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버그로 돌아오며 찍은 농촌 풍경입니다.
세계의 곡창답습니다.
저기 아래에 올리는 또다른 농가들은 오래되어서 순환 단계에 들어간 정경들입니다.
풍상을 겪고 이제 은퇴하는 농가 건물들이 카메라의 렌즈를 유혹합니다.
아래에서 부터는 일반 서술체로 이야기를 올리려 합니다.
한나절에 걸친 크랜브룩 아카데미 캠퍼스 구경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아름다운 정경은 뽐냄이 모자란다는듯 밖으로도 기세가 뿜어져나왔다.
이제 가까이에 있는 아우의 집으로 함께 돌아갔다가
떠날 순서였다.
돌아가는 고속도로에 오르니 앤 아버, 랜싱, 플린트, 칼라마주 등의 표지판이 보인다.
이스트 랜싱에 있는 미시간 주립대학(MSU)에 교환교수로 머문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순수 한국 유학생이 스물 다섯 명 정도였다.
지금은 몇 백 명 수준이라는 소리를 들은적이 있다.
이스트 랜싱과 앤 아버와 "칼라마주"에는 재작년인가 다시 가보았다.
산천은 의구하였다.
미시간에도 강이름 "머스키간", 마을이름 "또또와"(토러와)
신발을 일컫는 모카신 등 인디언 유래가 많은데
칼라마주도 그런 연고의 지명.
1968년 1월에 저 유명한 푸에블로 호 납치사건이 있었다.
일 년 만에 승무원들이 풀려났는데 부커 함장이 쓴 수기가 기억에 남는다.
예컨대 북한 당국은 포로들이 "조선말"을 쓰도록 강요하였는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말을 배우기도 쉽지 않았지만 군인으로서의 자존심도 있었을 것이다.
어지간 한 건 묵언수행이었으나
제일 힘든게 화장실 갈 때였다고 한다.
"변소 갈랍니다"
이걸 둘러대어 말할 때는
"벤조 칼라마주 미시간"
벤조 악기와 칼라마주 마을과 미시간 주가 고생을 한 셈이다.
푸에블로 호는 지금도 대동강 어디메에 승리의 표상과 그 전리품으로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대동강 어디메란 제너럴 셔먼 호 격침비가 있는 곳이라고 한다.
제너럴 셔먼호의 격침은 관군들 보다 평양 인민들이 화공으로 양키철선(洋鬼鐵船)을 제압한
역사적 전승이라고 그쪽에서는 주장하는 모양이다.
말하자면 관아의 기록과는 주체가 다르고
위대한 수령의 선조도 그 대열을 이끌었다고 그쪽 역사는 강조한다는 것이다.
남쪽 대학생들이 낸 "자주 신문" 비슷한 이름의 기사에 인용된 내용이다.
공장의 슬러지와 쓰레기를 매립하는 광경이 난지도를 생각케 한다.
유레카!
유레카가 여기에 와 있다니 볼때마다 재미있는 지명이다.
나도 깨달았다
이 어드메에 아르키메데스의 고향이 있다고^^.
다시 또 허름한 농가 풍경이 카메라 렌즈를 이끈다.
농촌의 황폐를 이야기한다기 보다는
새 곳간과 헌 곳간의 순환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농산물 생산의 선 순환구조야말로 인류를 받치는 큰 틀이 아닌가 한다.
문득 이번 여행을 반추해 본다.
이제 동생 내외도 은퇴를 기약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이 길도 자주 다니게 될지 모르겠다.
아래에 보이는 저 그네를 타고 사촌들끼리 웃고 놀던 그 아이들도
이제는 모두 어른들이 되어서
자기 아이들을 키우고있다.
그래도 옹기장이는 옹기를 팔고 뒷뜰의 개울물은 흘러서
붉은 강, 루즈 리버(Rouge River)로 합수하여
마침내 이리호로 들어가리라.
귀가 길에 생긴 교통 에피소드 하나는 다음 기회를 봅니다.
1968 미국 해군 정보선 푸에블로 호 납치사건 발생
1968년 1월23일 미 해군 정보선 푸에블로 호(USS Pueblo, AGER-2)는 승무원 83명을 태우고
북한 해안 40km 거리의 동해상(동경 127 °54.3 ‘, 북위 39°25′)에서 업무 수행 중
북한 해군 초계정 4척과 미그기 2대의 위협을 받고 나포됐다.
이 과정에서 1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당했다.
미국은 당시 “원산 해안 기점 12마일을 벗어나는 공해”라면서 북한에 승무원 송환을 강력요구,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 호와 제7함대 구축함 2척을 출동시켰다.
그러나 1968년 12월23일 미 육군 소장 길버트 우드워드가 미국 정부를 대표해
북한 영해 침입 및 첩보 행위를 인정하고 재발방지와 사과하는 문서에 서명했다.
북한은 이에 따라 사건 발생 후 11달이 지나 판문점을 통해 승무원 82명과 유해 1구를 송환했다.
푸에블로 호는 현재 평양의 대동강변에 전시돼 있다.
미 해군은 현재 푸에블로호를 취역 함정으로 표기하고 있다.
2012년 1월 현재 푸에블로 호는 미국에 반환되지 않은 상태이며,
양국 간 민간교류 등 관계개선 의제에는 항상 ‘푸에블로 호 반환’이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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