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뉴저지 필라델피아 기행

이스트 빌리지

원평재 2005. 10. 26. 06:37

 

 

 

 

 

 

 

                       (이스트 빌리지에서는 어떤 상상력도 현실이다.)

 

 

맨해튼의 이스트 빌리지에 와있는 Y대학교 조형 대학의 김호덕 교수를 찾았다.

 

"미 동부 문학 기행" 때에 동행한 수묵담채화가로 시류에 탐익하지 않고 고집스레

순수 수묵화를 지키는 김 화백이 여행 내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와 중등학교 동기인 이강소 화백과도 가까운 사이라서 공유하는 이야기의 폭도

부담스럽지 않게 중첩되어서 좋았다.

 

함께 여행한 S일보의 김옥기 미술관장도 이래서 김 화백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이 분은 이런 이야기를 뉴욕의 S일보에 칼럼으로 올리기도 하였다.

 

 

    (이스트 빌리지가 시작하는 유니언 스퀘어에서 김 화백과 한 커트 하였다.)

 

집사람과 함게 뉴저지의 집을 NJ트랜싯으로 떠난 우리는 타임스 스퀘어에서

퍼스트 애비뉴까지 걷기로 했다.

그동안 주말이면 차로 드라이브를 여러차례 했으니 이제는 걸어가면서 현장

스케치를 해 볼 참이었다.

 

 

 

 

("반슨 노블" 책방은 맨해튼만 하여도 여러곳이 아니던가.

여류 수필가가 말했다.

"힌국의 어떤 교수가 쓴 글에 반스 앤드 노블에서 커피 한잔 들며 책들을 보면 머리가

맑아진다 하는 구절이 있어서 나도 따라해 보았더니 머리만 아프더라---.

이유를 생각해보니 영어 원서를 하나도 몰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호호호."

장한 농담을 세번인가 하였다. 나보고 들으라고 한 소리 같았다, 하하하.)

 

 

김 화백도 놀라고 아들과 며느리도 말렸지만 우리 실력을 모르고하는 소리들이다. 

지하철은 올 때 타기로하고 힘이 있을 때에 일단 걷기로 한것이다.

 

가는 길도 평소에 자주 걸어다니던 32번가의 한인 거리나 브로드웨이 혹은

5th 애비뉴 등을 버리고 샛길을 택하여서 특이한 것은 카메라로 잡았다.

어쨌거나 열심히 걷지 않아도 마침내 한시간 15분만에 김 화백이 있는 5층 집의

7번 벨을 누를수 있게 되엉다,

 

사진을 뭐낙 많이 찍고 오다보니 15분이 날라갔다 친다면 사실은 한시간 이내에

도달할 거리였다.

우리가 뉴저지에서 나오면 40번 가에서 내리게 되니 맨해튼의 옆구리를 찌르는

셈이라서 촌사람의 다리힘으로 어딘들 걸어다니지 못할 데가 없다.

 

김 화백이 우리를 기다리다가 반갑게 뛰어 나오는 바람에 바깥의 대문 격인

철제 문이 철컥하고 닫히고 말았다.

방문객인 우리가 당황하였으나 김화백은 이 큰 아파트 주인이 한국 사람이니

편한 마음을 갖이라고 하면서 얼른 뛰어가 열쇠를 빌려왔다.

 

 

 

 

 

 

 

"분위기가 이대 뒷골목 같다 카데요. 홍대 수준은 못되고---."

지방 명문대의 조형대학 교수인 김화백이 웃으며 말했다.

이양반의 두 딸은 모두 서울의 명문 미대를 다니고 있다.

 

 

                                      (한국 식당이 자랑스러웠다.)

 

 

 

(3대에 걸쳐서 빵을 구운 유명한 집이라고 하여서 크림 빵을 샀지만 맛은 별로였다.

1st & 2nd Ave. 사이의 11th Street 342E에 있으니까 이스트 빌리지의 중심인 셈이다.)

 

우리는 전수천 화백이 미국 뉴욕에서 LA까지 달리는 열차에 하얀 색갈로

일자 획을 옆구리에 긋고 달린,

얼마전의 대형 행위미술, 움직이는 설치미술기법으로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야기를 한참 나누었다.

