딕시랜드의 퇴마록
김 유 조
남편이 은퇴자로 보이는 세 커플과 한창때를 갓 넘긴 여성 연극배우 한 사람이 중형 밴을 타고
아틀란타에서 뉴올리언스로 향하였다.
청년 가이드 한 사람이 더 있었으나 그는 안내와 운전이라는 직분에 충실하였으니 승객은 일곱
명인 셈이었다. 모두 신 새벽에 집을 나선 셈이어서 그들은 우선 한인 마을 둘루쓰에서도
오리엔탈 마켓 거리의 설렁탕집에서 아침부터 먹었다.
혼자 온 여배우는 저 이름도 유명한 남지희였는데, 작년도에는 초반에 쏜톤 와일더의 "아우어
타운(Our Town)"으로 히트를 쳤다가 연말에 다시 올린 로드 쇼에서는 참패를 당했다고 밥을
먹으며 남 이야기하듯 연극계의 소식을 털어놓았다.
연말의 참패는 같은 작품이 비슷한 시기에 뮤지컬로 무대에 올라온 탓이 가장 컸고 또 연초에
히트를 쳤을 때의 최고 배역들이 로드 쇼를 준비하던 마지막 단계에서 이런 저런 사유로
재출연의 언약을 취소하는 바람에 막말로 개판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가끔 연극판의 거친 말도 마다 않는 여배우였는데, 연극배우란 모름지기 이런 모습
이구나 싶게 이목구비가 분명하고도 아름답게 조탁되어서 세월을 이기고 어쩌면 세파도
이기고 있었다.
"연극 인생이 가난하고 처량하죠?"
중소기업을 하다가 아들에게 물려주고 여행이나 다닌다는 부부의 부인이 갑작스런 여배우의
등장에 질렸는지 우선 공격적으로 나왔다. 그녀는 남편을 대할 때에도 그런 막가는 소리를
하여서 특별히 여배우가 화를 낼 분위기는 아니었다. 세상은 그렇게 오묘한 밸런스를 유지케
하고 있었다.
그 부인은 하루 작정 속에야 없었겠지만 어쩌다 이른 아침부터 남편을 무기질 급이라고 폄하
하여서 일행을 준비도 없이 깜짝 놀라게 하였었다. 하긴 그래봐야 내심 남편의 보호막을 믿는
구석이 더 큰 것도 은근슬쩍 들어내고 있었다. 그녀가 선포한 남편의 호칭은 윤 사장이었으니
자신의 신분은 당연히 윤 사장 사모님이었다.
"아이고, 사모님. 저도 비즈니스 계통에만 종사하던 사람이지만 예술이란---, 그러니까
헝그리 정신이 바로 예술혼이지요."
비즈니스만 하여서 그런 가 어법은 조금 매끄럽지 못하였으나 분위기 파악에는 일가견이 있는
노신사가 슬쩍 끼어들어서 탕평의 역할을 하였다. 이목구비 선명한 여배우가 아무리 넉넉한
마음을 가졌다고 하여도 어쨌거나 분위기가 좀 경직 되려는 순간, H 상사에서 전무까지 하다가
나왔다는 정 사장이라는 노신사가 분위기를 누그린 것이다. 전무 직책으로 퇴사를 하였으나
호칭은 당연히 사장으로 자리매김이 되었다. 하지만 회장이라는 데에까지는 여행 내내 격상이
되지 않았다. 연극배우는 그의 말을 반색하며 수용하였다.
"네, 연극하는 분들이 다 취로사업 대상자들이라고 스스로 낮추고 그래요. 실제로 IMF 직후
에는 그런 돈이라도 타내려고 연극 협회에서 정식으로 취로사업 명목의 일당을 신청한 적도
있었지요. 정말 연극인들이 다들 가난해요. 그래서 먹고 살려고 아르바이트를 따로 하는데
그나마 돈이 모이면 또 연극 올리는 데에 다 털어 넣지요, 호호호."
"요즈음은 문예 진흥 기금 같은 데에서 지원이 꽤 나오지 않나요?"
대체로 말이 없는 편에 속하던 마지막 남자가 대화에 잠시 끼어들었다. 서울에서 그날 새벽에
아틀란타로 막 들어온 커플의 남편이었다. 신분을 끝내 감추다가 어떤 계기에서 교수라는 그의
직함이 드러나기는 했다.
하지만 별로 신분을 내세우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정식 교수라기보다 대학 내에 부속된 평생
교육원 같은 데에서 강의를 하거나 백화점 문화 센터의 강사일 수도 있다는 추측을 불러일으
키기도 하였다. 부인의 입에서 가끔 남편의 직업이 교수라는 정황이 드러났으니, 설마 가짜
교수는 아닐 듯싶었다.
둘러대려면 창고나 건물을 하나쯤 소유한 사장님 행세가 훨씬 더 대접을 받는 세태에 특히
여행지에서 교수라는 그런 고리타분한 직업을 지어낼 일은 아닐 것이었다. 하여간 서울 본사
에서 자료를 받은 가이드의 그에 대한 호칭은 물론 "배 교수님"이었다.
"네, 문예 진흥 기금에서도 지원금이 나오고 몇몇 문화 단체에서도 보조금이 나오지요.
서울시에서도 나오고요. 그런 돈들이 전에는 선택과 집중을 하였는데 요즈음은 고루 조금씩
나누어 주는 정책으로 바뀌었는데 잘된 것 같아요. 보통 연극 한편 올리는데 최소 삼천만원 쯤
드는데 지원금이 천만원 만 나오면 나머지는 어떻게든 보태서 해 낼 수가 있거든요---."
"에게, 고작---."
또 윤 사장 사모님이었다.
"연극 한번 가보셨나요?"
남지희였다. 아침 햇살이 조금 더 퍼져서 그런지 이목구비가 더 당당하게 보였다.
"그게 모두 강북에 있어서---, 차 놓을 데도 마땅치 않고---."
사모님이 어물거렸다.
"요즈음은 청담동에도 몇 군 데 생기고 대학로 연극계의 남진 정책이 시작 된지도 벌써 여러 해
되었는데요."
여배우의 말에 이번에는 윤 사장 사모님이 바둑으로 치면 장고에 들어간 듯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한참 만에 그녀가 회심의 포석인양 말문을 열면서 판세를 뒤집으려하였다.
"연극배우들---, 가정이 복잡하잖아요? 가정이 중요한데."
"글쎄요, 가난하다는 점 빼고는 다들 건전해요. 요즈음 돈 조금 있다는 졸부들의 생활 보다는
모두 퍼펙트한 생활일걸요. 그 분들의 성실한 삶들이 존경스러워요. 아 물론 모두들 경제적
으로는 부족한 삶이지요. 돈 버는 일에는 다들 모자라요. 그러니 돈이 되지 않는 연극 같은
일에나 매달리고 빈털터리가 되는 투자를 하겠지요. 제 큰 아이가 카이스트에 다니는 대학생
인데 엄마는 나사가 좀 빠져서 존경스럽고 사랑스럽다는데요---, 호호호."
대마불상전이라고 했던가, 너무 큰 대항마를 임자로 만나서 사모님이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아하, 남지희 씨라면 무슨 문예지에서 읽었는데 부군이 외국계 투자 은행의 한국 지점 CEO
이시던데---. 그 분이 맞지요?"
배 교수가 역시 교수 수준으로 대화를 이었다.
"부끄러워요. 좋은 점만 맨 날 소개 되고 그래요. 지난번 아우어 타운을 연기하면서 생각이 많았
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 마을은 그렇게 탄생, 성장, 갈등, 화해, 그리고 패스 어웨이,
그러니까 소멸이 모두 적절히 안배되어있는 일종의 유기체 같은 게 아닌가, 그곳에서 나는 무엇
이 되어서, 아니 무엇이 되려고 살아가나---. 우리 마을, 아우어 타운 속에서 최소 단위인
나라고 하는 존재와 가정의 유기적 의미는 또 무엇인가, 그런 명상을 하게 되더라고요. 연극
배우 아니랄까봐 어쩌다 입이 터서 대사가 길었네요, 호호호."
그녀가 할 말은 다 하면서도 겸손 섞인 웃음소리로 대사를 끝냈다.
"아, 중요한 말씀입니다. 나도 인생 전부를 H 상사에서 보내고 전무까지 하다가 나왔는데도
며칠 전에 여기 몽고메리 현대차 공장에 들렀을 때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물론 대부분이 여기 미국인들이거나 교포 출신이라는 탓도 있겠지만---. 진작부터 그런
세태를 알고 있어서 나는 인생의 성취를 사람간의 관계에서 찾으려 하지 않고 내 개인적 만족
속에서 달성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요즈음 그동안 하고 싶었으나 못하고 지내온 음악, 특히
재즈 음악에 심취하고 있답니다."
정 사장의 말이었다.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데 하필이면 가볍고 쾌락적인 재즈인가요?"
