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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예감

원평재 2013. 8. 8. 08:17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은 피츠버그 인근 마을에는 가을이 이미 오고 있습니다.

여름내내 사흘이 머다하고 밤 마다 비가 내려주더니 더울 틈도 없이

어느새 하늘이 높고

가을 바람 같은 게 벌써 불기 시작하여서 나이 불문 가슴만 서늘하게 합니다.

 

이 동네 터줏대감들도 가슴 속 감성은 마찬가지인지 쓸쓸하고 허허롭다고

야단들입니다.

더운 여름을 맛보지 못한 탓이기도 할 것입니다.

 

가을은 "가실걷이"의 희열과 함께  "가실 세월"로 가슴 서늘한 계절입니다.  

 

이 맘 때면 뚫린 가슴 채우라고 이리저리 유목민처럼 크레인 까지

대동하고 다니는 "이동 놀이 동산"이 사나흘간 이곳 교외에도 말뚝을 박고

세워집니다.

세월 그냥 보낼 수 없어 이것 저것 올라타도 보고 시시덕거리며

잠시나마 열락에 잠겨 허허로운 마음을 채워보라는 것입니다.

 

그래봐야 회전목마,

제 자리로 돌아오는 환상방황

"링 반데룽"이겠지만

 

 

(시)  가을 예감

 

눈마을이라 지난 겨울 치룬 게 많아서인가

지친 여름 일찍 덜어주고 하늘은 하늘높이 올라가서

가을 바람 타고 오고 갈 철새들의 먼먼 시선 이끈다.

 

풀과 나무의 열음은 여름 일찍이 공간을 잡더니

밤마다 넉넉한 이슬에 빗방울 겹쳐

또 낮이면 구름이 틔어준 햇살의 추억으로 속을 채우고

겨울엔 몸 쟁여 지낼 빈 광 쪽 힐끗 바람결에 쳐다본다.

 

봄의 파종과 밑거름, 여름 가지치기와 두엄 더 넣기

가을 걷이까지 혼신의 땀내를 마다하랴

가슴 저려오는 근원은 어디에서 길을 찾아오는가

 

동네 가장자리 빈터가 저리 넓었나

올해도 어김없이 뜨내기 패들 말뚝밖고 펼친 놀이기구에

노소없이 숙명으로 회전목마되어 달리건만

떠난 곳에 다시 발딛는 환상방황 세월만 달렸을 뿐

 

                                                        * 2013년 8월,  피츠버그 근교에서

 

Alexis 캠퍼스는 종교 학교가 들어서 있는 넓은 공간입니다.

놀이동산 시설은 영리 목적의 회사에서 들여오고

음식 등의 판매는 자원 봉사자를 모집하여 수익금은 Alexis 학교에 도네이션 합니다.

무희들은 모두 마이클 댄스 클럽에 다니는 학생들인데

댄스 캄파니를 만들어서 수익도 낸다고 합니다.

클럽 운영자는 한국인 발레리노와 발레리나 출신입니다.

매우 착한 사람들입니다.

축제의 날에 젊은이들은 꿈과 사랑을 펼치고---.

축제란 어린이들에게는 가물거리는 기억으로 남고 하이틴들에겐 추억으로

어른들에게는 망각으로~

 

마이클 댄스 클럽에 다니는 아이들의 학부형들도 자원 봉사를 많이하며

자녀들의 공연 기록은 진학 때의 좋은 참고 자료가 됩니다.

 

엄마들의 열성이 대단합니다.

 

공연장은 항상 무대 뒤가 재미있는 공간입니다.

가설 무대의 뒤도 마찬가지입니다.

 

 

피츠버그의 하늘은 변화무쌍입니다.

이날도 밤이 되자 매우 추웠습니다.

무지개 토막이 재미있습니다.

 

 

 

제일 비싼 Monk's Beer 한잔을 맛봅니다.

스님들의 "곡차"라는 표현도 생각 났습니다.

생맥주를 따루는 저 부인들 부터 모두 자원 봉사자들입니다.

 

 

 

 

 

 

 

 

 

 

 

 

밤이 되면 모든 것이 평상의 모습에서 변태(metamorphosis)합니다.

 

 

 

동네 아주머니인데 아이가 다섯이라고 합니다.

 


 

 

 

 

 


 

Aria Di Festa (축제의 노래)
(Come Quei Giorno)

Sung By
Milva



Sciolgo per te, solo per te, i miei capelli,
come li avevo la prima volta che m'hai baciata.

Aria di festa, come quel giorno,
forse stasera ti rivedrò.

Guardo una rosa,la prima rosa della mia vita,
per i tuoi occhisul mio vestito la metterò.

Aria di festa,come quel giorno,
forse stasera ti rivedrò.

Il nostro giorno verrà,
l'hai detto anche tu. Ma quando?
Per non lasciarci mai più,
l'hai detto anche tu. Ma quando?

Aria di festa, come quel giorno,
forse stasera ti rivedrò.

Aria di festa,come quel giorno,
forse stasera ti rivedrò.

Il nostro giorno verrà,
l'hai detto anche tu. Ma quando?
Per non lasciarci mai più,
l'hai detto anche tu. Ma quando?

