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Sex, &

양성론 적 성애 / 나. 셔우드 앤더슨의 단편에서

원평재 2004. 3. 14. 07:30

 

셔우드 앤더슨의 단편, 「여자가 된 남자」("The Man Who Became a Woman")

에서도 이러한 문학적 사례를 보게된다.

젊은 청년 더들리는 비 내리는 토요일 저녁, 고독 속에서 마을의 어느 술집을

찾는다.
술집에는 광부 십여 명이 술을 마시며 도박을 하고 있었다.
청년이 문득 거울을 들여다보자 자신의 얼굴이 젊은 여자로 변하였음을
발견하고 놀란다.
다행히 광부들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때 붉은 머리털의 기이하게 거구인 남자가 역시 붉은 머리털의 아이를

안고서 들어왔다.
그가 술 한잔을 시켜 마시자 홀 안의 모든 사람들이 그와 그의 아이를

놀려대기 시작했다.
그는 화가 나서 아이를 청년에게 맡기고 광부 한 사람을 주먹으로 쳐서

쓰러뜨렸다.
그리고는 아이를 찾아서 안고 나갔다.

이제 청년도 밖으로 빠져 나와 경마장에 있는 숙소로 향했다.
그는 맨몸으로 담요를 두르고 자리에 누웠다.
이때 누군가가 들어와서 몽둥이로 더들리를 때리고 흑인 하나가 담요를

벗긴다.
그들은 더들리의 날씬한 몸매를 보고 흐린 불빛 속에서 그를 소녀로

착각하여 달려든다.
그는 공포에 질려 밖으로 도망치고 흑인 둘이 그를 쫓는다.
마침내 그는 근처에 있는 옛 도살장 건물로 뛰어들었다.
그곳은 양과 소의 두개골, 말의 해골 등등의 뼈다귀가 흉물스럽게 쌓여

있었다.
그는 늑골에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배를 심하게 다친다.
그러자 알 수 없는 공포가 밀려왔고 그 와중에 그의 여성화가 해소된다.
그는 커다랗게 웃으면서 자신이 여자라는 생각을 밤하늘에 멀리 떨쳐

날려보낸다.

이 이야기에는 앞에서도 말한 개체의 양성 공유설이 담겨있다.
즉 더들리의 심성에는 프로이드나 융이 주장하는 아니무스와 아니마가

공유되어있는데 생물학적으로 남성인 그에게 아니마의 요소가
너무 많이 들어있어서 평소에도 동성애에 빠지곤했다.
동시에 그는 전통적인 개념의 이상적인 여성상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아마도 이때에 그의 주변에 이와 다소 유사한 여인이 나타났더라면
그는 어떤 상황에서라도 그녀와의 사랑을 추구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자신의 아니무스 속에 내재한 아니마를 투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은 전개되지 않았고 그는 자신의 아니마를

극대화하여 자기애에 빠진 것이다.
그 점에서는 심리적 "나르시시즘"(Narcissism)과도 통한다.
또한 술집에 거대한 남자가 나타난 것도 평소 말의 미끈함에서
성애를 느꼈던 심정이 투사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남성이 여성처럼 흉내내는 증세를 "이오니즘"(Ionism)이라고 하는데
남성 속에 있는 여성 원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다만 일시적으로 그쳤을 뿐,
그는 남성성을 되찾았는데 이러한 종류의 이상기질은
정신분석학적으로 모두 "성도착"(sexual peversion)증세에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