또 윤 사장 사모님이었다. 이상하게도 매번 결기를 부렸다.
"재즈의 근원을 아시면 그런 말씀은 못하지요. 이야기 하자면 길지만 재즈는 흔히 생각하듯이
그렇게 표피적이고 불온한 음악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재즈가 블루스에서 나왔다면 놀라실
겁니다. 재즈에는 흑인들의 애환이 모두 녹아들어있습니다. 이때 느끼는 슬픔과 한의 측면은
흑인들의 운명에서 녹아나온 페이소스에 기반을 두었고, 또 한쪽 편 즐거움의 측면이라면
아마도 이승에서는 결코 얻거나 맛볼 수 없는 환상 속의 환희, 팬터지 엑스터시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저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 재즈의 본질에 대한 교과서 적인 설명을 지금 여기에서 기억으로만
하기는 불가능하고 또 이 윙윙거리는 자동차 안에서 이야기를 길게 나누기도 뭣합니다. 그래서
제가 만든 재즈 카페로 시간이 되실 때 한번 들어오셔서 이론과 실제를 모두 맛보시면 재즈의
본질도 터득하시고 앞으로 재즈를 더욱 깊이 즐기실 수 있을 것입니다. 남부 문화도 맛보시고
---. 제 카페 주소는 www.onjazz.co.kr 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그의 카페 주소를 받아 적었다.
"제가 이번 여행을 시작한 것도 사실은 재즈의 고향 뉴올리언스를 꼭 가보고 싶었기 때문
입니다. 제 시집간 딸이 녹스 빌에 있는 대학에서 소비자 심리학으로 교수를 하고 있는데,
이 달이 해산달이거든요. 여기 제 집사람이 거기 딸네의 출산을 뒷바라지 하러 미국 남부로
오는 길에 저도 따라 왔지만, 저는 그보다 사실 재즈 때문에 온 셈입니다.
미국 사람들도 남부, 특히 미시시피 강 끝의 뉴올리언스까지 와보기는 힘들어 하잖아요. 재즈
매니어인 저는 꼭 그 풍토에 한번 몸을 적셔서 풍토병이라도 앓고 가야 제 속이 뚫릴 것만 같았
거든요."
머리가 조금 벗어진 초로의 신사가 스스로 재즈 매니어를 자칭하는 것이 조금 우스웠으나 그의
표정이나 목소리는 진지하였다.
"아이고, 여보! 풍토병이라고요? 여기 계신 분들 제 말씀 좀 들어보세요. 저 양반 풍토병이라는
건 이미 한국에 있을 때부터 골수에 사무쳤지요. 저 양반이 SP, LP 시절부터 사 모은 재즈 음반
이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제가 아파트를 사고팔고 살림을 좀 늘려서 이사를 할 때마다 그 물건들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이루 말로 다 못해요. 그놈의 재즈에 관한 참고 서적들도 얼마나 많은지 머릿 골치
아파요. 또 진공관식 앰프에 벼라 별 스피커에---. 하여간 이 양반 '재즈 병'은 고질병이
되어서 이미 국내에서도 신토불이 재즈의 경지에 다다랐고 치료에도 대책이 없었어요."
부인이 그간의 사연을 처음에는 서슬이 퍼렇게 늘어놓았으나 끝으로 올수록 용두사미, 사실은
무얼 탓 한다기보다 그저 경과보고 식으로 매듭을 지었다.
이런 절차와 과정은 사실 이전부터 한두 번이 아닌 듯, 참을성 있게 부인의 간섭을 귓전으로
흘린 그가 재즈 이야기를 재개하였다.
"뉴올리언스는 한이 서린 땅입니다. 먼저 이 땅으로는 프랑스인들이 들어와서 특유의 라틴
기질을 발휘하여 흑인들과 피를 섞고 감정의 교류까지 도모해 나가지요. 지난 세기에 흑인
남자와 백인 여자가 데이트를 하고 시가지를 어슬렁거려도 린치를 당하지 않는 곳은 신대륙
에서 이 곳 뿐이었을 것입니다.
프랑스 백인들은 이 곳 흑인들과의 사이에 그들의 제2세 종족을 만들어냈는데 그들은 모두
머리도 명석하였고 또 예술에 재능들이 있었지요. 그 2세들은 이 미시시피 하류의 델타 지역
에서 주인 노릇을 당당히 하였어요. 하지만 곧 이들은 신생 미합중국에 편입이 되고 남북 전쟁
후에는 북부 양키들에게 또 유린이 되지요.
앵글로 색슨 족들이 나중에 니그로를 대하는 태도는 프랑스 적, 라틴 적인 낭만성과는 사뭇
달랐어요. 어쨌든 아까 말한 그 흑백 2세들은 카준 크레올 들이라고 호칭되는데 사실 보통의
종족들이 아니랍니다.
그러나 과거의 자부심과 영화는 이제 사라지고 그들은 이류 시민으로 낙오되어 뉴올리언스의
무더위와 재즈 속에서 흐느적거리지요."
"듣고 보니 정말 그 말씀이 맞네요. 처음 여기 왔을 때에는 그 흑백 아이노꾸들, 무슨 카준
크레올이라는 사람들이 자존심도 세고 뻐긴다는 말을 듣고 웃긴다 싶었거든요. 저희 딸이
아틀란타의 병원에 간호사로 있어서 우린 여기에 일 년의 반쯤은 눌러 사는데 딸의 말이 크레올
들이 흑인이지만 아주 똑똑하대요. 우리 딸은 한국에서 미국 간호사 자격인 RN을 따서 여기로
왔는데 아차하면 목이 잘린다고 여간 긴장하고 있지 않다니까요."
"아니, 윤 사장님 네는 돈도 많으시다 면서 따님이 왜 이런 곳으로 간호사 하러 왔어요?"
"누가 아니랩니까. 그 애와 사위가 미국 바람이 불어서 이리로 왔지요. 그래도 아틀란타는
집값이 퍽 싸고 또 한인들이 새로 몰려 들어와서 사는 재미가 참 좋대요. 2-3년 사이에 한인
인구가 갑절이 되어 십 오륙 만 명이나 되었대요. 집값이 정말 싸서 지금 아틀란타 지역의
스와니라는 괜찮은 동네에 30만 불 주고 대궐 같은 집을 사서 산다니까요. 걔가 영어를 아주
잘했어요. 또 좋아 했고요. 그래도 막상 와서 보니까 영어가 제일 딸린 데요.
의료나 간호 관계 실력은 병원 내에서 제일 자신이 있고 몸과 건강도 버틸 만한데, 영어가
딸린대요. 영어를 못하면 대접도 못 받지만 잘못하면 책임을 다 뒤집어쓰고 쫓겨나거나 벌금도
내야한대요. 깊이 알고 나면 겁이 나요."
"말프랙티스(malpractice) 법이란 게 남부에 있지요. 환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눈을 감고 흘러가는 대화를 듣고 있던 변 교수가 몸을 일으켜 새우며 무슨 말을 중얼거리더니
그냥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 그래요. 말--- 뭐라더라, 그런 법이 있다지요? 어떻게 잘 아세요?"
윤 사장 부인이 조금 호들갑을 떨었으나 변 교수는 대답을 않고 계속 바깥만 내다보았다.
어느 사이엔가 밴은 뉴올리언스 경계를 들어서고 있었다.
"어머나 저기 전차 좀 봐, 전차가 있는걸 보니 아직도 동네가 후지네."
사이버 재즈 카페 하는 분의 부인이 딱하다는 듯이 말을 받았다.
"네, 이곳에서는 아직 전철이 다니는데 테네시 주의 음악 도시 내쉬빌에도 마찬가지로 있지요.
전기 값이 싸서 그런가 봐요."
"교수님, 저게 무슨 연극이던가, 영화에도 나오는 유명한 전차지요 아마."
"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나오는 것과 비슷하겠지요. 이제 그런 이름은 이곳에서
사라졌겠지만 우리 마음에는 아직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내내 덜커덩 거리며 다니고
있지 않을까요?"
배 교수가 오랜만에 좀 긴 말문을 열었다.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뜻이 깊으려니 하고
일행은 경청하였다.
"테네시 윌리엄스라는 작가는 한때 위풍당당하게 존재하였다가 사라진 남부의 화려했던
영화와 인간적 욕정, 욕망과 그 흘러간 영화를 포기하거나 잊지 못하여 매달리는 실패한
인생을 희곡 작품으로 그려내어서 사람들의 페이소스를 자아냈지요. 남부 정서로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보편적인 좌절감을 육화시킨 것입니다.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는
다 망해버린 남부 귀족의 딸, 블랑슈 뒤브와가 자신의 여동생 집으로 흘러들어왔다가 이런
허세를 참지 못하는 날건달이자 제부 관계인 폴랙이란 인간에게 겁탈을 당하고 마침내 정신
병원으로 들어간다는 슬픈 이야기 입니다.
