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힐리야, 옛땅! 연변과 만주 벌판

따오(到), 평등주의

원평재 2005. 4. 28. 07:41

내가 강의를 하는 이 곳 영문과에도 우리나라에서처럼 여학생들이

훨씬 많다.

한 학기도 반이 지나고 보니 지금은 출석을 부르면 "Here (I am)."이나

"Sir"라는 답도 많이 나오지만 높은음 자리표로 여학생들이

"따오(到)"라고 똑 불어지게 대답하는 소리를 들으면

기꺼이 페미니스트가 되지않을 수 없다.

 


 
연길시 북산가 언덕에 자리한 연변과학기술대학입니다.

 

(이 곳 대학에 계시는 교수님의 블로그(http://blog.daum.net/bakgiwan)에

표제처럼 나온 대학 캠퍼스 사진을 허락을 얻고 퍼담았습니다.

아직 이 곳의 계절이 사진 찍기에는 제 철이 아니라는 핑계에 더불어서

사실은 이 만한 사진을 찍을 자신이 없기 때문에---.)

 

이 학생들에게 미국 문학 개관을 강의하면서 미국에서의 여성 참정권

(Woman Sufarage Amendment)이 20세기에 들어와서야 확보되었다는

사실을 밝히니 모두들 놀란 표정이다.

 

아직도 미국의 "평등권 수정안(ERA)"의 목표가 인종 차별 철폐 못지않게

여성의 불평등 상황 개선을 최대 쟁점이자 주요 과제로 하고 있음은

실로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내 개인적 설문 조사에 따르면 여기 연변의 여성 동등권 문제는

매우 낙관적 상태가 아닌가 한다.

물론 청춘 남녀에게 설문을 했기에 세상 물정에 대한 아직까지의 어두움과

그 나이의 유별난 자신감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는 없겠으나,

"남녀간의 성차별이 이 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쪽이 그들의 상황인식

이었다.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주장까지도 실려있겠지만---.

 

아닌게 아니라 나도 이 곳에서의 사회 생활을 펴나가면서 이런저런

기회에 접해보면 조선족 사회에서 여성들은 오히려 의사결정권의

비교 우위를 점하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하긴 우리나라의 경우도 포함하여서 성차별의 문제는 보다 복잡한

중층구조의 양상을 띄기 때문에 한두마디로 나눌 주제는 아니겠지만---.

 

이번에는 이 곳에서 어쩌다가 본 사회적 신분간의 평등 주의에 대하여

한 편린을 소개해 보겠다.

 

 

 

며칠 전 어떤 단위의 주석이 우리 부부를 식사에 초대하면서

 

식당의 위치에 서투르리라고 염려하여 자기의 차를 보내주었는데

아파트로 차를 갖고 온 그 단위의 전업 기사가 우리 부부에게

천연덕스럽게 악수를 청하는 것이 아닌가.

 

돌아오는 길에도 그 주석께서는 우리들에게 차를 내주고 자신은

다른 교통편을 이용했는데 자기 기사에 대한 그 분의 예의가

깍듯하였고,

차 안에서의 나의 좌석 위치는 과연 오고 갈 때 모두 기사 옆의

조수석이었다.

집사람이야 물론  넓은 뒷 좌석을 홀로 향유하였고---.

 

나도 운이 좋아서 기사를 써본 적이 있었지만 내 차의 기사가

내 손님에게 악수를 청하였다---?

경천동지할 일이었을 것이다.

 

(아파트 입주의 순서에 완급이 있을 따름이지 언젠가는 차례가 온다는 확신이 있고

또한 실현이 되기에 천연스러운 기다림이 있다.)

 

내가 있는 아파트의 옆에는 붉은 벽돌과 기와로 된 낡은 집들이 아직도 빽빽히

있다.

그 너머로는 재개발이 이미 된 5-6층 규모의 아파트들이 또한 빽빽하다.

이 낡고 헐어빠진 가옥들은 가끔 한두채씩 헐려나가고 있는데

언제 아파트로 재개발이 될는지는 나그네가 알 수 있는 일이 아니겠지만

한가지 알만한 것은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것 같다는 점이다.

 

며칠전 일요일 아침에 좀 시끄러운 소리가 아래에서 들렸다.

내려다보니 중형 트럭과 고물 장수의 리어카가 여러대 와있고 머리를 수건으로

쓴 남녀 인부 몇사람이 나타나서 X표시가 벽에 있는 어떤 집을 헐려고 하는

참이었다.

마침 못질 된 나무 문을 인부들이 큰 쇠 파이프로 따고 있는데 갑자기 가죽 옷

입은 여자가 나타나서 "아직 집을 부시지 말라, 세간 살이가 좀 남아있다"고

항의를 하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동네 사람들이 모두 단체로 저항을 하면서

철거반원들과 화염병을 무기삼아 일전을 겨루었을터인데, 여기에서는

총 책임을 진 공무원 같은 사람이 담배를 몇번 뻑뻑 빨더니 상황 끝을

선언하는 것이 아닌가.

그 때 이래로 일주일 만인가 그 집은 말썽없이 헐려나갔다.

 

이곳에서는 집을 헐 때면 단위의 책임자가 찾아와서 앞으로 고통이

많겠다는 위로와 함께 이사를 보장해주고 새 아파트를 지어서는

그 주인에게 그대로 다시 입주를 시킨다고 한다.

도로를 내느라고 집이 헐리면 새집을 마련하고도 남는 비용이 나온다고 한다.

이러고 보니 도리어 어서 내집 헐라고 데모를 할 판이다.

 

중국이 안고있는 모순과 부조리가 왜 없겠는가.

사람 사는 동네에서 오죽하면 아직도 공개 처형이 있겠는가.

그러나 그들이 우리에게 배울 것을 찾듯이 우리도 이들의 잘하는

점을 찾고 배우고 실천해야 서로 잘살고 존중하는 이웃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보통화 한어(漢語)에는 경어 체제가 발달하지 않아서 그런가 혹은 평등 체제의

문화가 언어를 그렇게 끌고 갔는지 하여간 평등주의는 유별나다.

그러면서도 또 여기 과기대의 학생들은 교수들에게 깍듯하다.

조선족 학생들의 솔선 태도에 한족이나 다른 계통의 학생들도 자연히 따라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중국의 다른 대학에서 이런 분위기는 드물다고한다.

중국에서 나온 삼강오륜이 아직도 우리 핏줄에서만 연면한가---.

하긴 한국에서도 이런 미덕은 사라지고 있지만.

 

 

오늘도 내 시간의 서두를 장식하는 건강한 음정들이 귓전에 새롭다.

따오(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