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광교산의 뻐꾹새 소리 (1)

원평재 2006. 3. 27.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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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꾹 뻐꾹"

 

철 이른 뻐꾹새 울음 소리가 들렸다.

광교산 자락의 아파트가 자연 친화력 1위라는 신문 기사가 얼마 전에 나긴 했지만

그래도 뻐꾹새 소리는 너무 계절을 앞질러 가는성 싶었다.

옆에 누운 아내도 뻐꾹새 소리에 잠이 깬듯 했으나 꼼짝도 않고 있는

기색이었다.

 

왕십리에서 반평생을 살다시피하던 우리가 여기 광교산 자락으로 이사를 온지

오늘 새벽까지 사흘째인데 기이하게도 새벽마다 내가 짜증을 낼 일이 생겨서

아마도 그런 영향 때문에 아내는 꼼짝도 않는 것 같았다.

 

첫날 새벽의 짜증은 부엉이 탓이었다.

전날 이삿짐을 풀고 마침 도움을 주러 멀리 왕십리에서 온 "상가 번영회" 회원들과

소주를 과하게 마시고 들어와 그냥 잠자리에 누웠다가 새벽에 부엉이 소리가 들려서

나는 잠이 깨었다.

 

"야아, 역시 광교산 자락이네. 부엉이 소리가 다 들리고---, 정말 얼마만이야."

뒷산 약수터에서 떠다놓았다는 약수를 벌컥 벌컥 마시며 감탄하는 나에게

아내가 한마디 조용히 했다.

"너무 좋아하지 마세요. 그거 광식이 부부가 엊저녁에 사다가 걸어놓고간

부엉이 시계 소리예요."

광식이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 놈이었다.

철도 전문 대학을 나온 이 녀석은 지금 KTX 운행 기사로 있는데, 연애 결혼을

하여 수색의 조차장 근방에서 살고 있었다.

이 녀석이 바쁜 중 어제 저녁에 잠시 왔다간 모양이었다.

 

나는 부엉이 소리에 속은 탓인지 연애 결혼으로 들어온 며느리가 손자를 낳지 않고 있는

평소의 불만 탓인지 하여간 부아가 치밀어서 소리를 질렀다.

"아 그놈은 제 일이나 하지 바쁜데 여긴 왜 왔다가노. 손자나 하나 낳으라는데

소식도 없고."

 

정말로 이 녀석은 결혼 한지가 꽤 오래 되었는데 아직 부부 사이에 아무 소식이 없으니

며느리는 얄밉고 아들 녀석은 평소 원망스럽던 차에 새벽같이 부엉이 소리로 헛다리를

또 짚은듯하여 나는 화가 버럭 난 것이다.

 

"아직 새벽이니 그냥 푹 주무세요."

"아, 그 놈의 부엉이 소리에 잠이 다 껬는데 잠은 무슨 놈의 얼어죽을 잠!"

평소 차분하게 목소리를 깔고 앉는 아내의 태도가 나의 덜깬 숙취를 달구어

내어서 나는 또 소리를 버럭 지르고 밖으로 나와 첫날부터 새벽 산을 올랐었다.

이사 첫날 아침, 그러니까 이틀 전의 일을 다시 반추하는 셈이다.

 

나와보니 정말 이사를 잘 왔다싶게 공기는 맑고 새벽 별이 드문드문 보였다.

날씨는 아직도 옷깃을 여밀만큼 추웠다.

"잠바를 걸치세요."

아내 순분이 어느새 옆에 따라 나섰다.

"추운데 왜 따라 나왔어?"

이제는 중늙은이가 다 되었지만 평생을 동네 깡패 비슷하게 살아 온 내가 유일하게

성질을 죽이고 마는 상대는 아내 순분이 뿐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