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광교산의 뻐꾹새 소리

원평재 2006. 4. 3.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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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밝으면 나는 아침을 일찍 먹고 옛날 동네, 사근동으로 출근을했다.

집은 팔았고 가게는 세를 놓았지만 정리할 일들이 남았고 또 내가 조직한

상인들의 번영회 회장 일을 아직 다른 사람에게 인수인계 하지 않아서 당분간은

사근동으로 출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이었다.

나는 그 곳 영세 상인들의 꿈의 대상이었다.

저녁이면 그런 사람들과 소주 한잔 마시고 늦게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귀가하는 일도 그렇게 재미 있을 수가 없었다.

 

두번째 날 새벽의 닭울음 소리와 관련해서도 어쨌든 내가 헛다리를 짚은

셈이었는데 그런 다음날인 3일째에는 빠질새라 철 이른 뻐꾹새 소리까지 듣게 된

것이었다.

연 사흘 새벽이 새소리 소동 속에서 시작되었다.

다만 아내가 뻐꾹새 소리를 듣고도 곰짝 안하는 이유로는 전날 저녁

술 한잔하고 늦게 자리에 누운 나를 생각해 주는 측면도 있었겠고,

이사와서 매일 새벽마다 새소리에 난리를 치룬 탓에 자신의 심신도 지쳤기

때문이었으리라..

 

"뻐꾹, 뻐꾹!"

한 참 조용하던 새벽 공기를 가르고 뻐국새 소리가 다시 들렸다.

우리 부부는 계속 조용히 누워있었다.

다시 한 참 시간이 흘러갔다.

우리는 이제 묘하게도 말없이 다음 소리를 함께 기다리는 입장이 되어있었다.

정말 약속이나 한듯이 우리는 꼼짝않고 부시럭대지도 않았다.

 

"뻐꾹, 뻐꾹!"

한 참 만에 또 뻐꾸기 소리가 들렸다.

"이 미친년의 할망구야, 썩 꺼지지 못해!"

갑자기 앙칼진 여인의 목소리가 새벽의 정일함을 찢어놓았다.

우리는 이층에 살았는데 바로 일층에서 나는 소리였다.

"이게 뭐야?"

"글쎄요---."

우리는 갑자기 후다닥거리며 옷을 주섬주섬 입고 아래로 내려갔다.

왜소하지만 단아한 모습의 어떤 할머니가 일층에서 쏟아져나오는 욕설을

마치 꾸지람 듣듯이 받아들이며 경비실 앞쪽 길에 엉거주춤 서있었고

경비 아저씨는 난감한 표정으로 그녀와 일층 베란다의 또다른 할머니를

번갈아 지켜보고 있었다.

 

일층 아파트는 불이 환히 켜져있었고 베란다에는 키큰 할머니가 새벽에

어울리지 않게 거의 검은 색 정장을하고 밖의 왜소한 할머니를 향하여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키큰 일층 할머니에 대한 내 인상은 좋지 않았다.

첫날 이삿짐을 올리는데 남의 집 살림을 검사나하듯이 불편하게 그녀는

챙겨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아내, 순분이를 보고 거만하게 말을 붙였다.

"강남에서 오시오?"

"아뇨, 왕십리에서 오는데요."

순분이 곱게 대답하였다.

"다행이오. 우리는 강남 집 팔아 분당 온 바보에다 분당 집 팔아 광교산

아래로 온 등신이라오. 이제 여기 집 팔아 강남 전세로 돌아가는 머저리

짓은 안해도 될듯하오.

그런 멍청한 짓을 한 영감이 얼마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라오."

 

"저희는 여기도 수지 근방이라 수지 맞은 줄 알고 왔는데요."

순분이 고분고분하게 웃으며 응대하였다.

"뭘하시다가 은퇴하셨나요? 돌아가신 우리 영감은 차관까지 하셨다오.

공무원 하던 중에 정부에서 보내주어 밴더빌트 대학에 가서 박사도 했는데---.

거 왜 아웅산 사건 때 순국하신 분들이 그 대학에서 행정학 박사를 많이 했다오.

그 분들 후배였어오."

"저희는 평생 장사하다가 왔어요."

순분이 너무 순진하게 대답을 하여서 화가난 내가 막 뛰어나갈 지경이었다.

 

"무슨 장사를 했수?"

"똑똑하신데 알아맞춰 보세요."

순분이 생글 한번 웃고는 일절 대거리를 하지 않았다.

그 단호한 태도에 할머니도 머쓱해 버리는 것을 보고 나는 속으로 만세를

부르고 상황 끝 해버렸었다.

내가 한참 삼일 전의 불편했던 기억을 반추하고 있는데 놀라운 장면이

벌어졌다.

경비실 옆에서 어정쩡하게 울듯이 서있던 그 왜소한 할머니가 두손을 포개어

모으더니 입에다 갖다 대고 볼을 불룩거리며 힘껏 부는 것이 아닌가.

 

뻐꾹, 뻐꾹!

조금전 새벽에 잠결인가 꿈결인가 긴가민가로 들었던 그 뻐국새 소리가

그 귀엽고 작은 할머니의 포갠 두 손에서 나오지 않는가---. 

"저ㅡ 저 미친 할망구 같으니라구. 이 집 영감은 지난 주에 죽었어. 아무리 뻐꾹

소리를 내봐야 밖으로 나오지 않어. 심근경색으로 죽었다니까. 그만 가봐!"