그녀가 뉴올리언스로 처음 타고 들어온 게,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였고 천국이라는 이름의
역에 내리면서 연극은 시작하지요."
"대학의 선생님이라 역시 다르시군요. 선생님 설명은 역시 강력한 요점 정리세요."
무대 위에서의 그녀의 대사가 대략 그런 톤일 것이었다.
여배우의 "선생님"이라는 표현이 배 교수의 폐부를 찔렀다. "정아"는 항상 그를 "교수님"
대신에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충청도 중소도시의 "간호전문 대학", 지금은 그냥 “간호대학”에서 그는 국민윤리와 국사 등의
국책 과목을 가르치다가 나중에 교육부 시책이 바뀌어 그런 시간이 줄어들고 마침내 사라지자
새로 생긴 '메디컬 잉글리시'를 가르쳤다. 간호 대학생들의 꿈이 모두 그러하지는 않았지만
대개는 미국의 RN 시험에 합격하여 해외로 진출하는 것이었다.
미국에서의 간호사 자격시험은 예나 지금이나 영어가 필수인데 초기에는 토플 점수로 잣대를
삼더니 나중에는 병원 상황을 전제한 '메디컬 시추에이션 잉글리시' 시험으로 까다롭게 바뀌
면서 RN 시험이 전체적으로 어려워졌고 취업 이민의 문도 서서히 닫히기 시작하였다. 그런
변화의 초창기에 정아는 어떤 인문계 대학에서 변 교수가 있는 간호전문대학으로 편입을 왔다.
4년제 대학을 휴학까지 해가며 거의 졸업에 임박해서 3년제 간호대학 초급학년으로 편입을
하였으니 그녀는 나이도 설익은 지경을 지났고 자세도 보통 또래의 학생들 보다 원숙하였다.
처음 들어와서 부터 그녀는 배 교수에게 찰싹 달라붙었다는 표현이 딱 맞는 그런 역동적인
학생이었다. 학생지도 교수 제도가 있던 시절이었지만 배 교수가 그녀의 담당은 아니었고 또
대부분 학생들은 교양과목 분야 보다는 간호학을 전공하는 여자 교수들을 적어도 표면적
으로는 잘 따르는 편이었다.
아무래도 졸업 후의 취업과 관련이 있어서도 그랬고 또 거의 유일한 젊은 남자 교수에게 표
나게 접근하기가 보통의 학생으로서는 눈치도 보이고 여하튼 쉽지 않았을 것이다.
변 교수는 학생들과의 사이가 대체로 소원한 편이었다. 담당이 국민윤리와 같은 딱딱한 국책
과목 탓이기도 했지만 스스로 학생들과의 간격을 멀리한 탓이 더 컸다.
나중에 메디컬 잉글리시로 강의를 바꾸면서 사제 간격은 많이 좁혀졌으나 그래도 그는 엄하고
까다롭고 잘난체하는 교수였다. 말하자면 그 강고한 담벼락을 정아가 부수고 달려든 것이었다.
그녀는 편입 된지 며칠 후에 변 교수의 방으로 찾아들어왔다. 보통 '부재중'이라는 팻말을 내
걸어놓고 있는 연구실을 수업이 끝나자마자 따라 들어왔으니 나가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이었다. 지금 표현이라면 'S라인'이라고 할 만한 늘씬한 몸매를 적당히 꼬면서 그녀는 다짜고짜
인생 상담, 아니 진로 상담이라는 학생의 권리를 이용하여 교수의 연구실로 쳐들어 온 것이었다.
'진로 지도'는 당시로 치면 '문교부'의 권유 사항이었고 소속 대학의 독려사항이었으며 따라서
교수의 의무였다.
"학생! 아무리 진로 지도 상담이 학생의 권리라고는 하지만 이건 너무 막연 하잖아. 막연하기가
여기 대청댐 같이 넓네."
"말할게요, 선생니임. 제가 편입을 왔는데요, 원래 국문과 학생이었거든요, 어떡허면 좋죠?"
'선정아'라는 이름의 그 편입생은 시인이 되고 싶어서 4년제 대학의 국문과를 택했으나 막상
졸업을 앞두고 생각해보니 간호사가 되어서 미국으로 가는 것이 인생의 정도랄까, 바른 길이자
빠른 길 같아서 편입 학원까지 다니면서 3년제 간호 전문대학으로 옮겨 왔다는 것이었다.
"인생의 정도라---, 참 당돌하고 겁 없는 이야기를 하는구나. 그런 게 어디 있겠어?"
"아, 제가 한이 많아서 그래요. 그래서 국문과를 택하고 시인이 되고자 했지만 제 능력이나
앞날이 그렇게 고상한 능력에는 한계가 있어서 차라리 병들고 아픈 사람에게 봉사하면서 평생
을 살아가는 간호사의 길이 어느 날 눈에 확 들어오더라고요. 그 생각은 어둠 속에서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빛나는 것처럼 어느 순간 제 앞에서 발광했어요. 그러니 그게 정도가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선생니임~."
"아, 그럼 답이 다 나왔네. 그런 걸 갖고 무얼---. 아, 그렇다고 일어나 나가라는 건 아니고."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고 멋이 있는 젊은이가 있을까, 배 교수야 말로 참으로 오랜만에 무슨
인생의 정도를 발견한 양, 정아가 마치 나비처럼 날아가 버릴까 걱정이라는 듯이 나가려고도
하지 않는 그녀를 붙들어 앉히다시피 하였다.
참으로 '선정아'는 이름처럼 선정적인 데가 많았지만 변교수가 그녀에게 이끌린 건 그런 다소
야비한 욕망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매우 사소한 다른 데에 있었다. 그는 국립 대학교 사범대학의
국민윤리학과를 나와서 대학원 석사과정도 모두 같은 대학을 다녔다.
국민윤리를 해외에서 유학하고 수학 할 수는 없는 처지라서 대학원 박사과정은 당시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 '정신문화 연구원'으로 가서 장학금을 받아가며 계속 공부할 행운도 잡았다.
결국 까마득하고 험난한 학문의 도정이 의외로 빨리 큰 고생도 없이 일사천리가 되었고 마침내
박사학위까지도 얼른 확보하고야 말았다.
하지만 다 지나놓고 보니 외국 박사가 아니라 국내박사의 타이틀에 얽매이게 되는 숙명을 따
안았고 학위 취득 후의 전도는 그리 밝지 못했다. 그는 쉬웠던 과거의 행로를 속죄라도 하듯이
경향각지의 대학 강사 시간을 거리와 지역적 불편도 마다않고 뛰다가 마침내 지방 간호 전문대학,
지금은 그냥 간호대학의 교수 자리를 잡게 되었다. 간호대학의 발랄하고 예쁘고 부지런한 학생들
은 무슨 포원이 진 일이라도 있는 양, 시도 때도 없이 교수님을 불러대며 즐거워했다.
그럴수록 그의 꿈은 항상 모교인 국립대학교 학생들의 오랜 전통, "선생님"이라는 호칭에 목이
말라 있었다. 물론 '선생님'이라는 어휘 자체에 포원이 진 것이 아니라 그 '호칭사'에 따르는
함의가 타는 목마름이었을 따름이었다.
간호대학의 전임이 된 이후에도 그는 어렵게나마 강의 시간을 얻어서 모교로 출강을 하는 날이면
하루 종일 선생님이라는 호칭 속에 묻혀서 황홀하였다. 그가 바라마지않는 꿈은 항상 삼년 제
지방 간호 전문대학을 떠나서 서울의 모교 대학으로 입성하는 '그날'이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이기만 해도 원도 한도 없었을 것이니, 모교인 국립대학교야 말로 일러 무삼
하리오. 지방 전문대학, 그의 연구실에는 그래서 자고로 책이나 생활필수품이 있을 리 없었다.
나쁘게 표현하면, 아니 있는 그대로 표현하자면 그는 배신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충성심이
결여된 인간의 전형일는지도 몰랐다.
그도 그런 자신의 내면을 들키지는 않겠다는 듯이 동료들이나 학생들이 자기의 연구실에 출입
하는 것을 가급적 막았으나 선정아 양의 다이내믹한 돌진만은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서울 가실 꿈만 꾸고 계시죠? 제가 다 알아요."
그녀는 자주 찾아오면서 분위기를 파악했는지 툭하면 그런 식으로 그를 공박하였다.
"정아에게 꿈이 있듯이 나도 꿈이 없으란 법이 있나."
"나를 선생님이라고 유일하게 부르는 정아 말고는 이 연구실 분위기를 아무도 몰라. 내 방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해. 출입금지거든. 필요하면 교수 연구동 입구에 있는 북 카페에서 만나잖아."
"네---. 그런 점에서는 감사드려요. 그런데 저만 유일하게 선생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른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인데요?"