사실 국내에서는 이목을 집중 시키지 못햇고 여기 미주판 신문에서만 후반부부터

관심을 끌었다고 한다---.

 

이 부분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 몬트리얼의 성 요셉 성당  아래에서 부터

김화백과 나누면서 자잘한 이야기들은 메모지에 적어서 보관하여 왔는데

아무래도 보관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예감했더니 과연 오늘 글을 쓸려고 보니

그 메모지가 어디로 사라지고 없다.

대충 생각나는데로 적어나갈 수 밖에 없는데 따지고 보니 별로 중요한 것도 없다.

 

 

 

 

 

하여간 문예진흥원서 30만불인가를 지원받고 국내 매스컴에서는 생돈 쓴다고

별로 호의적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반응과 대접에 화가의 대처 방법의 잘못을 따지는 시선도 있지만

전화백은 개의치 않는다고 한다.

워낙 이런 행동주의 미술이 일회적 행사에 의미가 있는게 아니라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것이다.

화가는 원년의 테이프만 끊는다는 것이다.

 

 

 

                           (이스트 빌리지 씨에터 앞에 청소년들이 몰려있다.)

 

 

"센세애셔널리즘을 좀 타야 되는 것 아닙니까?"

내가 걱정이 되어서 물어보았다.

"아임니더. 나라 돈 받을 때는 조용히 받는게 낫심다. 태생적 한계가 있거든요.

지금부터가 시작이지요---."

그가 천연덕스럽게 변호하여 주었다.

그래서 이양반에게 사람들이 꼬이나 보다.

 

아무튼 이상한 일에 국고를 낭비한다는 무식한 애국자들의 우국지정을 뒤로하고

열차는 달렸다고 한다.

뭐는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였는가---.

하여간 보름간에 걸쳐서 열차는 달렸고 때로는 차안에서 간이식도 하고 또 때로는

내려서 호텔에 들어가 목욕도 하고 밥도 해먹고---.

 

이제 2005년은 한국 화단의 새로운 원년을 기록할 것이란 희망을 안고 화가들은

전 화백을 따라 백의 종군한 모양이었다.

"열차 빌리는데 돈이 많이 들었겠습니다? 수속도 복잡하고---."

내가 또 물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아서 부자들이 결혼식을 하거나 특별한 이벤트를 많이

하는 모양이엇다.

암트랙이 장사가 되지않으니까 그런 식으로 사업 다각화를 꾀하는 모양이다.

열차 빌리는 돈은 보름에 30만불이어서 지원비는 홀랑 날라가고 그외 여러 독지

기관이나 참여자들의 참가비로 이럭저럭 이 행위미술은 진행이 되었다고한다.

 

 

 

 

 

 

                      (짧은 이스트 빌리지 거리의 중심 네거리---.)

 

 

이스트 빌리지는 알다시피 화가들이 그 옆 그리니치 빌리지, 소호 지구에서

쫓겨오다시피 한 곳이다.

화가들을 김 화백은 청소 물고기"에 비유하였다.

더럽고 엉망진창인 소호 마을을 미술가들이 손을 좀 써서 바루어놓았더니

금방 집값이 오르고 집세, 방세가 따라 오르기 시작하였다.

 

브로드웨이가 뜨기 시작하니 예술가들이 할 수 없이 그 끝 골목으로 몰려가서

Off Broadway를 만들었고 이게 또 임대료가 올라가니 또 밀려서 Off Off Broad,

소위 OOB가 생긴거나 같은 이치였다.

내가 이런 강의를 30년가까이 서울의 강의실에서 아는체하고 지꺼릴 때에

정작 발 빠른 종족들이 이 곳을 점령하였구나---.

우리 동포들도 80년대 후반부터 헐한 이스트 빌리지를 손에 넣기 시작하였으나

때로는 외환 관리법 때문에 거덜난 사람도 생겼다고 한다.

 

 

 

 

 

이 곳 예술의 마을이 어떻게 흘렀느냐하는 흐름도를 그려보면,

"그리니치 빌리지-->소호-->첼시-->이스트 빌리지-->브룩클린"

이런식의 도표가 형성된다.

지나간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앞으로의 이동 지역이 어디냐가 문제인 것이다.