Aria di festa come quel giorno,
tra le mie braccia ti stringerò!

달무리 지는 창문을 열면 싱그런 바람
꽃내음 속에 춤추는 여인 아름다워라
황홀한 달빛 꿈에 잠기면 다시 또 보이네
축제의 밤

축제의 노래 함께 부르던 즐거운 날에
스치듯 만나 잊을 수 없던 그리운 여인
가버린 여인 눈에 어리면
다시 또 보이네
축제의 밤

언제나 다시오나 그리운 축제의 그 밤
금물결 달빛 속에 춤추던 그리운 여인
사모한 마음 서글픈 정은
가실 줄 모르네

그리워서
가버린 여인 눈에 어리면 
다시 또 보이네
축제의 밤
언제나 다시오나 그리운 축제의 그 밤
금물결 달빛 속에 춤추던 그리운 여인
사모한 마음 서글픈 정은
가실 줄 모르네
그리워서.

 

밀바(마리아 일바 비올카티)는 1939년 7월 17일 이태리 페라라의 고로에서 태어났다. 1959년 이태리 국영 방송국인 RAI에서 주최 하는 신인발굴대회에 참가하였고 7,600명의 참가자 가운데 1위를 차지하였다. 이어 밀바는 에디뜨 삐아프의 유명곡들을 자신의 이 태리어 버전으로 녹음한 'Milord(각하)' 앨범을 발표하였다. 1961년 산레모 가요제에 'Il Mare nel Cassetto(서랍속의 바다)'로 3등상을 수상하였다. 밀바는 그해 이태리 레코드 비평가들로부터 '올해의 가수'로 선정되었다.


밀바는 영화에도 출연하기 시작했는데, 당대 유명배우였던 지나 롤로브리지다 와 엔리코 마리아 살레르모와 함께 '이포리타의 아름다움' 이란 영화로 데뷔하였다. 1963년은 이제까지 주로 이태리 곡들을 불러왔던 밀바에게 변화가 시작되는 해로 기록되는데, 영가(靈歌), 가스펠 그리고 저항가요등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 당시 나온 음반‘Quaggiu in Filanda(여기 핀란다에서)’ 와 ‘John Brown (존 브라운)’은 대표적으로 사랑받은 곡이다. 1965년에 밀바는 '밀라노의 작은 극장'에 처음 서게된다. 그리고 'Exodus' (출애굽기), 'fischia il vento' (바람이 부네)' 'Addio Lugano Bella (안녕, 아름다운 루가노)'와 같은 곡이 수록된 앨범 'Songs of Freedom (자유의 노래)'을 녹음한다.


폴 팻이 밀바를 초대해 해방 20주년에 그녀의 곡들을 노래했고, 다시 밀바는 리사이틀 '그렇다면 이것이 위기인가?' 의 주인공인 게오르그 스트레러와 함께 작업하였다. 이 작업은 '밀라노의 작은 극장'의 이태리 투어로 이어진 것이다. 이와 아울러 게오르그 스트레러가 감독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와 노래'로 이른바 브레히트(Brecht) 적인 쇼를 선보이기 시작한다.

 



1968년 밀바는 지안프란코 데 보시오의 '루잔테'에서 산문극으로도 데뷔했으며 이를 계기로 북구 유럽을 투어했다. 1969년에는 여배우로서로도 정점에 이르는데 지노 브라르니에리와 함께 출연한 가리네이와 지오바니니가 감독한 'Angels in Flag(깃속의 천사)'로 '실버 마스크'를 획득했다. 1972년 밀바는 그리피 패트론 제작의 영화 'Of love is died(사랑은 가고)에 실바나 망가나와 루크 메렌다와 출연하면서 영화계로 다시 발을 돌렸다. 베니스에서는 'The Philander (연애주의자)'라는 영화의 최고 판매고로 '곤돌라 도로'를 획득하기도 했다.


1972년 앨피로 발매된 'Milva signs Brecht(밀바 브레히트를 노래하다)'로 독일 비평가들이 수상하는 음반상을 수상했다. 밀바는 필리포 지그스 감독의 두 전쟁사이의 노래 Songs between the two wars의 삽입곡 Nulla Rimpiangero(Je ne Regrette rien)으로 베를린 페스티발에서 최고의 영애를 안았으며 이곡으로 이태리와 유럽전체를 오랫동안 투어했다.


1978년 밀바는 밀키스 테오도라키스와 음반을 발표했으며 이 앨범은 곧바로 독일에서 플래티넘을 기록했고 'Les Enfants du Piree(Uno a te uno a me)' (피레의 아이들(하나는 너를 위해, 하나는 나를 위해)'라는 곡은 앨범의 백미로 꼽힌다. 1989년에 밀바는 아스토르 피아졸라와 공연을 가졌으며, 결과물인 탱고 델라 겔로시아 와 탱고 델라 카피네레는 주요 유럽 페스티발의 무대에 올랐다. Et Maintenat(Che mi faro), Nulla Rimpiangero(Je ne Regrette rien)의 공연과 함께 빠리의 카지노 극장에서 협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