"아, 그런 감상 같은 게 내 속에는 있어. 그건 그렇고 정아는 왜 그렇게 미국으로 갈려고 하나?"
"네에~, 미국으로 가는 게 꿈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떠나는 게 꿈이랄까요."
"아, 선생님께 꿈이 계시듯이 제게도 꿈이 없으란 법이 있나요, 호호호."
정아의 꿈이랄까, 우리나라를 지금 당장 죽어도 떠나야겠다는 이유를 배 교수는 졸업여행 때에야
알게 되었다. 3년제 대학의 편입생이 학교에 적을 두는 기간은 고작 2년이어서 졸업은 금방 찾아
왔다.
졸업 여행은 더 빨리 찾아왔다. 교수라면 모두들 싫어하는 졸업여행 인솔 책임을 정아의 학년이
떠나던 해에는 변 교수가 맡게 되었다. 우연이나 자청은 아니었고 정아의 입김이 작용한 셈이었
다. 배 교수도 내심 그런 강요된 기회를 바라고는 있었다. 강원도 태백 어느 마을에서 졸업 여행의
마지막 날 밤, 캠프파이어와 다양한 축제가 불꽃 그 자체로 타올랐다.
장작더미의 불꽃이 사정없이 타오르자 여학생들은 너울너울 춤을 추며 불꽃 주위를 원무 하였다.
그 나이가 될 때까지 그녀들은 참으로 고생이 많았다, 가정은 대체로 모두 어려웠다. 병원 현장
실습은 말할 것도 없었고 국가고시 준비와 RN을 추구하느라 또 얼마나 어려운 나날들을 보냈던
가. 전문직을 지향하지만 의료인으로서 간호 직이 갖는 한계는 또 얼마나 왜소한가. 불꽃이 밤의
정령들과 어울려 함께 몸을 불사르기 시작하자 그녀들은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며 이른 추위까지
핑계 삼아서 술들을 쉬임없이 마시고 이내 꺼이꺼이 울기 시작하였다. 대부분 취업은 이미 결정된
상태였으나 '일류 병원', '이류 병원'하는 금 긋기가 또한 분명히 상존하여서 한창 때의 처녀들 가
슴을 저며 놓았고 일부는 이미 4년제 대학의 야간학부에 입학 허가를 받아 놓았다는 사실에 그렇
지 못한 여학생들의 마음이 울렁거렸다.
이래저래 처녀들의 음주 정서는 고조되기 마련이었고 그래서 이런 인솔 교수 자리는 개교 이래,
역사적으로 모두가 사양해 오던 터였다. 그걸 배 교수가 그 해에 맡았던 것이다. 졸업생들의
총의가 그러하다는 정아의 선동에 그가 부화뇌동한 꼴이었다. 디스코텍 음악이 최고 볼륨으로
야외 스피커에서 쏟아져 나오자 그는 당장 태백산 아래 수련원 마당으로 끌려 나갔다.
그리고 블루스가 하드록과 레게음악 사이사이로 섞여 나올 때에는 운이 좋거나 뱃장이 좋은
여학생들이 그의 품에 안겼다. 정아는 이런 여학생들의 뒷전에서 기회를 노리더니 언제부터인가
보이지 않았다. 그건 어쨌든 광란의 시간도 속절없이 흘러가서 자정을 훌쩍 넘어가자 배 교수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파장을 막 선언하려던 즈음, 정아가 어디에선가 술을 많이 퍼마시고 그에게
돌진하였다.
그녀는 다리를 잘 가누지 못하겠다는 핑계로 그의 목을 끌어안더니 입술을 그의 귀에 붙이고서
자신이 유명한 정치가 P의원의 딸이라고 밝혔다. 어머니는 이제는 사라진 강남의 1급 요정의
오너 마담, 그러니까 주인이라고 하였다. 요란하던 음악의 볼륨이 낮아져서인지 그녀의 말소리가
생각보다는 그에게 잘 들렸다.
"일급 요정이 세무서의 공식 분류 명칭이에요. 마지막 요정에서 두 번 째 까지 강남에서 버티다가
한정식 집으로 내려앉았지요."
그녀는 혼외정사가 어쩌고, 호적이 저쩌고 하는 소리도 했으나 그녀의 혀가 본격적으로 꼬부라
지기 시작하여서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정아야, 너 취했구나. 이성 차려, 아니 정신 차려!"
배 교수가 미끈한 그녀의 축 쳐진 허리를 부여안고 난감해서 외쳤다.
"선생니임, 애매한 부분에서는 항상 취한척해요. 제가."
그녀는 한쪽 눈을 찡긋하며 변 교수에게 눈을 맞추었다. 방금 전과 달리 그녀는 꼬부라진 혀를
폈다.
"선생님, 저는 항상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어요. 그래서 시인의 발걸음도 흉내 내고 싶었고, 그런
게 모두 제 능력을 넘는 관념 유희에 다름 아니란 걸 깨닫고는 간호사가 되어 어디론가 떠나보고
싶었고요. 선생님도 항상 떠나려고 하는 모습이 저를 미치게 이끌었어요. 주말이면 훌쩍
떠나시는 자동차를 제가 작은 차로 열심히 뒤쫓은 줄은 모르셨겠지요. 신림동, 선생님 집
앞까지도 쫓아갔어요. 사모님 얼굴도 다 봤어요. 선생님은 저와 선생님이 깊이 가깝다는 소문,
그런 스캔들이 이미 교내에 좌악 퍼진 줄을 모르시지요? 학생들은 다 알아요. 선생님. 죄송하지만
제가 그런 방법 밖에는 선생님을 차지할 길이 없잖아요."
"네, 돌았어요. 저하고 완전히 한번 도르셔야 해요, 선생님은!"
그녀는 정말 배 교수를 꼭 껴안고 크게 한번 돌더니 '태백 수련원' 정원에 있는 연못으로 함께
풍덩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초가을 날씨가 벌써 겨울 같이 차가운 태백산 자락에서 그와 그녀는
얼음물 속에 빠진 꼴이었다.
축제의 저녁은 난리로 끝났고 뒤 수습은 생각 보다 훨씬 힘든 고난의 길이었다. 정아는 퇴학 말이
나올 정도로 지탄의 대상이 되었으나 그 유명한 정치가의 손길이 작용하였는지 그럭저럭 졸업을
하고서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실로 힘든 과정은 배 교수가 모두 짊어지고 가게 되었다. 모교로 가려던 그의 계획은 영구 불능이
되어버렸고 봉직하던 간호대학에서도 여러 곡절을 겪은 후에야 다시 자리를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아내와는 이혼 말까지 나왔으나 그럭저럭 봉합이 되었지만 오해의 고삐는 인생의
구석구석, 고비 고비마다 죄어졌었고 두 사람은 명목상의 부부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다.
그는 '메디컬 잉글리시' 계통의 달인이 되어서 간호대학은 마침내 그만두고 압구정동에 있는
'박정 어학원' 근방에서 이민을 꿈꾸는 간호사와 의사들을 대상으로 'MEI(Medical English
Institute)'라는 영어 학원을 열었다. 사업이 잘되자 그는 GRE와 GMAT 과정도 함께 개설하고,
유학 영어의 틈새시장에서 큰돈을 벌어 이제는 은퇴를 한 셈이었다. 지나놓고 보면, 그들이 두어
해 동안 사제지간일 때 그녀는 그토록 몸이 달아 있었으나 그는 그녀에게 삶의 전부를 걸만한
감정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일을 그렇게 간교하게 꼬이게 하였을 때에는 원수 같은
감정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오래 부부간의 불화가 지속되면서 정아에 대한 그의 감정은 그리움으로 발전하였다.
철없이 앞뒤 재지 않고 그렇게 한눈에 반해서 돌진해온 그녀의 행위를 증오 속에서 투우사처럼
받아 제친 그였지만 개념조차 불분명했던 당시의 감정은 차츰 나이가 들어가며 어이없다 할 만큼
사랑으로 정리가 되어갔고 세상에서 사악한 인생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다보니 그녀의 그런 외곬
수로 저돌적인 집념이 마침내 그토록 소중하게 여겨질 수가 없었다.
돌풍처럼 내습하였다가 여우비처럼 사라져버린 그녀에 대한 깊은 상심과 감상은 인생 후반의
그를 내내 따라다니며 놓지 않았다. 그녀는 RN을 딴 후에 아틀란타에 있는 제너럴 호스피탈에
취업이 되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 아직 그가 그 간호대학에 있을 때에 아틀란타 병원으로
부터 연락이 왔다. 그녀의 성적과 지도교수의 소견서를 영문으로 공증하여서 보내라는
편지였다.
알고 보니 그녀가 어떤 환자의 사망사건과 관련이 되어 "메디컬 수", 그러니까 의료분쟁에 걸려
있다는 딱한 사연이 속보로 전해졌다. 그녀는 결국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벌금형과 해고를
당했다는 소식도 얼마 후 학교로 알려졌다.