브룩클린도 최근에 많이 올랐다.

다만 비싼 것들은 벌써 한 13%가량 내렸다는 소문도 들린다.

 

김 화백과 우리는 이스트 빌리지의 청춘 만세를 증언하러 나가보았다.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어떤 빵집에서는 김 화백의 말데로 빵도 샀고 생각같아서는

술도 한잔하고 싶었으나 년전에 술을 끊은 김화백의 건전한 고집에 우리는 사진만

찍어댈 뿐이엇다.

 

 

 

 

 

정말 아들이 보스톤에서 공부할 때에는 인도네시아의 부호가 아이들을 그 곳에서

삼남매나 교육 시켰는데 처음 100만불에 산 집이 삼남매가 대학을 좋업할

즈음에는3백만불이 되어서 무엇이 애국인지 모를 지경이었다고 하였다.

 

이스트 빌리지의 네거리쯤에는 유명한 Kim's Video도 있었고 조금 나오니까

희귀본과 고서적으로 유명한 St. Marks Bookshop과 스트랜드도 모습을

나타내었다.

 

 

 

(고 서적과 희귀 서적으로 유명한 스트랜드 서점에서 세일 서적을 길가에 내 놓고 있다.)

 

 

 

 

 

 

날이 저물기 시작하여서 우리는 지하철을 타러 유니언 스퀘어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세계에서 음악관계 CD나 DVD, 그리고 서적들이 가장 많다는

Virgin의 거대한 건물이 이름난 로고를 얼굴에 달고 우뚝 서서 사람들에게

그 웅자를 자랑하고 있었다.

우리는 잠시 안으로 들어가서 귀청이 찢어지는듯한 재즈를 조금 즐기다가

나와서 유니언 스퀘어를 바라보며 이쉬운 작별을 하였다.

 

 

 

 

 

 

 

 

 

유니언 스퀘어 서브웨이에서는 또 한마디 언급할 사태가 기다리고 있었다.

지하철 표를 사려고 모니터 판을 두드리는데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

그리고 그 이름도 반가운 한국어가 뜨는 것이 아닌가.

 

또 한가지 우리가 타임스 스퀘어까지 오는데 몇정거장이 남았을까 우리말로

걱정을 하는데,

어떤 아시아계 얼굴의 청년이 내리면서 다음, 다음 역에서 내리시라고

우리말로 친절히 안내를 하면서 내리는게 아닌가.

참 대단한 나라의 백성들이다.

인구 비례로는 세계 최대로 해외 교포가 많다는 통계도 있다.

유태인들하고는 어떤 비교를 하여서 우리가 최고, 최대인지는 잘 모르겠다---.

 

 

 

                                (옷 가게 같은 데에서 이대 입구 분위기가 묻어난다.)

 

 

몇군데에서 참고 자료를 갖다 놓습니다.

 

이스트 빌리지는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거리로 갤러리, 레스토랑, 디스코텍, 라이브하우스

등이 많이 있다.

이스트 빌리지는 1940년대 재즈, 1960년대 히피, 1970년대 펑크 문화가 크게 유행하였고

헌옷을 파는 가게들이 많이 있다.

이스트 빌리지에는 타워 레코드 숍이 있는데 이곳은 장르별로 많은 레코드 재고를

보유하고 있고 저렴한 가격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1969년, 갈 곳 잃은 뉴욕의 젊은 아티스트들이 그린스트리트 98번지와 112번지,

애플스트리트 98번지에 모여 하나 둘씩 크고 작은 전시 공간들을 만들면서 대안 공간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그렇게 태어난 순수한 예술 전용 공간들은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인 아이디어에 귀를

기울였고, 저만치 소외된 여성과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미술가들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이스트 빌리지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설치미술, 비디오 아트, 퍼포먼스 아트 등

우리가 좋아하는 미술 장르들은 지금도 땅속에 파묻혀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젊고 상상력이 풍부한 대안 공간들은 순수 미술의 경계를 뛰어넘어 만화, 무용, 음악,

일러스트, 패션 등을 다양하게 섞은 기발한 전시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지금은 현대미술을 평정하고 있다.

 

신디 셔먼, 제프 쿤스처럼 최고의 아티스트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곳 역시 대안 공간들

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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