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포토 에세이, 포엠 플러스

깊이 보고 다닌 투어 1 (바이칼 알혼 섬에서)

원평재 2014. 9. 24. 10:02

 

 

 

 

 


 

 

<민족의 시원, 바이칼호 알혼 섬에서 여행기 연재를 시작하며>

 

여행은 왜 하는가?

아마도 우리의 본능 속에 녹아있는 DNA 탓이 아닌가 싶다.

살아남는 종이 되기위하여 인류는 끊임없이 이동을 했을 것이고 그러지 못한 아류는 쇠퇴,

혹은 절멸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원시조가 어디로 부터 왔는지는 좀 애매하겠지만 중시조 정도는 추측 가능하지

않을까? 아마도 어릴 때부터 일기예보 시간이면 귀가 따갑게 들어온 추위의 원흉(?) 바이칼 호

부근, 브랴트 민족이 사는 곳과 관계가 있을 성 싶다.

왜냐?

우리의 서낭당에 있는 것과 비슷한 천 쪼가리가 그들의 주거지, 바이칼 호수 속의 알혼 섬에도

지천으로 매달려 있고 바람에 날려 시베리아를 거친 다음, 몽골과 만주 지방으로 점점이 줄을

이어 우리에게 이르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이 족적에 따라서 사는 사람들은 모두 엉덩이에 시퍼렇게 몽골반점을 차고 있지

아니한가.

 

말만 할게 아니라 이제 그 민족 시원의 땅으로 찾아가서 들은 바를 확인하고 거기를 원점으로

새롭게 발길을 떼본다.

신 유목민, 네오 노마드가 되어본다. 

자연스레 연재의 순서는 바이칼 알혼 섬에서 시작하여 몽골로 만주로, 또 발칸과  발틱을 거쳐

남북미 신대륙의 인디언, 인디오도 만나볼 셈이다. 모두 몽골 반점을 엉덩이에 차고있는 땅으로.....

 

  

 

바이칼 알혼 섬으로 가자면 이르쿠츠크 공항으로 먼저 비행기를 타고가야한다.

그곳에서 육로로 시베리아 대 평원을 일곱시간 다시 달려가야한다.

그 호수와 섬에 다달아 목적을 고유하고 시원지에 참배를 한 다음에야 여행의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서울에서 국적기를 타고 한밤중에 도착한 이르쿠츠크 공항은 우리 지방 공항보다도 시설이나

규모가 못하다. 그러나 앞으로는 동 시베리아의 관문으로서 발전의 여지가 많아 보였다.

비행기로는 고작 네시간일 따름이다.

 

 

 

 

 

여장을 푼 곳은 앙가라 호텔로서 이곳에서는 가장 좋은 곳이라고 한다. 앙가라는 이 도시를

감돌아 흐르는 큰 강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앙가라 강은 바로 바이칼 호로 흘러들어가는 336개의 강과 달리 유일하게 바이칼을 발원지로 하여 흘러 나오는 강이다.

이 강은 우랄 쪽에서 예니세이 강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흑해로 들어간다.

최근 러시아가 쏘아올린 우주선의 이름도 "앙가라"라고 하던가.

 

호텔 앞에는 아침마다 바이칼 호수로 관광을 떠나는 러시아 국내외의 관광객들이 모여서

차편을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서 슬라브 인종과 몽골리안 계통의 혼혈 얼굴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사실 바이칼 호수는 몽골 공화국의 바로 윗쪽에 자리하고 있었고 얼만 전만 하여도 몽골리안

계통의 "브랴트 자치 공화국"이 있었으나 몇 년 전 국민 투표에 의하여서 사라졌다고 한다.

원래 징기스칸의 어머니도 이 곳 "알혼"섬 출신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꼭 확인하고 싶었던 또 한가지는 브랴트 민족의 서낭당 제례의식이었다.

연구에 따르면 서낭당 기원 의식과 관습은 몽골과 고대 부여, 동이족들과의 관련성이 많다는데.

현장에서 보니 우리의 서낭당 무속 믿음과 너무나 흡사하였다.

살아있는 나무에 소원을 빌며 매듭을 메다는 형식과 형상은 더말할 바가 없이 닮은 꼴 형태였다.

이제 그 흔적들은 급속하게 역사에서 지워지고 있었지만.