가장 큰 이유는 영어가 서툴러서 환자의 컴플레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모든 책임을 영어가 서툰 그녀가 뒤집어 쓴 것인지도 몰랐다. 그래, 문제는 영어였으리라,
배 교수의 생각이었다. 그녀에 대한 나쁜 소식은 다소의 시차를 두고 현장으로 부터 들려왔다.
아틀란타 병원에서 쫓겨난 후, 그녀는 뉴올리언스의 프렌치 쿼터로 갔다는 소식이 풍문처럼
흘러들었다. 그는 풍문의 진원을 캐고 들지는 않았다. 그때쯤 그는 이미 대학을 그만두고 압구정
동에서 유학원을 할 때였다. 생활의 변동이 마음의 여유를 불러오지 못한 탓도 있었고 또 그녀로
인하여 파생된 업보가 너무 크게 그를 짓누르고 있다는 마음의 부담도 컸다. 그렇다고 그가
정아를 미워하거나 조금이라도 원망하는 마음은 아니었다. 때가 되면 그녀와 사랑을 나눌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불현 듯 들기도 하였다. 그것은 어쩌면 그녀의 강렬한 성품에 조심스럽기만
하던 그가 매혹된 건지 아내의 잔소리와 노골적인 핍박이 그런 마음을 굳히도록 한 건지, 아니
어쩌면 그 두 가지가 모두 상승작용을 하는 건지도 몰랐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던 어느 날 그녀로부터 메일이 날라 왔다. 메일 주소야 그렇게 접속하기
힘든 골목길도 아니었다. 인터넷 메일이 이제 일용할 양식에 다름 아니었고 그의 유학원도 크게
인터넷 웹 사이트를 내세워 광고를 때리고 있었다. 그의 메일 번호 중 하나는 의료인들에게는
모두 메모가 되어 있을 만큼 그 계통에서는 만인이 공유하는 주소가 되어있었다. 대학을 그만
두었지만 예로부터 쓰던 메일 주소는 그냥 그대로이기도 하였다. 하여간 그녀로부터 메일이
그에게로 당도하였다. 어느 해 가을날, 태풍 카트리나가 주 정부나 연방 정부의 느린 대책을
희롱하듯 미국 남부를 때리고 있을 때였다. 변 교수는 영구불변의 불화 속에 지내는 아내와 저녁
TV로 무심히 그 뉴스를 보고 서재로 돌아왔다.
이윽고 취침 직전, e-메일을 그가 서제에서 정리하는데 '선정아'라는 이름이 떴다. 처음 그는
흠칫하였다. 그녀의 이름 때문이 아니었다. 얼마 전 부터 그의 아내는 집안에서 제일 큰 모니터에
인터넷을 매달고 모든 조작은 TV 볼 때 쓰는 리모컨 하나로 통합을 해 놓았다.
그가 늦게 들어 온 어느 날, 낮 동안에 일어난 인터넷 환경의 혁명, 아니 쿠데타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는 아파트 동네에 인터넷 가전 업체가 강력한 판촉을 한 결과였고 그게 또 부자동네
아파트의 새로운 유행이라고도 하였다.
"이게 뭐야, 숨통 막히게. 당신은 프라이버시도 없소?"
그가 모처럼 소리를 질렀다. 사정을 몰랐기도 하였지만 알았더라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의 프라이버시 추구가 고작 선정아 사건이었다면 난 그런 프라이버시 인정 못해요. 그리고
또 내게는 집안 식구끼리라면 프라이버시고 깨묵이고 그런 건 없어요. 아직도 뭐 걸리고 집히는
게 있어요?"
"맙소사. 나와 선정아 이야기는 완전히 루머라는 게 판명나지 않았소. 그래서 내 신분에도 아무
문제가 없었고. 내가 지금 숨이 막힌다는 건---."
"숨 막힐 거 없어요. 프라이버시 찾아서 서재에 가 보세요."
그가 서재에 들어가 보니 까만색 테를 두른 작은 모니터가 주먹만큼 앙증스런 CPU 같은걸 하나
따로 꿰차고서 책상 위에 앉아있었다.
"광케이블 인터넷에 두개씩이나 가입했소? 돈도 많네."
그는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한 자락을 깔아서 툭 쳐보았다.
"안심하세요. 돈 더 안 들어요. 그게 분배기랍니다. 하나로 가입하고 둘로 나누어 쓴대요. 그리고
벌벌 떨지 마세요. 각각 따로 나온대요. 하지만 조심하세요. 선정아 같은 애한테서 연락이 오면
내가 당장 여기 응접실에서 모니터하고 체크 하도록 검색어를 깔아두었어요."
마지막 말은 물론 터무니없는 공갈이었겠지만 그는 서제의 컴퓨터를 켤 때마다 무언가 기분이
켕기는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켕기고 뭐고 할 이유는 애당초 없었다. 그의 인터넷 주소는 정말로
만인이 공유하며 들락거리고 있었다.
누가 무슨 이야기를 그의 메일이나 그 메일 주소로 만든 학원 선전 사이트에 담아 놓을지, 혹은
경쟁이 되는 학원이나 개인이 무슨 트릭을 쓸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유명한 의학 영어 학원의
원장인 그가 가정불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이 업계 공지의 사실이었다.
이 바닥이 그렇게 좀 치사한 데가 있었다. 불편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그는 정아가 보낸 메일의
내용을 클릭하였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내는 메일치고는 너무 정서가 메말라 있었다. 정아의
버릇이란 항상 그렇게 자기중심, 자아중심이기 십상이었지만 그보다는 거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의 위력과 재양이 너무나 컸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녀는 우선 거두절미하고 지금 밥을 먹고사는
터전인 프렌치 쿼터 카페가 침수되어 길거리에 나앉아야할 형편이라는 것이었다. 의료 사고로
간호원 때려치운듯하더니 언제부터 카페를 차렸나.
"제가 천벌을 받는가 봐요. 선생님을 너무 못살게 굴어서."
그녀가 천재지변, 재난의 개요를 하소연하더니 그런 한탄의 말을 끝에 달았다."자책하지마라,
좋은 점도 있어. 정아 때문에 내 삶이 더 풍요로워졌어. 내가 양동이 갖고 물 푸러 한번 찾아
가겠다."
풍요로워졌다고 답신을 보내다니, 그게 돈이야 마음이야, 그래 둘 다라고 치자. 그럼 정아 덕분에
잘 되었다는 건가. 그럴지도 모르지. 자신의 마음을 싣고 떠나버려서 텅 빈 모니터를 바라보며
그는 자문자답하였다. 아니 그가 자문에 대한 답을 채 이끌어내기도 전에 그녀의 답 글이 왔다.
오실 기회가 있으면 '프렌치 마켓'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프렌치 쿼터 내에 프렌치 마켓이라는 오래된 시장이 있다는 것이었다.
카트리나로 재산을 날린 사람들의 일부에게 오랜 전통의 벼룩시장 같은 것을 떼 주어서 밥이나마
먹게 해 준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답 글은 짧았지만 흐름이 모두 담겨있었다.
그렇게 양동이 갖고 물이라도 푸러 가겠다고 한 약속이 두해가 지나갔다.
간혹 먹고 살 만큼 자리를 잡았다는 메일이 그녀로부터 왔지만 그의 답신은 어정쩡했다. 중년을
넘긴 사람이 시쳇말로 연애편지를 쓰고 앉았기 에는 정념이나 필력이 딸렸고, 그 보다는 얼른
한번 가서 그녀를 직접 만나야겠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한 무어라 주절주절 글로 감정을 표현
한다는 것이 순 사기꾼 수법 같기도 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얼른 비행기 표를 사서 남부로 훌쩍 떠난다는 것이 무역업 종사자도 아니고 판박이 지식
장사꾼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용단이었다.
그러다가 기회가 마침내 온 듯싶었다. 대학 후배이자 배 교수가 하는 의학 영어 학원의 유명 강사
하나가 학원을 인수, 운영하여서 이익금은 매달 똑 같이 나누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물론 상당한
금액의 인수 자금을 권리금 조로 내놓는다는 식이었다. 아내와 변변한 의논도 하지 않고 금방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데에는 그의 나이라던가,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지만 정아와의 물푸기
약속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었다.
"우선 가서 보리라. 그래 물을 푸는 심정으로 우선 가서 보리라."
나이를 생각했는지 그의 아내도 학원을 넘기는 데에 별로 반대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의 아내는
선정아의 근래 소식에 깜깜이었다. 마침 신문에는 IMF 이래로 끊어졌던 델타 항공의 미국 남부
직항 운항이 재개되었다는 뉴스도 나왔다.
