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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무 속의 블라디보스톡 입항

원평재 2015. 3. 27. 07:49

 

 

 

 

 

 

 

해무가 아름답게 피어올라서 아마추어 사진가의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이 해안~!

하지만 사실은 이  해변이야 말로 한인들의 아픔이 묻어 있는 곳이라고 한다.

1870년 한인들이 최초로 이주했던 "개척리"가 바로 이 해변이었다. 

지금도 블라디보스톡의 최고 번화가인 이곳은 "구한촌" 구역이기도하다.             

1886년에는 400명, 1891년에는 840명에 이른다. 1893년 한인이 늘어나자 시 당국은 한인들의

집단거주지를 따로 만들었다.

지금도 블라디보스톡의 최고 번화가인 이곳은 이른바 "구한촌" 구역이다.     

 

1911년 콜레라가 창궐하자 한인들은 북쪽 2km 산비탈에 강제로 이주되는데

그곳이 바로 독립운동의 요람지인 "신한촌"이다.

1915년에는 한인수가 무려 1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홍범도, 유인석,이상설, 이위종, 안창호, 박은식, 신채호, 최재형까지 구한말 독립운동가는

모두 신한촌을 거쳐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에 한인들이 정착한 이유는 바로 아무르강(흑룡강, 헤이룽장) 건너편

조선 땅을 그리는 마음이 서린 탓이 아니겠는가

            

그러고 보니 아마추어 사진가가 이곳을 찾은 것은 한인이 이 땅에서 일만명을 넘은지

꼭 100년하고도 1년을 더 보탠 날짜인가 싶다.

과연 지난해에는 100주년 기념 잔치를 크게 열려고

계획이 세워져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저 가슴아픈 세월호 참사로 인하여

바다와 배가 관련된, 그리고 모든 행락이 위축된 국가적 상황으로 말미암아

모든 계획이 취소되었다고 한다.

 

저기 걸린 거대한 "금각교" 소개는 다음 회로 미루고

오늘은 해무 속의 입항 장면만 올립니다.

 

 

 

 

 

 

 

 

 

 

 

 

 

 

 

 

 

 

 

 

 

 

 

 

 

 

 

 

 

 

 

 

 

 

 

 

 

 

 

 

 

 

 

 

 

 

 

 

 

 

 

 

 

 

 

 

 

 

 

 

  

 


Symphony No.2 in C minor, Op.17

'Little Russian'


차이코프스키 / 교향곡 2번 '소러시아'


Pyotr Il'ich Tchaikovskii 1840∼1893



 

 


1악장 (Andante sostenuto-allegro vivo)



2악장 (Andantino marziale, quasi moderato)



3악장 (Scherzo(Allegro molto vivace))



4악장 (Finale(Moderato assai-Allegro-Presto))



 

교향곡 제2번 다단조「소러시아」작품17

차이코프스키의 전기 교향곡 중 가장 유명한 이 교향곡 제2번은 소러시아(지금의 우크라이나) 지방의 민요에서 소재를 취하고 있다. 차이코프스키는 학생 시절, 누이동생 알렉산드라의 시댁인 우크라이나의 카멘카에서 여름방학을 보내곤 했는데, 이것이 우크라이나의 민요를 친히 접하게 된 계기로 보인다.

곡의 제1악장과 제4악장에는 소러시아의 민요가 사용된 한편, 제2악장의 행진곡은 차이코프스키가 1869년에 작곡한 오페라「운디나」에서 소재를 얻은 것으로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과 극적 음악에 있어 창작상의 분명한 구별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초기 작품답게 교향곡 제1번과 마찬가지로 국민주의적인 색채가 농후하며, 교향곡 제4번을 작곡한 후에 손질했기 때문에 기교적으로는 오히려 한 걸음 앞서 있다고 볼 수 있다. 변주곡에 가까운 형식으로 꾸며놓은 마지막 악장에서는 그의 자유로운 형식관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1872년 7월부터 10월에 걸쳐 작곡되었으며, 1873년 2월 7일, 모스크바에 있는 러시아 음악 협회의 연주회에서 니콜라이 루빈시타인의 지휘로 초연되었는데, 당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