  

이르쿠츠크 호텔을 떠나서 민족의 시원이라는 전설이 서린 알혼 섬으로 들어가는 선착장 

사휴르따에 도착하는 데는 7시간이 걸렸다.

부랴트 계통의 처녀 종업원이 선착장의 간이 식당 겸 상점을 지키고 있다. 몽골리안 계통의

 주민들은 사진 찍히기를 기피하였고 노랑머리 주민들은 렌즈 앞에 노출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알혼 섬에는 징기스칸의 무덤이 있으리라는 전설 때문에 도굴꾼들이 몰려들기도 했으나

 이제는 땅을파는 일이 법으로 금지되었다고 한다.

 


(부랴트 처녀 사진)

 

아, 눈앞에 드디어 바이칼 호수가 나타났다.

가슴이 뛰었다.

이 바이칼 호수를 건너 들어가면 알혼 섬이 있고 그곳에서는 우리의 "선녀와 나뭇군" 비슷한

전설이 있다는 것이다.

선녀와 나뭇군은 열두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막내의 이름은 "고리"라고 하여서

이곳을 떠나 머나먼 이동을 하면서 부여족이 되고 한반도로 들어왔다고 민속학자들은 추정,

혹은 주장하고 있다.

 

옛날 옛적부터 몽골 혈통 부랴트인과 우리의 조상은 친연으로 연결되었다.

그들도 몽골에서처럼 한국을 솔롱고스라 했다. 몽고반점도 공유하고 이곳이 외가인 칭기즈칸과

한국 공주는 결혼도 하였다.
유전자 지도를 보아도 부랴트인과 우리 사이에는 상당한 친연관계가 있다고 한다. 

중국인보다 한국인의 게놈과 비슷하다는 연구 분석도 있다고 한다.

부랴트 족들이 갖고 있는 신화와 단군신화 혹은 그 이후의 건국설화도 유사한 점이 많다.

 


 (부부 낚시꾼)

 



(일광욕 부인)

 


(바이칼호수 알혼섬, <붉한(BULKHAN) 바위>)사진

 

바이칼 호수에서 가장 신성하다는 곳이 알혼섬이고 알혼섬에서도 가장 신성하다는 곳이 바로

이 붉한(BULKHAN) 바위이다.

 

육당의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도 상당부분 이곳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나가는지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한국인의 뿌리는 크게 ▲바이칼리안(밝할인) ▲한반도-만주 

원주민 ▲약간의 동남아 등 남방인 ▲약간의 유럽인(백인)으로 구성되었다는 주장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붉한(Burkhan) 바위에 있는 붉은 이끼는 푸른 이끼가 수천년 지나서 변형된 종류라고한다.

그러므로 붉한 바위라는 이름은 "붉은 이끼가 낀 바위"라는 음운상의 추론도 가능하지 싶다.

붉한(Burkhan)은 느슨하게 풀어서 /부르한/ 이라고도 발음 하지만, Burkhan 이라는 표기가 

명증하듯 원래 [붉한] 인 것으로 추정이 된다.

 

/붉한/을 /붉은 하/ 혹은 /붉은 해/의 뜻으로도 보면 강변일까.

고대알타이어에서는 "해"를 "하" 라고 발음했고 일본어로 건너가서는 "해"가 "히"가 되지 않았던가.

아사히(朝日)처럼.

 

하여간 현장에서의 감성으로 느끼기에는 "붉은 태양처럼 붉은 바위" 라는 뜻의 이름에 다름 아닌

것 같다.

붉은 이끼가 그 바탕에 있음도 물론이지만 우리는 항상 밝고 붉은 태양을 좇아온 북방 기마민족이

아니었던가.

 

 

 

(동력 행글라이더 사진)

 

아주 먼 옛날 사냥꾼 하이도리는 알혼섬을 돌아다니다가 바이칼 호수에 내려앉는 백조를 발견

했다.

그런데 이 백조들이 호수에 내려앉자마자 아름다운 아가씨로 변하더니 옷을 벗고 호수에서 

목욕을 하는 것이었다.

 

하이도리는 그 중 한 아가씨의 옷을 감추었다. 목욕이 끝난 아가씨들은 모두 하늘로

날아올랐지만 한 아가씨만은 땅에 남아 하이도리와 결혼을 한다.  

