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광교산의 뻐꾹새 소리 (2)

원평재 2006. 3. 30.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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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님이 맨날 보리 누름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고 하시더니 아직 보리가

제대로 패지도 않았지?"

"요즘 보리밭이 어디 있어요. 그리고 보리가 패다니요---?

절기로 보면 아직 멀었죠. 그러니 이렇게 추워요. 옷 걸치세요."

 

원장님이란 우리 부부가 어릴 때 자랐던 "천사의 집" 고아원 원장을 말하였다.

우리는 천호동에 있는 영아원에서 함께 자랐다.

영아원이란 버려진 고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지내는 곳으로

부모없는 아이들에게는 평생 고향으로 마음 속에 남아있는 곳이다.

영아원에서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면 아이들은 이곳 저곳의 "보육원"이라는

곳으로 뿔뿔이 흩어져 보내어진다.

떠나는 아이들도 울고 남아있는 영아들도 모두 운다.

해마다 새봄이 오면 피붙이 보다 더한 정이 든 영아들이 생이별하는 처참함이

연례행사로 차려지기 마련이었다.

 

나도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니 지금은 아내가 된 나보다 두어살 어린

순분이와도  헤어질 운명이 되었다.

그 어린 나이에 내가 순분이를 여자로 좋아하지는 않았겠지만 친 누이를

잃어버리는 것 처럼 가슴이 찢어지는듯 했던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 철부지 같던 순분이도 몇날 며칠 밤새 오빠를 부르며

서럽고 안타깝게 울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원장님의 팔자가 그러했던지 나와 순분이의 운명이 그러했던지

여장부같이 생긴 원장 선생님이 그 해부터 "영아원"을 "보육원"으로 바꾼다고

하시면서 모두들 그만 울라고 다독인 말씀이 생각난다.

그 순간 나와 어린 영아들이 만세를 불렀던 흥분된 마음은 아직도 아련히

떠오른다.

보육원은 영아원에서 온 아이들이 열여덟살 될때까지 지내는 말하자면

상급 고아원이었다.

내가 천사의 집 보육원에 들리지 않은지도 오래되었지만 오래전 설날에

원장님에게 세배를 가서 물어본 적이 있다.

 

"어머님, 왜 그때 보육원으로 바꾸셨어요?"

"네가 순분이와 헤어지는걸 못 보겠어서 그랬다."

"에이, 그때 저희는 어린애들이었고---, 돈 때문은 아니었어요?"

"망할 놈, 기껏 키워놓았더니 속 뒤집는 소리만 하네. 돈벌이라면 영아원이

더 낫고 또 보육원처럼 다 키워놓으면 오갈데 없을때 찾아와서 땡깡 놓는

일도 없고---.

내가 정말 영아들이 흩어지는 광경을 못보겠어서 보육원이라는 짐을

진거야, 이놈아.

내 팔자가 어린 영아들 생으로 떼놓는걸 못 보아준 그때부터 고달퍼진거란다.

이 아들놈아."

겉으로는 억척인 여장부 원장님의 뼈아픈 말씀이 나 같은 깡패 기질 녀석에도

가슴에 저며들었다.

그 이후로 나는 보육원 출입을 하지 않고 말았다.

물론 더 큰 이유도 있었지만---.

 

중학교에 들어갈 때쯤부터 참하고 얌전하며 부지런한 순분이가 내 눈에 들어와서

영아원이 보육원으로 바뀌지 않았더라면 정말 큰일 날뻔했다는 자각이 생겼다.

중학교를 마치고는 기숙학교인 금오공고로 간 아이들도 많았고 나중에는 또

금오공대로 간 머리좋은 원생들도 있었다.

주먹만 세고 머리가 나쁜 나는 열여덟에 사립 공고를 나오는둥 마는둥 하다가,

천호동 근처의 원단 짜는 공장으로 취업이 되어서 갔고, 아내 순분이는 평화 시장의

미싱사로 일을 했다.

 

전태일이라던가 누군가가 몸에 신나를 끼얹고 불에 타죽은 후부터 순분이는

월급도 올랐고 작업장 공기도 많이 맑아졌다고 기뻐하여서 내 마음도 참

편해졌었다.

그러나 미싱 바늘이 순분이의 손가락을 꿰뚫는 일은 심심치 않았다.

지금도 그런지는 몰라도 그때는 병력자원이 많아서인지 나는 군대도 갈 필요가

없었는데 사실은 군복을 한번 입고 싶은 것이 평생의 원이기도 했으나 한으로만

남았다.

 

원단 짜는 공돌이로는 싹수가 노랐다는걸 알고 나는 소매치기와 도둑질등을

닥치는데로 하다가 원사와 원단을 중개해주는 거간꾼으로 돈을 좀 벌었다.

시장 바닥에서는 이런걸 "나까마"라고 하는데 깊은 뜻은 모르겠다.

하여간 돈이 좀 생기자 나는 미리 점을 찍어두었던 순분이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결혼식은 강동구청의 사회복지관에서 합동으로 하였는데 원우들이 많이 와서

울고 웃어주었다.

순분이에게 눈독 들인 원아들이 어이 나뿐이었겠는가만은 내 주먹의 역할이

컸고 그녀도 나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