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힐리야, 옛땅! 연변과 만주 벌판

조선문 독서사에서---(여섯번 연재 중 다섯번째 글)

원평재 2005. 4. 3. 08:43
그 지혜로운 말씀의 효과가 당장에는 나타나지 않아도 인생의 어느 시점에선가는

그 말이 후대의 심금을 울린다는 것입니다.

아까 그 천문학자의 말이 다시 한번 생각나는 계제입니다.

 

이 시간의 결론을 제 개인적, 사적인 예를 들면서 마치고자 하는 것을 관용해

주십시오.

저는 대한민국에서 평생을 살고 있지만 한 세대 전에 제 막내아우는 어려운 조국

땅을 떠나 미국으로 이민을 하여서 초기의 고생을 극복하고 지금은 훌륭한 메디컬

닥터로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슬하에 남매를 두고 있는데 모두 공부도 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한국어를 모릅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에 영어를 더 잘하게 만들려고 제 아우 내외들은 영어를 잘 모르는

처지였지만 무진 애를 써가면서, 정말 피 땀 흘려 영어를 배워서 집에서도

영어만 썼답니다.

 

한편 저와 이 아우는 자랄 때에 당시 한국의 학교 인근에 있는 책을 빌려주는 데에서

무작정하고 소설을 빌려다가 일종의 남독을 하였습니다.

청소년기이니 주로 애정소설에 보태서, 당시의 암울했던 시대상을 반영한

퇴폐적이고 허무주의, 센치멘탈리즘, 절망과 좌절의 미학을 거름장치 없이,

여과 없이 마구 읽어댔던 것입니다.

저보다 마음이 여리고 전공도 의학인 제 아우는 그때의 체험이 평생의 앙금으로

남았던 모양입니다.

 

제 자식에게는 독서, 특히 소설 읽기를 제한하겠다고 저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가보니 조카 아이들의 방에는 미국의 학교에서 내주는 소설 문학

중심의 리딩 리스트와 거기에 맞춘 책들이 서가에 잔뜩 꽂혀있었고 지도 교사가

꼼꼼히 체크해준 기록을 달고 있는 독후감 파일도 우연히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아이도 의학을 전공 하게 되었는데, 이 조카 아이의 동양의 고전에 대한 지식과

이해의 폭과 한자 실력은 저를 능가하고 중국 유학생 친구들도 많아서 작년에는

그들과 또 백인 친구들과 함께 한국인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서울에

왔는데 그들끼리의 말은 물론 영어이지만 가끔 엉터리 우리말과 또 더듬거리는

중국어를 하고 있었습니다.

 

운이 좋아서 제 아우의 가정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이런 1.5세대 가정이 오늘날

엄청난 낭패를 겪고 있음을 우리는 익히 보고 듣고 있습니다.

제 큰 자식 놈은 기회가 있어서 부부가 지금 뉴욕의 맨하탄에서 일하며 잘 살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아들을 낳아서 제게 손주를 안겨주었습니다.

제 자식 놈을 포함하여서 요즈음 미국에서 의식이 좀 깨어있고 조금이나마

지혜로운 젊은이들은 자기 자식들을 적어도 유아원과 유치원을 다닐 때만이라도

반드시 한국 유치원에 보내고자 미리부터 안달이랍니다.

(다섯번에 끊지 못하고 한번더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