이들 둘 사이에서 열한명의 아이들이 태어나고, 이들은 부랴트인들의 선조가 된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행복한 삶을 산다.

 

여전히 아름다운 아내는 어느 날 하이도리에게 백조의 옷을 한번만 입게 해달라고 조른다.

이제 나이도 들었고 아이가 열한명인데 무엇이 걱정인가하고 하이도리는 아내에게 옷을 준다.

옷을 입은 아내는 백조로 변했고 연기가 빠져나가는 천장 구멍을 통해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바이칼의 ‘백조와 사냥꾼’과 우리의 ‘선녀와 나무꾼’ 설화에 무지개같은 가교가 놓이는 순간이다.

시베리아의 중심, ‘영혼의 집’이라 불리는 바이칼 호수 알혼섬과 우리 동네의 아름다운 선녀 

호수가 오 색영롱하게 이어진다.

 


 

 

(붉한산과 천조각)

 

"붉한 바위" 혹은 "불한 곶"은 호수 위에 불쑥 솟은 두 개의 바위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말로는 ‘밝은 칸’이라는 뜻도 내포하여서 천신이자 단군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주변에는 우리네 당산나무랄 수 있는 "세르게"가 있고 그 "세르게"에 걸어둔 색색의 헝겊

"자아라"가 바람에 미친듯이 나부낀다.

어릴때 동구밖 서낭당을 지나면 미친년 널뛰기 하는듯한 천쪼가리가 바람에 날고

그러나 그 떨림은 또 뜨거움이 되어 몸과 마음을 담금질 하였지---.

 

바로 이곳 시조 설화에서 보면 자식이 "열 하나"였다.

동으로 내려간 우리 민죽의 시원, 코리에 해당하는 세르게는 앞에서 열한번째로 펄럭이는가

이곳 부랴트 사람들 사이에는 먼 옛날 동쪽으로 이주한 코리족의 전설이 전해 온다.

이들이 칭하는 코리를 우리 학계에서는 ‘고리’나 ‘맥’의 동음어라 생각한다.

고리는 ‘동명’이 출생한 나라로 ‘북부여’의 다른 이름이고 그가 세운 나라가 부여이다.

그런데 동명은 고구려의 ‘주몽’과도 겹친다. 부여와 고구려는 시조설화에서 동일하다.

시대와 나라가 다른데 시조설화는 같다.

 

이 혼란스러움은 브랴트인들이 이야기하는 코리를 역사적으로 정리하면 분명해진다.

먼 옛날 바이칼에서 대흥안령 산맥까지 이어지는 초원지대의 코리족이 만주지역까지 내려와

나라를 세우니 바로 중국 역사서에 등장하는 ‘고리국’이다.

그 고리국에서 탈출한 동명이 부여를 창업하고, 고구려는 부여에서 출원하였으니 동명에 대한

설화는 코리족들의 전매특허였던 것이다.

우리 민족 형성에 큰 지분을 가진 코리족의 ‘백조와 사냥꾼’ 설화는 농경사회로 진입한 

우리에게 ‘선녀와 나무꾼’으로 변용되어 이어오게 된 것이 아닐까?

 

 


알혼 섬, 붉한 바위 쪽으로 우리나라의 무속,  무술인들이 단체로 관광을 온 적이 있다고한다.

하루밤을 지내는데 모두들 뒤채이며 잠 못 이루는 밤이 지나갔다고 한다. 지기가 너무 세서 잠을

못 이루었다는 것이다.

우리 일행은 근처의 러시아 식 펜션, 다차에서 하루밤을 달게 잤다,

 

다음 행선지는 도루 이루쿠츠쿠이다.

 

 

 .(계속)

 

 

  

 

선착장에서 건너다 보이는 알혼섬은 바라보

 

이르쿠츠크에서 온 일단의 여대생들이 고향크에도 선수촌이 있긴하겠지만. 

 

 

 

 

 

 

서울 명수학교는 종로구 혜화동에 있는 특수학교임을 귀국 후에 알게되었다.

이와 똑같은 스쿨버스가 지금도 여러 본 얼굴같기만 하다.

  

 

 

 

 

 

 

 

 

 

 

 

 

 

 

 

 

 

 

 니 자연산 언덕일 따름이었다.

 

 




kll;;vvmslfkxmd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