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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바이얼리니스트 이야기
(가족이란 무엇인가)
피츠버그라고하면 예전에는 디트로이트와 더불어 철강과 중공업 도시로 이름난 곳이었다.
미국의 제철 산업이 포항 제철 등 신흥국의 약진으로 고로의 불을 끄게 되면서 두 도시는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피츠버그는 생명과학, 의료, 컴퓨터, 영화, 국제 회의 등 문화 및 지식 산업을
유치하면서 제2의 도약을 꾀하여 도시의 수준 자체가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
표현이 어떨지 모르지만 한동안 우리나라를 떠들석 하게 만든 줄기세포 관련의 사건과 이곳의
큰 대학 연구소의 이름이 엮여서 매스컴에 오르내린 전말도 이 도시의 발전을 시사하는 하나의
에피소드인가 한다.
개인적 연고가 있어서 이 도시에서 두어해 살기도 하였고 지금도 여름 한 철이면 딸네가 사는
이곳에 와서 피서겸, 손주들의 여름 특별활동을 도와주기도 한다. 겨울에 눈이 많은 보상인지
여름은 우리나라 태백, 정선과 비슷하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미국의 어지간한 도시들은 나름으로 교향악단들을 키우고 있는데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PSO)는 꽤 이름난 교향악단으로 우리나라에도 몇차례 온걸로
기억 된다.
며칠전, 그 교향악단의 야외 여름 연주회에 다녀왔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일과가 있어서 모두
빠졌다. 넓은 잔디밭에 접는 의자와 일용할 음식과 와인을 갖고와서 먹고 또 마시며 교향악이
울려퍼지기를 기다리는 모습은 멋진 그림이 아닐 수 없다.
갑자기 어떤 소녀가 조금 멀리서 손을 흔든다. 가만히 보니 둘째 손주의 한 반 친구이자 같은
주택 단지에 사는 소녀이다. 가끔 집으로 놀러오면 피아노를 치는데 예사롭지 않다.
어머니는 중국계 바이얼리니스트로 피츠버그 교향악단의 단원이라고 한다.
이혼 가정이라서 친부와는 가끔 날을 정하여 보는 모양이다. 지금은 백인 계부와 사는데
어머니와의 사이에 남자 동생이 하나 태어났다. 한 동네 가까이 사니까 어린 사내아이도 자주
본 기억이 난다.
계부는 변호사로서 로펌에 다닌다고 하였다. 이날 행사에는 출연자인 바이얼리니스트를 비롯,
네 사람이 총 출동을 하여서 야외 축제에 나온 모습이다.
나도 이날 부모와 정식으로 인사를 차리고 사진도 한장 동의를 받고 찍었다. 백인 계부는
사람이 아주 좋아보이고 사내 아이는 부끄러움을 타는 얼굴이었다. 국제화라더니 국제가족이
따로 없었다.
그런데 들리는 소문으로는 백인 남편이 법적 혼인관계는 아니고 "보이 프렌드"라고 그 음악인
이 주위에 알린다고 한다. 가만히 있으면 넘어갈 부분의 프라이버시를 왜 구태어 밝히는지,
그 내막은 알길이 없다.
우리말로는 "동거인"이라고나 할까. 굳이 잘 불러주려니까 그렇지, 보이 프렌드라니, 요새
시쳇말로 "남친"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런 표현의 언저리에 부끄러움이나 망설임이 없어
보인다.
그 바이얼리니스트가 유럽이나 미국내 순회 연주를 떠나서 보름 정도 집을 비울 기회가
있는데, 그럴때는 남친이 변호사 사무실에 휴가를 내고 집을 지키며 아이들 건사를 한다니
우리 상식, 아니 우리 세대의 상식으로는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첫째 손주 친구의 경우도 생각이 난다. 괜찮은 활동에 뽑힌 몇명이 시시때때로
모여서 어른이 볼때는 대단하지도 않은 "대단한" 프로젝트를 도모하는 모양이다.
어느날인가 그날도 돌아가며 갖는 모임이 누구네 집에서 있다고 하여 전에 데려다 준 집
주소를 GPS에서 찾아냈더니 그 주소가 아니라고 한다.
"맞다, 맞어!" 내가 자신있게 주장하였다.
내 비록 나이가 들어 주소를 외우지는 못할지언정, 한번 찍어놓은 주소를 가려내지 못하랴.
그런데 듣고보니 그전에 갔던 컨템퍼러리 건축 양식의 멋진 집은 "친모"와 계부가 사는 집이자
그 아이가 밥먹고 학교 다니는 가정이었고 이날 가는 곳은 "친부"가 새로 얻은 아내와 사는
집이었다.
그날은 친부와의 친견일이었던 모양이다. 현관 문을 열어주러 나온 사람은 아버지의 여인
이었는데 계모라고 불러야 될는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얼핏보아서 친모 보다 입성도 후줄근
했고 모양도 수수하였다. 아니 그뿐아니라 집의 꼬라지도 훨씬 못했다.
이 남자가 이혼 다툼에서 지고 돈을 다 빼앗긴 모양같은데 여인까지 전처보다 못생겼다---,
거기다가 사랑하는 딸까지 빼았겼으니 미국에서 이혼 당하면 남자는 거지가 된다는 통설이
과장은 아닌 것 같다.
아니 비단 미국 뿐이랴, 우리나라도 통계상으로는 OECD 국가 중 상위 순서로 이혼율이 높다고
하니, 요새 젊은이들이 시집, 장가 안가는 이유중의 하나는 될듯싶다.
어디 그뿐이랴, 시집, 장가 잘 가고 잘 보냈다는 주변인들의 내막 가운데에는 자녀들이 이미
이혼의 뼈아픈 경험까지 겪은 경우도 심심치 않다고 쉬쉬한다.
그런 말들을 뒤에서 하는 것도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다. 언제 누가 또 그런 고통을 겪게 될지
누가 알랴.
농담으로 도는 말, "자식들 취직시험 치는데 까지 새벽에 좇아다녔는데 이혼한 자식들 슬하의
손주 키워주다가 나중에는 환갑잔치 준비까지 해 줄 판"이라는 말이 그저 농담만은 아닌
시절이 올는지도 모르겠다.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PSO)는 과연 대단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날 이른 저녁, 바이얼리니스트 래이통(레이철)이 아시아 얼굴의 딸과 서양얼굴의
아들을 데리고 동네 산책을 나왔다. 변호사는 보이지 않았다.
아내의 부재중 밀린 일로 퇴근이 늦거나 부억에서 저녁을 짓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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