의 어느 곳도 우리에게 성스럽지 않은 곳이 없다.

Every hillside, every valley, every plain and grove, has been hallowed by some sad or happy event in days long vanished. Even the rocks, which seem to be dumb and dead as the swelter in the sun along the silent shore, thrill with memories of stirring events connected with the lives of my people, and the very dust upon which you now stand responds more lovingly to their footsteps than yours, because it is rich with the blood of our ancestors, and our bare feet are conscious of the sympathetic touch. Our departed braves, fond mothers, glad, happy hearted maidens, and even the little children who lived here and rejoiced here for a brief season, will love these somber solitudes and at eventide they greet shadowy returning spirits.
모든 언덕, 모든 계곡, 모든 벌판과 덤불 숲들은 우리 부족의 과거의 아련한 추억이나 슬픈 경험으로 인하여 신성한 장소가 되어 있다. 엄숙한 위엄 속에 잠겨, 고요한 해변을 따라 묵묵히 누워있는, 저 태양열에 달아오른 바위들 조차도 우리 부족들의 운명과 연관된 과거의 사건들에 대한 기억으로 전율하고 있다. 그대 발 밑의 흙 조차도 그대들보다는 우리들의 발소리에 더욱 다정한 응답을 보낸다. 왜냐하면 그 흙은 바로 우리 조상들의 유골이며, 우리의 맨발 또한 우리 형제들의 생명이 충만한 토양이 보내는 따뜻한 촉감을 절절이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이 곳에서 살면서 기쁨을 누렸지만 이제는 이름조차 잊혀진 검은 문신을 한 용사들과 다정한 어머니들, 생기발랄한 처녀들과 어린 아이들은 아직까지도 고독한 이곳을 사랑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숨겨진 안식처는 황혼녁이 되면 음울한 정령들의 출현과 함께 어슬픗한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And when the last Red Man shall have perished, and the memory of my tribe shall have become a myth among the White Men, these shores will swarm with the invisible dead of my tribe, and when your children's children think themselves alone in the field, the store, the shop, upon the highway, or in the silence of the pathless woods, they will not be alone. In all the earth there is no place dedicated to solitude. At night when the streets of your cities and villages are silent and you think them deserted, they will throng with the returning hosts that once filled them and still love this beautiful land. The White Man will never be alone.
그리하여 마지막 인디언이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리고 그의 기억마저도 백인들 사이에서 옛이야기가 되고 난 다음에도, 이 해변들은 우리 부족의 보이지 않는 영혼들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그리고 그대들의 아이들의 아이들이 벌판이나 상점, 차도 또는 숲의 고독 속에서 혼자라고 느낄 때도, 그들은 결코 혼자가 아닐 것이다. 이 세상 어느 곳도 절대적으로 고독한 곳이란 있을 수 없다. 밤이 되어 그대들 도시와 마을의 거리에 정적이 내려서 그대가 인적이 모두 끊어진 것으로 여길 때, 그 곳에는 한 때 그 곳에 살았고 아직도 아름다운 그 땅을 사랑하고 있는 영혼들이 모여들 것이다. 백인들도 결코 홀로 있을 수는 없다.

Let him be just and deal kindly with my people, for the dead are not powerless. Dead, did I say? There is no death, only a change of worlds.
죽은 사람들이라고 완전히 힘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니 부디 살아있는 우리종족들과 죽은 사람들에게 공정하고 친절하게 대해주기를 바란다. 내가 죽음이라고 말했나? 사실 죽음이란 없다 단지 변해가는 것일뿐.

(여러가지 블로그 자료에서 인용 편집)

 

 시애틀 추장

 시애틀시의 역사는 150년여. 1851년 알키포인트에 최초의 정착촌이 들어섰고, 1853년 마을이 건설돼 인디언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인근 산악지대 울창한 삼림자원을 토대로 제재업의 중심지로 성장했으며, 1893년 그레이트노던 철도 개통과 함께 철도 종착지로서 급속히 발전했다.

육지로 둘러싸인 시애틀 항구는 1890년대 유콘 및 알래스카 골드러시 때 주요 보급지가 됐고, 81㎞가 넘는 선창 등을 갖추며 국제적인 항구로 발전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일찍이 발전했던 조선과 항공산업에 힘입어 큰 번영을 누리기도 했다. 지금은 대규모 어업선단과 퓨젓사운드, 올림픽 페닌슐러 등으로 오가는 연락선의 모항 역할을 한다.

