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정 탐방
(광개토대왕비가 있는 쪽에서 멀리 대왕능을 건너다 보았다. 막 피는 꽃은 작은 사과,
능금꽃이라고 한다. 핑구어나 핑구어리와는 거리가 있는 꽃이다.)
중국에서 5-1절이라고 부르는 노동절은 13억 인구가 기다리는 봄의 축전 기간이다.
내가 객원 교수로 있는 연길의 이 곳에도 조금 과장하면 새 학기가 시작할 때부터
이 연휴 기간을 기다리는 막연한 약속이 이미 형성되어 있다.
북경이나 상해를 여행 계획의 표적으로 삼는 설레 임도 적지 않았지만,
국적이야 어쨌건 출생이 “아아, 대한민국” 쪽인 교수들은 이 황금의
연휴가 되면 동북의 역사탐방을 숙명처럼 여긴다.
더욱이 금년에는 지난 1년 반 동안 유네스코 등록을 위하여 그 지역들이 출입 통제
되었다가 새로 개방이 시작되었기에 이래저래 이 곳의 역사 탐방에 지원자가
쇄도하여서 선착순으로 41명이 그룹을 이루었다.
부속 외국인 학교와 한국인 학교의 교사 부부와 그 가족이 포함되어서 50명도 넘는
지원자들이 있었지만 기차와 버스의 사정을 감안하여 축소 조정하였으나
주선을 한 역사학자께서는 못내 아쉬움을 표하였다.
구성원 중에는 연변 일보에 매주 칼럼을 쓰는 한국어학부의 원로 A 교수님,
우리나라의 주요 일간지 신문 기자 두 사람, 영어밖에 모르는 초중고생,
그 외에도 코스모폴리탄한 다양한 사람들이 특색있게 포함되었다.
중국은 동북공정의 목적을 문자그대로 사라져가는 인류 문화유산을 유네스코에
등록하는 일환으로 북경 올림픽과도 문화적 연계를 감안하였다고 설명하는데,
도로 사정같은 것은 이럭저럭 내가 10년 전에 백두산에 가던 때 보다 많이
좋아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는 길에 다시 확인했지만 "이도백하"에서 "안도"와 "연길"을 잇는 길에
광활하게 펼쳐져있는 자작나무 숲은 아직도 훼손되지 않고 그 미태를 드러내고
있어서 허전한 나그네의 마음을 그나마 위로해 주고 있었다.
(호태왕비 앞에서---. 전에는 비록 왜인들이 비석의 문자를 훼절하는 등
의연한 몸매를 좀 더럽히긴 했어도 저 거대한 자태를 쓸어안아보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저기 유리로 된 보호벽 속에 거뭇거뭇 보이듯이
꼼짝없이 우리 속에 갇힌 거인이 되어 소리없이 포효할 따름이었다.)
요녕성의 만주족 자치현 환인(졸본부여)의 오녀산성, 장군묘, 하고성 고묘군,
길림성의 광개토대왕비, 오호묘, 장군묘, 환도산성, 국내성, 천추묘, 서대묘,
북한을 잇는 만포철교, 압록강 보트 유람 등의 다채로운 역사 탐방은,
그러나 내 마음 속에는 봄날의 꿈처럼 한갓되이 허전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그렇다고 초기 탐사단들이 그랬던 것 처럼 "아, 고구려!" 같은 속없고 앞뒤없는
플래카드는 결코 내 세우지 않았다.
여장은 호텔에서도 풀었지만 두번의 야간 침대차 이용, 두번 이상의 높고
길고 험준한 산성으로의 강행군 답사 등으로 인하여 다소 피곤한 몸으로
돌아온 연길 일우의 개발 구역에는 늦게 핀 옥매화가 부서진 쪽문 뒤에서,
버리고 간 옛 주인의 추억어린 생애를 가냘픈 꽃잎 속에 담아내고서
세찬 만주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돌아온 연길은 내 마음처럼 아직도 찬 바람 세찬 속에 겨우 매화가 꽃잎을 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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