그러나 밖의 왜소한 할머니는 다시 두손을 모아서 "뻐꾹, 뻐꾹" 소리를 내었다.

눈물끼가 맴도는 그녀의 눈빛은 이제 온전한 정신의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은

이미 아니었으나 그녀의 온 몸에는 진지함과 위엄이 서려있어서 누가 감히

범접을 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었다.

그 때 쯤에야 젊은 부부가 옆 동에서 헐레벌떡 나타나더니 뻐꾹 소리를 내고있는

왜소한 그 할머니를 데리고 가려했다.

 

"아니 자식들이 이제야 나타나네. 평소에는 뭘했오. 어서 데려가요, 엉엉엉,

여기 영감은 지난 주에 돌아가셨단 말이오. 다시 오지 말라고 해요. 엉엉엉.

나도 미국있는 자식들에게 내주에는 가버릴거야, 엉엉엉."

 

눈물을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흘리던 두 할머니가 사라진 새벽의 경비실에

경비와 우리부부와 부지런한 주민 서너명이 더 남아있었다.

"새로 이사오셔서 놀라셨지요?"

경비가 미안한 얼굴을 하며 엉거주춤 서있었다.

"전에도 제 철이 아닌데 뻐꾹새 소리가 들릴 때는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누가 말했다.

"돌아가신 전직 차관님과 저쪽 동에 사시는 아담 사이즈 할머니가 매일

새벽이면 산책을 함께 하셨거든요. 차관님이 가끔 늦으시면 할머니가 뻐꾹

소리를 기가막히게 내셨어요."

경비가 주섬주섬 설명을 해주었다.

"여기 일층의 그 키 큰 할머니는요?"

누가 물었다.

 

"주로 미국에 있는 아들 집에 가 계셨지요. 그러니 돌아가신 분은 저 쪽 동의

키 작은 할머니와 새벽 데이트, 아니 새벽 산책을 즐기셨어요.

키 큰 할머니는 워낙 대가 세고 잘난 분이라서 돌아가신 차관님이 버거워

하시는 것 같았어요. 이거 입주자님들 이야기를 하는건 아닌데 죄송합니다."

"괜찮소. 새벽부터 이 난리에 알건 알아야지요."

내가 말했다.

"돌아가신 양반은 참 말이 없으시데---. 그 양반과 저쪽 할머니께서 수시로

산길도 고쳐놓고 쓰레기도 줍고하셔서 부부 사이인줄 알았어요. 

아주 정정하시더니 갑자기 돌아가신게 비아그라 드신거 아닌가?"

중년의 어떤 사내가 농담을 따먹다가 썰렁한 공기를 느끼고 얼른 사라지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도 모두 흩어졌다. 

 

나와 아내도 이층으로 올라왔다.

그녀가 거실의 소파에 조용히 앉는데 몹씨 피곤한 기색이었다.

"여보."

내가 순분이를 불렀다.

"---?"

"내 눈치 보지말고 보훈 병원에 가서 창호를 한번 만나보시오."

"무슨 말씀이세요?"

"내가 다 알아요. 그 놈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고 합디다. 당신을 몹씨 찾는다고

하더군."

"난 그 사람 몰라요."

"그러지 말고---. 당신이 돈을 조금씩 붙여준 것도 내 다 알고있소."

 

창호는 천사의 집에서 함께 지낸 나와 동갑내기 원생이었다.

말 수가 없고 얌전한 그가 순분이를 좋아한다는 눈치를 내가 일찌기 알았으나

내 주먹 앞에 적수가 아님을 그가 더 잘 알고 있었을게다.

순분이도 어쩌면 주먹 센 나보다는 얌전한 그를 더 좋아했을 것이다.

나이가 차서 보육원을 나오던 해에 그는 갑자기 사라졌다.

그가 북파 공작원이 되었다는 것은 한참 후에야 겨우 알게 되었다.

내가 고아라서 우리 군복을 입고 싶은 원이 한이 되었을 때에

창호는 순분이를 잃은 한까지 보태서 인민군복으로 자신을 위장했는지도

몰랐다.

 

군사 정부가 사라지고 민간 정부가 들어섰을 때에 그런 관련이 터져나왔고

창호도 그런 관련에 깊이 연루되었더라는 소식이 천사의 집에서 흘러나왔다.

술주정뱅이가 된 그는 인간 망종이 되어서 가끔 천사의 집에 나타나 처녀적

순분이를 내 놓으라고 야료를 부린다고도 하였다.

나는 이래저래 천사의 집을 멀리하게 되었고 순분이에게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였었다.

 

그리고 다시 세월이 흘러갔는데 문득 그가 간경화인지 간암인지로 보훈병원에

입원하여서 숨이 경각에 달려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순분이를 찾는다는 소식을 그녀라고 못 들었을리 없었을 것이고 마음 고운 그녀가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순분이의 눈에서 눈물이  조금 흘러내린 것을 나는 못본체 했다.

"여보, 날이 밝으면 당장에 가보게. 그런 다음에 나도 따로 가볼께. 이런 경우

시간이 한이 될 수 있어."

새벽 다섯시를 알리는 부엉이  시계 소리와 유치원 장닭의 홰치는 소리가 화음을

이루어 들려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