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C군에게(내 마음의 편지 3월호 원고)
며칠 전 큰 화재가 난 뉴저지 허드슨 강변 에지워터 근방에 아파트를 구하여 들어온다는 메일을
받고도 나는 멀리 피츠버그에 체류 중이라 서로 연락은 안 되고 걱정만 앞서고 있네.
한동안 에지워터 일대가 정전, 단수에까지 이르렀다니 불편함이 많았겠지.
인터넷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불이 난 400세대의 아발론 아파트는 내가 뉴저지 아들집에서 조지 워싱턴 브리지(GWB)를
지나다니며 자주 본 기억이 생생하네.
허드슨 강변을 내려다보는 괜찮은 위치이고 근처에 일본인들의 큰 쇼핑 몰도 있어서 우리
교민들이 많이 살고 있지. 이번에도 한인 이재민이 많이 났다는 소식에 걱정이 앞서네.
자네가 구한 아파트는 다행히 바로 거기는 아닌듯하지만 여러모로 불편함을 겪고 있을 거야.
여기서는 아파트라고 하면 임대 공동주택을 말하고 우리나라처럼 자신에게 분양된 공동주택은
대략 콘도(미니엄)라고 한다네.
그건 어쨌거나 일직이 CC 혹은 캠퍼스 커플이라는 말을 실천한 제자 C군이여~!
리더십과 에너지 충만하던 자네의 얼굴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네.
또한 반려자가 된 총명하고 예쁜 배필도 잊을 수가 없어. 두 사람은 가끔 과격한 학생운동으로
지도교수의 걱정을 유발하기도 했지만 모두 다 적당한 선을 긋고 넘치지는 않았었지.
자네들 졸업하던 해에 주례를 했던 기억도 나는 선명해.
생각해보면 7-80년대 그때는 외려 캠퍼스 커플이 성했던 시절이었어.
학생운동을 격렬히 하면서도 평생을 걸고 살 뜻 맞는 동지를 그 속에서 짚어 냈을 것이고
운동권이 아닌 일반 동아리 모임도 다양하고 끈끈하였지.
감동과 낭만이 존재하던 시절이었어.
지금은 학과간의 경계도 융합이라는 이름으로 흐려졌고 전공도 복수, 혹은 복합이어서 예전
학과의식이나 전통을 바탕으로 한 인간관계는 형성이 되지 않는 것 같아.
또 교양학부에서부터 나중에 “잘 팔릴” 인기 전공계열로 가고자 서로 경쟁심리만 팽배해졌으니
학창생활이 무미건조할 수밖에.
나는 어쩌다가 당시 보직교수라는 직책을 맡게 되어서 학과 통폐합의 진통을 모두 따 안아
처리하고 해결해내는 입장이었지.
세상살이에 별로 득이 되지 않고 쓸모가 덜한 학문이라는 단순 논리로 인문계의 학과 지우기랄까
경계무너뜨리기에 골몰하면서 귀중한 내 연구시간을 탕진한 것만 같아서 지금도 마음이 불편해.
물론 그때는 나라의 정책이 그런 쪽으로 편향되었고 강요의 정도도 학생증원과 감축 등,
대학운영을 걱정할 만큼 집요하였다는 변명도 댈 수는 있지만, 오늘은 자네가 메일로 보내왔던
자녀교육에 관한 질문에 답하는 것이 우선이어서 이쯤 해 두세.
여담 같지만 지금은 캠퍼스 내에서의 학과라는 개념이 느슨하다보니 교수 학생간의 인연도
드라이하여져서 결혼식 주례라는 일로부터도 해방이 되어 다행이라는 후배교수들의 블랙 유머도
들리더군.
젊은이들이 아무래도 SNS 등의 위력으로 좁은 캠퍼스 영역이 아니라 모름지기 세계화의
차원에서 인연 맺기를 도모하는 시대가 되어서 그런가?
아니, 어쩌면 그보다는 젊은이들이 결혼이라는 걸 아예 내 팽개치거나 잘해봐야 “중년만혼”으로
돌아서 버린 탓이 더 절대적인지도 모르겠네.
젊은이들이 도대체 CC 커플이든 인터넷 중매든 결혼이라는 것을 해야 혼사니 주례라는 어휘가
존재할 것 아닌가 말일세.
자네도 이런 트렌드의 시대에 적령기를 맞았더라면 지금처럼 예쁜 아내와의 인연을 맺기나 했을
건가?
싱거운 가정을 해보지만 그래도 자네는 트렌드 보다 실제를 택했으리라는 확신이 드네.
자, 그건 그렇고 졸업 후 즉시 큰 기업에 들어가서 그동안 일취월장, 중견이 되어 마침내 해외
지사 책임주재원으로 온다니 기쁘기 한량이 없네.
나는 지금 피츠버그의 딸네에 있지만 자네가 근무할 뉴저지에는 아들네가 살고 또 손자들이
초, 중등학교에 다니고 있으니 정착 초기에는 나름의 도움말을 줄 수도 있을 것만 같네.
자네의 두 자녀도 초등하교 저학년이라고 하였지?
물론 지혜로운 자네 부부니까 금방 궤도 진입이 되겠지만---.
지난번 메일에서 자네 부부는 이제 지독한 입시 경쟁에서 해방이 되어 즐겁다는 말을 썼지.
사실을 말하자면 그런 말과 기대는 반쯤만 맞는 말이라고나 할까.
여기도 역시 입시는 전쟁이더군. 물론 적당히 공부시키고 적당히 살아가는 계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소수민족으로 미국사회에서 버티어내자면 전문직을 택해야 하겠고 그러려면 역시
수준이상의 까다로운 대학입시의 관문을 통과해야하는 것 아니겠는가.