그가 은근히 제안을 하자 물 구경, 불구경만한 게 있느냐고 속물 부인이 더 나섰다. 악연인지
가연인지 잊을 수 없는 여인을 만나러 떠나는 길에도 그는 혼자 올 수 없었다. 불행 중 다행도
아니고 금상첨화는 더더욱 아니지만 어쨌든 아내를 동반하여 정아를 찾아가는 길에 우연히
함께한 일곱 명의 일행은 결과적으로 누가 뽑아다 놓으려 하여도 힘들 조합의 절묘한 동반자들이
되었다.
"저기 오른쪽 울긋불긋한 일대가 프렌치 쿼터입니다. 우리말에 홍등가라는 표현도 있지만 그런
건 결코 아니지요. 하여간 환락가라는 데가 어디나 느낌이 좀 요상하지요. 하여간 여기가 재즈의
고향입니다."
가이드가 안내의 말씀을 내놓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인터넷 재즈 카페를 운영하는 H 그룹 출신,
정 사장이 얼른 말을 가로챘다.
"가이드 선생! 재즈는 그냥 환락의 음악이 아니라고 내가 초장에 이미 여러분께 설명 드렸지요.
그러니까 우리 가이드는 우선 재즈를 가장 클래식하게 연주하는 곳으로 우리를 안내 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거리의 악사들이 재즈를 연주하는 곳으로 또 우리를 안내해야 할 것이오."
그는 재즈의 발상지이자 본 고장이고 어떻게 보면 그에게는 성지와 같은 이 엄청난 곳에서의
예상 가능한 수많은 기회를 편향된 시각으로 섯불리 놓쳐서는 결코 되지 않겠다는 우려에 가득한
식으로 가이드에게 주의를 주었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정식 연주장과 길거리 연주패들을 다 보여드릴게요."
"길거리 연주 패라는 식의 표현으로 매도할 일이 아니라니깐. 사실은 그들이 더 위대한 연주자들일 수
도 있어요. 재즈뿐만 아니라 사실 일류 팝송 연주자들 중에도 악보를 제대로 볼 줄 모르는 사람
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믿거나 말거나가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니까요. 그리고 그게 뭐 큰일 날 일도 아니고---. 콩나물
대가리를 읽을 줄 몰라도 이들은 분위기만 통하면 금방 손발과 호흡을 맞추어 척척 연주를
해내요. 정말 거짓말 같은 불가사의가 여기 존재한다니까. 내가 다 교과서적으로 읽은 이야기들
이지요. '위대한 악보는 없어도 위대한 연주는 있다'는 유명한 이야기도 있지요."
"네, 실내의 공식적인 연주 보다 저기 앤드루 잭슨 공원 가에서 연주하는 패들이 악기도 훨씬 더
많던 데요---."
"아, 그 유래는 이래요. 원래 미합중국의 건국 초기에 앤드루 잭슨 대통령에게 프랑스 사람들이
이곳을 어쩔 수 없이 내놓게 되었을 때 프랑스 군대는 해산을 하게 되었고 군악대도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어요. 그걸 정말 거리의 악사들이 주어다가 재즈 밴드를 구성하였다 이런 말씀
이지요. 그 이후 남북전쟁 때에는 남군이 패해서 또 군악대가 풍비박산하자, 길거리 악사들이
그걸 모두 수거해서 재즈 음악을 연주했다, 이런 말씀이고요. 그래서 재즈 음악의 구성에 브라스
밴드가 다 들어가 있어요."
"미안하지만 여기 프렌치 쿼터 말고 프렌치 마켓이 따로 있소?"
배 교수가 격정적 분위기 속에서 겨우 모기만한 목소리로 질문을 하였다.
"아, 그럼요. 프렌치 쿼터의 한 쪽에 벼룩시장 규모 보다는 훨씬 크게 프렌치 마켓이 있지요.
그 곳의 역사는 한 이백년 된답니다."
"내가 왠 명품이야. 관광 안내에 보니까 거길 꼭 보고 오라고해서---."
"아, 네 그곳은 명품과는 거리가 먼 마켓이지만요, 꼭 보셔야합니다. 거길 빼면 안 되지요. 다만
사모님들은 그 위쪽 길로 가셔서 정품 명품을 보시고 사장님들은 벼룩시장 구경을 하시는 게
좋겠네요. 전부 다 함께 보시기에는 시간이 빡빡하거든요. 그러니까 자유 시간으로 생각하시고
돌아다니십시오. 시간은 한 시간 반가량 충분히 드릴게요."
그들은 미시시피 강변을 잠시 함께 산책하고 남자 셋은 곧장 '프렌치 마켓' 쪽으로 내려갔다.
부인들 네 사람은 정말 벼룩시장같이 길고도 좁은 프렌치 마켓을 버리고 곧장 큰 가게가 늘어서
있는 다른 곳으로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서 몰려갔다.
두 시간의 자유시간이 이제 그들 앞에 놓이게 되었다. 다시 모이는 장소는 이 도시에 뉴올리언스
라는 이름을 선사한 오르레앙의 처녀, 잔 다르크가 황금빛 갑옷과 투구를 쓰고서 마상에 높이
앉아 있는 인근 작은 공원의 기마상 앞이었다.
배 교수가 가이드에게 미리 귀띔을 해놓아서 성사가 된 시나리오이긴 해도 모두에게 나쁘지 않은
프로그램이었다. 벼룩시장이라는 표현을 받는다면 단연코 억울한 규모의 큰 '프렌치 마켓' 중간
쯤에서 선정아는 난전을 하면서 마치 그렇게 약속이 다 되어있다는 듯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남자 두 사람은 취향에 따라 그들의 방향으로 모두 흩어진 후였다.
오랜 시간 후의 해후답지 않게 그들은 서로를 금방 알아보았다. 그 사이에 한두 번 무슨 계기
였던가, 사진이 오고 간적은 있었다. 아니 오고간 게 아니라 그녀가 그에게 사진을 메일로 보낸
적이 있었다. 그의 사진은 영어 학원 인터넷 PR 사이트에 항상 떠있었으니 정아가 조회하며 보고
있었고.그녀는 원래 서양 티가 물씬 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순전한 백인 여자 같지는 않았지만
히스패닉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 이국 취향의 모습이 항상 보는 이의 감정을 일렁거리게 했는데,
오랜 만에 다시 보아도 그 설렘의 느낌은 그에게 금방 되살아났다.
누가 보아도 그녀의 용모와 자태가 선정적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었으나 본인으로서는
어쨌든 억울하다고 불평하던 옛 기억도 생생하게 살아났다.
"선생님까지 그러시나요? 하여간 제 속마음의 일부가 그렇게 나타나 보이니까 싫죠. 남들은
그렇지 않은데, 왜 저는 속마음이 들어나야 해요? 가면이라도 쓰고 싶은 심정이여요."
그런 대화가 오고간 기억까지 배 교수에게는 생생하였다.
그녀는 배 교수를 보자마자 그의 품에 몸을 던지고 양 팔과 손으로 그를 와락 껴안았다. 그도
엉겁결에 주위나 앞뒤를 잴 것 없이 오른 쪽 팔과 손으로는 그녀의 어깨를, 또 다른 왼 팔과
손으로는 그녀의 허리와 엉덩이 살 근처를 얼싸안았다. 익숙지 않은 그의 포옹 자세가 결핍
스러웠는지 그녀가 그의 품으로 더욱 파고들며 "하티 허그, 하티 허그"하고 부르짖었다.
그녀의 말은 발전기 같았고 그는 금방 감전이 되었다. 뜨거운 포옹이란 양 팔과 손에 힘을 주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는 부르르 떨며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로 그녀와 밀착이 되었다.
그녀도 자가발전의 고압 전류가 부메랑이 되어서 상큼한 머리칼 냄새를 그의 얼굴에 흩날리며
똑같이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하였다. 아, 그리고 다시 머리, 어깨, 코, 귀, 코, 귀도 하였다.
일행이 모두 뿔뿔이 흩어진 것은 아까 확인이 되었지만, 배 교수는 이제야 세상에 정말 혼자인
듯한 해방감을 맛보았다.
진정한 혼자임은 그냥 홀로일 때가 아니라 진정한 대자적(對自的) 존재로 자신을 자리매김할
때에야 이루어지는 신묘한 순간임도 그는 깨달았다. 대학 일학년 때 읽고 오랜 숙제로 남았던,
즉자적 존재와 대자적 존재라는 어휘의 진정한 의미가 이제야 어렴풋이나마 풀리는 느낌이었다.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 그리웠어요. 그리웠어요. 정말 그리웠어요. 그리고 지금도 사랑해요,
사랑해요, 정말 사랑해요."
"나도 항상 정아 생각에 가득했구나, 하지만 그게 모두 사랑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인색한 게 아니라 항상 남 보다는 진지한척 성찰하려다 보니 그렇게 인색하게 보일지도
모르겠구나.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내가 원래 국민윤리 교수 아니냐, 하지만 인생 후반에 너만큼
그립고 보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아마 죽을 때까지도 그럴 거야."