대자연이 아름다운 시애틀은 항공기 제조와 전자공학, 식품가공업이 발달한 산업도시기도 하다. 세계 최대 항공기 제조회사 보잉의 공장과 본부, 세계 제일의 소프트웨어 마이크로소프트사, 스타벅스ㆍ시애틀스 베스트ㆍ털리스 커피 등 유명 커피 브랜드 전문점의 본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기계류, 목재 등 임산물 관련 제조업과 은행ㆍ보험업, 운송업 등도 이 도시의 기간 산업이다.

 

 

 



 

 

 

 

Concerto for oboe, violin, violoncello

 

and orchestra, in D major  

 

살리에리 / 오보에, 바이올린, 첼로 를 위한 삼중 협주곡

 

 Salieri, Antonio, 1750∼1825

 

 

 

Heinz Holliger, Oboe

Thomas Furi, Violin

Thomas Demenga, Cello

Thomas Füri, Conductor

Berne Camerata

 

 

 


1악장, Allegro moderato

 


2악장, Cantabile

 

3악장, Andantino

 

 

Salieri, Antonio, 1750∼1825

 

 

오스트리아의 작곡가.그의 오페라들은 18세기말 전유럽에서 갈채를 받았다. 베토벤, 슈베르트,

리스트의 스승으로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부속성악학교에서 배우고 또 그곳 궁정악장 가스만

에게 작곡을 사사했다. 1766년 가스만과 함께 빈에 갔고, 70년에는 여행중인 가스만을 대신

하여 빈 궁정극장의 지휘자가 되었다. 74년까지 9곡의 오페라를 작곡하였으며 74년 가스만이

별세한 후는 궁정작곡가 및 이탈리아 오페라 지휘자가 되었다. 78년에 이탈리아에 가서

베네치아, 로마, 밀라노 등 각지에서 자작의 오페라를 공연하였다. 이 무렵부터 의식적으로

글룩의 오페라 양식을 흡수하게 되었다. 1788∼ 1824년 빈 궁정악장이 되었으나 1790년

이후는 오페라의 지휘를 그만두고 궁정합창단 지휘에 전념하였다.

 

1818년까지 <음악예술가협회>의 지휘자도 겸임 24년에 은퇴 그는 빈 악단 의 중진으로서 젊은

작곡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 하이든, 베토벤, 슈베르트 등과는 친구 관계였지만 모짜르트

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모짜르트 독살설까지 유포되었으나 이는 사실무근이다. 40곡

이나 되는 오페라는 독일풍으로 씌어졌고 선율 및 극적 표현이 뛰어나며 특 히 성악처리가 훌륭

하였다. 오페라 외에도 미사, 오라토리오 등의 종교음악, 기악곡도 남겼다. 16세 때에 오스트리아

궁정작곡가이자 궁정악장이던 F.L.가스만의 인정을 받아 빈으로 간 그는 황제 요제프를 만날 수

있었다. 그의 첫 오페라 〈여류문인들 Le donne letterate〉은 1770년 빈의 부르크 극장에서

공연되었다.

4년 뒤에 요제프 황제에 의해 궁정작곡가로 임명되었고, 1788년에는 궁정악장이 되어 이후 36년

동안 일했다. 재직중 오스트리아의 극장들뿐만 아니라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극장들을 위해서도

여러 오페라를 작곡했다.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인 프랑스어 오페라 〈타라르 Tarare〉(1787)는

이탈리아어에 의한 〈Axur, re d'ormus〉로도 공연되었고, 빈 사람들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Don Giovanni〉보다도 이 작품을 더 좋아했다. 1804년에 공연된 마지막

오페라를 끝으로 이후 종교음악 작곡에 몰두했다. 요제프 하이든과 루트비히 판 베토벤과 친교를

맺었고, 특히 베토벤에게는 대위법을 가르쳤으며, 3곡의 바이올린 소나타 작품 12번을 헌정했다

(1797). 이에 비해 모차르트는 살리에리를 불신했으나, 그렇다고 살리에리가 자신에게 독약을

먹이려 했다는 모차르트의 생각은 근거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전설적 내용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오페라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Mozart et Salieri〉(1898)의 기초가 되었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를 좀더 세심히 다룬 작품은 피터 셰퍼의 희곡 〈아마데우스〉

(1979, 영화화 1984)이다.

 


 

 

 

 


 

그동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