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반년만의 외출, 천경자 전에서 (2)

원평재 2006. 4. 16.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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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통곡 / 1995 / 94.5 x 128.5 / 종이에 채색

 

 

"여보, 이 여류 대가께서는 한과 고독과 미적 추구의 인생 82페이지라고 자신의

인생을 명명하셨는데, 난 그 나이에 어떤 페이지를 펼칠 수 있을까요?

겁나고 주눅들어요. 이 거대한 업적 앞에서---. 하긴 그 때까지 살아있기나

할까요?"

내가 연인의 팔에 매달리며 정말 주눅들린 목소리로 낮게 속삭였다.

누가 우리 뒤에서 디카로 사진을 찍는 기색이었는데 정리와 안내 역할을 하는

아가씨가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실내에서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요!"

디카를 쥔 여성은 20대 말 쯤 된 날렵한 모습의 여성이었는데 생각과 달리

아무 말도 못하고 풀이 죽어 있었다.

 

"안내 아가씨, 좀 심하지 않소. 내가 외국에 나가보니 요즘은 플래쉬만 터뜨리지

않으면 디지틀 카메라는 다 찍게 합디다."

이럴때 가만 있으면 내 연인이 아니다.

그가 못참겠다는 듯이 아가씨를 나무랬다.

"아, 그러세요? 미안하지만 여기는 사천 오백만 동포가 살고있는 한국입니다."

아가씨가 당당하게 눈을 치뜨고 사천 오백만의 동맹군을 전장으로 소집하면서

내 연인에게 대들었다.

이제 말 싸움은 자기가 이겼다는 기색이 그녀의 얼굴에 역력하였다.

 

"알겠오. 미안하오. 그런데 아가씨가 여기 안내하러 나와있으니 하나 물어봅시다.

저기 타이틀 설명을 보니 종이에 채색이라고 했는데 종이는 무슨 종이를 뜻하는

건가요?"

"전 그런거 몰라요."

"에이, 그런걸 공부하고 안내를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경비원 밖에 되지

않소. 큐레이터는 언제 될거요?"

그가 다시 꾸짖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여보, 그만해요. 종이는 한지를 압착한 것도 있고 두꺼운 드로잉 페이퍼도 있고

그래요. "

내가 그의 소매를 끌었다.

"나도 알고 있소. 캔바스 위에 오일 페인팅이 아닌 압축지에 올린 채색화의 묘미를

내가 어찌 모르겠소. 큰 소리치는 저 경비원 아가씨를 혼내 주고 싶었을 따름이지."

우리는 지하 쪽의 전시물도 보고 천경자의 일생을 그린 영화가 돌아가는

파빌리언에도 잠시 들렀다.

고독과 한과 절망에 가득한  신산한 삶이 화폭 위에서 최후의 승리를 이루는

인생 82페이지가 거기 파노라마로 엮어지고 있었다.

그녀의 화풍을 장엄하다고 한다면 어폐가 있겠지만 그녀의 삶이 엮은

'인생 82페이지'는 거기 장엄하고도 당당하게 펼쳐져 있었다.

 

우리는 마침내 천 화백이 그린 "누가 울어 1"의 앞에 섰다.

트럼프 카드를 화투패처럼 쥐고서 배를 깔고 누운 여인의 엉덩이가 하늘로 솟아

있었다.

"음~, 1988년도 작품이군, 이제 다시 뚜렷이 기억이 나."

그가 신음 소리를 내었다.

"20년이 지났다는걸 명심하세요. 지금은 성형수술로도 저 엉덩이가 속수무책이라는 걸

인정해야되요."

나는 연인의 손목을 꼬집은 다음 소매를 끌고 한 계단 높은 곳에 있는 '두가헌'의

부속 전시실로 발길을 옮겼다.

이층으로 된 그 전시실 건물의 지하에는 와인 셀러가 있어서 수억 어치의 귀한

수입 포도주가 어둠과 서늘함 속에서 아직도 숙성을 지속하고 있는 줄을 나는

알고있다.

그래서 그 앞마당, 필로티에 있는 300년 묵은 은행나무의 깊은 숨결과 와인 셀러의

고운 숨결은 서로 호흡을 맞추어서 항상 내 화폭에 추상의 공간이 되어 오르고야 

말겠다는 강한 유혹의 숨소리를 내게 보내고 있었다.

 

이제 별관 전시장에서도 천경자의 그림과 스케치는 그 처절한 고독을 관람객을 

대신하여 대리 고통하며 벽면에 매달려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한스러이 내 가슴에 와 닿아서 나는 내 연인을 계단 구석으로

밀고간 다음 잠시 키스하였다.

마침 그 공간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어서 내가 순식간에 벌인 퍼포먼스였는데

어느틈엔가 아까 경비 아가씨에게 꾸지람을 들었던 여인이 나타나서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 왜 자꾸 따라다니시오?"

내 연인이 모나지 않게 웃으면서 그러나 좀 따끔하게 한마디 하였다.

"아, 두분이서 무슨 대화를 나누나 들어보려고 그랬어요."

그녀가 횡설수설하였다.

"뭐라구요?"

이번에는 내가 좀 앙칼지게 대들었다.

"아, 아뇨. 그림을 잘 아시는 분들인듯 하여서 귀동냥을 하려구요---."

그녀가 계단 아래로 구르듯 내려가며 꽁무니를 뺐다.

 

나는 항상 내 연인에게 노예이며 종이고자 하였다.

춘수 시인의 시, "꽃"에서처럼 내 그림이 처음 어떤 화랑의 벽면에 매달렸을 때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존재, 그러니까 무존재 였다.

그가 나를 꽃이라고 부르고 "무제"라고 붙인 내 그림의 제목에 절대적 의미를

부여하여 "월간 미술"지의 "아마추어가 쓴 그림 감상"이라는 칼럼에서 극찬을

아끼지 않은 순간이 바로 내가 이 세상에 새로 태어난 순간이었다. 

그가 첫 부인을 뉴케미어, 그러니까 혈액암으로 잃은지 일년이 지났을 때였고

나는 막 꽃띠 시절을 지나 얼굴의 주름이 아는 사람들의 눈에 들키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그림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직관과 평가 안목은 결과론적으로 나에게 큰 은혜가

되었음에도 그의 미술 편력을 내가 앞에서 좀 투정 비슷이 탄핵한 것은 정말

어릿냥에 불과한 말이었다.

내가 그의 딜레탄트 기질에 가득한 미술 평론의 은혜를 입은 것이 20년전의

일이어서 지금은 좀 오만해진 탓인지도 모르겠다.

 

"여보, 제가 당신의 종인데 가끔 신분을 망각하네요. 이번에는 키스를 훔치다가

또 당신을 망신 시킨 것 같아요. 호호호."

"무슨 소리, 내가 당신의 종이야. 하하하."

"끔찍해요, 그런 말씀. 당신은 제 멘토예요, 항상."

우리는 무례한 관람객 때문에 일시적으로 사랑 싸움에 몰입하게 되었다.

행복한 순간이었다.

 

 

 

(계속)