그녀의 서늘한 눈매에서 금방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제가 죄 받을 짓을 저질렀는데도 요? 선생님 길을 막았잖아요."
"그 대신에 얻고 번 것도 많아. 돈을 좀 벌었고 이렇게 인간적으로 성숙도 하였고."
"선생님, 우리 여기에서 이러지 말고 어디로 가자고요. 제가 보조로 사람 하나를 쓰고 있거든요."
그녀는 키가 왜소한 흑백 혼혈아를 하나 옆에 세워놓고 있었다.
"딸은 아니고?"
"딸이라면 이렇게 일이나 시키고 있겠어요? 그리고 모르셨어요? 제가 불임이잖아요."
"아니요, 사모님도 오셨고 일행도 있는데 불편하잖아요. 밀린 이야기하기도 그렇고. 아, 밀린
이야기라기보다 제 가슴 속의 이야기를 그런 데에서는 다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제가 잘 아는
작은 호텔이 이 근처에 있어요. 한때는 문화 예술인들의 아지트였는데 거기도 지난 홍수에 다
망가졌지만 이럭저럭 들어가 지낼 만은 해요."
그녀의 안내에 그는 엉거주춤, 그러나 군 말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가까이에 있는 호텔로 가면서도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틀란타의 병원에서 해고를 당하자 그녀는 금방 뉴올리언스로 내려왔다.
인근에 있는 모빌이나 빌락시, 그리고 텍사스의 오스틴, 와코, 갈베스톤의 병원에서도 간호사
자리가 났으나 그녀는 무조건 뉴올리언스로 내려왔다고 하였다.
"선생님, 제 DNA에는 방랑, 환상, 멜랑콜리, 그리고 제멋대로 살고 싶은 자유인 기질이 가득한가
봐요. 빈틈없는 스케줄과 초긴장 속에서 살아야하는 병원 생활 몇 년 만에 저는 넌더리가 났어요.
오퍼가 왔지만 다 집어치우고 프렌치 쿼터로 내려와 버린 거예요. 이곳의 재즈 음률에 얽힌
몽환과 멜랑콜리 한 무드는 그냥 제 가슴을 후벼 파요. 쿵작 쿵작 심장이 뛰는 박자와 맞먹는
재즈의 비트 박자와 선율은 그냥 제 온 몸을 움직이고 지배하는 원초적 본능이랍니다. 저는 여기
프렌치 쿼터에 와서야 처음으로 정식 결혼을 해요. 카준 크레올에 속하는 흑인 연주자였지요.
사람이 참 좋아요. 우리는 재즈 카페를 운영했어요. 큰돈은 몰라도 먹고 살만했고 우선 마음이
편했어요. 한도 슬픔도 마침내 다 사라진 줄 알았지요. 그런데 미친년, 카틀리나가 달려들었지요.
아마도 저 때문에 그년이 이리로 좇아왔는지도 모르겠어요. 그 년 때문에 뉴올리언스 전체로는
행방불명자까지 포함해서 사람들이 많이 죽어나갔으나 여기 프렌치 쿼터 구역에서는 사람이
별로 죽지 않았어요. 사람이 죽은 곳은 가난한 흑인들이 사는 게토 지역이었지요. 우리는 모두
수퍼 돔으로 피난을 갔어요. 그런데 제 남편이 그냥 거기에 피난민으로 있을 수만은 없다고, 재난
구조 작업에 볼런티어로 나갔다가 흘러온 뗏목에 두 다리를 잃고 말았어요. 살아남은 게 천행이죠.
지금도 병원에 입원해 있어요. 돈도 나오고 저는 또 그 가족이라서 프렌치 쿼터의 먼저 번 가게를
날렸다고 여기 프렌치 마켓에 자리를 하나 얻었어요. 하지만 저녁이면 너무 외로워요. 재즈
음악을 들으며 한없이 울어요."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들은 인근에 있는 어떤 호텔 데스크에 섰다.
그녀는 미리 예약이 되어있는지 카드 키를 받고 곧장 엘리베이터로 갔다.
승강기의 문이 열리고 닫히고 다시 몇층이던가에서 열리고 그리고 호텔 룸, 문을 열고 그들이
조금 오래된 가구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데에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문이 닫히자 그녀는
배 교수의 목에 달랑 매달렸다.
"선생님, 지금 당장 저 좀 안아주세요. 선생님을 이젠 놓치고 싶지 않아요. 이번이 아니면 영영
놓칠 것 같아요. 안아주세요. 샤워도 하기 싫어요. 아, 남편은 제가 가끔 데이트 하는걸 알아요.
이혼도 해 주겠다는데요. 그러나 선생님이 아니면 저는 남편을 버릴 수 없어요."
배 교수가 턱 밑에 붙은 그녀를 조금 떼어놓았다. 사람의 성격이나 성정이 빛을 분광할 때처럼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보통의 정상 스펙트럼에 속하고 어디서부터 그 범주를 넘는다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정아의 속도감은 너무 한 것 같다고 배 교수는 생각하였다..
원래 배 교수가 이번 남부 여정을 계획할 때에는 사실 이런 식의 속도감을 전제했거나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우선 그녀의 주변을 살피고 그간의 감정 교류가 예상하고 기대한 만큼의 적절성이
있는지를 탐색하자는 생각이었다.
모든 게 만족될 수는 없겠지만 미래를 내다볼 수만 있다면 그는 용단을 내릴 각오도 되어있었다.
자신의 현재를 지옥과 같다고 비유하지는 않고 있지만 어지간하면 그녀와의 두 번째 생활에
후회는 않을 수 있으리라, 그는 작정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정아가 펼쳐놓고 사는 삶의 영역이랄까, 예컨대 그녀의 배우자나 여타의 가족관계가
있다면 그런 인간관계가 끊어질 때에 그 주변인들이 얼마만큼이나 파괴되지 않고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인장력(引張力) 같은 것, 그런 걸 직관에 의하건 어쨌건 할 수 있는 데까지 파악해
보고 또 그런 이야기부터 나누면서 인생 최후의 무대를 어떻게 꾸며야 할는지 서로 입장을 한번
정리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남부 여행을 떠나오기 얼마 전에 그런 내용을 e-메일로 미리 보낸 것도 마음의 자세랄까, 미래에
대한 연구를 좀 해보라는 취지에서 였다.
그런데 이 곳 현장에서 마주친 것은 예전에도 익히 보았던 정아의 그 행동주의, 충동적 모습의
재탕 같은 것이 아닌가.
"정아야, 내가 평생을 선생 노릇하며 살아왔기에 내 식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풀어볼게. 내가 이제
인생의 마지막 프로그램을 짜는데 지금 우린 진도가 너무 빨리 나가는 것 같구나. 조금 숨을
돌리고 이야기하자. 또 우리 둘 뿐 아니라 주변인들이 견뎌낼 힘도 생각해야지. 인장력이랄까,
끊어지지 않고 버틸 힘, 뭐 그런 거부터 점검해 보아야 되지 않을까. 지금 우리에게는 그런
시간이 필요해."
"선생님,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의 관계를 그렇게 강의실에 빗대어 표현하신다면 그동안 우린
너무 결강이 많았어요. 진도라니요, 우리 진도는 지금 한 페이지도 나가지 못했어요. 선생님, 수업
시작의 종이 이제야 겨우 울렸어요. 안아주세요. 견딜 수가 없어요. 우선 출석을 부르신다고
생각해도 좋아요. 첫 수업의 오리엔테이션이라고 해도 좋아요. 저의 이 벗은 모습 보세요. 아직
너무 아름답지 않아요? 엉덩이가 쳐지지도 않았고 제 허벅지도 이렇게 아직 팽팽해요. 아이를
키우지 않은 젖가슴도 이거 보세요. 제 주변인이래야 피부도 다른 남편, 그리고 서울의 늙고 병든
어머니뿐인데 모두 여기까지 도달한 저로 인해서 절망할 일도 심줄이 끊어질 일도 이젠 없어요.
인장력이라고 하셨던가요. 익스텐션, 뭐 그런 말씀인가요. 그거라면 제 몸의 특징이고 특기가
아니겠어요. 이렇게 제가 탄탄하고 탄력이 있고 탱글탱글해요."
중년의 여인이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몸매는 흔한 사진이나 그림을 포함하여서 그가 아직까지 본
기억이 없는 명화의 수준이었다.
"정아야, 인장력이 문제라는 건 나의 가족 관계도 염두에 둔 것이고, 내 몸의 인장력이 턱도 없이
딸린다는 것도 문제라는 거야. 정아의 몸이 문제가 아니야. 우선 여길 봐. 내가 이렇게 배가
나왔어. 배뿔둑이는 아직 아니지만 벗어 놓으면 크게 실망스러울 거야. 또 내 근육질도 문제
수준이야. 섹스라던가 모든 걸 다 포함해서 말이야."
"네, 그러니까 어서 벗으세요.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는 한국 말, 아직도 안 잊고 있어요.