더구나 여기는 페이퍼 테스트라는 일종의 단판 승부로 결판을 내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인성검사, 여러 가지 특기에 관한 심화측정의 과정을 거쳐야하니 그 단계별 노력을 모두
적시해야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지.
각 단계마다 그 뒤에는 학부모의 손길과 시간이 항상 따라야하니 차라리 한국처럼 학원에나
맡기는 게 더 편하겠다는 탄식이 금방 나올 만도 하지.
이것은 극성맞은 한인 일부나 인도인, 중국인들 만하는 일이 아니고 평균적인 백인 부모들도
고된 추억으로 간직하는 통상적 과정이라네.
조기유학을 유학원 같은 우후죽순의 기관에 맡겨서 보내놓고 영어하나만 제대로 쓸 줄 알아도
본전은 뽑으리라 안도하는 한국의 학부모들에게 이런 현실을 꼭 알릴 필요가 있다는 심정에서
말을 한다네.
초등학교 1-2학년에는 학생들을 무조건 놀리는 듯한 미국학교의 교육 프로그램에 처음 불안해
하던 기러기 엄마들은 학년이 높아질수록 학부모의 참여가 절대적인 방과 후 활동과 숙제에
마침내 손을 드는 경우도 허다하게 본다네.
아이가 7학년, 아니 6학년쯤 되면 벌써 수학, 과학의 수월교육 제도가 있어서 수준에 맞춘
이동식 수업을 실시하고 인근 대학에서는 여름방학 때마다 고차원의 수학 프로그램과 전문적
예체능 특기교육 프로그램이 가동하고 그 성적과 기록은 학생들의 꼬리표가 되니 여름한철 대학
캠퍼스 주차장은 이런 학생들과 학부모로 새벽부터 분주하다네.
이건 최근에 일어난 일이 아니고 벌써 오래전부터 존재해 온 교육의 일상이라네.
오죽하면 이 뒷바라지가 어려워서 여름방학에는 아이들을 서울 강남에 있는 학원으로
보내버린다는 과장 아닌 실재가 입소문을 타겠는가.
다만 다행(?)인 것은 그런 학원이 뉴저지 한인 타운에는 있다는 사실일세.
부부가 모두 전문직에 속하는 학부모일수록 아이들 뒷바라지가 시간적으로 물리적으로
힘겨운데 그런 아이들을 학교가 파할 때 학원 버스가 찾아가서 데려온 다음 과제와 선행학습,
피아노와 바이올린, 태권도를 필두로 체육특기까지 책임을 지는 그런 사설 학원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라네.
흥미롭게도 그런 기관의 책임자에 젊은 한국계 2세가 많다는 사실은 이분들이 부모를 통하여
한국 모델의 선행학습을 한 결과라고나 할까.
피츠버그에는 이렇게 조직적인 기관이 없다보니 딸네는 뉴저지 풍경을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모른다네.
자, 이제는 몇 가지 실재적 일화를 들며 교육관련 이야기를 맺을까 하네. 여기는 토론(debate)과
예체능과 수학이 학생평가의 기반으로 중시되기에 학교별 경쟁이 있을 때는 우선 athlete 즉
운동선수 자랑이 앞에 나오고 그 다음으로는 그 단어에 mathematics의 M을 덧붙인 mathelete
들이 나와서 학교의 명예를 살린다는 말도 있다네.
과시적인 수학 영재들 말이지.
요즈음은 인터넷이 발달되어서 과거에는 존스 홉킨스 같은 일류대학으로 여름 방학 이면 직접
가서 밞던 코스들도 온라인으로 할 수 있다지만 하여간 이 여름 중에 중고등학생들의 미래가
걸려있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모두가 하는 테니스나 수영으로는 승산이 없어서 어떤 학생은 스쿼시라는 덜 알려진 종목의
고수가 되어서 아이비리그로 진학했다는 전설도 있고---.
끝으로 최근 피츠버그에 도는 두 가지 석세스 스토리만 더 소개하고 우선 마치겠네.
하나는 한국계 부인과 웨스트포인트 졸업 백인 남편 사이에 태어난 학생이 MIT에 들어간
경우라네.
물론 이 학생은 학과성적도 괜찮은 편이었지만 여러 자원봉사모임의 리더를 했고 신문배달도
오래한 기록이 있다는 군.
그런데 거기 더하여 장대높이뛰기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특기를 장대하게 발휘하여서
MIT의 입학허가서를 받았다는 말일세.
또 하나 한국인 2세의 경우로는 학부 하버드를 마치고 하버드 의대까지 들어간 청년의
이야기라네.
이 자그마한 학생은 고등학교를 다닐 때 뛰어난 유머감각의 선거연설로 편견을 물리치고
총 학생회장을 했다는 것이네.
그는 마음만 먹으면 대리석상도 웃게 할 수 있다는 별명이 붙어 있다는군.
이야기가 길어져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쓰겠네. 전에 자네가 한국에서 메일로 물어 본 일들이라
자녀 교육에 관한 현장 리포트를 한 셈인데 너무 긴장감부터 준 것이나 아닌지.
주말 전으로 연락이 되면 큰불이 난 에지워터의 윗동네 포트리의 한식당에서 가족끼리 회동을
하세.
내가 환영파티를 열겠네. 다시 한 번 반가운 마음을 전하며~.
Symphony No.4 in A major, Op.90 "Italian" 멘델스존 / 교향곡 제4번 가장조 작품90 '이탈리아' Jakob Ludwig Felix Mendelssohn, 1809∼1847 Maurizio PollIni, Piano
제1악장 Allegro vivace A장조 8분의 6박자 소나타 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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