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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왜 가장 잔인한 달인가?

원평재 2014. 4. 6. 23:23

 

 

 

 

 

 

 

 

 

 

 

4월은 왜 가장 잔인한 계절인가?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4월이 오면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표현을 즐겨쓴다.

꽃피는 4월이 왜 가장 잔인한 달인가?

많은 사람들은 이 말을 반세기 전 꽃다운 청춘들이 자신의 목숨을 독재타도의 항거에 바치고

스러져간 4-19 혁명에 연계하여 해석한다. 일리가 있고도 남는 말이다.

하지만 "잔인한 달"이라는 표현의 뿌리가 순전히 4월 19일의 피어린 희생에서 나왔다고만

생각하면 조금 무리가 따른다. 아무튼 그 부분은 아래쪽으로 잠시 미루고 우선 4-19 혁명

의 연원에는 "2-28 민주화 학생 운동"이 있었음을 밝히고 싶다.

 

지금은 많이 잊혀졌지만 반세기 전 4-19혁명을 이끌어낸 앞 단계는 "2-28 학생 의거"였고

국회에서도 법령으로 인준된 역사적 사실이다. 당시 자유당 독재 체제에서 정-부통령 선거를 

앞 둔 집권 정권은 2월 28일 일요일에 야당인 장면 부통령 후보가 대구 수성천변에서 선거

유세를 펼치려고 하자 학생들을 강제로 모두 등교케 하였다. 이에 대구시내 주요 고등학교

학생들은 일요 등교일에 학교에 모였다가 교문을 박차고 "독재 타도"를 외치며 시내로 

향하였고 경찰은 강제 해산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하였다.

그때까지 자유당 독재에 반대는 하면서도 행동에 나서지 못했던 침묵의 다수가 드디어

항거에 나서기 시작한 발화점이 바로 이때가 된다. 이 사건에서 사람이 죽지는 않았으나 

이 운동을 주도한 학생들은 막강한 독재 체제에 사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로 몸을

던진 것이었다. 

이에 자극을 받고 분노한 전국의 양심들은 처음 산발적으로 항거의 대열에 나서다가

3월 15일 마산에서 첫 희생자가 나오면서 마침내 4-19 학생 혁명으로 민주화의 봉화가

타올라 이 나라를 불 밝혔다고 할 것이다. 

 

미주 교포들은 4월이라고 하면 지금으로부터 딱 20년 전 LA에서 일어난 흑인 폭동을

떠올린다. 물론 흑인단체를 비롯, 진보적 인사들은 이 사건을 폭동이라기 보다는 민권운동의

한 맥락으로 보기도 한다. 그럼 운동 때문에 한인 상점만 박살이 났단 말인가.

억울한 일이다. 

한편 한인들로서는 사분오열되었던 교포사회가 크게 통합되고 자유와 민주와 번영이란 

스스로 결집한 힘으로 지키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음을 체험한 달로 기억을 가다듬는다.

교민들의 많은 업소와 재산들이 파괴 약탈되었으나 해병 전우회를 비롯 젊은이들이 총을

들고 모여서 총격전까지 벌이며 지켜낸 대형 수퍼 마킷 옥상에서의 4월 며칠간은

영웅 전설의 무대가 된다.  

 

맨처음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부른 사람은 시인 T. S. 엘리엇이었다. 그는 433행에

달하는 장편시 "황무지(The Waste Land)"에서 첫행을 "April is the cruellest month"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시행을 이엇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정염을 뒤섞은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겨울은 따뜻했었다/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

가냘픈 목숨을 마른 구근으로/먹여 살려주었지. 

 

아무리 시인의 감성이란 경이롭고, 시적인 논리는 비약을 전제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죽은

땅에서 잠든 뿌리를 흔들어 깨우는 달이 어찌 가장 잔인하다는 누명을 써야할까?

엘리엇이 이 시를 발표한 때는 1922년, 일찌기 인류사에 그 유례가 없던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이 세상을 한바탕 뒤집어 엎어놓은 시기였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에 전율

하면서도 그 몰문명적인 향방과 의미에 아무런 판단을 내릴수 없었으며 의식은 죽어있거나

적어도 가사 상태였다.

자, 이러한 황무지 상태를 깨우치고자 하는 의식의 전령이 바로 4월이라는 은유라면 이 달은

차라리, 아니 마땅히 지탄의 대상이 되고야 말리라!

모두들 혼미한 정신 속에서 비틀거리며 "아, 차라리 지난 겨울은 따뜻하였네"라고 중얼거리는

좀비들의 세상, 겨울잠에 영혼을 맡기고 가치의 무가치화를 즐기려는 세상무리로 부터 4월은

잔인한 존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린시절 불침을 놓거나 맞아본 기억을 우리는 갖고있다. 초저녁 잠이 많아 놀이판에서 일찍

선잠에 떨어진 아이가 불침의 희생자가 된다. 달콤한 잠에 빠져서 단꿈까지 막 꾸려는 판에

불침이 들어오면 주먹다짐으로까지 발전한 체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의식은 활성화를 항상 지향하는 것 같지만 망각의 눈과 가냘픈 목숨을 유지시켜주는

구근 상태를 즐기고 희구하는 아주 간사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두드려 깨우는 것이 진정한 시인의 시심이자 그 "노릇"이 아닌가 싶다. 또한 그 시심은

시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순정한 젊음의 특권이기도 하고 그런 정신을 받아들이는

동시대인들의 자격이기도 하리라. 그런 자격있는 사람들이 빚는 시대정신은 재생과 회복과

희망의 동심원이리라.

 

그러고 보니 4-19가 있어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성급히 해석하여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닌하다. 독재의 가사상태에서 겨울잠과 망각이나 즐기던 이땅에 4월이라는 달은 피까지 

흘리며 민주의 숨결을 회생시켜 주었으니까. 언뜻 잔인한듯 흔들어 깨워서 재생과 신생이 

오게하였으니까.

생각해 보니 부활절도 이 달에 있다.

 

<끝>

 

 

 

 

 

 

편지

 

 

 시 : 윤동주 / 작곡 : 고승하 / 노래 : 안치환



그립다고 써 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 만 쓰자

긴긴 사연을 줄줄이 이어

진정 못 잊는다는 말은 말고

어쩌다 생각이 났었노라고 만 쓰자

그립다고 써 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 만 쓰자

긴긴 잠 못 이루는 밤이면

행여 울었다는 말을 말고

가다가 그리울 때도 있었노라고 만 쓰자

가다가 그리울 때도 있었노라고 만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