그러니까 저에게 검진, 아니지 뭐라더라, 검증을 받으셔야지요. 그러시고 싶으신 거 아니세요?
그리고 어쩌면 낙제 점수를 받으셔서 우리의 관계를 피해가실 핑계를 마련하시고 싶어 하실는
지도 모르겠네요. 지금 어물어물 하시는 모양이 말하고 있네요. 그러니까 어서 벗어보세요.
국민윤리 교수니임~!"
그녀가 이제는 짜증스럽다는 표정으로 그의 버클에 손을 대었다.
그녀의 손길이 버클과 지퍼 쪽으로 다가오자 그는 마치 거미가 다가오는 스믈스믈 한 전율을
갑자기 느꼈다.
"다리는 잃었어도 누워있다고는 하지 않았어요. 지금이 어느 때인데요. 생각처럼 그렇게 비참한
상태는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제가 모든 걸 다 말씀 드린 건 나중에라도 자책에 시달리지 않고
스스로 사기꾼이었다는 생각에 매몰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선생님, 안아주세요.
얼른요."
"그럼요. 걱정 마세요. 지금 무슨 미래 계약서 쓰자는 거 아니에요. 일단 오리엔테이션 수준에서
---."
"지금 이 순간의 시간문제도 그렇구나. 우린 새벽에 출발해서 점심도 햄버거로 때우고 달려왔어.
내가 수작을 좀 부려서 그나마 자유 시간을 얻었지만 우리 일행 중에는 재즈 메니어가 있어서 그
사람이 행선지를 좌지우지하네. 이것저것 다 보려면 내일 새벽까지 돌아다녀도 모자랄 판이야."
"갈 사람은 가라하고 우린 여기에서 사랑만해요. 선생님이 오시면 이리로 모시고 와서 어떻게
하겠다고 제 머리 속에서는 다 계획이 세워져 있다니까요. 판타지 수준이라고 웃으셔도 좋아요.
저는 간호사 생활을 시작한지 삼년 만에 집을 장만했어요. 모기지로 사니까 현찰 없이 신용으로
다 되었지요. 아틀란타의 스와니라는 곳에 멋진 집을 장만했어요. 포스터의 스와니 강은 사람들이
나중에 지도를 갖다놓고 플로리다가 맞다고 점을 찍었다고 합디다만 저는 조지아 주, 아틀란타의
스와니가 진짜 제 고향 같았어요. 백 야드가 한 에이커나 되는 그리로 선생님을 초청해서 노후에는
모시며 살고 싶었어요. 그 꿈이 엉뚱하게도 모두 제가 있던 병원에서의 의료분쟁에 휩싸이면서
박살이 난거죠. 선생님, 스와니 강은 아니더라도 이곳 프렌치 마켓 근처도 좋아요. 이번 입국하실
때에는 6개월 체류허가 받아서 오셨지요?"
"그게 문제가 아니야, 정아야.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에서처럼 나는 아직 해가 지기 전에 가야할
길이 있구나."
"그럼 왜 오셨어요? 사모님 모시고 사는 괴로운 인생살이에 제가 조금 위로가 될 듯하여서 보러
오셨어요? 벌 받고 사는 제 몰골을 잠시 눈으로 보고서 위로나 받자고 이렇게 오셨어요? 아니면
인생 앨범에 사진하나 더 박아 넣으시려고 여기 잠시 오셨어요? 자, 제 이 발가벗은 모습 찍어
가세요."
"정아야, 나도 할 말은 많아. 하지만 이제 현실을 바라보니 너무나 가혹하여서 말을 삼가 하겠다만,
이렇게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고 이번에는 일단 돌아가는 수밖에 없겠구나."
"쉽게 가지는 못하십니다. 선생님, 저걸 한번 보세요."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배 교수가 보니 침실 벽면에 인테리어로 아프리카 흑인들의 주술 신앙인
부두(Voodoo)교의 상징들이 주욱 붙어있었다. 조각과 봉제로 만들어진 그 상징들에는 바늘로
안면을 찔러서 변심한 애인의 마음을 돌리려는 주술 행위도 보이고 지극한 애정의 표시로 남녀
성기가 열리고 닫힌 모습, 그리고 또 살해 의식 같은 것도 보였다.
"죄송하지만 저는 그동안 제가 정을 주는 남자 두엇과 잠자리는 나누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선생님을 제 마지막 반려자로 찍어놓고 있었어요. 지금 만약 선생님이 떠나시겠다면 그냥 이
문을 나가실 수는 있어요. 하지만 금방 어디가 아프실 거예요. 제가 저기 부두 신상(神像)에
보이듯이 봉제 인형을 하나 걸어놓고 저렇게 찌르고 자르고 땅바닥에 패대기칠 테니까요. 그럼
몸의 어디가 아파오실 것이고 결국 저를 찾아오게 되세요. 틀림없어요. 확신해요. 제가 버리지
않는 한 아무도 저를 버리고 가지는 못해요. 카준 크레올인 제 남편이 부두교 광신자인데, 저도
필요할 때는 무섭게 신 끼가 올라요. 자, 이제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저를 안으시든가 아예
남으시든가 아니면 떠나시든가 결정하세요."
배 교수는 아무 말도 않고 일어나서 정아의 맨 몸을 안았다.
에어컨이 나왔지만 그녀는 땀을 뻘뻘 흘리며 사시나무 떨듯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목에서 짭짤한 물 끼 몇 방울을 빨아서 달게 마시고 등을 돌렸다. 그녀가 쓰러지면서
부두의 목신 상을 부러뜨리는 듯싶었으나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잔 다르크가 황금빛
투구와 갑옷을 입고 기다리는 광장의 만남의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렵게 찾아낸 한국인 식당에서 재즈 카페 주인, 정 사장이 한국 술을 시켰다. 20달러로 값이
매겨진 소주 종류였다. 그는 자꾸 가이드 청년에게 화를 내기 시작하였다. 스케줄에 따르면
저녁만 이곳 프렌치 쿼터에서 먹고 변두리로 나가서 잠을 잔 다음, 다음날 새벽에 뉴올리언스를
떠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재즈 매니아는 하루 밤을 이 곳 프렌치 쿼터에서 자고 내일 하루
종일 거리에 산재한 재즈 악사들의 연주를 충분히 감상한 다음에 떠나도록 스케줄을 바꾸라는
것이었다.
일박일일이라는 말을 강조하며 그가 큰 몸짓을 움직여 가이드에게 역정을 내었는데, 어떻게 된
행동의 연장선에서 인지 내두르는 손길에 배 교수의 턱 끝 쪽이 부디쳤다. 그 서슬에 결국 배
교수가 평소 앓으며 삭이며 달고 다닌 어금니의 충치 치통이 도져버렸다. 통증은 순식간에
기절을 시킬 만큼 배 교수를 압도하였다.
재즈 카페 주인, 정 사장의 부인이 마침 상비해온 생리 진통제가 있어서 일단 그 날의 통증은
다스려졌으나 남아있는 여정이 문제였다. 아틀란타에 간호사 딸을 둔 부부는 외면하였다.
다시 재즈 카페 주인의 부인이 녹스빌에서 교수를 하는 딸에게 휴대폰으로 구원을 요청하였다.
그 여교수는 마침 자기 친구의 남편이 녹스빌에서 치과의사로 있기에 연락이 닿았다.
그 치과의사는 다시 이쪽으로 연락을 해주어서 내일 아침에 그들이 묵고 있는 인근 월그린
마트의 약국으로 배 교수가 가면 전화로 원격 처방을 해 주겠다고 하였다. 항생제와 진통제를
쓰면 이틀이면 다 나을 것이라고 치과의사는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이런 난리법석 통에
가이드 청년이 부르짖었다.
"우리의 남부 여정이 2000마일이 넘거든요. 이제 겨우 반도 오지 않았으니 빨리 이곳을 뜨자고요.
여기가 마음적으로 항상 찝찝하고 겁나는 동네라요. 아프리카 귀신들이 노예들과 함께 왔다고도
해요. 그래서 저주받은 땅이라고도 하잖아요."
"그래도 명품 물건 값은 쌉디다. 안 그래요, 남지희씨?"
배 교수 부인이 노년의 난청으로 얼토당토않게 '얼쑤' 추임새까지 먹여 가이드의 말에 응대를 한
꼴이 되자 모두들 까르륵 배를 잡고 웃어서 자연스레 귀신 이야기의 한판 퇴마록이 되어버렸다.
Rachmaninov, Piano Concerto No.2 in C minor
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2번 C단조 Op.18
Sergei Rachmaninov 1873-1943
Sviatoslav Richter, piano
Stanislaw Wislocki, conductor
Warsaw Philharmonic Orchestra
Philharmonie, Warsaw
1959.04.26-28
Sviatoslav Richter/Stanislaw Wislocki/WPO - Rachmaninov, Piano Concerto N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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